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문 성당

목차
  1. 개요
  2. 역사
  3. 건축과 공간
  4. 관련 장소와 인물
  5.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용문성당은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에 있는 천주교 수원교구 소속 성당이다. 1908년 3월 원주교구의 원동 본당에서 분리·설립되어 가톨릭신문이 교구의 5번째 본당으로 소개하는 본당이며, 2020년 11월 수원교구 순례사적지로 선포되었다. 주보는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한국가톨릭대사전은 묵주 기도의 모후로 적는다)이다.

역사

〔옹기를 굽던 교우촌〕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용문면을 중심으로 한 인근 지역에 천주교 신자가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1866년 병인박해 이후이다. 박해를 피해 산간 오지로 숨어든 신자들은 이곳에서 옹기를 구우며 생활했고, 양동면 계정리의 이 요셉 일가와 용문면 마룡리의 이 마티아가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 후 양평군 일대는 1887년 풍수원 본당이 설립되면서 풍수원 본당의 관할 지역이 되었고, 1896년 원주 본당이 설립된 뒤에는 원주 본당이 이 지역을 관할했다.

〔본당 설립〕 대사전에 따르면 양평군 일대의 신자 수가 늘자 뮈텔(G. Mutel) 주교는 1908년 3월 5일 양근 및 그 인근 지역의 사목을 조제(J. Jaugey, 양수춘) 신부에게 맡겼다. 조제 신부는 용문면 덕촌리 퇴촌으로 부임해 사목 활동을 시작했고, 얼마 뒤 양평읍내로 진출할 목적에서 갈산면 도곡리 능말(현 양평읍)에 성당 부지를 매입했다. 1909년 6월 부임한 이상화 신부는 퇴촌 대신 덕촌리 덕동 부락에 한옥을 매입한 뒤 7개 공소를 관할했고, 3대 주임 손성재 신부는 덕동 성당을 매각하고 용문면 마룡리(마내) 353번지의 대지 2,000여 평을 매입해 중국식 성당과 사제관을 건립했다. ‘마룡리(마내) 본당’이라는 명칭은 이때부터 생겼으며, 당시 손성재 신부는 양평군뿐 아니라 경기도 포천·양구·춘천 지방의 공소까지 관할했다.

〔폐지와 부활〕 대사전에 따르면 1927년 11월 손성재 신부가 선종한 뒤 4대 주임으로 부임한 김영근 신부는 활발한 전교 활동으로 300명에 불과했던 교세를 9년 동안 1,000여 명으로 늘렸다. 그러나 7대 주임 오연희 신부가 1943년 양평읍내로 진출하면서 마룡리 본당은 폐지되고 양평 본당의 공소가 되었다. 마룡리 성당은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반파되었고, 신자들은 사제관을 개조해 성당으로 썼으며, 양평 본당의 김정진(바오로) 신부는 1954년 성당 벽체를 헐어다 양평 성당을 짓기도 했다. 이어 김정진 신부는 마룡리 성당 터를 매각하고 용문면 다문리 산 10번지의 임야 15,330평을 매입해 1955년 5월 성당 신축 공사를 시작했고, 이듬해 10월 7일 성당과 사제관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했다. 성당이 완공된 뒤 1958년 4월 김영근 신부가 재부임하면서 용문 본당이 부활했다. 김영근 신부는 1961년 본당 구내에 강당을 신축하고 청운면 여물리 공소의 강당도 신축했다. 1964년 6월에는 김영근 신부가 은퇴하고 후임 신부를 배정받지 못해 다시 양평 본당의 공소가 되었다가, 1967년 1월 이윤성 신부가 부임하면서 본당이 다시 부활했다. 대사전의 역대 신부 목록은 1943~1958년 4월과 1964년 6월~1967년 1월을 양평 본당 관할 공소 기간으로 표시한다.

〔1960년대 이후〕 대사전에 따르면 본당은 1967년 11월 성가 수녀회를 초청했고, 1971년 12월에는 안중 본당과 합동으로 평신도 대회를 개최했다. 1977년에는 양동면 계정리에 공소 강당을 증축했고, 나환우들의 자활촌인 상록촌(양동면 석곡리)의 구축에도 힘썼다. 1984년을 전후해 노후화된 성당을 신축하기 위해 성모회·사도회·레지오 마리애 등을 주축으로 성미 뜨기, 산나물 및 각종 농산물 판매, 폐지와 빈병 수집 등으로 기금을 마련했고, 1987년 4월 29일 임시 성당과 사제관의 신축 기공식을 거행했다. 1988년 대성당 공사에 착수해 1990년에 완공했으며, 주변 공사를 마무리한 1992년 10월 11일 새 성당 봉헌 미사를 거행했다. 1997년 2월에는 신자 수의 증가에 따라 양동 본당을 분리했고, 2001년에는 용두 공소의 강당을 준공했다. 대사전은 2002년 현재 본당이 ‘청소년 교육과 구역·반 공동체의 활성화’를 사목 지침으로 삼았다고 적는다.

〔양근 신앙 공동체와 순례사적지〕 가톨릭신문(2025)에 따르면 용문본당은 한국교회의 요람이라 할 수 있는 양근의 신자 공동체에서 이어 오는 본당이다. 양근은 하느님의 종 권철신(암브로시오)이 살던 마을로, 그의 문하에 하느님의 종 이벽(요한 세례자)·이승훈(베드로)·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과 복자 홍낙민(루카)·윤유일(바오로) 등 초기 한국교회를 세운 신앙 선조들이 모였다. 하느님의 종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은 권철신의 동생이고 복자 권상문(세바스티아노)은 그의 조카이자 양자이다. 1791년 신해박해를 시작으로 신유박해·기해박해·병인박해를 거치며 양근의 신자들은 용문의 산촌으로 흩어져 용문산 깊은 산중에 교우촌을 이루었고, 이 교우촌이 이어 온 공동체가 1908년 교구의 5번째 본당인 용문본당으로 이어졌다. 교구는 용문성당을 2020년 11월 ‘수원교구 순례사적지’로 선포했고, 2025년 희년 순례지로도 지정해 희년 전대사를 받을 수 있게 했다.

