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곡동 성당
개요
산곡동성당은 인천광역시 부평구 산곡동에 있는 천주교 인천교구 소속 성당이다. 1970년 11월 1일 부평1동(현 부평4동) 본당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주보는 성가정이다. 인천교구의 본당 소개는 이 성당이 마리아회(S.M.) 소속이라고 밝힌다.
역사
〔공소 시대〕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이 지역 신앙 공동체는 공주 본당 신자였던 김석태(마티아)가 1942년 초 인천시 백마장(현 산곡동)으로 이주하면서 형성되었다. 당시에는 공소가 없어 그는 백마장 일대의 신자 7~8가구를 모아 모임을 가졌고, 답동 본당 임종국(바오로) 신부는 1942년 8월 15일자로 백마장 공소를 설립하면서 김석태를 초대 공소 회장으로 임명했다. 이듬해 봄에는 50여 명의 신자가 홍규석(요한)의 집에서 판공성사와 함께 미사를 봉헌했다. 대사전은 이후 광복 때까지 공소를 치르지 못하다가 1946년부터 다시 봄가을 판공성사가 있었으나 한국전쟁으로 공소 모임이 일시 중지되었다고 적는다. 반면 인천교구 홈페이지의 본당 연혁은 같은 사실을 “1945년 8월 15일 서울교구 답동성당 백마장 공소로 발족”으로 적어 연도가 서로 다르다.
〔강당 건립과 소속 변경〕 대사전은 1951년 가을부터 부평의 미군 군종 윌리스(프란치스코) 신부가 부대 안 주일미사에 참석할 수 있도록 배려했고 산곡초등학교 뒤 부지 90평을 매입하도록 주선했다고 적는다. 윌리스 신부의 자재 지원과 답동 본당의 건축비 지원으로 1952년 1월 12일 10평 규모의 강당을 완공해 축성했다. 같은 해 3월 부평(현 부평2동) 본당이 신설되면서 백마장 공소는 이 본당 관할이 되었고, 1964년 7월 14일 부평1동 본당이 신설되면서 새 본당 소속이 되었다.
〔본당 승격〕 1968년 1월 부평1동 본당 테이슨(Theisen, 太義善) 신부는 신자가 늘자 산곡동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킬 필요를 느끼고 공소 신자들과 협의한 뒤 현 본당 자리 부지 1,200평을 매입했다. 같은 해 7월 20일 수녀원을 먼저 건립했고, 이듬해 8월 15일 242평 규모의 성당과 회의실·교리실을 완공했다. 봉헌식은 1970년 2월 15일에 거행되었으며, 그해 11월 1일 산곡동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초대 주임으로 킨 신부가 부임해 산곡1·2동, 청천동, 효성동 일대와 서곳·백석·심곡·석남·청라도 공소를 관할하게 되었다고 대사전은 적는다.
〔성장과 분가〕 대사전은 1972년 1월 사제관을 건립하고 곧이어 본당 신용 협동 조합을 창립했으며 이 조합이 1977년 자체 회관을 건립하며 본당에서 독립했다고 적는다. 1980년 1월 유치원을 개설했고, 1981년 2월 3일 효성동 본당을 분리·신설하면서 428명의 교적을 이관했으며, 같은 해 4월 교육관을 신축했다. 1982년 2월 16일에는 부평3동 본당을 분리하면서 52명의 교적을 이관했다. 1986년 9월 20일에는 산곡2동(현 산곡3동) 본당을 세 번째 자본당으로 분리하며 786명의 교적을 이관했다. 인천교구 홈페이지 연혁에는 1981년 2월 효성동 분리, 1982년 3월 산곡3동 분리로 적혀 있다.
