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성당
개요
여주성당은 경기도 여주시에 있는 천주교 수원교구 소속 성당이다. 1950년 4월 22일 서울교구 이천 본당에서 분리·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바오로 사도이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여주를 초기 천주교 수용의 요람인 주어사가 있고 권철신의 집이 이웃한 곳으로 설명한다.
역사
〔초기 천주교와 순교자〕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초기 천주교 수용의 요람인 주어사가 있고 권철신의 집이 이웃해 있는 여주에는 일찍부터 천주교가 전해졌다. 권철신의 제자인 윤유일이 입교해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전교하면서 여주 지역에 천주교가 퍼졌고, 권철신과 비밀리에 학문을 교류하던 김건순이 입교해 이중배·원경도 등에게 전교하면서 더욱 널리 퍼졌다. 윤유일이 1795년 을묘박해 때 순교했고, 1801년 신유박해 때에는 이중배·원경도·최창주·임희영·정광수·정순매·이소사·정정호 등 여러 명이 순교했다.
〔공소 시대〕 대사전에 따르면 여주 지방에 최초로 형성된 교우촌은 완장이(현 북내면 중암리) 공소인 것으로 전해지며, 그 뒤 원심이(현 강천면 도전리)에도 공소가 생겼다. 1882년 로베르(A. P. Robert) 신부가 공소로 설정한 강천면 부평리, 속칭 부엉골에는 1885년 10월 한국에서 두 번째로 신학교인 ‘예수성심신학교’가 설립되어 본당의 기능을 겸했으나, 신학교가 1887년 3월 서울 용산으로 이전한 뒤 부엉골은 공소와 본당으로의 부침을 거듭하다가 1900년대 초 폐쇄되었다. 1921~1922년 당시 여주군에는 장호원(현 감곡) 본당 관할의 독바위(현 북내면 현암리)·오감(현 강천면 가야리)·황거리(현 주내면 삼교리) 공소와 마내(현 용문) 본당 관할의 원심이·완장이 공소 등 5개 공소가 있었고, 이후 학동(현 북내면 오학리)에도 공소가 세워졌으나 여주 읍내에는 신자가 적어 공소로 발전하지 못했다. 오감·독바위·학동 3개 공소는 1941년 7월 이천 본당이 설립되면서 이천 본당으로 편입되었다.
〔본당 설립〕 대사전에 따르면 이 3개 공소 신자들의 열성적인 활동과 이천 본당 이계선(레오) 신부의 노력으로 여주읍 상리에 한옥 한 채가 마련되었고, 오감 공소 신자 윤영창·김학선 등이 여러 차례 서울교구청에 가서 노기남(바오로) 주교에게 여주에 신부를 파견해 달라고 청원했다. 노기남 주교는 1950년 4월 22일자로 여주 본당을 설립하고 윤병희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부임 1개월 만에 6·25전쟁이 일어나 윤병희 신부가 대구로 피난해 군종 신부로 입대하면서, 1953년 7월 휴전까지 3년 동안 본당은 신부 공석이 되어 신자들은 멀리 이천 성당에서 주일 미사에 참례해야 했다.
〔성당 이전과 발전〕 대사전에 따르면 1953년 10월 2대 주임으로 부임한 최석호 신부는 마라우 고개 부근에 있던 한옥 임시 성당(90여 평)이 협소하다고 판단하고 성당을 옮길 계획을 세웠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미군의 도움으로 현 성당 터인 하리에 대지 1,000여 평을 매입해 성당(88평)과 사제관 및 유치원(75평) 건물을 완공하고 1954년 10월 28일 봉헌식을 거행했으며, 이듬해 3월 3일 소화유치원을 개원했다. 3대 주임 김윤상 신부는 주일학교 교리 교육을 강화해 매년 교리 경시 대회를 열었고, 강천면 도전리 공소 강당(30평)을 1957년 2월 9일 건립했으며 성당 부지를 추가로 매입했다. 1963년 10월 7일 수원교구가 서울대교구에서 분리·설정되면서 여주 본당은 수원교구 소속이 되었다. 이듬해 7월 6대 주임으로 부임한 김창린 신부는 사제관을 신축하고 옛 사제관을 수녀원으로 개수해 1967년 9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여주 분원을 마련했으나, 10여 년간 본당과 유치원 교육 사도직에 헌신한 수녀들은 본당 신자들과의 마찰을 극복하지 못하고 철수했다.
〔현 성당 신축과 골롬반회 사목〕 대사전에 따르면 12대 주임 서종선 신부는 교세가 계속 증가하리라 보고 1981년 10월 5일 새 성당 신축 공사에 착수해 지상 2층 건물을 완공하고 1984년 11월 9일 봉헌식을 거행했다. 1985년 2월부터 여주 본당은 골롬반 외방선교회에 사목이 위임되었다. 14대 주임 천(M. Tchon) 신부는 신용 협동 조합을 창립하고 가야리 공소 강당, 본당 사제관(54평), 교육관(210평) 등을 신축했으며 1990년 6월 본당 설립 40주년 기념으로 소책자 《남한강의 순례자》를 간행했다. 스위니(W. Sweeney) 신부가 재임하던 1992년 8월에는 점동면 청안리 공소가 점동 준본당으로 승격되었다. 골롬반회 선교사들이 사목을 맡은 지 8년 만인 1993년 2월 여주 본당은 다시 교구 사제에게 사목이 맡겨져 정종득 신부가 16대 주임으로 부임했다.
