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 성당
개요
금산성당은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에 있는 천주교 대전교구 소속 성당이다. 진산면 지방리의 가새벌 공소에서 비롯되어 1929년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1935년 금산읍 중도리로 옮겨 다시 본당이 되었다. 대구교구, 전주교구, 대전교구를 거쳐 1980년 8월 29일 대전교구로 이관되었으며 주보는 매괴이다.
역사
〔순교 전통과 공소 시대〕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현재의 금산군은 옛 충청도 금산군과 전라도 진산군의 일부가 1914년 행정 구역 변경으로 합쳐진 지역이다. 이곳은 1791년 신해박해 때 순교한 윤지충(바오로)과 권상연(야고보)이 천주교를 받아들여 신앙생활을 하던 곳이자 순교 후 시신이 묻힌 곳(진산군 북면 막현리, 현 금산군 진산면 막현리)으로 추정되는 지역이다. 1812년 홍주에서 순교한 이 바오로가 체포된 곳(개죽리)이며, 1866년 병인박해 때 진산의 병방 출신으로 공주에서 순교한 김공우가 살던 곳이고, 한경영(요한)·손 마리아 부부(개죽리)와 송 누시아(진산군)가 순교한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순교 사적으로 보아 늦어도 19세기 전반에 이미 공소가 형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대사전은 적는다.
문헌으로 검증되는 가장 오래된 공소는 최양업 신부의 1856년 서한에 나오는 진밭뜰 공소이며 1840년대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리델(F.C. Ridel) 신부가 만든 지도에 따르면 1860년대 전국 153개 공소 중에 전라도 진산과 충청도 금산이 포함되어 있고, 1884~1885년 교세 통계표에는 진산 지역의 소라니(금성면 상가리)와 막김이(진산면 막현리) 등의 공소가 나온다. 1911년 4월 조선 대목구가 서울 대목구와 대구 대목구로 나뉘어 이 지역이 대구 대목구 관할로 넘어가기 전까지 가세발(진산면 지방리), 구만리(복수면 지량리), 진산읍(진산면 읍내리), 안지렁이(남이면 건천리) 공소 등이 설립되었다 폐지되곤 했다. 이 중 1860년대에 설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가세발 공소는 한 번도 폐지되지 않았고 교우 수도 월등히 많았다. 1910년 진산 지역의 공소는 가세발과 안지렁이 2개였고 교우 180명 중 170명이 가세발 공소 소속이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가새벌 본당〕 금산 본당의 직접적인 모태는 가세발 공소로, 1920년대에는 대구 대목구 되재 본당 관할이었다. 1926년 공소 강당을 건립했고 1929년 본당으로 승격되어 초대 신부로 부임한 이성만(이냐시오) 신부가 1930년 사제관 10칸을 지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금산문화대전은 가새벌공소가 1922년 대구교구 되재본당 소속으로 탄생했고, 이의규 마르코 회장을 중심으로 신자들이 공소 강당 증축과 본당 승격 운동을 추진해 새 공소 건물을 완공했으며 1927년 11월 5일 드망드 주교가 방문해 성당을 강복했다고 적는다. 이 문서에 따르면 가새벌공소는 1929년 3월 3일 가새벌본당으로 승격되어 4월 17일 이성만 이냐시오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발령받았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1929년 6월 1일 전라도 되재 본당에서 분리 설립되었다고 적는다.
〔금산읍으로의 이전〕 1931년 전라남북도가 대구 대목구에서 분리되어 전라도 감목 대리구가 될 때 이 지방리 본당은 공소로 격하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금산문화대전은 1931년 5월 7일 본당의 재정이 어려워지자 드망즈 주교가 이성만 신부를 모본당인 되재로 전임시켜 가새벌본당이 되재본당의 공소로 환원되었으며, 금산 지역에 다시 본당을 설립할 필요가 제기되었을 때 금산 읍내가 중심지로 선택되었다고 적는다. 1935년 금산읍 중도리의 현 위치로 옮겨 교회 부지 729평과 건물을 매입하고 7월 10일 본당으로 다시 승격했는데 이것이 현재의 금산 본당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금산문화대전은 신자들이 1935년 1월 중도리에 부지와 건물을 매입했고 1935년 6월 16일 이성만 신부가 금산본당 주임으로 부임했다고 적는다.
〔성당 신축과 성장〕 1951년 본당 신부 주관으로 성당 건립을 위한 기성회가 조직되었고 1955년 중도리 땅 1,850평을 신축 부지로 매입했다. 1955년 백합 유치원을 설립했고, 1957년 12월 성당·사제관·수녀원을 신축·완공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금산문화대전은 이때 사제관·수녀원·식당 등 부속 건물까지 지어 전주교구장 김현배 바르톨로메오 주교의 집전으로 낙성 및 축성식을 가졌다고 적는다. 백합유치원은 1962년 8월 시설 기준령에 따른 환경개선으로 폐원 위기에 처했으나 민간 위탁으로 전환해 명맥을 이었고, 1968년 2월 12일 본당 직영으로 전환되었다(디지털금산문화대전).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1963년 부속 유치원과 본당 회의실을 신축했고, 1964년 6월 인보 성체 수도회 분원이 개설되었으며, 1972년 신용 조합을 창설했고, 이듬해 이금수(토마스) 회장에게서 남일면 신정리의 임야 2,900평을 성당 묘지로 기증받았다. 1977년 8월 복수면 백암리에 공소 건물을 신축했다. 디지털금산문화대전은 1969년 12월 15일 금산읍 신대리 출신 김영신 바오로 신부가 사제품을 받아 본당 설립 40년 만에 첫 본당 출신 사제가 나왔다고 적는다.
