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무 성당

목차
  1. 개요
  2. 역사
  3. 관련 장소와 인물
  4.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연무성당은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에 있는 천주교 대전교구 소속 성당이다. 논산 본당 관할 공소에서 1958년 본당으로 승격·분리되어 처음에는 마산리 본당이라 불렸으며, 주보는 성 요한 보스코이다.

역사

〔공소 시대〕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이 지역에는 1898년 이미 화산(현 나바위) 본당 관할로 댓들(현 연무읍 죽평리)에 신자 47명의 공소가 설정되어 있었고, 2년 뒤인 1900년에는 독각골(현 연무읍 동산리)에서 신자 22명이 공소 공동체를 발족했다. 가야곡면의 갈매울 공소는 1899년에 신자가 119명에 이를 정도였다. 1921년 화산 본당에서 논산 본당이 분리되면서 댓들 공소와 독각골 공소는 논산 본당 관할이 되었다.

디지털논산문화대전은 박해를 피해 경기도 일대와 충청남도 지역의 신자들이 전라북도 고산 일대로 이주해 교우촌을 이루었고, 충청남도 지역에 있던 교우촌 공소로 가야곡면 목곡리 갈매울공소와 양촌면 중산리 쇠목공소가 있었다고 적는다. 이 가운데 갈매울공소는 80~150명의 신자를 유지하다가 전라북도 고산본당 설립 이후 고산본당 관할이 되었는데, 행정구역상 충청남도에 속하면서도 교회 관할로는 전라도에 속하는 문제가 있었다. 1921년 논산본당이 나바위본당(화산본당)에서 분화되면서 갈매울공소의 관할이 논산본당으로 바뀌어 행정구역과 교회 관할구역이 일치하게 되었다.

〔본당 승격〕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1956년 5월 논산 본당 주임 생제(P. Singer, 성재덕) 신부의 경제적 지원으로 현 성당 부지(8,000여 평)를 매입했고, 1958년 6월 사제관을 준공한 데 이어 같은 해 8월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초대 주임 신균식 도미니코 신부는 2개월 뒤인 10월에 사제관을 2층으로 증축해 임시 성당으로 사용했으며 당시 신자 수는 300여 명이었다. 승격 당시의 관할 구역과 공소는 연무읍 전 지역을 비롯해 은진면의 은진 공소와 교촌 공소, 가야곡면의 말목 공소와 갈매울 공소, 채운면의 화정 공소, 양촌면의 양촌 공소와 쇠목 공소 등이었다.

설립 시기는 출처마다 다르게 적는다. 대사전은 1958년 8월 논산 본당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다고 적고, 디지털논산문화대전은 설립연도를 1958년 1월 31일로 적으면서 이날 논산본당 소속이던 마산공소·택리공소·화정공소·죽평공소·새터공소·갈매울공소·쇠목공소·말목공소 등의 지역을 받아 마산본당이 분리되었다고 설명한다. 본당 명칭에 대해서도 대사전은 승격 당시 ‘마산리’ 본당이었으나 1963년 ‘연무대’로 바뀌었다가 1973년부터 ‘연무’ 본당으로 불렸다고 적고, 디지털논산문화대전은 이듬해 교회의 공식 명칭 표기법에 따라 천주교 연무성당으로 변경되었다고 적는다.

〔성당 신축과 봉헌〕 1959년 신자 수가 700여 명에 이르자 임시 성당이 협소해져, 교구 보조금·신자 부담금·구호 양곡 등을 재원으로 성당을 신축하고 이듬해 5월 봉헌식을 거행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1966년 3월 신균식 신부가 새로 신설된 대전 문창동 본당 주임으로 떠났으나 교구의 신부 수가 부족해 후임이 배정되지 못했고, 교구는 논산 본당 주임 손만재(세례자 요한) 신부에게 후임 임명 때까지 사목을 맡겼다.

4대 주임 변갑철 바오로 신부는 신자 증가와 건물 노후로 성당을 새로 짓기로 하고 교구 보조금·성당 부지 매각 대금·신자 부담금 등으로 1977년 3월 공사에 착수해 같은 해 12월 24일 봉헌식을 거행했다. 6대 주임 송갑의 신부 때인 1982년 10월 3일에는 수녀원을 신축해 황민성(베드로) 주교의 집전으로 축복식을 가졌고, 7대 주임 박우식 신부 때인 1987년 2월부터 까리따스 수녀회 분원이 사목을 돕고 있다. 8대 주임 플라시에(A. Plassier, 박수범) 신부 때인 1993년 1월 31일에는 경갑룡(요셉) 주교의 집전으로 교육관 축복식을 거행했고, 10대 주임 정필국 신부는 1998년 11월 29일 본당 설립 40주년 기념행사로 1,025명에 이르는 새가족 봉헌 행사를 열었으며 2000년 10월 사무실·성물방·화장실 공사를 마쳤다(한국가톨릭대사전).

〔교세와 역대 주임〕 한국가톨릭대사전이 적은 교세는 1958년 973명, 1963년 1,289명, 1968년 1,098명, 1975년 1,217명, 1980년 1,214명, 1985년 1,312명, 1990년 1,573명, 1995년 1,646명, 2000년 1,513명이다. 역대 신부는 초대 신균식 도미니코(1958.8~1966.3), 2대 유재식 안셀모(1967.12~1972.12), 3대 박종우 안드레아(1972.12~1976.9), 4대 변갑철 바오로(1976.9~1978.8), 5대 이종대 요셉(1978.8~1981.10), 6대 송갑의 사도 요한(1981.10~1985.5), 7대 박우식 요셉(1985.5~1989.8), 8대 플라시에 아우구스티노(1989.8~1993.3), 9대 김재철 요한 보스코(1993.3~1996.2), 10대 정필국 베드로(1996.2~2001.2), 11대 윤성균 가브리엘(2001.2~)이다(대사전 작성 시점 기준). 디지털논산문화대전은 관할구역을 논산시 연무읍 일원과 가야곡면 일부 지역으로 적는다.

관련 장소와 인물

  • 논산 본당(현 논산 부창동 본당): 1921년 화산(나바위) 본당에서 분리되었으며, 연무 지역 공소들의 모본당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논산문화대전).
  • 화산 본당(나바위): 1898년 댓들 공소가 이 본당 관할로 설정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 갈매울 공소·쇠목 공소: 교우촌에서 비롯된 충청남도 지역의 공소로, 연무 본당의 관할 공소였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논산문화대전).
  • 대전 문창동 본당: 1966년 3월 신설되어 초대 주임 신균식 신부가 옮겨 간 본당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참고자료 및 출처

  1.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연무 본당”. 공소 시대, 1958년 본당 승격과 명칭 변천, 성당 신축·봉헌, 1977년 새 성당, 교세와 역대 신부.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4447
  2.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논산문화대전 “연무성당”. 교우촌 공소와 관할 변천, 1958년 1월 31일 마산본당 분리, 명칭 변경, 관할구역.
    https://www.grandculture.net/nonsan/toc/GC02000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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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7일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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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7일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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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연무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7일 01:50. https://missamap.com/ko/kr/daejeon-yeonmu-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