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 성당
개요
안성성당은 경기도 안성시 혜산로 33(구포동)에 있는 천주교 수원교구 소속 성당이다. 굿뉴스 성지 소개 기준으로 1900년 10월 19일 안성 본당으로 설립되었고, 1922년에 지은 옛 성당은 한식 구조와 바실리카식 외관을 절충한 건물로 1985년 경기도기념물 제82호로 지정되었다. 2000년에는 본당 설립 100주년 기념성당이 새로 봉헌되었다.
역사
〔공소 설립과 본당 설립〕 굿뉴스 성지 소개에 따르면 박해시대에 이미 복음이 전파된 안성 지역에는 1866년 병인박해를 전후해 여러 곳에 신자들이 살았으나, 박해로 공동체가 와해된 뒤 순교자들의 후손이나 다른 지역 신자들이 이주해 오면서 새로 교우촌이 형성되었다. 1883년 두세 신부가 안성 지역을 방문해 바울 공소를 설립했고, 이어 죽산·직산·궁말·선바위 공소를 차례로 세웠다. 1900년 1월 뮈텔 주교가 이 지역을 방문한 뒤 본당 설립 운동이 시작되었고, 안성읍내에 현재 부지를 매입해 기와집을 성당으로 개조한 뒤 그해 9월 드비즈 신부의 집전으로 낙성식을 거행했으며 10월 19일 안성 본당이 설립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안성 본당이 1901년(광무 5) 아산 공세리 본당에서 분할되어 창설되었다고 적고, 초대 주임 공베르(Gombert, A., 孔安國) 신부가 전에 군수를 지낸 백씨의 집을 사서 임시 성당으로 사용했다고 적는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의 던지실 본당 항목은 선바위 공소가 처음에는 1895년에 설립된 공세리 본당의 드비즈 신부 관할이었다가 1900년 구포동 본당(안성 본당의 옛 이름) 설립으로 구포동 본당 관할이 되었다고 적는다. 본당 설립 연도는 출처에 따라 1900년과 1901년으로 다르게 적혀 있다.
〔초대 주임 공베르 신부와 안법학교〕 굿뉴스 성지 소개는 초대 주임으로 임명된 공베르 신부가 1909년 사립 초등학교인 안법학교(현 안법고등학교의 전신)를 설립해 자비로 운영했고, 1912년 여자부를 신설하면서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에서 교사 수녀를 초빙했다고 적는다. 가톨릭신문의 「교구에서 만난 한국교회사(28)」는 공베르 신부가 사립공교 안법학교를 1909년 1월에 설립했고, 안법학교는 오늘날 안법고등학교로 이어지고 있으며, 공베르 신부가 교육이 국권 회복에 중요하다는 생각과 교육기관을 필요로 하는 지역사회의 요청에 따라 학교 설립을 추진했다고 적는다. 굿뉴스는 이후 1936년 제4대 주임 이복영 신부가 안법학교 교사를 증축하고 4년제에서 6년제 초등학교로 발전시켰으며 다음 해 4월 정규 보통학교로 인가받았고, 1947년 9월 김제근 신부가 안법중학교를 인가받아 개교했다고 적는다. 공베르 신부는 미사주를 만들기 위해 안성 포도의 시초가 된 포도 묘목을 들여왔다고 가톨릭신문(2025)은 적는다.
〔3·1운동과 공베르 신부〕 가톨릭신문(2024)에 따르면 1919년 3·1운동 당시 안성 지역 사람들은 공베르 신부를 찾아와 만세운동을 어떻게 전개하면 좋을지 조언을 구했다. 신부는 “낮에는 국기를 들고 밤에는 등불을 들고 만세를 부르라”고 조언했고 질서 있게 만세운동을 지휘할 수 있는 지도자로 천주교 신자를 추천했으며, 시민들에게 폭력과 파괴 행위를 하지 않도록 주의시키고 일본군에게 박해 중지를 요청했다. 일본군에 쫓긴 군중이 안성성당으로 몰려오자 공베르 신부는 성당 마당에 프랑스 국기를 게양하고 이곳이 치외법권임을 주장하며 일본군의 진입을 막아섰다. 굿뉴스는 신부가 프랑스에서 모금한 기금으로 전답을 매입해 소작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흉년이 들면 사람들에게 양식을 나누어 주는 등 빈민 구제 활동도 벌였다고 적는다.
