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성당
개요
부여성당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있는 천주교 대전교구 소속 성당이다. 1955년 이후 규암 본당 소속 공소였다가 1972년 12월 9일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성모 성심이다. 현재의 성당은 2014년 10월 19일 유흥식 주교의 주례로 봉헌식을 가졌다.
역사
〔부여 지역의 천주교〕 한국가톨릭대사전은 부여 지역에 천주교 신앙이 전파된 것이 1801년 신유박해를 전후한 시기라고 적는다. 이웃한 공주·청양·논산·서천 등에 비해 신자가 많지 않아 병인박해로 순교자가 나오기 전까지는 큰 박해를 받지 않았고, 박해가 끝난 뒤 주변 지역의 신자들이 이주해 오면서 본격적인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이들이 가장 먼저 정착한 곳은 부여군의 은산면·외산면·내산면 지역이었다. 그 결과 1901년 4월 27일 줄리앙 공베르(공안세) 신부가 부여 지역에 파견되면서 홍산 소양리(현 금사리) 본당이 공주 본당에서 분리·설립되었고, 부여읍 일대는 이 본당의 관할이 되었다. 1955년 9월 21일 부여군 규암면에 규암 본당이 설립되면서 부여 지역에는 규암 본당 소속의 공소가 설립되었다.
〔공소 시대〕 디지털부여문화대전은 부여성당이 1955년 규암본당이 설립된 뒤 부여 읍내에 설정된 공소에서 비롯되었다고 적는다. 1959년 대전 대목구장 원(아드리아노) 주교의 도움으로 공소 강당을 신축하면서 오늘날 부여성당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공소 신자들은 1959년 3월 현재의 위치에 726평의 대지를 매입해 그해 10월 47평의 임시 강당을 준공했다.
〔본당 승격〕 부여 지역의 신자 수가 계속 늘면서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킬 필요가 제기되자 공소 신자들은 1972년 12월에 먼저 성당(47.6평)과 사제관(32평), 창고(23평)를 마련했다. 같은 해 12월 9일 유봉운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임명되면서 본당으로 승격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부여문화대전). 디지털부여문화대전은 부여읍 내의 확장과 인구 증가에 따른 새 입교자의 증가, 산간 지역 구 교우촌 신자들의 이주로 교세가 크게 확장된 점과 함께, 금강 건너에 있는 모본당 규암성당이 강 동쪽의 부여공소를 관리하는 데 겪는 어려움을 해소하는 것도 본당 설립의 목적이었다고 적는다.
〔성당 축성과 이후의 사업〕 유봉운 신부는 부임 직후 담장 구축·화단 조성·정원 포장 등 마무리 공사를 마친 뒤 1973년 5월 29일 성당 축성식을 거행했다. 이듬해 11월에는 예수 성심 시녀회가 파견되었고, 1980년 12월에는 공주군 탄천면 가척리 산 88-1번지의 임야 30,250평을 매입해 본당 묘지를 조성했다. 1983년 2월 성모유치원을 개원했고 12월에 유치원·수녀원·교리실의 개축 공사를 마쳤으며, 1986년 5월에는 성당 증축과 함께 교육관을 신축했다. 1988년 3월에는 성당 보수 공사와 유치원 교실 증축이 있었고, 같은 해 12월에는 예수 성심 시녀회를 대신해 천주의 섭리 수녀회가 파견되었으며 본당에 꾸리아가 창설되었다(이상 한국가톨릭대사전).
〔현재의 성당〕 디지털부여문화대전은 2014년 10월 19일 현 성당을 완성해 유흥식 주교의 주례로 봉헌식을 가졌다고 적는다.
〔활동과 현황〕 한국가톨릭대사전은 1997년 현재 본당의 관할 구역이 14개 구역 21개 반으로 조직되어 있고, 레지오 마리애 1개 꾸리아와 13개 쁘레시디움, 울뜨레야, 성모회, 제대회, 연령회 등의 단체가 활동한다고 적는다. 대사전의 관할 구역은 부여읍 전역과 석성면 일부 지역이며, 디지털부여문화대전은 부여읍 전 지역과 초촌면·석성면 일부를 관할한다고 적는다. 디지털부여문화대전에 따르면 부여성당은 농촌 지역의 신자 수 감소와 노령화 속에서도 레지오마리애 등 소속 단체를 중심으로 성요셉의원을 비롯한 주변 환우 방문, 독거노인을 위한 반찬 나눔과 쌀 나눔을 추진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대면 활동이 중단되었다가 2022년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활동 재개를 위한 조직 재정비를 하고 있다.
〔교세와 역대 주임〕 한국가톨릭대사전이 적은 교세는 1973년 179명, 1978년 622명, 1983년 956명, 1988년 1,339명, 1993년 1,821명, 1995년 1,244명이다. 디지털부여문화대전은 신자 수가 1973년 399명에서 1983년 956명, 1993년 1,821명까지 늘었다가 점차 감소해 2021년 현재 662가구 1,487명이라고 적어, 1973년 신자 수는 출처마다 다르다. 역대 신부는 초대 유봉운 야고보(1973.1~1977.2), 2대 윤영균 미카엘(1977.2~1984.11), 3대 윤인용 바오로(1984.11~1988.8), 4대 박종우 안드레아(1988.8~1991.8), 5대 이은진 미카엘(1991.8~1998.2), 6대 유재식 안셀모(1998.2~)이다(대사전 작성 시점 기준).
관련 장소와 인물
- 부여금사리성당: 1901년 4월 27일 공베르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임명되어 설립된 본당으로, 부여읍 일대를 관할했다. 디지털부여문화대전은 충청도에서 합덕·공세리·공주 본당에 이어 네 번째로 설립된 본당이라고 적고, 소양이 본당·금사리 본당·성프란치스코하비에르 성당으로도 불린다고 적는다.
- 규암성당(규암 본당): 1955년 9월 21일 부여군 규암면에 설립된 본당으로, 부여 공소의 모본당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부여문화대전).
- 금사리·홍산·규암의 본당: 디지털부여문화대전은 금사리, 홍산, 규암 등 신자가 많았던 외곽 지역에서 먼저 본당이 설립되었고 군청 소재지의 부여성당이 1972년에 가장 늦게 설립되었다고 적는다.
- 유봉운 야고보 신부: 1972년 12월 9일 부여 본당의 초대 주임으로 임명되어 1973년 5월 29일 성당 축성식을 거행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참고자료 및 출처
-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부여 본당”(6권). 1972년 12월 9일 규암 본당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 부여 지역 천주교 전파, 1959년 대지 매입, 1973년 성당 축성, 이후 사업, 교세, 역대 신부.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2686 -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부여문화대전 “부여성당”. 1972년 12월 9일 본당 설립, 설립 목적과 변천, 2014년 10월 19일 현 성당 봉헌, 활동과 2021년 신자 수, 의의.
https://www.grandculture.net/buyeo/toc/GC09001173 -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부여문화대전 “부여금사리성당”. 1901년 4월 27일 본당 설립, 공베르 신부 파견 경위.
https://www.grandculture.net/buyeo/toc/GC09001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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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부여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7일 02:46. https://missamap.com/ko/kr/daejeon-buyeo-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