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동 성당
개요
고등동성당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고등동에 있는 천주교 수원교구 소속 성당이다. 1959년 11월 25일 수원 본당(현 북수동 본당)에서 분리·설립되었고, 1963년 수원교구가 설정될 때 교황 칙서로 주교좌성당이 되어 1977년까지 교구의 첫 주교좌성당 역할을 했다. 주보는 노동자 성 요셉이다.
역사
〔설립 준비〕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해방 당시 수원에는 본당이 하나뿐인 데 신자는 늘고 있었다. 당시 수원 본당의 4대 주임이던 폴리(Polly, 심응영) 신부는 해방 직후 제2 본당 분리 설립을 추진해 기금을 저축했으나 1948년 천안 본당(현 오룡동 본당)으로 전임되었고, 후임 이복영(요셉) 신부가 이 사업을 인계받았다. 이 신부는 부임 이듬해 매산로 40번지의 대지와 건물을 임대차 계약하는 등 노력했지만 6·25전쟁으로 무산되었다. 수원 본당은 1954년부터 사업을 재개해 여러 차례 대지를 매입했으나 위치가 맞지 않아 매각과 매입을 되풀이하다가, 6대 임종구(바오로) 신부 재임 중인 1959년 10월에야 현 성당 터와 부속 건물을 매입했다.
〔본당 설립〕 대사전에 따르면 부지와 임시 성당 건물이 마련되자 서울교구는 1959년 11월 25일자로 ‘고등동 본당’ 신설을 발표하고 초대 주임으로 이종철(스테파노) 신부를 임명했다. 당시 본당 신자 수는 2,099명이었고 관할 구역은 수원시 매산로·고등동·서둔동·세류동·평동 전 지역과 화서동 일부, 화성군 안룡면(태안면)과 반월면 일부까지였다. 이종철 신부와 신자들은 설립 직후 성당 건립 계획을 실행해 1960년 3월 성당 기공식을 갖고 같은 해 11월 5일 121평 규모의 성당을 완공했다.
〔교구 설정과 주교좌성당〕 대사전에 따르면 1963년 10월 7일 서울대교구에서 수원교구가 분리·독립하면서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된 윤공희(빅토리노) 주교는 고등동 성당을 주교좌성당으로 지정했다. 가톨릭신문(2023)은 이 성당 입구 왼편 머릿돌 아래에 성 바오로 6세 교황의 칙서 「최고 목자」의 원문과 번역문이 있다고 전한다. 칙서는 경기도 내 수원시와 부천군·시흥군·화성군·평택군·광주군·용인군·안성군·이천군·양평군·여주군을 포함한 지역을 서울대교구에서 분리해 ‘수원교구’로 설정하고, 주교좌를 수원시의 성 요셉 성당에 두며 이 성당을 주교좌성당으로 승격시킨다고 밝혔고, 여기서 성 요셉 성당은 ‘노동자의 모범이신 성 요셉’을 주보로 하는 고등동성당을 가리킨다. 신문에 따르면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총무였던 윤공희 신부가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되어 1963년 10월 20일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주교품을 받았고, 12월 21일 고등동성당에서 착좌식을 거행했다. 윤 주교는 고등동성당 건너편에 주교관을 두고 화서동에 교구청사를 마련하기 전까지 4년여 동안 임시 교구청으로 썼다.