〔성당 신축과 봉헌〕 굿뉴스 성지 소개에 따르면 1922년 공베르 신부는 신자들의 협력을 얻어 성당 건립 공사를 시작해 그해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에 첫 미사를 봉헌했고, 10월 4일 드브레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1922년에 로마네스크 양식의 벽돌 성당 건물을 신축했다고 적는다. 1925년에는 덕원수사원 목공부 출신 원재덕이 제대 뒷벽면에 조각 장식을 했고(대백과사전), 가톨릭신문(2025)은 성당의 나무 제단과 제대를 1925년 덕원수사원 목공부 출신 원재덕 목수가 제작했다고 적는다. 1955년에는 임세빈 신부가 고딕식 벽돌조로 성당 종탑부를 증축하고 독일에서 주문한 종을 설치했다(굿뉴스).
〔구포동 본당으로의 개명과 대천동 본당 분가〕 굿뉴스는 안성 본당이 1970년에 대천동 본당을 분할하면서 구포동 본당으로 개명되었다고 적는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의 대천동 본당 항목은 대천동 본당이 1970년 6월 29일 안성(현 구포동) 본당에서 분리·설립되었으며, 안성 본당의 꾸준한 성장과 교세 확장으로 읍내에 새 본당을 신설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자 1969년에 새 성당 건립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고 적는다. 같은 대사전의 던지실 본당 항목에 따르면 구포동 본당의 던지실 공소는 1992년 2월 13일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문화유산 지정과 100주년〕 굿뉴스는 1985년 6월 성당이 경기도기념물 제82호로 지정된 것을 계기로 성당을 대대적으로 보수했다고 적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시도자연유산(시도기념물)으로 1985년 6월 28일 지정되었다고 적는다. 본당 설립 100주년 기념사업을 전개하면서 2000년 1월 1일 본당명을 구포동에서 안성 본당으로 다시 변경했고, 그해 10월 3일 본당 설정 100주년 기념식과 기념성당 봉헌식을 거행했다(굿뉴스). 2005년 5월에는 안성성당 100주년 기념관을 건립해 축복식을 가졌다(굿뉴스).
〔근래〕 가톨릭신문(2025)은 2024년 공베르 신부의 후손이 본당을 방문해 유전자 정보를 문서화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고, 당시 주임 박우성(암브로시오) 신부가 전한 말을 인용해 적는다.
건축과 공간
옛 성당(1922년 재건 형태)은 푸아넬(Poisnel, V.) 신부가 설계·감독을 맡았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여기에 쓰인 기와와 돌, 목재 일부는 안성군 보개면 동안리에 있던 누각식 동안강당(東安講堂)을 헐어서 썼고 대부분의 목재는 압록강에서 운반해 왔다. 가톨릭신문(2025)은 동안강당이 1786년에 지어진 기와집이라고 적고, 성당 부지가 약 264㎡(80여 평)라고 적는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평면이 정면 5칸, 측면 9칸의 전형적인 바실리카식 라틴십자형이며, 종탑부의 하부는 개방되어 출입구 구실을 하고 종탑부와 입구 한 칸이 2층으로 되어 성가대석으로 쓰인다고 적는다. 종탑부에는 세 개의 첨탑이 있는데 가운데 첨탑은 사각형에서 끝이 팔각형으로 변형되었고 총 높이가 26m이며 좌우 첨탑은 네모뿔 모양이라고 한다. 내부 장식은 서양식이고 구조와 외관은 전통적인 우리나라 목조건축 양식을 채택해 현재 몇 개 남지 않은 한옥 성당 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굿뉴스는 이 성당을 한식(내부)과 바실리카 양식(외부)을 절충한 형태로 토착화 양식을 잘 보여준다고 적는다.
