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소개
장호원 성당은 천주교 수원교구 제2대리구 여주·이천지구에 속한 장호원본당의 성당이다. 노동자의 모범이신 성 요셉을 주보 성인으로 모시며, 이천 남부 장호원 지역과 인근 농촌 지역의 신자들이 미사와 성사를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본당 공동체의 중심이다. 교구 주소록에는 본당에 공소 한 곳이 함께 속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읍내 성당과 주변 지역 공동체를 잇는 역할도 드러난다.
장호원 지역은 충북 음성의 감곡과 생활권이 맞닿아 있어 한국 천주교사의 오래된 ‘장호원본당’ 명칭과 현재 수원교구 장호원본당의 역사를 구분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오늘의 장호원 성당은 20세기 중반 행정·교회 관할이 나뉜 뒤 경기도 쪽 신자 공동체를 중심으로 성장한 본당의 성당으로, 농촌과 읍내를 함께 품는 지역 사목의 거점이다. 장호원은 행정 경계와 교구 경계가 가까운 지역이어서, 본당은 읍내 신자만을 위한 성당이라기보다 주변 농촌 공동체의 신앙생활을 함께 묶는 거점으로 형성되어 왔다. 현재 공소 수가 과거보다 크게 줄었더라도, 넓은 지역을 오가며 신앙공동체를 돌보아 온 경험은 본당의 성격을 이해하는 중요한 배경이다.
역사와 유래
장호원이라는 본당명은 현재 본당보다 앞선 역사에도 등장한다. 1896년 파리외방전교회의 부이용 신부가 부용골 신학교 본당을 충북 음성군 왕장리로 옮기면서 그 본당을 ‘장호원본당’이라 불렀다. 이 옛 본당은 훗날 감곡본당으로 이어졌으므로, 현재 경기도 이천의 장호원본당과 동일한 공동체로 보아서는 안 된다.
1958년 청주대목구가 서울대목구에서 분리되면서 이 지역의 교회 관할도 나뉘었다. 충북 쪽 옛 장호원본당은 감곡본당이 되었고, 경기도 쪽에는 장호원공소가 남았다. 이 공소는 1960년 3월 19일 본당으로 승격되어 오늘의 장호원본당이 되었으며, 당시 19개 공소와 약 1,200명의 신자를 맡는 넓은 농촌 본당으로 출발했다.
처음에는 성당과 사제관이 없어 지나리의 한 공공 건물을 임시성전으로 사용했고, 약 2년 뒤 사제관을 마련했다. 1964년부터 성전 건축을 시작하면서 신자들이 직접 벽돌 제작에 참여할 만큼 공동체의 노력이 컸고, 1970년 5월에는 2층 시멘트 블록 구조의 성전을 완공해 봉헌했다.
이 과정은 오늘의 장호원본당이 오래된 ‘장호원’이라는 교회 지명을 단순히 계승한 것이 아니라, 1958년 이후 새 관할 체계 속에서 공소에서 본당으로 성장한 공동체임을 보여 준다. 여러 공소를 돌보며 형성된 농촌 사목의 전통은 장호원 성당의 역사적 성격을 이해하는 중요한 배경으로 남아 있다. 2016년 본당사 기록에는 나래리·방추리·금호리 등지의 공소 건물이 소공동체의 거점으로 활용되어 온 사실도 소개된다. 설립 당시 19개 공소를 맡았던 본당이 시간이 흐르며 관할 구조가 달라진 뒤에도, 읍내 성당과 농촌 지역의 작은 공동체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사목 전통을 이어 왔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이런 배경 때문에 장호원본당의 성전사는 건물 하나의 건축사보다 넓은 농촌 신앙망의 변화와 함께 읽을 필요가 있다.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장호원 성당의 역사와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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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수원교구 (Diocese of Suwon)
공식 홈페이지: http://www.casuwo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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