〔교구 소속 변천〕 1963년 1월 1일 행정구역 개편으로 금산군이 전라북도에서 충청남도로 편입된 뒤 금산 본당이 어느 교구에 속해야 하는지가 관심사가 되었고, 본당은 이후 17년 동안 전주교구로 남았다가 1980년 8월 29일 대전교구로 이전했다(디지털금산문화대전). 한국가톨릭대사전도 1980년 8월 29일 전주교구에서 대전교구로 이관되었다고 적는다.
〔새 성전〕 한국가톨릭대사전은 1964년 이래의 낡은 성당 건물을 철거하고 새 성당을 건립하기 위해 1990년에 준공한 교육관 지하에 임시 성당을 마련했고, 이 교육관에 사제관과 수녀원이 들어서 있다고 적는다. 디지털금산문화대전에 따르면 2000년 3월 6일 옛 성당 해체 6년 만에 성전 기공식을 가졌고 2002년 4월 14일 지하층·1층·2층 등 총 615평 규모의 새 성전이 완공되어 경갑룡 교구장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했다. 2008년 12월 9일에는 대전교구의 결정으로 금산본당 소속이던 지방리공소와 백암리공소가 진산성지본당으로 승격되어 분리되었다.
〔활동과 현황〕 디지털금산문화대전은 금산본당이 백합유치원 재건축, 성경맛들임대학 창설, 우리 가족 찾기 운동, 백색 순교운동, 홈페이지 개설 등의 선교·봉사활동을 하고 있으며, 2019년 10월 《금산본당 90주년 기념집》을 발간했다고 적는다. 2023년 현재 본당 공동체로 사목평의회, 소공동체 협의회, 레지오 마리애가 있고 사도의 모후 꾸리아 이하 열 개의 쁘레시디움이 구성되어 있다.
〔교세와 역대 주임〕 한국가톨릭대사전이 적은 교세는 1952년 474명, 1962년 1,011명, 1979년 1,469명, 1980년 1,078명, 1989년 1,562명, 1993년 2,118명이다. 관할 구역은 금산읍 일부, 금성면, 제원면, 부리면, 군북면, 남일면, 남이면, 진산면, 복수면, 추부면으로 기록되어 있다. 역대 신부는 초대 이성만 이냐시오(1929.5~1931.5), 2대 이성만(1935.6~1939.4), 3대 서병익 바오로(1939.4~1941.3), 4대 서정수 알릭스(1941.3~1947.4), 5대 조상익 베드로(1947.4~7), 6대 이상호 아우구스티노(1948.8~1951.2), 7대 김영태 도미니코(1951.12~1955.10), 8대 허일록 타대오(1955.10~1961.7), 9대 이태규 요셉(1961.7~1963.6), 10대 이기순 도미니코(1963.6~1967.12), 11대 서용복 토마(1967.12~1969.12), 12대 김정원 토마(1969.12~1971.1), 임시 권영균 안토니오(1971.1~4), 13대 김환철 스데파노(1971.4~1974.6), 14대 안복진 요셉(1974.6~1976.12), 15대 김병환 요한(1976.12~1980.1), 16대 오현택 가시미로(1980.1~8), 17대 고일봉 가브리엘(1980.9~1981.9), 18대 신상욱 토마(1981.9~1984.3), 19대 김진화 바오로(1984.3~1985.4), 20대 이창덕 마르코(1985.4~8), 21대 김정수 바르나바(1985.8~1988.8), 22대 블랑(Jean Blanc, 백) 사도 요한(1988.8~1993.8), 23대 이재영 사도 요한(1993.8~)이다(대사전 작성 시점 기준).
관련 장소와 인물
- 진산성지본당: 2008년 12월 9일 금산본당 소속이던 지방리공소와 백암리공소가 승격되어 분리된 본당이다(디지털금산문화대전).
- 가새벌(가세발) 공소·본당: 진산면 지방리에 있던 금산 본당의 모태로, 1929년 본당으로 승격되었다가 1931년 되재 본당의 공소로 돌아갔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금산문화대전).
- 되재 본당: 가새벌 공소가 속했던 모본당으로, 1931년 가새벌 본당이 이 본당의 공소로 환원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금산문화대전).
- 윤지충(바오로)·권상연(야고보): 1791년 신해박해 때 순교한 인물로, 금산 지역은 이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시신이 묻힌 곳으로 추정되는 곳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 이성만(이냐시오) 신부: 가새벌 본당과 1935년 금산 본당의 주임을 맡은 신부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금산문화대전).
참고자료 및 출처
-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금산 본당”. 금산 지역의 순교 전통과 공소, 가새벌 본당과 1935년 금산읍 이전, 1957년 성당 신축, 1980년 대전교구 이관, 교세와 역대 신부.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790 -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금산문화대전 “금산성당”. 가새벌공소의 유래, 1929년 본당 승격, 1935년 이성만 신부 부임, 1957년 축성, 교구 소속 변천, 2002년 새 성전, 2008년 진산성지본당 분리.
https://www.grandculture.net/geumsan/toc/GC0920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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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금산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7일 02:15. https://missamap.com/ko/kr/daejeon-geumsan-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