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좌 중앙성당

목차
  1. 개요
  2. 역사
  3. 건축과 공간
  4. 신앙적 의미와 방문 맥락
  5. 관련 장소와 인물
  6.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부산 주교좌 중앙성당은 천주교 부산교구의 주교좌 성당 가운데 하나로, 부산광역시 중구 용두산길 9에 있다. 본당의 공식 명칭은 중앙 주교좌이며, 주보성인은 성 십자가이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소록은 본당 설립일을 1948년 8월 1일로 기록하고 있다.

중앙성당은 해방 직후 부산 원도심에 설립된 본당으로, 처음에는 대청동본당으로 불렸다. 1957년 부산 대목구가 설정된 뒤 주교좌 본당이 되었고, 같은 해 중앙본당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후 부산교구의 주요 전례와 교구 행사가 이곳에서 거행되면서 오랫동안 교구의 중심 성당 역할을 맡았다.

1992년 5월 31일 남천성당이 새로운 주교좌로 공식 선포되면서 교구의 대표적인 주교좌 기능은 남천성당으로 옮겨갔다. 그러나 중앙성당은 이후에도 주교좌 성당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현재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소록과 부산교구 자료는 남천성당과 중앙성당을 모두 주교좌 성당으로 표기한다.

현재의 대성전은 1970년대 초 다시 지은 건물이다. 1971년 옛 성당을 철거하고 신축에 들어갔으며, 1973년 5월 1일 당시 부산교구장 이갑수 가브리엘 주교의 주례로 축성되었다. 성당은 부산의 원도심과 용두산공원 일대에 자리하며, 부산교구의 성장 과정뿐 아니라 한국전쟁기의 피란 경험과 부산 지역 현대사의 여러 장면을 함께 간직한 장소로 평가된다.

역사

해방 이후 부산 중구 지역에 새로운 성당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커지면서 중앙성당의 설립이 추진되었다. 당시 교회는 부산지방 관재처를 통해 일본 불교 사찰이었던 지은사 건물을 불하받아 성당으로 사용하였다. 내부를 수리한 뒤 1948년 6월 20일 축성식을 거행했고, 같은 해 본당이 설립되었다. 현재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소록은 설립일을 1948년 8월 1일로 기록한다. 창설 당시 명칭은 대청동본당이었으며, 범일본당에서 분리된 본당이었다.

초대 주임은 이명우 야고보 신부였다. 설립 초기에는 주일 미사 참례자가 100명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작은 공동체였으나,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 부산이 임시수도의 역할을 하게 되고 북에서 내려온 피란민과 성직자, 수도자, 신자들이 부산으로 몰리면서 중앙성당은 피란민을 수용하고 교회의 사목과 구호 활동을 지원하는 거점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성당과 본당 시설은 밤에는 피란민의 숙소로 사용되고 아침에는 다시 미사를 위한 공간으로 정리되기도 했다.

전쟁 이후 신자 수가 증가하면서 본당의 규모도 확대되었다. 1956년에는 기존의 지은사 건물을 철거하고 새 성전을 지었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이 성전이 1956년 9월 준공되었다고 기록한다.

1957년 1월 21일 대구대목구에서 분리된 부산대목구가 설정되었다. 초대 대목구장으로 임명된 최재선 요한 주교는 같은 해 5월 30일 주교 성성식을 거행한 뒤 대청동본당을 주교좌 본당으로 삼았고, 본당 명칭도 중앙본당으로 변경되었다. 교구청 역시 한동안 중앙성당에 자리했다. 이 시기부터 사제 서품을 비롯한 주요 교구 전례가 중앙성당에서 거행되었다.

교세가 확대되면서 중앙본당에서 여러 본당이 분리되었다. 전후 부산 도심의 인구 증가와 교세 확장 속에서 초량, 신선, 서대신을 비롯한 주변 본당들이 분가했고, 중앙성당은 부산 원도심 복음화의 주요 거점으로 기능했다. 1964년에는 교구청이 중앙성당에서 대청동의 가톨릭센터로 이전했다.

