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양 성당

목차
  1. 개요
  2. 역사
  3. 관련 장소와 인물
  4.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온양성당은 충청남도 아산시 권곡동에 있는 천주교 대전교구 소속 성당이다. 1920년 3월 공세리 본당 관할로 설립된 방축리 공소에서 비롯되어 1948년 7월 온양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주보는 예수 성심이며, 현재의 새 성전은 2017년 3월 착공해 2018년 10월 완공되었다.

역사

〔방축리 공소〕 한국가톨릭대사전은 지금의 온양 본당이 있는 지역에 본래 공세리 본당 소속 방축리 공소가 있었다고 적는다. 이 공소는 1920년 3월 설립되었고 당시 신자는 다섯 가구 정도였으며, 공소 집은 온양 경찰서 앞의 10여 칸 되는 함석집이었다. 디지털아산문화대전도 방축리공소가 1920년 3월 10칸 정도의 함석집에서 시작했다고 적으며, 공세리성당에 이어 내포 천주교회의 순교 신앙 전통을 이어받은 공소라고 설명한다.

공세리 본당 4대 주임 콜랭(Colin) 신부는 장차 온양에 본당을 설립하기 위해 현 성당의 남쪽에 성당 부지 1,007평을 매입해 두었으나 본당 설립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광복이 된 뒤에는 천주교 신자로 국민학교 교장을 지냈던 일본인이 본국으로 돌아가며 기증한 집(현 성공회 건물)으로 공소를 이전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본당 승격〕 1948년 7월 방축리 공소가 온양 본당으로 승격·설립되어 초대 주임으로 멜리장(Mélizan) 베드로 신부가 임명되었다. 멜리장 신부는 1949년 성당을 전면적으로 개축·증축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아산문화대전은 승격일을 1948년 7월 1일로 적고 설립자를 라리보 주교(천주교 대전교구장)로 적는다.

〔6·25전쟁기〕 1950년 4월 농지 개혁으로 성당 부지가 1,007평에서 459평으로 줄자 2대 주임 를뢰(Leleu) 베드로 신부가 현 성당 위치의 밭 1,033평을 매입해 부지를 다시 늘렸다. 를뢰 신부는 1950년 7월 공산군이 쏜 총에 맞아 순교했다. 3대 주임 신종호 요셉 신부는 6·25전쟁으로 침체된 교회를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폐쇄된 공수리 공소를 모산 공소로 재개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아산문화대전은 1952년 6·25전쟁 때 폐쇄되었던 모산공소를 다시 열었다고 적는다.

〔현 성당 건립〕 4대 주임 한도준 마태오 신부는 토지 1,032평을 매입해 성당 부지를 충분히 확보한 뒤 1956년 5월 착공해 이듬해 1월 현 성당(연건평 250평)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아산문화대전은 1956년 12월 이전, 1957년 1월 성전 건립으로 적는다. 1958년 대전교구가 서울대교구에서 분리·설정되면서 온양 본당은 대전교구 소속이 되었다. 한도준 신부는 1959년 사제관과 수녀원을 신축하고 서울 성가소비녀회 분원을 마련했으며, 이 수녀회가 1965년 철수하자 같은 해 12월 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 분원을 두었다. 1962년에는 용화동 산 6,150평을 매입해 교회 공원 묘지를 조성했고 신언리 산 3,810평도 구입했으며, 1965년 월랑 공소를 설립했다. 디지털아산문화대전은 1959~1965년 성가소비녀회 소속 수도자 연 7명, 1965~2014년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소속 수도자 연 57명이 선교 활동을 했다고 적는다.

〔1960년대 후반~1970년대〕 5대 주임 김영환 타데오 신부는 1967년 유치원 교실 48평을 신축해 3월 선화유치원을 설립했고(디지털아산문화대전은 선화유치원이 1967년부터 1990년까지 운영되었다고 적는다), 12월에는 소동 공소 강당을 신축했으며 1969년 10월에는 도고 공소의 강당을 새로 지었다. 6대 주임 김순호 프란치스코 신부는 1970년 모산 공소 강당을 새로 짓고 같은 해 7월 갈산 공소 강당(30평)을 신축했으며, 11월에는 신자들의 경제 활동을 돕기 위해 신용 협동 조합을 설립했다. 1971년 11월에는 월랑 공소 강당(16평)을 새로 건축했고, 1972년 12월 8일에는 본당 주보를 처음 발행했다. 7대 주임 유재식 안셀모 신부는 1974년 10월 도고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분리시켰고, 1975년 5월 방현 공소 강당을 새로 건설했으며, 1976년에는 냉정리 산 5,070평을 매입해 교회 공원 묘지를 추가로 조성했다. 1977년에는 사제관(40평)과 상가(80평)를 새로 지었고 모산 공소 부지 519평도 매입했다(이상 한국가톨릭대사전).

