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원 성당
개요
장호원성당은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에 있는 천주교 수원교구 소속 성당이다. 1960년 3월 19일 장호원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어 시작되었으며 주보는 노동자 성 요셉이다.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장호원 본당’은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감곡 본당의 옛 명칭이자 이곳 본당의 현재 명칭이기도 하다.
역사
〔장호원 본당의 분리〕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1896년 5월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부이용(C. Bouillon) 신부는 충청북도 음성군 왕장리에 장호원 본당을 설립했다. 장호원은 원래 행정 구역상 경기도에 속했으나 충청북도 음성군과 인접해 이 성당을 장호원 본당이라 불렀다. 가톨릭신문은 부엉골에 주재하던 부이용 신부가 1896년 10월 이 지역으로 본당을 옮기고 장호원본당이라 불렀다고 적으며(설립 시기는 두 출처가 5월과 10월로 다르게 적는다), 이곳은 행정상 충북 음성군 감곡면 왕장리였고 지금도 장호원성당과 청주교구 감곡본당의 직선거리는 2km에 불과하다고 적는다. 1958년 11월 청주교구가 신설되면서 장호원 본당은 청주교구에 속한 감곡 본당으로, 경기도 이천군 장호원 지역은 서울교구 관할로 나뉘었다.
〔본당 승격과 초기〕 1960년 3월 장호원에 있던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가톨릭신문은 승격일을 3월 19일로 적고 당시 관할 공소가 19개, 신자가 1,200여 명이었다고 적는다. 초대 주임 정주성 요셉 신부는 진암리 소재 공민학교 일부를 임시 성당으로 사용하며 사목을 시작했다(대사전은 현 장호공업고등학교, 가톨릭신문은 현 부원고등학교로 적는다). 가톨릭신문은 성당도 사제관도 갖추지 못한 채 출발했고 사제관은 본당 설립 2년 뒤에야 신축했다고 적는다. 2대 주임 박지환 신부는 1961년 11월 성당 신축 부지로 장호원읍 노탑 3리 대지 1,764평을 매입했고, 3대 주임 이중현 신부는 1962년 12월 진암리 산 29번지에 38평 규모의 사제관을 건립했다. 5대 주임 손태섭 신부 재임기인 1963년 10월 수원교구가 신설되어 본당은 수원교구로 귀속되었다.
〔성당 신축〕 6대 주임 김종진 신부는 1964년 5월 현 성당 자리에 건평 156평(2층 30평) 규모의 성당 신축 1차 공사를 시작했고, 같은 해 9월 부지 안에 창고 28평과 식당 18평을 지었으며 이듬해 7월 2차 공사를 했다. 7대 주임 봉준석 신부는 1967년 5월 정문 진입로를 포장했고 7월에 진암리 산 29번지 성당 부지 7,650평을 등기 이전했다. 1969년 5월 본당 신축 2차 공사를 마치고 이듬해인 1970년 5월 봉헌식을 가졌다(한국가톨릭대사전). 가톨릭신문은 재정난으로 공사가 순탄하지 않았고 신자들이 벽돌을 한 장씩 직접 찍어 성당을 완성했으며, 1970년 5월 시멘트 벽돌·슬레이트 지붕 구조의 2층 성당 낙성식이 거행되었다고 적는다.
〔1970년대 이후〕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8대 주임 하재별 신부는 성당 방음 공사와 운동장 안 성모 정원 공사를 했고, 9대 주임 최재용 신부 재임기인 1975년 3월 관할이던 여주군 점동면 당진리 공소가 여주 본당으로 이관되었다. 1977년 4월 본당 대지 구획 정리와 경계 철조망 공사가 있었고, 11대 이재윤 신부는 1978년 11월 건평 75평(2층) 교육관을 완공하고 이듬해 3월 새싹어린이집(유아원)을 개원했다. 13대 조규식 신부는 1982년 11월 자연석 성모 동산 공사를 하고 1983년 5월 성당 정면벽 자연석 공사, 1984년 8월 동쪽 진입로 자연석 공사를 마쳤다. 14대 박만상 신부는 1986년 10월 사제관(54평)과 수녀원(46평)을 신축했다.
〔1990년대 이후〕 18대 민경국 신부는 1994년 11월 성당 내벽 도색 공사와 1995년 6월 전기 공사를 했다. 19대 최중혁 신부 재임기인 1996년 12월 본당 구역을 재조정해 진암 6·7구역과 삼승리 구역이 신설되었고, 1997년 7월 진암리 51-22 대지를 구입해 수원교구청에 이전했다. 20대 이석재 신부는 1998년 9월 진입로를 보수했고 2000년 7월 교육관 상량식을 거행해 ‘새천년 교육관’이라 명명했으며 같은 해 10월 성전 보수와 운동장 정리, 성모 동산을 완공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가톨릭신문(2016)은 관할 지역이 넓고 연로한 신자가 많아 나래리·방추리·금호리의 공소강당을 소공동체 모임과 레지오 마리애 주회합 등에 쓰며, 주임은 한태문 신부라고 적는다.
〔교세와 역대 주임〕 한국가톨릭대사전이 적은 교세는 1968년 1,976명, 1974년 1,675명, 1980년 1,955명, 1985년 2,019명, 1990년 1,884명, 1995년 2,133명, 2001년 2,331명이다. 관할 구역은 장호원읍 전 지역(대서리 제외)이고 관할 공소는 나레리와 금호리로 적혀 있다. 역대 주임은 초대 정주성 요셉(1960.3~1961.3), 2대 박지환 요한, 3대 이중현 요한, 4대 김재용 요셉, 5대 손태섭 마르코, 6대 김종진 다미안, 7대 봉준석 마우리시오, 8대 하재별 미카엘, 9대 최재용 바르톨로메오, 10대 김영배 요한, 11대 이재윤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12대 장덕호 갈리스토, 13대 조규식 요셉, 14대 박만상 스테파노, 15대 플레니건(J. Flanagan) 요셉, 16대 오고만(D. O'Gorman) 다니엘, 17대 오코너(M. O'Connor) 마우리시오, 18대 민경국 안드레아, 19대 최중혁 마티아, 20대 이석재 바오로, 21대 류덕현 알베르토(2002.1~)이다.
관련 장소와 인물
- 감곡성당(청주교구, 옛 장호원 본당): 1896년 부이용 신부가 충북 음성군 왕장리에 세운 장호원 본당이 1958년 청주교구 신설로 감곡 본당이 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 여주성당: 1975년 3월 장호원 관할 당진리 공소가 이관된 본당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참고자료 및 출처
-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장호원 본당”(10권). 설립과 분리 경위, 신축 과정, 교세, 역대 주임.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5379 - 가톨릭신문, “[교구 본당의 역사를 따라] 용인대리구 장호원본당”(2016-03-23). 부이용 신부의 본당 이전, 1960년 승격과 임시 성당, 1970년 낙성식, 공소강당 활용.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1603230153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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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10월 17일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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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장호원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7일 15:40. https://missamap.com/ko/kr/suwon-janghowon-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