1960년대 후반에는 기존 성전의 노후화와 공간 부족 문제가 커졌다.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1970년 3월 새 성전 건립을 위한 준비가 시작되었고, 1971년 2월 성당 신축 기성회가 구성되었다. 같은 해 8월 옛 성당을 철거하고 본격적인 신축 공사가 진행되었다. 당시 가톨릭신문은 1971년 8월 15일 옛 성당을 헐고 새 대성전 건립을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1973년 5월 1일 신축 성전의 축성식이 이갑수 가브리엘 주교 주례로 거행되었다. 당시 가톨릭신문은 성직자와 수도자, 각 본당과 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축성식과 성 십자가 봉헌미사가 이어졌다고 전했다. 이 건물이 오늘날 중앙성당 대성전의 기본 골격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중앙성당은 전례와 사목뿐 아니라 부산 지역 사회의 여러 공적 활동이 이루어진 장소이기도 했다. 권위주의 정권 시기에는 시국 강연회와 교구 사제단의 사회적 발언 및 집회가 성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사례가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점에서 중앙성당은 부산 천주교회의 역사뿐 아니라 부산 원도심 현대사의 한 공간으로도 언급된다.

1980년대에는 성전 내부의 성미술과 전례 공간이 보강되었다. 1984년 가을부터 스테인드글라스 설치가 진행되어 1987년 12월 21일 전체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가톨릭신문 보도에 따르면 총면적은 약 90㎡이며, 재독 작가 최영심이 디자인을 맡았다. 작품은 부활, 성령, 천지창조를 주요 주제로 삼았다.

1990년에는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되었다. 독일 뮌스터교구의 한 본당에서 기증받은 오르간으로, 같은 해 5월 18일 이갑수 주교가 축성하였다. 이후 중앙성당은 파이프 오르간 연주회와 성음악 행사가 꾸준히 열리는 장소가 되었다.

1992년 5월 31일 남천성당이 새 주교좌 성당으로 공식 선포되면서 부산교구의 대규모 교구 행사와 행정 중심은 점차 남천동 지역으로 옮겨갔다. 그러나 중앙성당의 주교좌 명칭은 유지되었다. 현재도 부산교구와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자료에서 주교좌 중앙성당으로 표기된다.

2018년에는 본당 설립 70주년을 맞아 기념미사와 음악회 등이 열렸다. 이는 중앙성당이 해방 직후의 작은 본당에서 출발해 한국전쟁, 부산교구 설정, 교세 확대와 성전 재건 등을 거치며 이어져 온 역사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건축과 공간

현재 중앙성당의 대성전은 1971년부터 1973년까지 진행된 신축 공사를 통해 완성되었다. 1973년 당시 가톨릭신문은 대성전이 약 1,100평 규모라고 보도했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지하 1층, 지상 3층에 연건평 약 1,100평으로 기록한다.

다만 대지 면적은 자료에 차이가 있다. 1973년 가톨릭신문의 축성 당시 보도는 약 650평으로 기록한 반면, 한국가톨릭대사전은 약 594평으로 기록한다. 두 자료의 산정 기준이나 기록 과정이 확인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대지 면적을 한 수치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반면 연건평 약 1,100평이라는 기록은 두 자료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된다.

성당은 부산 원도심의 경사지와 용두산공원에 인접한 곳에 자리한다. 대성전은 다수의 신자가 함께 전례에 참여할 수 있는 큰 내부 공간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대와 신자석, 성가대석, 파이프 오르간, 스테인드글라스 등의 전례 요소가 배치되어 있다.

성전의 대표적인 성미술 가운데 하나는 1980년대에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다. 공사는 1984년부터 약 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진행되었으며 1987년 말 완공되었다. 최영심 작가가 디자인한 작품은 부활, 성령, 천지창조를 주제로 한 비구상적 표현을 사용한다. 빛을 받아 변화하는 색유리는 성전 내부의 전례 공간과 결합해 복음과 구원사의 주제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2층 성가대 공간에는 기계식 전통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되어 있다. 이 오르간은 독일 뮌스터교구의 한 본당에서 기증받아 1990년 설치되었으며, 당시 이갑수 주교가 축성했다. 2018년 본당 설립 70주년 관련 보도에는 높이 약 6.84m, 폭 약 5m 규모의 악기로 소개되었다. 오르간은 미사 전례뿐 아니라 본당과 교구의 성음악 행사에도 활용되어 왔다.