〔최초의 피정〕 가톨릭신문에 따르면 용문은 한국교회에서 처음으로 피정이 이뤄진 곳이다. 1785년 명례방 신자 모임이 발각된 을사추조적발사건으로 김범우(토마스)가 유배를 가고 이벽·이승훈 등도 문중의 박해를 받아 교회가 구심점을 잃자, 권일신은 조동섬(유스티노)과 용문산에 올라 8일 동안 침묵 피정을 하고 다시 교회 재건에 힘썼다. 신문은 샤를르 달레 신부가 「한국천주교회사」에서 이 피정을 서로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기도와 묵상에만 전념한 8일로 묘사했다고 전한다.

〔역대 주임 신부와 교세〕 한국가톨릭대사전이 적은 역대 신부는 초대 조제(J. Jaugey, 양수춘) 요셉(1908.3~1909.1), 2대 이상화 바르톨로메오(1909.6~1911.6), 3대 손성재 야고보(1911.6~1927.11), 4대 김영근 베드로(1927.11~1936.9), 5대 김경민 루도비코(1936.9~1937.8), 6대 임종구 바오로(1937.8~1940.7), 7대 오연희 마티아(1940.7~1943), 8대 김영근(1958.4~1964.6), 9대 이윤성 아우구스티노(1967.1~1970.7), 10대 정지웅 요셉(1970.7~1975.4), 11대 봉준석 마우리시오(1975.4~1976.3), 12대 김정원 프란치스코(1976.3~1981.6), 13대 배영섭 베드로(1981.6~1984.9), 14대 이영배 안토니오(1984.9~1987.2), 15대 정영식 바오로(1987.2~1988.2), 16대 박현배 야고보(1988.2~1993.2), 17대 홍명호 베드로(1993.2~1995.2), 18대 이정희 마태오(1995.2~1997.2), 19대 우종민 도미니코(1997.2~2000.1), 20대 김상순 프란치스코 사베리오(2000.1~2001.1), 21대 조규식 요셉(2001.1~)이다. 교세는 1910년 1,173명, 1915년 1,528명, 1920년 1,739명, 1924년 1,508명, 1967년 1,455명, 1971년 1,505명, 1974년 1,618명, 1980년 1,736명, 1985년 1,992명, 1990년 1,888명, 1995년 1,953명, 2000년 1,979명이다. 당시 관할 구역은 용문면·단월면·청운면 전 지역과 지제면 일부 지역이고 관할 공소는 청운 1개소였다.

건축과 공간

가톨릭신문(2025)에 따르면 성당 전면(파사드)은 쌍둥이처럼 나란히 선 한 쌍의 노란 돔, 그 사이의 지붕 위에 세워진 3개의 십자가, 지붕 아래 벽감의 성모상, 세로로 길게 난 스테인드글라스, 이를 지지하는 벽돌조 외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문 출입문 좌우의 유리창에는 한국교회 초기에 활동한 신앙 선조들의 초상과 일화를 담은 성화가 그려져 있다.

성당 1층에는 ‘수원교구 순례사적지 용문성당 역사전시관’이 조성되어 있다. 천진암 강학에서 시작해 양근 지역 신앙의 역사, 박해와 오늘날의 용문 공동체에 이르는 역사를 볼 수 있고, 신앙 선조들이 사용하던 신심 서적과 미사 제구도 전시되어 있다(가톨릭신문).

성모동산 옆에는 옹기나 도자기를 굽는 가마처럼 생긴 기도방이 있다. 박해를 피해 산속으로 간 신앙 선조들이 옹기를 구워 파는 일로 생계를 이었다는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것으로, 용문성당 인근에는 요곡(요골) 마을이 있어 1985년까지 옹기가마가 있었다고 하며 성당 울타리도 항아리를 활용해 조성했다. 성당 뒤편 동산에는 숲으로 둘러싸인 십자가의 길이 있다(가톨릭신문).

관련 장소와 인물

  • 원동 본당(원주교구): 용문 본당이 1908년 분리되어 나온 모본당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 풍수원 본당·원주 본당·양평 본당: 용문 지역이 차례로 관할을 받았던 본당으로, 마룡리 본당이 폐지된 1943년 이후 한때 양평 본당의 공소였다(한국가톨릭대사전).
  • 양동 본당: 1997년 2월 용문 본당에서 분리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조동섬(유스티노): 용문산에서 8일간 침묵 피정을 한 초기 교회 인물이다(가톨릭신문).

참고자료 및 출처

  1.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용문 본당”. 교우촌과 1908년 본당 설립, 마룡리 본당의 폐지와 부활, 1956년 성당 봉헌, 1992년 새 성당 봉헌, 역대 신부, 교세.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4737
  2. 가톨릭신문, “[수원교구 성당 순례] 용문성당”(2025.2.16). 양근 신앙 공동체와 본당의 연원, 순례사적지 선포, 성당 외관과 역사전시관, 옹기가마 기도방, 최초의 피정.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25021050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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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날
2026년 10월 16일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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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6일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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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용문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6일 22:59. https://missamap.com/ko/kr/suwon-yongmun-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