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 성당

목차
  1. 개요
  2. 역사
  3. 관련 장소와 인물
  4.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양지성당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에 있는 천주교 수원교구 소속 성당이다. 1927년 9월 14일 미리내 본당 관할 공소에서 남곡리 본당으로 승격되어 설립되었으며, 디지털용인문화대전은 용인시 지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천주교 성당이라고 적는다. 주보성인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이다.

역사

〔은이·골배마실 공소〕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현 양지 본당 관할 구역에는 유래 깊은 교우촌으로 은이(내사면 남곡리 은리)와 골배마실(남곡리 용곡)이 있다. 은이는 김대건(안드레아) 신부가 사제 서품을 받은 뒤 처음으로 사목 활동을 시작했던 곳이다. 골배마실은 김대건 신부의 부친인 성 김제준(이냐시오)이 충청도 솔뫼(당진군 우강면 송산리)를 떠나 용인 한덕동(이동면 묵리의 광파리골과 성애골)에 정착했다가 1835~1836년경 이주해 살았던 곳으로, 모방(P. Maubant) 신부에 의해 1836년 부활 무렵 김대건이 신학생 후보로 선발된 곳이기도 하다. 두 공소는 1880년대 갓등이(현 왕림) 본당 관할이 되었고, 1888년 이 본당의 앙드레(J. André) 신부는 골배마실 공소에 63명의 신자가 있다고 기록했다. 1890년에는 은이 공소에도 61명의 신자가 있었고, 1922년에는 골배마실 공소에 103명, 은이 공소에 290명이 있어 이미 1920년대 초에 본당 규모에 가까운 신자가 살고 있었다.

〔본당 설립〕 대사전에 따르면 1927년 9월 14일 미리내 본당의 보좌로 있던 박동헌 신부가 남곡리 벌터 ‘재박이’에 16칸짜리 성당을 짓고 초대 주임으로 부임함으로써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설립 당시의 신자 수는 801명이었다. 디지털용인문화대전도 원래 모본당이 미리내성당이며 1927년에 분가하여 9월 14일 정식으로 본당이 설립되었다고 적는다. 대사전에 따르면 본당은 한국전쟁 무렵 이름을 ‘양지 본당’으로 바꾸었다. 1930년에는 압고지(전대리) 본당(용인 본당의 전신)이 폐쇄되면서 양지 본당으로 편입되었다. 박동헌 신부는 1931년에 성당 4칸을 증축했고, 본당 회장 및 공소 회장 피정을 수시로 열었으며, 남녀별·연령별로 6개의 사도직 단체를 조직해 매주 모임을 갖도록 했다. 1939년경에는 용인군·광주군·이천군 일대의 19개 공소를 관할했다.

〔해방 이후 성당 이전과 신축〕 대사전에 따르면 광복 이후 3대 주임으로 부임한 이완성 신부는 골배마실에 있는 적산 가옥을 불하받아 벌터에 있던 성당을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다. 4대 주임 조인환 신부는 1954년 5월 성당 신축 공사에 착수해 미군 부대의 도움으로 78평 규모의 성당을 완공했고, 이듬해 4월 19일 봉헌식을 거행했다. 1958년 8월 21일에는 레지오 마리애 ‘매괴의 모후’ 쁘레시디움을 창단했는데, 이 쁘레시디움은 수원교구 레지오 마리애의 효시가 되었다. 교세가 급증하자 1959년 6월 5일 용인 본당을 분리하고 3,000여 명의 교적을 이관했다. 6대 주임 정주성 신부는 성당 보수 공사를 했고 1962년 9월 16일에는 복자 김대건상을 건립했다. 8대 주임 류봉구 신부 때인 1979년에는 교육관과 수녀원이 신축되었고, 10대 주임 윤용배 신부는 1988년 12월에 사제관을 완공했다.