성당 건물은 1948년 처음 사용했던 일본 사찰 건물이나 1956년 준공된 이전 성전과는 다른 건물이다. 따라서 중앙성당의 역사적 가치는 단일한 옛 건축물을 그대로 보존했다는 데 있기보다는, 같은 장소에서 성당이 여러 차례 재건되고 확장되며 부산교구의 역사를 이어 왔다는 점에 있다.

신앙적 의미와 방문 맥락

중앙성당의 주보는 성 십자가이다. 본당의 공식 명칭에도 성 십자가에 대한 신앙적 전통이 반영되어 있으며, 1973년 현 성전 축성식에서도 성 십자가 봉헌미사가 거행되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부활을 통한 구원을 중심으로 하는 가톨릭 신앙의 핵심 상징이다.

중앙성당은 부산교구가 독립된 교회 행정 단위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장소였다. 1957년 부산대목구가 설정되고 최재선 주교가 부임한 뒤 중앙성당이 주교좌 성당으로 지정되면서, 이곳은 부산교구의 주요 전례와 사제 서품, 교구 행사 등이 거행되는 성전이 되었다. 1992년 남천성당이 새 주교좌로 선포된 뒤에도 중앙성당은 주교좌 성당으로서의 명칭과 전례적 의미를 이어오고 있다.

한국전쟁기의 경험 역시 중앙성당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전쟁으로 남하한 피란민과 성직자, 수도자, 신자들이 부산에 모였을 때 중앙성당은 단순한 예배 장소를 넘어 숙소와 구호 활동의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이곳의 역사는 전쟁 시기 한국 천주교회의 피란과 재건 과정과도 연결된다.

1980년대에 완성된 스테인드글라스와 1990년에 설치된 파이프 오르간은 오늘날 중앙성당의 전례적·예술적 특징을 이루는 요소다. 방문자는 건축 외관뿐 아니라 부활, 성령, 천지창조를 주제로 한 스테인드글라스와 파이프 오르간 등 성전 내부의 전례미술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중앙성당은 순교성지나 관광시설이 아니라 실제 미사와 성사가 거행되는 현역 본당이자 주교좌 성당이다. 방문할 때에는 미사, 장례, 혼인, 본당 행사 등 전례와 사목 일정이 우선한다. 미사 시간과 성전 개방 여부는 변경될 수 있으므로 방문 전 중앙성당 또는 부산교구의 최신 안내를 확인하는 것이 적절하다.

성당은 용두산공원과 부산 원도심에 가까워 부산 근현대사와 종교사를 함께 살펴보는 동선으로도 접근할 수 있다. 다만 중앙성당을 이해할 때에는 단순한 관광 명소보다는 1948년 이후 부산 지역 가톨릭 공동체가 전쟁과 도시 성장, 교구의 형성과 변화를 함께 겪어 온 신앙 공간이라는 점이 중심이 된다.

관련 장소와 인물

범일성당은 중앙성당이 분리되어 나온 모본당이다. 현재의 중앙본당은 1948년 범일본당에서 분리되어 설립되었다. 이후 중앙본당의 교세가 커지면서 부산 원도심과 주변 지역에 여러 본당이 다시 분리·설립되었다.

용두산공원은 중앙성당과 바로 인접한 부산 원도심의 대표적인 공간이다. 1948년 성당이 처음 자리 잡을 당시부터 중앙성당은 용두산 일대와 대청동, 광복동, 남포동 등 도심 지역의 가톨릭 공동체를 담당해 왔다.

부산가톨릭센터는 중앙성당과 함께 부산 원도심의 가톨릭 역사를 이해하는 데 관련이 깊다. 부산교구청은 교구 설정 초기 중앙성당 안에 있었으나 1964년 대청동의 가톨릭센터로 이전했다. 이후 교구 행정 기능은 다시 남천동 지역으로 옮겨갔지만, 중앙성당과 가톨릭센터 일대는 부산교구의 옛 중심지라는 역사적 연속성을 보여준다.

이명우 야고보 신부는 중앙성당의 초대 주임 사제이다. 본당 설립 초기와 한국전쟁 전후의 성장 과정에서 사목을 담당했으며, 피란기 부산 교회의 활동과도 연결되는 인물이다.

