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소개
산곡동 성당은 천주교 인천교구 부평지구에 속한 본당으로, 주보성인은 성가정이다. 오늘의 본당은 부평 산곡동과 인근 지역의 신자들이 미사와 성사를 거행하고 교리와 공동체 생활을 이어 가는 지역 가톨릭 공동체의 중심이지만, 그 뿌리는 본당 승격보다 수십 년 앞선 백마장 공소 공동체에 닿아 있다. 따라서 산곡동 성당은 본당 승격 때 갑자기 생겨난 공동체라기보다, 전쟁과 도시 변화 속에서도 이어진 지역 신앙 공동체가 제도적으로 성장한 결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본당은 성장 과정에서 여러 자 본당을 분리해 내며 부평 일대 사목망 형성에도 영향을 주었다. 또한 성체조배실과 교육 공간, 수도회와의 협력 등 다양한 형태로 전례와 신심, 교육과 지역 봉사를 이어 왔다. 성가정을 주보로 모시는 현재의 산곡동 성당은 오래된 공소 전통과 도시 본당의 역할이 한 장소 안에서 이어지는 공동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역사와 유래
산곡동 지역 신앙 공동체의 시작은 194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주 본당 신자였던 김석태 마티아가 인천 백마장으로 이주한 뒤 인근의 7~8가구 신자들을 모았고, 답동 본당 임종국 바오로 신부가 1942년 8월 15일 백마장 공소를 설립해 김석태를 초대 공소 회장으로 임명했다. 광복 전후와 한국전쟁으로 공소 활동이 중단되기도 했지만, 1951년부터 부평의 미군 군종 사제의 도움을 받아 다시 공동체가 정비되었고 1952년 1월에는 작은 강당을 완공해 축성했다. 이후 부평 본당, 다시 부평1동 본당 관할을 거치며 공동체가 이어졌다.
신자가 늘자 1968년 부평1동 본당은 산곡동 공소의 본당 승격을 준비하며 현재 본당 터에 약 1,200평의 부지를 마련했다. 같은 해 수녀원이 세워졌고, 1969년 8월에는 성당과 회의실, 교리실을 완공했다. 이 성당은 벽을 떼어 내면 큰 집회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점이 특징이었으며, 1970년 2월 15일 봉헌되었다. 그해 11월 1일 산곡동 공소는 정식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킨(A. V. Keane, 김원선)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했다.
본당은 이후 부평 지역 인구와 신자 증가에 맞추어 여러 차례 관할을 나누었다. 1981년 효성동 본당, 1982년 부평3동 본당, 1986년 산곡2동 본당(현 산곡3동)이 차례로 분리되었다. 1983년에는 본당 사목이 마리아회에 위임되었고, 이듬해에는 수도회의 피정 시설인 샤미나드 피정의 집이 마련되는 등 수도회와의 협력도 본당 역사에 한 축을 이루었다.
1990년대에는 성당과 부속 시설을 보수하고 성체조배실을 마련하는 등 기존 시설을 재정비했다. 이처럼 산곡동 본당의 역사는 1942년의 작은 신자 모임과 공소에서 시작해 전쟁기의 단절을 지나 성당 건립과 본당 승격, 자 본당 분가를 거치며 도시 본당으로 성장한 과정이다. 오늘의 산곡동 성당은 그 오랜 공소 공동체의 연속성을 이어 받은 장소다.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산곡동 성당의 역사와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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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정보
- 승용 엘리베이터 1대
- 지상 3층 · 지하 1층
- 2015년 사용승인
- 연면적 4,508㎡
건축물대장 조회값 · ·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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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인천교구 (Diocese of Incheon)
공식 홈페이지: http://www.caincheo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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