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암 성당
개요
규암성당은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외리에 있는 천주교 대전교구 소속 성당이다. 금사리 본당에서 분리·설립된 본당으로, 1955년 설립되었고 주보성인은 성 요셉이다. 6·25전쟁 중 납치되어 피살된 금사리 본당 주임 몰리마르(Joseph Molimard) 신부의 유언에 따라 설립되었다고 디지털부여문화대전은 설명한다.
역사
〔공소 시기〕 한국가톨릭대사전은 규암 본당이 1925년 20명의 신자를 중심으로 금사리 본당 관할의 규암 공소로 시작되어 1955년 본당으로 설립되었다고 적는다. 이때 금사리 본당 관내에는 규암 공소보다 더 오래된 낙지리·합곡 등의 공소들도 있었으나 규암 공소가 이들보다 앞서 본당이 된 것은 교통의 중심지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본당 설립 당시의 관할 구역은 부여군의 규암면·부여면·은산면·장암면·임천면·양화면 등 6개 면과, 청양군의 금정 공소 관할인 사양면과 청양면(현 청양읍), 낙지리 공소 관할인 적곡면(현 장평면)과 청남면 등이었다.
〔설립 배경〕 디지털부여문화대전은 20세기 들어 산지의 공소 교우촌이 점차 평지와 도시 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하면서 규암면과 부여읍에도 새 성당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가운데 1950년 6·25전쟁이 발발했고, 금사리 본당 주임 요셉 몰리마르(Joseph Molimard) 신부가 북한군에게 납치되어 피살되었다고 적는다. 몰리마르 신부는 자신의 사재를 성당 건립에 보태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그 유지에 따라 규암성당이 설립되었으며 수호성인은 몰리마르 신부의 이름을 따라 ‘성 요셉’으로 정해졌다.
〔본당 설정〕 디지털부여문화대전에 따르면 1955년 3월 천주교회는 규암초등학교의 분교였던 폐교를 단독으로 불하받았다. 약 5,400㎡의 토지를 정비하고 교사 건물 약 230㎡를 성당으로 수리했으며, 대전 대목구장 라리보 주교가 1955년 9월 21일 수리된 성당을 축성하고 1955년 12월 규암본당을 설정해 금사리본당 주임이던 김영환 신부를 규암본당으로 전임시켰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1955년 9월 21일 금사리 본당으로부터 분리·설립되었다고 적는다. 본당 최초의 성당 건물은 일제 시대에 일본인 소학교 건물로 사용되었고 해방 이후에는 규암국민학교였던 건물을 매입·개조한 것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구호 사업과 성요셉의원〕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본당 설정 때부터 1960년대 초까지 가톨릭 구제위원회의 지원으로 구호 사업을 전개했고 여기에는 당시 주임 김영환(타대오) 신부의 활동이 컸다. 1965년에는 난민 170세대를 조직해 하천 부지 약 6,611.57㎡에 뽕나무를 심고 양잠업을 시작했으나 양잠업계의 불황으로 1968년 폐업했다. 김종국(바르나바) 신부 재임 때에도 은산 지구 수해로 재서독 교포 가톨릭 노동 청년회(J.O.C.)로부터 55만 원의 의연금을 전달받아 합곡 공소에 송아지를, 낙지리 공소에 염소를 사육하도록 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디지털부여문화대전은 1957년 성요셉의원을 개원했고 구내에 있던 이 의원이 1966년부터 대전교구로 이관되었으며 1970년 부여읍 구아리로 신축·이전해 ‘성요셉병원’으로 이름을 바꾸어 2019년까지 운영되었다고 적는다. 1963년부터 2년간 미국 가톨릭구제회의 지원을 받아 하천 범람을 막는 제방 공사를 주도하기도 했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1957년 7월부터 1960년 11월까지 성가 수녀회의 수녀들이, 1962년부터 1975년 8월까지 예수 성심 시녀회의 수녀들이 활동했고, 1990년 11월부터 천주의 섭리 수녀회 분원이 개설되었다고 적는다.