최재선 요한 주교는 부산교구의 초대 교구장으로, 1957년 부산대목구 설정 이후 중앙성당을 주교좌 본당으로 삼은 인물이다. 그의 재임기 중앙성당은 부산교구의 전례와 행정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이갑수 가브리엘 주교는 현 중앙성당 건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73년 5월 1일 현재의 대성전 축성식을 주례했으며, 1990년에는 중앙성당 파이프 오르간을 축성했다. 1992년에는 남천성당을 새로운 주교좌로 공식 선포했다.

최영심 작가는 중앙성당 스테인드글라스의 디자인을 맡았다. 1980년대에 단계적으로 설치된 작품은 부활, 성령, 천지창조를 주제로 하며 현재 중앙성당 내부의 대표적인 성미술 요소로 남아 있다.

남천주교좌성당은 1992년 5월 31일 새로운 주교좌로 공식 선포된 부산교구의 또 다른 주교좌 성당이다. 오늘날 부산교구는 남천주교좌성당과 중앙주교좌성당 두 곳을 주교좌 성당으로 표기하고 있다. 중앙성당이 부산교구의 역사적 중심지라면, 남천성당은 이후 대규모 교구 전례와 행정의 중심 역할을 이어받은 공간이라는 역사적 관계가 있다.

참고자료 및 출처

  1.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 천주교 주소록, 중앙 주교좌. 설립일 1948년 8월 1일, 주소 부산광역시 중구 용두산길 9, 주보 성 십자가 확인.
    https://directory.cbck.or.kr/m/catholicInfo.asp?code=201001361&gubun=4
  2. 한국가톨릭대사전, 중앙본당 관련 항목. 대청동본당 설립, 1957년 중앙본당으로 명칭 변경과 주교좌 지정, 1956년 성전 준공, 1970~1973년 현 성전 건립 과정과 건축 규모 확인.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5786
  3. 국제신문, 현대사의 격랑 품고 70년…중앙성당, 지역 중심성당으로 우뚝, 2018년 9월 7일. 해방 직후 지은사 불하, 1948년 6월 20일 첫 성전 축성, 한국전쟁기 피란민 수용, 1956년 성전 신축, 1957년 주교좌 지정, 1973년 현 성전 축성, 70주년 관련 기록 확인.
    https://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80908.22011002642
  4. 가톨릭신문, 부산 주교좌 중앙성당 축성, 1973년 5월 6일자 제864호. 현 성전의 1973년 5월 1일 축성식, 1971년 8월 15일 옛 성당 철거와 신축 시작, 당시 건축 규모와 공사비 확인.
    https://m.catholictimes.org/347388
  5. 가톨릭신문, 부산교구 주교좌 중앙본당, 스테인드글라스 완공, 1988년 1월 17일자 제1588호. 1984~1987년 스테인드글라스 설치 과정, 최영심 작가, 부활·성령·천지창조 주제 확인.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1907050085002
  6. 가톨릭신문, 부산 중앙본당, 파이프오르간 축성, 1990년 5월 27일자 제1706호. 1990년 파이프 오르간 설치와 이갑수 주교의 축성, 독일 뮌스터교구 본당 기증 사실 확인.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1906020070549
  7. 가톨릭신문, 새 성당 봉헌식 남천성당을 주교좌로, 1992년 6월 7일자 제1808호. 1992년 5월 31일 남천성당의 새 주교좌 공식 선포와 중앙성당에서 남천성당으로의 대표 주교좌 기능 이동 확인.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1706070198049
  8. 천주교 부산교구, 자비의 희년 자비의 문을 여는 예식 관련 교구소식. 부산교구가 남천성당과 중앙성당을 모두 주교좌 성당으로 표기하는 사례 확인.
    https://www.catholicbusan.or.kr/bulletin/column/news/5189
  9. 천주교 부산교구 주보, 2026년 2월 22일. 제44회 부산가톨릭합창단 정기연주회 장소를 주교좌 중앙성당으로 표기한 최신 교구 자료 확인.
    https://www.catholicbusan.or.kr/uploads/bsd01/ext_jubo/1771466076.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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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25일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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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주교좌 중앙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9월 25일 17:47. https://missamap.com/ko/kr/cathedral-busan1/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