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목 성당

목차
  1. 개요
  2. 역사
  3. 관련 장소와 인물
  4.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약목성당은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복성리에 있는 천주교 대구대교구 소속 성당이다. 1973년 10월 25일 왜관본당 관할의 약목 공소에서 준본당으로 승격되었고 같은 해 11월 본당이 되었다. 주보성인은 플뤼예의 성 니콜라오이다.

역사

〔복음 전래와 공소 시대〕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약목 지방에 복음이 전파된 것은 1920년경 김효생(바오로)이 이주하면서부터이다. 이후 신자들이 하나둘 모여 살았고, 1928년 왜관본당이 설립될 당시 약목 지역 신자는 20명 정도였다. 1952년 5월 베네딕도회가 지금의 왜관수도원 자리로 피난해 정착한 영향으로 신자 수가 늘었다. 왜관본당의 김영근 신부는 약목 신자들의 열심한 신앙생활을 보고 이상명(알풍소)을 공소 회장으로 임명해 약목 지역 전교에 힘썼다. 이후 약목고등공민학교를 빌려 임시로 쓰다가 1961년 12월 현재 성당 자리에 공소 강당을 마련했고, 신자가 600여 명에 이르자 1973년 10월 25일 준본당으로 승격되었다. 디지털칠곡문화대전은 이 성당이 1961년 왜관성당 약목공소로 설립되었다가 1973년 10월 25일 준본당으로 승격되었다고 적는다.

〔본당 승격〕 한국가톨릭대사전은 약목 준본당이 11월 3일 다시 본당으로 승격되었다고 적는다. 초대 주임은 샤이빌러(I. Scheiwiler, 심이소) 신부이며, 디지털칠곡문화대전에 따르면 공소 때 준비하던 성당 건물이 1973년 11월 완공되었고 초대 신부는 1973년부터 1978년까지 재임했다.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초대 주임은 본당 사무와 전교 활동을 담당할 전교 회장을 임명하고 예비신자 교육을 돕게 했다. 왜관성당 본당연혁은 1971년 12월 16일 약목공소가 준본당으로 승격되었다고 적어, 승격 시점을 달리 기록한다.

〔발전 과정〕 한국가톨릭대사전은 2대 주임 되르플러(E. Dörfler) 신부가 약목 본당의 첫 쁘레시디움인 ‘신자들의 도움’ 쁘레시디움을 조직하고 1981년 5월 약목신용협동조합을 설립했으며, 교세가 늘어 이듬해 5월 성당 확장 공사를 했다고 적는다. 3대 주임 노규채 신부는 예비신자 교육에 힘써 교세를 신장시키고 사제관을 보수했으며 안나회와 요셉회를 조직했다. 4대 주임 황춘흥 신부는 1985년 5월 대구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수녀를 초빙하고 그해 10월 1일 임시 교육관을 건축했다. 5대 주임 소이펄링(A. Seuferling) 신부는 왜관 미군 부대와 성심양로원 사목도 맡으면서 새 성모상을 건립했다. 6대 주임 헤네헨(B. Henneken) 신부는 주일학교를 활성화하고 성가대를 조직했으며, 수녀들이 1987년 1월 철수한 뒤에도 예비신자 교리와 신자 재교육을 직접 지도했다.

〔새 성당 건립〕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비좁고 노후한 성당에서 사목이 어려워지자 1994년 1월 새 성당 건립 추진위원회를 결성했고, 이듬해 7월 기공식을 가졌으며, 새 성당은 기존 교육관 건물을 철거한 자리에 세워져 그해 12월 완공되었다. 성당 봉헌식은 1996년 4월 14일 이문희(바오로) 대주교의 집전으로 거행되었고 옛 성당은 개조해 교육관으로 사용했다. 1998년 본당 설립 25주년을 맞아 본당사를 발간했고, 이듬해 6월 7대 주임으로 부임한 이석진 신부는 신심 단체를 강화하고 베드로 신우회를 조직했다.

〔역대 주임 신부와 현황〕 디지털칠곡문화대전은 제2대 정묵덕(Egbert Dorfler) 신부가 북한 성 베네딕도회 덕원수도원과 중국 연변 용정성당·훈춘성당에 있다가 6·25전쟁 직전 공산당에게 체포되어 고문과 감옥 생활을 한 뒤 독일로 추방되었고 다시 왜관수도원으로 돌아온 경력을 가졌다고 적는다. 이 출처는 이어 제3대 노규채(아우구스티노), 제4대 황춘흥(다미아노), 제5대 민공도(Alois Seuferling), 제6대 현익현(Bartholomaeus Henneken), 제7대 이석진(그레고리오) 신부가 사목했고, 2004년 8월 10일 제8대 고건상(멜키오) 신부가 부임했다고 적는다. 현황으로 신자 세대수 427세대, 신자 수 1,000여 명이며 약목면 인구 대비 신자 비율은 6% 정도라고 적는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이 적은 교세는 1973년 631명, 1980년 722명, 1985년 801명, 1990년 640명, 1995년 964명, 1999년 1,412명이고, 관할 구역은 약목면 관호 2~4리를 제외한 전 지역과 북삼면 전 지역이다.

관련 장소와 인물

  • 왜관성당: 약목 공소를 관할하다가 약목본당으로 분리한 모본당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칠곡문화대전).
  •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1952년 5월 왜관에 정착한 뒤 약목 지역의 신자 수가 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 김영근 신부: 왜관본당 신부로 이상명(알풍소)을 약목 공소 회장으로 임명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 정묵덕(Egbert Dorfler) 신부: 약목본당 제2대 신부로, 덕원수도원과 중국 연변 용정·훈춘성당을 거쳤다(디지털칠곡문화대전).

참고자료 및 출처

  1.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칠곡문화대전 “약목성당”. 공소 설립, 1973년 준본당 승격, 역대 신부 경력, 2004년 부임, 신자 현황.
    https://www.grandculture.net/chilgok/toc/GC02301439
  2. 한국가톨릭대사전, “약목 본당”(8권). 본당 승격, 복음 전래, 공소 강당, 역대 신부, 새 성당 봉헌, 교세 통계, 관할 구역.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4273
  3. 천주교 대구대교구, 본당 정보 “약목 성당”. 설립일자 1973년 10월 25일, 주보성인 플뤼예의 성 니콜라오.
    https://www.daegu-archdiocese.or.kr/page/area.html?menu=c4&number=97&premenu=c1&srl=church_search&y_id=97
  4. 천주교 왜관성당, 본당연혁. 약목공소 준본당 승격 기록.
    https://www.wgc.or.kr/history.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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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6일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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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6일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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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약목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6일 14:55. https://missamap.com/ko/kr/daegu-yakmok-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