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평 성당
개요
신평성당은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에 있는 천주교 대전교구 소속 성당이다. 1975년 4월 10일 신합덕 본당 관할 공소 8개가 통합되어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성 요셉이다. 조선 후기 신평면 한정리(원머리)를 중심으로 형성된 신앙 공동체를 계승한다.
역사
〔공소 시대〕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두세(C. Doucet) 신부가 충청도 지역을 사목하던 1883년에 이미 신평면 한정리(원머리)와 매산리(쇠터 또는 새터)에 공소가 설립되어 있었고, 1886년경 두 공소의 신자 수는 각각 117명과 119명이었다. 이 두 공소는 1890년 양촌 본당 설립과 함께 이 본당 소속이 되었다가 1899년 합덕(현 구합덕) 본당 관할이 되었고, 신자가 늘면서 금천 공소·음셈리(현 매산리) 공소·신당리 공소·거산리 공소·초대리 공소·운정리 공소가 설립되었다. 1960년 11월 신합덕 본당이 설립되자 이곳으로 소속이 바뀌었고, 1975년 이 8개 공소가 통합되어 신평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디지털당진문화대전은 1784년 신평을 포함한 내포 지역에 천주교가 전해졌을 때 신평 원머리(현 신평면 한정리) 일대에도 곧바로 신자들이 생겼고, 조선 후기 박해 기간에 많은 순교자가 나왔으며 지금도 원머리에 보존된 원머리 성지의 순교자 묘가 그것을 보여 준다고 적는다. 19세기 후반 원머리 일대에는 원머리(한정리), 새터(매산리), 음섬(매산리) 세 공소가 생겼고, 1961년 통계로는 원머리 공소 295명, 매산 공소 338명, 음섬 공소 216명, 모두 849명이었다. 1975년 신평성당을 신설할 때 성당 자리를 원머리 일원에 두자는 의견이 많았으나 행정과 교통의 중심지가 마땅하다고 판단해 면소재지이자 시장이 있는 금천리가 선택되었다. 금천리의 성당 자리에는 1962년 신자 52명의 작은 공동체로 공소가 시작되어 1967년에는 신자 120명, 예비자 43명으로 성장했으며, 처음에는 ‘공소집’이라 불린 가정집에서 모였다.
〔본당 승격과 첫 성당〕 1975년 4월 10일 신평성당이 설립되었을 때 금천리에는 성당과 사제관으로 쓸 건물이 없었다. 초대 주임 이종대 신부는 원머리 공소에서 신자들이 경작하던 간척지 7,636평을 매각해 성당 건축 기금을 마련하고 현 성당 부지에서 공사에 착수해 1976년 3월 성당(89평)과 사제관(32평)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당진문화대전은 모든 신자가 공소와 구역별로 노력 봉사했고 원머리 일대 신자들의 참여가 컸으며, 1976년 3월 19일 교구장 주교를 모시고 봉헌했다고 적는다.
〔1980년대〕 2대 주임 박노열 신부 때 평신도 단체 활동이 활성화되었고, 3대 주임 서용태 신부는 신자 재교육과 모임을 위해 1983년 8월 교육 회관(42평)을 준공했다. 4대 주임 윤여홍 신부는 무진년(1868년)에 순교하여 원머리에 안장되어 있던 박선진(마태오)과 박 마티아의 유해를 1989년 4월 성당 안으로 이장했는데, 이는 대전교구 성지 보존·개발 작업의 일환이었다. 윤 신부는 같은 해 신자들의 건의로 교육 회관 안에 성모유치원을 열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당진문화대전은 1987년 예수 수도회 수녀들이 분원을 설립했고 1988년 6월 8일 수도회가 운영하는 성모 유치원이 설립되었다고 적는다.
〔새 성당〕 1990년대에 이르러 성당 건물이 작고 낡아 1993년 ‘성당 건축 추진위원회’를 구성했고, 6대 주임 윤종수 신부 때 최선영(바오로)이 신축 대지 1,000평을 기증했다. 그러나 7대 주임 김명현 신부 때 이곳으로 4차선 도로가 뚫리게 되어 기존 성당 부지에서 신축하기로 계획을 바꾸었다. 1999년 9월 기공식을 거행한 뒤 이듬해 11월 2층 성당(710평)을 신축해 봉헌식을 가졌고, 2000년 9월에는 성당 안에 이장한 두 순교자의 현양비를 봉헌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당진문화대전은 2000년 11월 21일 새 성당 봉헌식을 가졌다고 적는다.
〔원머리 순교자 묘와 현황〕 디지털당진문화대전은 관할 구역인 신평면 한정리에 있는 ‘원머리 순교자 묘’를 성당에서 관리하며 신자들이 매월 첫 목요일에 정기적으로 순례한다고 적는다. 2015년 현재 신평성당은 신평면 금천리·거산리·봉교리·상오리 일부·매산리·한정리·신당리·신흥리·도성리·운정리·전대리·남산리를 관할하고 신자는 1,866명이다.
〔교세와 역대 주임〕 한국가톨릭대사전이 적은 교세는 1976년 1,683명, 1980년 1,649명, 1984년 1,761명, 1989년 1,967명, 1993년 1,425명, 1999년 1,656명이다. 역대 신부는 초대 이종대 요셉(1975.3~1976.9), 2대 박노열 바오로(1976.9~1980.8), 3대 서용태 타데오(1980.8~1985.3), 4대 윤여홍 바오로(1985.3~1990.8), 5대 박상래 야고보(1990.8~1992.3), 6대 윤종수 세례자 요한(1992.3~1998.2), 7대 김명현 미카엘(1998.2~)이다(대사전 작성 시점 기준).
관련 장소와 인물
- 원머리 성지(원머리 순교자 묘): 신평면 한정리에 있는 순교자 묘로 신평성당이 관리한다(디지털당진문화대전).
- 박선진(마태오)·박 마티아: 1868년(무진년)에 순교하여 원머리에 안장되어 있던 순교자로, 유해가 1989년 4월 성당 안으로 이장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 신합덕 본당: 1960년 11월 설립되었고, 신평 지역 공소들이 소속되었다가 1975년 신평 본당으로 승격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 양촌 본당·합덕(구합덕) 본당: 한정리·매산리 공소가 1890년 양촌 본당 소속이 되었다가 1899년 합덕 본당 관할이 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참고자료 및 출처
-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신평 본당”. 1883년 공소 설립, 소속 본당 변천, 1975년 본당 승격, 1976년 성당 봉헌, 순교자 유해 이장, 2000년 새 성당, 교세와 역대 신부.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3984 -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당진문화대전 “신평성당”. 원머리 신앙 공동체, 금천리 선정 경위, 1976년 봉헌, 유치원, 2000년 새 성당, 원머리 순교자 묘, 2015년 현황.
https://www.grandculture.net/dangjin/toc/GC06400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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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신평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7일 01:59. https://missamap.com/ko/kr/daejeon-sinpyeong-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