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좌 계산성당
개요
계산 주교좌성당(계산성당)은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에 있는 천주교 대구대교구의 주교좌성당이다. 대구·경북 지역 최초의 본당에서 출발했으며, 1902년에 준공된 쌍탑의 벽돌조 성당은 고딕 양식이 가미된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1981년 9월 25일 사적 제29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역사
설립 시기는 출처마다 다르게 적혀 있다. 대구대교구 본당 안내는 설립일을 1885년 12월 1일로, 굿뉴스 가톨릭정보는 1886년 블랑 주교에 의해 대구·경북 지역 최초의 본당(당시 대구본당)으로 설립되었다고 적는다. 주보성인은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이다. 초대 주임 로베르(Achille Paul Robert, 김보록) 신부는 신나무골에서 사목하던 선교사로, 굿뉴스에 따르면 박해의 여파로 신나무골에 머물다가 대구 박해 이후 죽밭골로 옮겼고, 1891년 이른바 대구 교안인 「로베르 신부 축출 사건」으로 대구에서 추방되었다가 같은 해 다시 돌아와 대어벌에 임시 성당을 구했다. 대구역사문화대전은 로베르 신부가 1885년 12월 무렵 경상도 지역 선교사로 임명되었고 1891년 지금의 대구 중구 남산으로 거처를 옮겨 대구 지역 포교를 본격화했다고 설명한다.
현재 자리에 성당을 짓기 시작한 시기도 출처가 다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굿뉴스, 국가유산청은 1897년에 부지를 구입해 그곳의 초가를 임시 성당으로 쓰며 신축을 계획했다고 하고, 대구역사문화대전은 로베르 신부가 1894년에 계산동 부지를 사들였다고 적는다. 1899년 한식 목조 십자형 성당이 완공되었다. 가톨릭신문은 옛 기록을 인용해 이 성당이 그리스식(희랍식) 십자형 평면에 팔작 기와지붕을 올리고 단청까지 칠한 45칸(약 100여 평) 건물이었다고 전하며, 라틴 십자형이나 바실리카식 평면이 대부분이던 초기 성당 가운데 집중식 평면은 이곳이 유일했던 것으로 전해진다고 적는다. 대구대교구는 이 한옥 성당의 봉헌을 1898년으로 적고 있어 연도 표기가 다르다. 대구역사문화대전에 따르면 이때 세운 본당 학교가 대구교구 교육기관의 첫 출발이 되었다.
한옥 성당은 1901년 화재로 소실되었다. 대구역사문화대전은 1901년 2월 4일 밤 지진에 의한 화재라고 적는다. 로베르 신부는 서상돈, 정규옥, 김종학 등 신자들의 협력으로 새 성전 건립 기금을 모았다. 새 성당은 국가유산청과 대구역사문화대전, 가톨릭신문이 로베르 신부의 설계와 감독으로 소개하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프와넬(Poisnel) 신부가 설계했다고 적는다. 시공은 중국인이 맡았고, 대구역사문화대전은 서울 명동성당 건축에 참여했던 중국인 기술자들이었다고 한다. 함석과 스테인드글라스 등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운 자재는 프랑스와 홍콩에서 들여왔으며, 가톨릭신문은 색유리가 1902년 10월 블라디보스토크를 경유해 대구로 옮겨졌다고 전한다.
성당은 1902년에 준공되었다. 대구역사문화대전은 1902년 11월 30일에 새 성당에서 첫 미사를 드렸다고 적고, 가톨릭신문은 모든 성인의 날인 1903년 11월 1일에 축성식이 거행되어 영호남 신자 대부분이 참석했고 구경하러 모여든 주민들까지 더해져 대구 전체의 축제 같았다고 전한다. 대구대교구는 1903년에 뮈텔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되었다고 설명하며, 대구역사문화대전은 2003년 11월 1일 「축성 100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고 적는다. 준공 당시 두 개의 종각이 우뚝 솟아 「뾰족집」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1911년 4월 조선대목구에서 대구대목구가 분리 설정되면서 계산성당은 주교좌성당으로 승격되었다. 초대 감목 드망즈 주교는 1917년 12월 증축 공사에 착수해 종각을 두 배로 높이고 성당 뒤쪽 익랑을 확장했다. 대구역사문화대전은 증축이 1918년 12월 24일 완공되었다고 하고, 가톨릭신문은 1919년 5월 11일에 축성식을 가졌다고 하며, 굿뉴스는 1919년 5월에 다시 축성식을 가졌다고 적는다.
주교좌성당이 된 뒤 신자들의 활동도 두드러졌다. 대구대교구 안내에 따르면 신학문 교육기관인 성립학교의 여자부는 대구 지역 여성 교육의 요람이 되었고 뒤에 효성보통학교로 승격되었다. 1909년에는 가톨릭청년회의 효시인 성립학우회가, 1912년에는 명도회가 발족해 교회 주보를 창간했다. 1880년부터 활동해 온 연령회도 모범적인 사례로 꼽힌다. 유물관에는 초기에 사용한 촛대 등이 있고, 성당 옛 제대 안의 「십자가 보목」은 파리 주교관의 보물 보관소에 있던 것을 아멜리 추기경이 1912년 초대 교구장 드망즈 주교에게 보낸 것이라고 한다.