〔마리아회 위임과 이후〕 1983년 11월 21일자로 본당 사목권이 마리아회에 위임되어 이 수도회 소속 송병섭 신부가 4대 주임으로 부임했다. 송병섭 신부는 1984년 5월 옛 사제관 자리에 마리아회의 ‘샤미나드 피정의 집’을 준공했고, 교구 지원으로 총 건평 180평 규모의 사제관·수녀원·유치원 등을 증축했다. 1988년 12월 말에는 설립 이후 본당 사목을 도왔던 ‘예수 성심 시녀회’ 분원이 철수하고 ‘티없으신 마리아의 딸 수녀회’가 본당에 진출했다. 대사전은 1997년 3월 성당 건물과 시설물을 보수·교체했고 같은 해 11월 성체조배실(12평)을 마련해 성령 기도회를 발족시켰으며, 1998년에는 신자 한 사람이 한 사람 이상을 입교시키도록 하며 전교 활동에 나섰다고 적는다. 인천교구 홈페이지 연혁은 1996년 2월 26일 7대 장희성 프란치스코 신부 부임 때 강당 겸 식당 신축과 성체조배실 신설이 있었다고 적고, 2004년 2월 9일 8대 송병섭 아우구스티노 신부가 부임했다고 기록한다.
〔교세와 관할〕 대사전의 교세는 1971년 1,150명, 1976년 2,014명, 1981년 3,056명, 1987년 4,246명, 1992년 4,701명, 1996년 4,586명이다. 관할 구역은 산곡1동·청천1동 전 지역과 산곡2동·청천2동 일부 지역이었다.
〔역대 주임신부〕 대사전은 초대 킨(A.V. Keane, 김원선) 빈첸시오(1970년 10월~1977년 8월), 2대 펠리니(R. Pellini, 방인이) 로베르토(1977년 8월~), 3대 나모스키(J. Najmowski, 나현철) 야고보(1983년 6~11월), 4대 송병섭 아우구스티노(1983년 11월~1985년 4월), 5대 슈미트(P. Schmidt, 심재성) 바오로(1985년 4월~1988년 12월), 6대 송병섭(1988년 12월~1996년 2월), 7대 장희성 프란치스코(1996년 2월~)를 적는다.
건축과 공간
대사전에 따르면 1969년 8월 15일 완공된 242평 규모의 성당은 베네딕도회의 슈미트(A. Schmid, 安) 신부가 설계했다. 이 성당은 국내 최초로 분해식 벽을 건축 기법에 도입해, 벽을 제거하면 2,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강당으로 쓸 수 있도록 했다.
관련 장소와 인물
- 부평1동(현 부평4동) 본당: 1964년 이후 백마장 공소를 관할했고 산곡동 본당 승격 당시의 모본당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 효성동·부평3동·산곡3동 본당: 산곡동 본당에서 분리된 본당으로 대사전에 기록되어 있다.
- 김석태(마티아): 백마장 신앙 공동체를 이룬 인물로, 초대 공소 회장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 슈미트(A. Schmid) 신부: 1969년 완공된 성당을 설계한 베네딕도회 신부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참고자료 및 출처
- 한국가톨릭대사전, 산곡동 본당. 공소 시대와 1970년 본당 승격, 성당 건축, 분가 본당, 마리아회 위임, 교세와 역대 주임신부.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3000 - 천주교 인천교구 홈페이지, 산곡동 본당 소개·연혁. 마리아회 소속, 1945년 공소 발족, 1970년 본당 승격, 분리 시기, 역대 주임신부 부임 연도.
http://www.caincheon.or.kr/church/church_jigu.do?churchIdx=14022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소록, 산곡동. 설립일 1970.11.1., 주보성인 성가정.
http://directory.cbck.or.kr/m/catholicInfo.asp?code=201000371&gubun=4
문서 정보
- 문서 크기
- 7,501 바이트
- 판 수
- 1
- 기여자
- 1명
- 만들어진 날
- 2026년 10월 19일 08:01
- 마지막 수정
- 2026년 10월 19일 08:01
- 본문 연결
- 0개
- 출처 링크
- 3개 · 제출 출처 있음
- 작성 상태
- 보완 권장
- 장소 ID
c2b6583b-778e-4482-afa6-d00585a6dfd3- 고정 주소
- https://missamap.com/ko/kr/incheon-sangokdong-catholic-church/wiki/
- 인용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산곡동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9일 08:01. https://missamap.com/ko/kr/incheon-sangokdong-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