가톨릭신문(2025)은 성당 정면이 붉은 벽돌에 뾰족한 첨탑 세 개가 있는 로마네스크 양식이지만 측면에서는 기와지붕을 얹은 한옥의 모습이 보인다고 적는다. 이 성당은 이례적으로 초기 바실리카식 공간 구성의 한옥 성당이며 국내 유일의 상량식 중층 교회 건축물로서 내부에는 높은 천장과 목재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고 소개한다. 종탑부는 1955년 고딕 양식의 벽돌조로 증축된 것이다. 2층 성가대석 쪽 스테인드글라스에는 밝은 원색 위주로 단순화한 성화가 채워져 있고, 제대 밑 가운데에는 본당 초대 주임 하느님의 종 앙투안 공베르 신부(1875~1950)의 초상화가 놓여 있으며 착한 의견의 성모 등 상본 다섯 점은 프랑스에서 들여온 것이라고 한다. 성당 주변 보도를 따라 놓인 십자가의 길은 각 처마다 성모가 예수를 품에 안고 있는 형식으로 조각되어 있고, 성당 계단 아래 성모 동산의 성모상은 약 100년 전에 주조된 것이다.
본당 설립 100주년 기념성당은 옛 사적지 성당의 붉은 벽돌 모습을 살리기 위해 전혀 다른 노출 콘크리트 기법의 흰색 건물로 건립되었다(굿뉴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 기념성당이 옛 성당 아래쪽에 노출 콘크리트 기법으로 건립되었고 현재 성당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적는다. 가톨릭신문(2025)은 본성당과 100주년을 기념해 세운 ‘착한 의견의 모친’ 기념 성당, 100주년 기념관 등이 한곳에 어우러져 있다고 소개한다.
관련 장소와 인물
- 앙투안 공베르(Antoine Gombert, 1875~1950) 신부: 안성 본당의 초대 주임이다. 가톨릭신문(2025)에 따르면 1950년 6월 25일은 전날 사제 서품 50주년을 맞은 공베르 신부의 금경축 행사가 있던 날이었고, 당시 서울 가르멜 여자 수도원 지도신부였던 그는 전쟁 소식을 접한 뒤 피난 권유에도 수녀들을 보호하기 위해 수도원에 남았다가 7월 15일 체포되어 평양으로 이송되었다. 이후 고산진 수용소로 끌려갔다가 중강진으로 향하는 ‘죽음의 행진’ 끝에 75세로 중강진에서 병사했다. 신문은 그가 ‘하느님의 종’이며 시복시성의 길이 열리기를 박우성 신부가 희망했다고 전한다.
- 안법고등학교: 공베르 신부가 1909년에 세운 안법학교를 이어 오늘에 이르는 학교이다(가톨릭신문, 굿뉴스).
- 대천동 본당: 1970년 6월 29일 안성(구포동) 본당에서 분리·설립된 본당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 던지실 본당: 구포동 본당 관할의 던지실 공소가 1992년 2월 13일 본당으로 승격되어 설립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 공세리 본당: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 안성 본당이 분할되어 나온 본당으로 적는 곳이다.
참고자료 및 출처
- 천주교 수원교구, 굿뉴스 가톨릭성지 “안성 성당(구 구포동 성당)”. 공소 설립, 1900년 10월 19일 본당 설립, 공베르 신부와 안법학교, 1922년 성당 봉헌, 1955년 종탑 증축, 1970년 구포동 본당 개명, 1985년 경기도기념물 지정, 2000년 100주년 기념성당과 2005년 기념관.
https://app.catholic.or.kr/web/holyplace/?seq=3641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안성 구포동성당”. 1901년 공세리 본당에서 분할 창설, 초대 주임 공베르, 푸아넬 신부의 설계·감독, 건축 재료, 평면과 종탑 구조, 시도기념물 지정(1985.6.28).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4801 - 가톨릭신문, “[수원교구 성당 순례] 안성성당”(발행 2025-06-01, 제3444호). 건축 양식과 내부 공간, 문화유산 지정, 제단 제작, 공베르 신부의 생애 후반.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250526500079 - 가톨릭신문, “[교구에서 만난 한국교회사(28)] 안성성당 : 일제강점기의 교회”(발행 2024-07-14, 제3401호). 안법학교 설립(1909년 1월), 3·1운동 당시 공베르 신부의 활동.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240708500168 -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대천동 본당”. 1970년 6월 29일 안성(현 구포동) 본당에서 분리·설립된 경위.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1312 -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던지실 본당”. 1900년 구포동 본당 설립과 관할 변화, 1992년 던지실 본당 승격.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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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안성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9일 05:41. https://missamap.com/ko/kr/suwon-anseong-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