〔현 성당의 신축〕 대사전에 따르면 여러 차례 부분적인 보수를 했으나 성당이 너무 낡고 협소해 1987년 10월 10일 성당 신축 공사에 착수했다. 공사비 부족으로 1990년 12월 일시 중단했다가 곧 재개해 1993년에 600평의 성당을 완공했고, 1997년 9월 14일 봉헌식을 거행했다. 이에 앞서 1996년 5월 은이 공소 터 537평을 매입하고 같은 해 6월 25일 성 김대건 신부상과 야외 제대를 세웠으며, 대사전은 장차 이곳을 사적지로 개발할 계획이라고 적는다. 1998년 7월 6일에는 성 김대건 신부 유물 전시관을 개관했고, 교구 차원에서 이곳에 ‘성 김대건 신부 기념관’(가칭)을 건립할 예정이라고 대사전은 적는다.

〔관할·교세·역대 신부〕 대사전이 적은 관할 구역은 용인시 양지면·원삼면 전 지역과 백암면 백암리·박곡리·근창리·근삼리·가창리·근곡리·가좌리 일부 지역이며, 관할 공소는 백암, 고당, 고초골, 용암, 한터 등 5개소이다. 교세는 1966년 1,950명, 1972년 1,906명, 1979년 2,034명, 1985년 1,730명, 1990년 1,893명, 1995년 2,187명, 1999년 2,727명이다. 역대 신부는 초대 박동헌 마르코(1927.9~1941.6), 2대 프로망투(E. Fromentoux) 에밀리오(1941.6~1949.8), 3대 이완성 요한(1949.8~1950.12), 4대 조인환 베드로(1950.12~1959.5), 5대 정원진 루가(1959.5~1961.3), 6대 정주성 요셉(1961.3~1968.5), 7대 손태섭 마르코(1968.5~1970.7), 8대 류봉구 아우구스티노(1970.7~1980.4), 9대 한봉주 클레토(1980.4~1985.7), 10대 윤용배 라자로(1985.7~1989.11), 11대 이원태 마르티노(1989.11~1995.2), 12대 박정배 베네딕도(1995.2~1997.2), 13대 안병선 사도 요한(1997.2~)이다. 디지털용인문화대전은 관할 구역을 용인시 양지면 전 지역으로 적고, 본당의 날이 9월 16일이며 성당 내에 용인대리구가 있다고 적는다. 같은 항목의 신자 수는 1,935명이다.

관련 장소와 인물

  • 은이 성지·골배마실 성지: 양지성당 관할 구역에 있는 김대건 신부 관련 교우촌 터로, 디지털용인문화대전은 인근에 김대건 신부의 성장지이자 활동지인 골배마실성지와 은이성지가 있다고 적는다.
  • 미리내 본당: 양지 본당의 모본당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용인문화대전).
  • 용인 본당: 1959년 6월 5일 양지 본당에서 분리되어 설립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 박동헌(마르코) 신부: 양지 본당의 초대 주임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참고자료 및 출처

  1.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양지 본당”. 은이·골배마실 공소, 1927년 본당 승격, 압고지 본당 편입, 성당 이전과 신축, 용인 본당 분리, 관할·교세·역대 신부.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4299
  2.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용인문화대전 “양지성당”(집필 조현범). 1927년 설립과 모본당, 주보성인, 본당의 날, 관할 구역, 현황.
    https://yongin.grandculture.net/yongin/toc/GC00902046
문서 정보
문서 크기
7,179 바이트
판 수
1
기여자
1명
만들어진 날
2026년 10월 16일 22:55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6일 22:55
본문 연결
0개
출처 링크
2개 · 제출 출처 있음
작성 상태
보완 권장
장소 ID
edf51802-3cba-4d32-831f-0d3f48e2c4db
고정 주소
https://missamap.com/ko/kr/suwon-yangji-catholic-church/wiki/
인용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양지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6일 22:55. https://missamap.com/ko/kr/suwon-yangji-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