〔분가와 공소〕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이 본당은 설립 40년 동안 2개의 공소를 본당으로 분리시켰다. 부여 공소는 1959년 부여읍 동남리 272번지의 땅 2,399.99㎡를 매입해 건평 155.37㎡의 공소 강당을 신축했다가 1973년 본당으로 승격·분리되었고(디지털부여문화대전은 1972년 부여공소를 본당으로 분리 승격시켰다고 적는다), 금정 공소는 1962년 청양 읍내에 건물 한 채를 구입해 공소 강당으로 사용하다가 1964년 청양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1975년에는 장암면 합곡리 83-1번지의 밭 396.69㎡를 매입해 400만 원의 공사비로 건평 66.11㎡의 공소 강당을 마련했고, 1980년에는 은산면 은산리 80-1번지의 밭 1,943.80㎡를 구입해 건평 82.64㎡의 강당을 세웠다.
〔성당 신축〕 한국가톨릭대사전은 1972년 건축 면적 409.91㎡의 성당을 신축했고, 신축비는 교구 보조 250만 원과 본당 자체 부담 300만 원, 부동산 매도금으로 충당했다고 적는다. 디지털부여문화대전은 1972년 현대적인 양식으로 성당을 신축했고, 2011년 4월 기존의 성당과 건물들을 철거한 뒤 교육관과 편의 시설을 갖춘 새 성당을 건축했다고 적는다(상세 정보에는 2011년 5월 30일 성당 신축으로 기재). 새 성당의 머릿돌에는 ‘Joseph E. J. Molimard 신부의 유지를 기린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으며, 새 성당은 2011년 11월 충청남도 우수 건축상을 수상했다.
〔교세와 역대 주임〕 한국가톨릭대사전이 적은 교세는 1955년 295명, 1963년 1,944명, 1980년 2,329명, 1988년 1,206명, 1993년 1,308명이다. 디지털부여문화대전은 1955년 본당 신설 당시 금사리 본당으로부터 이관된 신자 수가 602명이었고, 부여 본당이 분리되기 직전인 1972년에 1,758명까지 증가했으며, 1980년대 이후 점차 감소해 2022년 현재 1,076명이 소속되어 있다고 적어 두 출처의 통계 수치가 다르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의 역대 신부는 초대 김영환 타대오(1955.12~1966.3), 2대 올리비에(Jean Olivier, 오일복) 요한(1966.3~1969.9), 3대 김종국 바르나바(1969.9~1973.1), 4대 안문기 프란치스코(1973.1~1975.10), 5대 구자륜 비오(1975.10~1977.9), 6대 크랭컹(Jean Crinquand, 강진수) 요한(1977.9~1982.9), 7대 우희수 발타사르(1982.9~1986.3), 8대 풍세(Gilbert Poncet, 서봉세) 질베르토(1986.3~1991.4), 9대 윤여홍 바오로(1991.4~1992.10), 10대 김인수 스데파노(1993.1~1994.8), 11대 유윤식 시몬(1994.8~)이다. 관할 구역은 부여군 규암면 일부, 은산면, 장암면, 임천면, 청양군 장평면·청남면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관련 장소와 인물
- 금사리성당: 규암 공소가 소속되어 있던 모본당이다. 금사리 본당 주임 몰리마르 신부의 유지에 따라 규암성당이 설립되었다(디지털부여문화대전).
- 부여성당: 규암 본당의 부여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분리된 성당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부여문화대전).
- 청양성당: 규암 본당의 금정 공소가 1964년 본당으로 승격된 성당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참고자료 및 출처
-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규암 본당”(2권). 1955년 설립, 주보 성 요셉, 공소 시기와 설립, 구호 사업, 분가, 교세, 역대 신부.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709 -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부여문화대전 “규암성당”. 몰리마르 신부의 유지에 따른 설립 배경, 1955년 축성과 본당 설정, 성요셉의원, 2011년 새 성당, 교세.
https://www.grandculture.net/buyeo/toc/GC09001174
문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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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10월 17일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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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10월 17일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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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규암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7일 04:00. https://missamap.com/ko/kr/daejeon-gyuam-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