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자 성당
개요
복자성당은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에 있는 천주교 전주교구 소속 성당이다.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병인박해 순교 100주년(1966)을 기념하는 성당으로 구상되어 1965년 12월 16일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한국 병인 24위 순교 성인이다.
역사
〔설립 배경〕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1964년 춘계 주교회의는 병인년 순교 100주년이 되는 1966년에 각 교구에 기념 성당을 건립하기로 결의했다. 이에 따라 전주교구는 1965년 2월 25일 교구 신부 회의를 열어 복자 성당 건립 계획을 논의했고, 3월 교구장 한공렬(1913~1973) 주교가 계획을 발표했으며, 4월 교구 사제 긴급 회의에서 기념 성당 건립에 합의했다. 교구는 교구 후원금과 신자·신부들의 성금으로 7월에 523평의 대지를 구입했다.
〔본당 설립〕 대사전은 1965년 12월 16일 전동 본당과 중앙 본당 관할 구역 중 일부를 분할해 복자 본당을 설립하고 이태규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임명했다고 적는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소록도 설립일을 1965년 12월 16일로 적는다. 본당 설립과 함께 1966년 1월 20일 60평 규모의 임시 성당을 준공했고, 9월에는 ‘복자 성당 건립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성당 건립〕 대사전에 따르면 약 6개월간의 준비를 거쳐 1967년 3월 8일 공사에 착수해 9월 30일 준공하고 10월 3일 축성식을 거행했다. 이듬해 4월에는 21평 규모의 사제관도 건립했다.
〔초기 사목〕 대사전은 1969년 4월 부임한 4대 주임 오기순 신부가 본당 운영을 평신도에게 맡기고 사목에 전념했다고 적는다. 이에 따라 1969년 6~10월에 성모상, 14처, 79위 벽화상, 김대건 신부상 등이 신자들의 기증으로 갖추어졌다. 1970년 3월 본당 최초의 ‘평화의 모후’ 쁘레시디움이 창단되었고, 12월경 교구청에서 손선지(베드로), 이명서(베드로) 등 8위의 순교 복자 유해를 모셔다가 새로 갖춘 유해 진열장에 안치했다. 같은 해 4월 인보 성체 수녀회 수녀들이 부임했으나 독립된 수녀원을 건립할 수 없어 1973년 1월 22일 본원으로 철수했다.
〔관할 변동과 단체〕 대사전은 1978년 1월 교구 내 관할 구역의 변동으로 완산동 일부가 파티마 본당으로 이관되고 중앙 본당 관내의 태평동 일부가 편입되었다고 적는다. 1979년 2월 처음으로 박성팔(안드레아) 보좌 신부가 부임했고, 1982년 2월 2일 안철문(이냐시오)이 본당 출신 첫 사제로 탄생했으며, 1984년 4월 수녀원 건립과 함께 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의 분원이 설치되었다.
〔1980년대 이후〕 대사전에 따르면 1986년 2월 8대 주임으로 부임한 김기수 신부가 본당 내외 시설을 정비해 12월 10일 성당 보수 공사를 완료했고, 교구의 결정에 따라 ‘평신도 사도회’를 ‘사목 협의회’ 체제로 바꾸었다. 제대회(1986), 청년회(1987), 여성 분과(1987), 대건회(1987), 요셉회(1988), 안나회(1988), 밀알회(1988), 작은 모임(1988) 등이 이 시기에 설립되었다. 1988년 2월 화산동 본당 신설로 화산동 신자 90세대 207명이 이관되었다가 그중 일부(20세대 56명)가 3월에 다시 본당 소속이 되었다. 1991년 3월 소성당에 유해실을 설치했고 이듬해 4월 성모상을 교체했다.
〔창설 30주년〕 대사전은 1995년 창설 30주년을 맞아 3월 월보 《복자 가족》을 창간하고 12월에 신앙 대강연회 등 기념 행사를 열었으며, ‘복자 본당 30년사 편찬위원회’의 노력으로 1997년 9월 《복자 성당 30년》이 간행되었다고 적는다. 대사전은 1997년 현재 레지오 마리애 1개 꾸리아와 25개 쁘레시디움을 비롯해 구역장회, 성우회, 성모회, 중·고등부 학생회, 성가대, 복사단, 청년회 등이 조직되어 활동한다고 적는다.
〔교세·관할과 역대 신부〕 대사전이 적은 관할 구역은 전주시 완산구 다가동 1·2가 일부와 3·4가 전역, 고사동 1·2가, 서완산동, 진북2동, 태평동 1·2가, 중화산동 신일 아파트 일부 지역이다. 교세는 1965년 579명, 1972년 992명, 1976년 1,306명, 1981년 1,794명, 1985년 2,383명, 1990년 2,520명, 1994년 2,425명, 1995년 2,484명이다. 역대 신부는 초대 이태규 요셉(1965.12~1966.12), 2대 이상호 아우구스티노(1966.12~1967.12), 3대 범석규 마티아(1967.12~1969.4), 4대 오기순 알베르토(1969.4~1975.7), 5대 김종길 라파엘(1975.7~1977.5), 6대 김종택 요셉(1977.5~1982.10), 7대 권영균 안토니오(1982.10~1986.1), 8대 김기수 사도 요한(1986.2~1990.5), 9대 김병환 사도 요한(1990.5~1994.2), 10대 정승현 요셉(1994.2~1998.1), 11대 김진룡 안토니오(1998.1~집필 당시 현재)이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소록은 현재 본당을 1지구 소속으로, 소속 수녀회를 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로 적는다.
건축과 공간
대사전에 따르면 1966년 1월 20일 60평 규모의 임시 성당을 준공했고, 1967년 3월 8일 착공해 9월 30일 준공한 성당은 10월 3일 축성되었다. 왜관의 알렌 신부가 설계한 이 성당은 총건평 122평에 공사비 500만 원이 들었다. 이듬해 4월 21평 규모의 사제관을 건립했고, 1986년 12월 10일 성당 보수 공사를 완료했으며, 1991년 3월 소성당에 유해실을 설치했다.
관련 장소와 인물
- 전동 본당·중앙 본당: 1965년 복자 본당이 설립될 때 관할 구역 중 일부를 분할해 준 본당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 파티마 본당·화산동 본당: 각각 1978년 완산동 일부, 1988년 화산동 신자 일부가 복자 본당과 관할이 오간 본당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 한공렬(1913~1973) 주교: 1965년 복자 성당 건립 계획을 발표한 당시 전주교구장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 오기순(알베르토) 신부: 4대 주임(1969.4~1975.7)으로 본당 운영을 평신도에게 맡겨 본당의 토대를 닦았다(한국가톨릭대사전).
참고자료 및 출처
-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복자 본당”(전주교구, 6권). 병인 순교 100주년 기념 성당 건립 결의, 1965년 본당 설립, 1967년 성당 준공·축성, 관할 변동, 교세, 역대 신부.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2610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 천주교 주소록 “복자”(전주교구). 설립일 1965.12.16, 주보 한국 병인 24위 순교 성인, 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 1지구.
http://directory.cbck.or.kr/m/catholicInfo.asp?code=201001294&gubun=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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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복자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20일 05:44. https://missamap.com/ko/kr/jeonju-bokja-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