주교좌 남천성당
개요
남천성당은 부산광역시 수영구 남천동에 있는 천주교 부산교구의 주교좌 성당으로, 1979년 6월 8일 본당으로 설립되었다. 주보는 성 정하상 바오로이다. 1992년 5월 31일 대성전 축성식을 가졌고, 이때 중앙성당으로부터 부산교구 주교좌의 대표성과 역할을 이어받았다.
역사
〔설립 배경〕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남천동은 황령산 아래 바다 매립지 6,500여 평에 3천여 세대의 대단위 아파트가 들어서며 형성되었고, 1970년대 중반 남구청과 부속 단체, 남부 교육구청, KBS 방송국이 새로 설립되면서 남구의 중심지가 되었다. 주민과 신자가 함께 급증하자 부산교구는 1979년 6월 8일 본당 설립을 확정하고 광안 본당과 대연 본당의 신자 일부, 타지역에서 이주해 온 신자들로 남천 본당을 설립했다. 부산역사문화대전도 1970년대 후반 남천동 바닷가 매립지에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서며 인구가 급증했고 남구청, 남부산세무서, 법원 등기소가 이전해 오면서 남천동이 남구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대연성당과 광안성당의 중간 지점에 남천성당이 설립되었다고 적는다.
〔임시 성당 시절〕 당시 경제 여건상 새 성전을 짓기 어려워 데레사병원 사옥으로 쓰다가 당시 부산교구 가톨릭 교육원으로 쓰이던 건물을 임시로 사용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부산역사문화대전은 데레사병원의 임시 사옥을 리모델링해 성당으로 썼고 내부가 협소했으나 신자들이 단합해 내부 시설을 정비하며 성전 분위기를 가꾸었다고 적는다. 초대 주임 제찬규(시메온) 신부는 병원 건물 일부를 개조하고 내부 시설을 정비하는 한편 사목 지침을 ‘한 집안 운동’으로 정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임시 성당은 실 사용 면적 200여 평에 최대 수용 인원이 800명 정도여서, 1980년대 들어 신자가 2,000명을 넘자 모두 수용하지 못했다. 1979년 7월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분원이 파견되었고 이듬해 사목위원회가 조직되었다.
〔성전 건립〕 2대 신상도(아우구스티노) 신부가 1985년 2월 성전 건립위원회를 조직해 준비에 착수했고, 같은 해 9월 3대 정명조(아우구스티노) 신부가 부임해 성전 건립이 본격화되어 1988년 12월 4일 기공식을 거행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정명조 신부는 1989년 10월 23일자로 군종교구 주교로 임명되어 본당을 떠났고, 4대 이영식(히지노) 신부가 부임해 성전 기금 마련과 바자회 개최 등으로 마무리했다. 1992년 5월 31일 이갑수 주교의 주례로 축성식을 거행했다. 부산역사문화대전은 1988년 성전 건립 위원회가 조성되어 대지 1만 1200㎡에 건평 2,072㎡, 연건평 4,460㎡ 규모의 대성전으로 짓는 계획을 세웠고, 신자들의 모금과 바자회 등 노력 끝에 1992년 5월 31일 대성전 축성식을 가졌다고 적는다. 총 공사비는 50억 원에 달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주교좌 성당〕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남천 본당은 성당 준공과 함께 35년간 부산교구 주교좌를 맡아 온 중앙성당으로부터 주교좌의 대표성과 역할을 물려받았다. 부산역사문화대전은 대성전이 완성되면서 부산교구의 주교좌성당이 되었고 교구의 사제 서품식을 비롯한 대규모 행사가 남천성당에서 열린다고 적는다. 1995년에는 성전을 덮은 유리 천장을 스테인드글라스로 완성했다(부산역사문화대전).
〔본당 활동〕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초창기에 설립된 신심 단체는 한국 순교 성인들의 삶을 기리고자 단체명을 한국 성지 이름으로 정했고, 1981년 4월 천사 유치원을 개원했으며 1984년에는 출감자 돕기 시민 음악회를 열었다. 1994년부터 구역 공동체 활성화의 하나로 남성 신자 공동체를 만들어 매월 1회 모임을 갖고 있고, 흰돌 노인 대학을 개교했다. 매년 7월과 8월 매일 오전 6시부터 7시까지 광안리 해수욕장 주변 청소를 했으며, 전교의 달에는 황령산 등산객을 대상으로 본당이 제작한 안내 소책자로 가두 선교를 했다. 부산역사문화대전은 20년 이상 시행해 온 흰돌대학(노인 사목)이 다른 본당의 모범으로 인정받고 있고 은빛성가대를 창단했다고 적는다.
〔교세와 현황〕 한국가톨릭대사전의 교세는 1979년 582명, 1984년 3,226명, 1987년 4,465명, 1991년 5,440명, 1993년 6,407명이며, 당시 관할 구역은 남천1·2동과 대연3동, 광안2·4동 일부였다. 부산역사문화대전에 따르면 2013년 현재 신도 수는 1만 1999명이고, 대지 면적은 1만 1200㎡ 정도이며 대성당과 유치원, 사제관, 수녀원 등 건평은 2만 7944㎡ 정도이다. 같은 출처는 남천성당이 역사는 길지 않지만 대성전 건립과 부산교구청 이전으로 주교좌성당으로서 교구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건축과 공간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성당은 대지 3,327평, 연건평 2,191평으로, 지하 1층에 각종 회합실, 지상 1층에 소성당·강당·교리실, 2층에 대성전이 있고 중층에 성가대·일반석, 120여 평 규모의 만남의 광장과 성모 동상이 있다. 조광호(엘리지오) 신부가 스테인드글라스로 제작한 ‘천지 창조’와 ‘구세사’, 원성득이 제작한 성모자상, 옥외·옥내의 십자가의 길, 주보인 성 정하상 바오로의 동상은 전문 작가의 작품이다. 부산역사문화대전은 당시 3,000좌석의 성전 규모가 전국 최대라고 했다고 적는다.
관련 장소와 인물
- 중앙성당: 남천성당 준공 전까지 35년간 부산교구 주교좌를 맡았다(한국가톨릭대사전).
- 광안 본당, 대연 본당: 신자 일부가 남천 본당 설립에 합류한 본당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 정명조(아우구스티노) 신부: 3대 주임으로 1988년 12월 4일 성전 기공식을 거행하고, 1989년 10월 23일자로 군종교구 주교로 임명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 조광호(엘리지오) 신부: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천지 창조’와 ‘구세사’를 제작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 역대 주임(한국가톨릭대사전, 1993년 서술 기준): 초대 제찬규 시메온(1979.6~1983.2), 2대 신상도 아우구스티노(1983.2~1985.9), 3대 정명조 아우구스티노(1985.9~1990.1), 임시 최영철 알로이시오(1990.1~2), 4대 이영식 히지노(1990.2~).
참고자료 및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부산역사문화대전 “남천성당”. 설립 배경(1979.6.8.), 임시 성당, 대성전 축성(1992.5.31.), 스테인드글라스(1995), 주교좌성당, 2013년 현황.
https://www.grandculture.net/busan/toc/GC04210747 - 한국가톨릭대사전, “남천 본당”(2권). 설립과 발전, 성전 건립 과정, 공간 구성과 예술 작품, 주교좌 이관, 본당 활동, 교세 통계와 역대 주임 명단.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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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주교좌 남천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6일 13:54. https://missamap.com/ko/kr/busan-namcheon-cathedral-mass-times/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