〔1980년대~1990년대〕 8대 주임 유인성 프란치스코 신부는 성령 쇄신 운동을 통해 레지오 마리애를 활성화해 교세를 확장했고, 1981년 5월 매곡 공소 강당을 신축했으며 1982년 동암 공소를 설립했다. 10대 주임 윤인식 바오로 신부는 1985년 8월 모산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분리시키고 용화 본당도 설립해 분리시켰으며, 이때 본당 이름을 온천으로 바꿨다. 1988년 9월에는 사제관을 2층(40평)으로 증축했다. 11대 주임 김병재 바오로 신부는 1991년 8월 성체 조배회를 설립해 성체 조배를 지속하고 상가를 수리해 본당 사무실과 회의실로 고쳤다. 13대 주임 윤인용 바오로 신부는 성당 내부(1996)와 강당(1997) 등을 수리·정비했고, 14대 주임 방윤석 베르나르도 신부는 2000년 2월 본당 명칭을 온양으로 환원시켰다(이상 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아산문화대전에 따르면 1997년 대대적인 보수·개축 공사를 시행했고 1998년 5월 본당 설립 50주년 기념행사를 가졌으며, 2004년 《천주교 온양본당사》를 발간했다.

〔2000년대 이후〕 한국가톨릭대사전은 15대 주임 최석영 이냐시오 신부가 빈첸시오회를 설립하고, 매주 금요일 미사 후 30분 성시간 묵상을 실시했으며, ‘내 성서 갖기 운동’을 전개해 2002년 5월 모든 신자가 성서를 가지게 되었다고 적는다. 디지털아산문화대전에 따르면 2014년 사목회의에서 새 성전 건립을 의결하고 기금을 모으기 시작해 2016년 바자회와 후원회를 열었으며, 2017년 3월 착공해 2018년 10월 현재의 새 성전을 완공했다. 2019년 현재 한국순교복자수녀회 분원이 설치되어 사목 활동을 돕고 있다.

〔교세와 역대 주임〕 한국가톨릭대사전이 적은 교세는 1949년 1,108명, 1955년 1,354명, 1965년 2,857명, 1970년 3,700명, 1975년 2,329명, 1981년 3,683명, 1985년 1,403명, 1990년 1,926명, 1995년 2,017명, 2000년 1,947명이다. 디지털아산문화대전은 1957년 교적상 신자 1,751명, 1982년 3,915명, 1985년 두 본당 분리 후인 1990년 1,926명, 2018년 12월 기준 1,854명(주일 미사 참례자 약 500명)이라고 적는다. 대사전이 적은 관할 구역은 온천1동·권곡동·모종동·신동·음봉동 전 지역과 실옥동·염치읍 일부이다. 역대 신부는 초대 멜리장 베드로(1948.7~1950.4), 2대 를뢰 베드로(1950.5~7), 3대 신종호 요셉(1951.3~1954.9), 4대 한도준 마태오(1954.9~1966.3), 5대 김영환 타데오(1966.3~1970.2), 6대 김순호 프란치스코(1970.2~1972.12), 7대 유재식 안셀모(1972.12~1977.10), 8대 유인성 프란치스코(1977.10~1982.9), 9대 유봉운 야고보(1982.9~1985.2), 10대 윤인식 바오로(1985.2~1990.8), 11대 김병재 바오로(1990.8~1992.8), 12대 이경열 베드로(1992.8~1993.8), 13대 윤인용 바오로(1993.8~1999.1), 14대 방윤석 베르나르도(1999.1~2000.2), 15대 최석영 이냐시오(2000.2~)이다(대사전 작성 시점 기준). 디지털아산문화대전은 2019년부터 제20대 이덕길(알바노) 신부가 맡고 있고 본당에서 사제 2명과 수도자 10명이 배출되었다고 적는다.

관련 장소와 인물

  • 공세리 본당: 방축리 공소가 속해 있던 모본당이며, 콜랭 신부가 온양 본당 설립을 위해 부지를 마련해 두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 도고 본당: 1974년 10월 도고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분리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 모산 본당(모산성당)·용화동 본당: 1985년 8월 온양 본당에서 각각 모산 공소의 본당 승격과 신설로 분리된 본당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아산문화대전).
  • 를뢰(Leleu) 베드로 신부: 온양 본당 2대 주임으로, 1950년 7월 공산군이 쏜 총에 맞아 순교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 한국순교복자수녀회: 1965년 12월 본당에 분원이 설치되어 사목을 돕고 있는 수녀회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아산문화대전).

참고자료 및 출처

  1.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온양 본당”(9권). 1948년 7월 방축리 공소에서 승격, 부지 확보와 현 성당 건립, 주임별 사업, 분리된 본당, 교세, 관할 구역, 역대 신부.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4655
  2.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아산문화대전 “온양성당”. 1920년 3월 방축리공소 설립, 1948년 7월 1일 본당 승격, 1957년 성전 건립과 2018년 새 성전 완공, 공소 관할과 분리, 현황.
    https://www.grandculture.net/asan/toc/GC07101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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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7일 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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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7일 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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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온양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7일 02:54. https://missamap.com/ko/kr/daejeon-onyang-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