〔2대 교구장 착좌와 주교좌 이전〕 가톨릭신문에 따르면 윤 주교가 1973년 10월 광주대교구장으로 임명되자 1974년 10월 5일 김남수(안젤로) 주교가 임명되었고, 11월 21일 고등동성당에서 윤 대주교의 주례로 김 주교의 서품식과 착좌식이 거행되었다(대사전은 이날을 1974년 11월 21일 제2대 교구장 김남수 주교의 성성식 및 착좌식으로 적는다). 고등동성당은 교구 설정 당시 수원 시내에서 가장 큰 성당이었지만 수용 인원이 500여 명에 불과해 교구의 크고 작은 행사를 치르기에 작았고, 1977년 5월 18일 조원동주교좌성당이 준공되면서 교구의 주보가 ‘평화의 모후’로 공식 선포되고 고등동본당은 준주교좌 본당이 되었다(대사전은 같은 날짜로 조원동성당이 주교좌로 지정되고 고등동성당은 준주교좌성당으로 남았다고 적는다). 신문은 고등동성당이 교구의 첫 주교좌로서 13년 7개월 동안 초대와 2대 교구장의 착좌식, 사제서품식과 교구의 주요 행사가 열린 곳이었다고 적는다.
〔성장과 분가〕 대사전에 따르면 1961년 7월 21일자로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분원이 설립되었고 이듬해 4월 ‘소화유치원’이 개원했다. 2대 주임 장금구(요한 크리소스토모) 신부 재임 중인 1968년에 서둔동 본당과 세류동 본당을 분리 신설했고, 신심 단체 활성화에도 힘써 1978년에는 본당 최초로 꾸리아를 탄생시켰으며 그해 11월 화서동 본당을 분리했다. 7대 김정원 신부 재임 중인 1982년에는 교육 회관과 수녀원을 신축했고, 8대 최경환 신부 부임 후 성당 신축 계획을 세워 1992년 10월 3일 새 성당 봉헌식을 가졌다. 가톨릭신문은 기존의 낡은 성당을 허물고 1992년 새 성당을 지으면서 더 이상 주교좌성당이 아니게 되어 교구 첫 주교좌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고 적으며, 첫 주교좌였던 고등동성당의 규모가 400㎡였다고 전한다.
〔역대 주임 신부와 교세〕 한국가톨릭대사전이 적은 역대 신부는 초대 이종철 스테파노(1959.11~1967.1), 2대 장금구 그리소스토모(1967.1~1968.12), 3대 김종진 다미아노(1968.12~1969.12), 4대 정덕진 루가(1969.12~1970.7), 5대 박지환 요한(1970.7~1975.4), 6대 황익성 아우구스티노(1975.4~1981.6), 7대 김정원 프란치스코 사베리오(1981.6~1987.9), 8대 최경환 마티아(1987.9~)이다. 교세는 1959년 2,023명, 1966년 4,114명, 1968년 1,191명, 1978년 2,989명, 1983년 3,254명, 1993년 4,297명이다. 당시 관할 구역은 고등동, 매산 1·2·3가 전 지역과 교동 일부였다.
관련 장소와 인물
- 수원 본당(현 북수동 본당): 고등동 본당이 분리되어 나온 모본당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 서둔동·세류동·화서동 본당: 고등동 본당에서 각각 1968년, 1968년, 1978년에 분리된 본당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 조원동주교좌성당: 1977년 5월 18일 준공되어 고등동성당을 대신해 주교좌성당이 되었고, 설계는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남도광(Honoratus Millemann) 신부가 맡았다(가톨릭신문, 2023).
- 윤공희(빅토리노) 주교·김남수(안젤로) 주교: 수원교구의 초대·2대 교구장으로, 고등동성당에서 착좌했다(가톨릭신문, 한국가톨릭대사전).
참고자료 및 출처
-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고등동 본당”. 본당 설립 준비와 설립, 1960년 성당 완공, 주교좌성당 지정과 준주교좌 전환, 분가, 1992년 새 성당 봉헌, 역대 신부, 교세.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329 - 가톨릭신문, “[창간 16주년 특집-어제의 교구가 내일의 교구에게] 주교좌에서 교구사를 보다”(2023.10.29). 교구 설정 칙서와 고등동성당의 주교좌 지정, 1963년·1974년 착좌식, 조원동주교좌 준공, 1992년 새 성당.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2310240215837
문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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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고등동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6일 22:46. https://missamap.com/ko/kr/suwon-godeungdong-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