이후의 정비 과정은 굿뉴스에 정리되어 있다. 본당 설립 100주년인 1986년에 성당 마당 한편에 작은 공원을 조성하고 초대 주임 로베르 신부의 동상을 세웠다. 1991년에는 성당 건립 후 처음으로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했다. 가톨릭신문에 따르면 이때 지붕의 함석을 벗겨 내고 동판으로 보강했으며 내외벽을 연마하고 썩은 벽돌을 교체했고, 창문과 출입문을 보수·교체하고 스테인드글라스를 복원했으며 마루바닥을 화강암으로 바꿨다. 2006년 본당 설립 120주년에는 문화관 2층에 유물 전시관을 마련했고, 2009년에는 대구시의 근대문화거리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외벽 조명을 설치하고 성당 마당을 공원으로 조성했다.
건축과 공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대구역사문화대전에 따르면 계산성당은 순수한 고딕 양식이라기보다 고딕 양식이 가미된 로마네스크 양식이다. 평면은 수랑(袖廊)을 가진 라틴 십자형 삼랑식이며, 정면 출입구 양쪽의 두 종탑에는 각각 높은 팔각 첨탑을 두었다. 화강석 기단(초석) 위에 붉은 벽돌을 쌓고 회색(검은) 벽돌로 고딕적 장식을 했으며, 부벽, 출입구 아치, 처마 코니스, 내부 열주와 천장의 리브에 회색 벽돌을 썼다. 지붕은 골함석으로 덮었고, 박공부에는 장미창을 두었다. 내부는 열주의 아케이드와 천장으로 신랑과 측랑이 구분되며 천장은 반원형 둥근 천장이다. 제대 뒤쪽은 5각형 후진과 이어진다.
가톨릭신문은 내부가 신랑과 좌우 단열 측랑으로 이루어진 7개의 회중석 베이와 3베이의 교차부, 1개의 성단 베이, 반원 보회랑 후진으로 구성되며, 후진 상부 벽에 스테인드글라스 창과 루르드의 성모 동굴이 꾸며져 있다고 설명한다. 초기 성당이 대개 순교지나 높은 지대에 있던 것과 달리 계산성당은 예외적으로 평지에 자리한다. 국내 성당 가운데 라틴 십자형 형태가 평면과 외관, 내부 공간에서 가장 뚜렷하게 구현된 건축물로 평가받는다고 가톨릭신문은 적고 있다.
굿뉴스는 계산성당이 서울과 평양에 이어 세 번째로 세워진 고딕 양식 성당이며 대구에 현존하는 1900년대 유일한 서양식 성당 건축물이라고 설명한다. 대구역사문화대전도 우리나라에 건립된 고딕 양식 성당으로는 세 번째이고 영남 지역에서는 최초라고 적는다. 국가유산청은 이 성당이 대구에서 서양식 건물로는 처음이었고 1900년대 대구에 세워진 유일한 성당 건축물이라는 점에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소개한다.
관련 장소와 인물
- 신나무골 성지: 로베르 신부가 박해의 여파로 머물며 사목하던 곳으로 소개된다.
- 로베르(김보록) 신부: 대구 본당의 초대 주임으로 한옥 성당과 현재의 성당을 지었다.
- 드망즈 주교: 1911년 대구대목구 초대 감목으로 부임해 주교좌성당을 증축했다.
- 서상돈, 정규옥, 김종학: 새 성당 건립 기금 모금에 협력한 신자들이다.
참고자료 및 출처
- 천주교 대구대교구, 계산 주교좌성당(국가 지정 사적 290호). 신나무골 김보록 신부의 대구 본당 설정, 한옥 성당 봉헌과 소실, 1903년 봉헌과 1911년 주교좌 지정, 신자 활동과 유물을 확인했다.
https://www.daegu-archdiocese.or.kr/page/shrine.html?idx=1&process=read&srl&view_option - 천주교 대구대교구, 본당 찾기 계산성당. 설립일자 1885년 12월 1일과 주보성인을 확인했다.
https://www.daegu-archdiocese.or.kr/page/area.html?menu=c4&number=8&premenu=&srl=church_search&y_id=001 - 굿뉴스 가톨릭정보, 성지와 사적지 계산 성당. 로베르 신부의 활동, 1897년 부지 마련, 1899년 한옥 성당과 1901년 소실, 1902년 준공, 1918~1919년 증축과 축성, 1986년 이후 정비를 확인했다.
https://m.catholic.or.kr/web/holyplace/?seq=2257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대구 계산동 성당. 프와넬 신부 설계 기록, 1902년 준공, 1911년 이후 증축, 건축 양식, 1981년 사적 지정을 확인했다.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4060 - 대구역사문화대전(한국학중앙연구원), 대구 계산동성당. 로베르 신부의 이력, 1901년 화재, 모금 신자, 설계와 시공, 첫 미사, 건축 구조, 지정 번호 삭제를 확인했다.
https://www.grandculture.net/daegu/toc/GC40001749 - 국가유산청, Gyesandong Cathedral, Daegu. 1897년 임시 성당, 1899년 한옥 성당, 1902년 신축, 건축 재료와 양식, 사적 지정을 확인했다.
https://english.cha.go.kr/chaen/search/selectGeneralSearchDetail.do?ccebAsno=0002900000000&mn=EN_01_01&sCcebCtcd=22&sCcebKdcd=13 - 가톨릭신문, 가톨릭 문화유산을 찾아서 5. 사적 제290호 대구 계산성당. 한옥 성당의 규모, 색유리 반입, 1903년 축성식, 1911년 승격과 증축, 1991년 보수, 내부 구성을 확인했다.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1104120004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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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missamap.com/ko/kr/daegu-gyesan-cathedral-mass-times/wiki/
- 인용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주교좌 계산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6일 08:54. https://missamap.com/ko/kr/daegu-gyesan-cathedral-mass-times/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