〔1990년대 이후〕 대사전에 따르면 정종득 신부는 ‘작은 예수님 운동’을 전개해 기도와 애덕으로 성가정을 활성화하는 데 주력했고, 냉담자 회두를 위해 로사리오 100만 단 바치기 운동을 벌였다. 17대 주임 배용우 신부 때인 1995년 3월 19일 ‘만남의 집’ 축복식이 거행되었고, 1997년 10월 25일에는 신협 건물이 완공되어 축복식을 거행했다. 배용우 신부는 1997년 12월부터 새 가족 찾기 운동을 전개해 441명이 입교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18대 주임 이용규 신부는 본당 설립 50주년이 되는 2000년 대희년을 맞아 최덕기(바오로) 주교를 비롯한 본당 출신 신부와 전임 신부, 여주 군수 등을 초청해 50주년 기념 미사와 행사를 개최했고, 본당의 역사를 담은 《남한강의 순례자》를 그해 12월 25일 펴냈다.
〔관할·교세·역대 신부〕 대사전이 적은 관할 구역은 삼교리를 제외한 여주읍 전 지역과 여주군 북내면·대신면·강천면·능서면·흥천면 전 지역이며 관할 공소는 가야리, 도전리 2개소이다. 교세는 1954년 602명, 1961년 1,331명, 1971년 1,381명, 1981년 2,124명, 1991년 3,090명, 2000년 3,949명이다. 역대 신부는 초대 윤병희 바오로(1950.4~6), 2대 최석호 바오로(1953.10~1955.5), 3대 김윤상 베네딕도(1955.5~1961.1), 4대 조창희 베네딕도(1961.1~1963.6), 5대 이종순 라우렌시오(1963.6~9), 임시 남영희 이시도로(1963.9~1964.7), 6대 김창린 필립보(1964.7~1967.10), 7대 김병열 보니파시오(1967.10~1971.9), 8대 김영옥 가브리엘(1971.9~1973.5), 9대 배문한 도미니코(1973.5~1976.4), 10대 류진선 레오(1976.4~1977.12), 11대 이중현 요한(1977.12~1979.3), 12대 서종선 토마스(1979.3~1984.2), 13대 서범석 요셉(1984.2~1985.2), 14대 천(M. Tchon) 말라키아(1985.2~1990.8), 공동 켈리(J. Kelly) 예레미야(1986.3~1988.12), 15대 스위니(W. Sweeney) 굴리엘모(1990.8~1993.2), 16대 정종득 바오로(1993.2~1995.1), 17대 배용우 바오로(1995.1~1999.1), 18대 이용규 사도 요한(1999.1~2002.1), 19대 김기원 사도 요한(2002.1~)이다.
관련 장소와 인물
- 여주성지(순교자 현양비): 가톨릭신문(2014)에 따르면 여주본당 옆에는 성모동산과 함께 순교자현양비가 서 있다. 현양비에는 북경 교회에 밀사로 파견되었다가 1795년 을묘박해 때 한양 포도청에서 매를 맞고 순교한 윤유일을 비롯해, 1801년 신유박해 때 여주 관아에서 남쪽으로 1리 떨어진 대로변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한 이중배·원경도·최창주 등 여주 출생 순교자 17위의 이름이 적혀 있다.
- 순교 치명 기념비: 본당 옆 중앙로 상가를 따라 들어가면 순교터로 추정되는 자리에 세워진 기념비가 있으며, 화강석과 오석으로 제작된 비석에 20위의 명단과 순교자 찬가가 새겨져 있다(가톨릭신문, 2014).
- 여주와 관련된 시복 대상 순교자: 가톨릭신문(2014)은 시복이 결정된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가운데 여주성지와 관련된 순교자로 이중배(마르티노), 최창주(마르첼리노), 원경도(요한), 정순매(바르바라), 정광수(바르나바), 이현(안토니오), 최(바르바라)를 든다. 신문은 이중배와 동료들이 1801년 4월 25일 참수형을 받아 순교했고 최창주는 사위 원경도와 함께 참수형을 받아 순교했으며, 정광수는 1802년 1월 29일 사형 판결을 받고 고향 여주로 이송되어 다음 날 참수되었으며, 정순매는 1801년 7월 4일 여주에서 참수되었고, 이현은 1801년 7월 2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되었으며, 최 바르바라는 1840년 1월 4일 순교했다고 전한다.
- 여주본당의 순교자 현양: 신문에 따르면 본당은 2004년 「순조실록」, 「한국천주교회사」, 「조선 순교 사료 참고집」 등을 근거로 1800년대 서울과 여주 등지에서 순교한 여주 지역 순교자 11명에 관한 사료를 종합·정리한 「여주와 순교자」를 펴내고 현양비를 세웠다.
- 부엉골 예수성심신학교: 1885년 10월 강천면 부평리에 설립된 한국에서 두 번째 신학교로, 본당의 기능을 겸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 이천 본당·감곡 본당·마내(용문) 본당: 여주의 공소들을 차례로 관할했던 본당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참고자료 및 출처
-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여주 본당”. 초기 천주교와 순교자, 공소 시대, 1950년 본당 설립, 성당 이전과 1984년 신축 봉헌, 골롬반회 사목, 관할·교세·역대 신부.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4419 - 가톨릭신문, “[순교자의 땅] (4) 여주성지”(2014.4.20). 여주성당 옆 순교자 현양비와 기념비, 여주 지역 시복 대상 순교자의 행적, 「여주와 순교자」 간행.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1404150087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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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10월 16일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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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missamap.com/ko/kr/suwon-yeoju-catholic-church/w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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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여주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6일 23:02. https://missamap.com/ko/kr/suwon-yeoju-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