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성당

목차
  1. 개요
  2. 역사
  3. 건축과 공간
  4. 관련 장소와 인물
  5.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평화성당은 경상북도 김천시 평화동에 있는 천주교 대구대교구 소속 성당이다. 김천(현 황금동) 본당에서 분리·승격되어 1958년 10월 25일에 설립되었고, 주보성인은 그리스도 왕이다. 독일인 성직자이자 건축가인 슈미트(A. Schmid) 신부의 설계를 바탕으로 1958년 3월 공사를 시작해 10월에 완공했다.

역사

〔설립 배경〕 한국가톨릭대사전은 1950년대 김천 지역 천주교 신앙의 중심지였던 김천(현 황금동) 본당이 관할 지역이 넓고 교세도 빠르게 늘어 사목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적는다. 황금동 본당 7대 주임 담(F. Damm, 탁세영) 신부가 관할 구역에 새 성당 건립을 계획해, 모국 독일의 신자들과 본당 신자들의 도움으로 평화동 406-1번지를 성당 부지로 매입했다.

〔성당 건축과 본당 설립〕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1958년 3월 독일인 성직자이자 건축가인 슈미트(A. Schmid, 안) 신부의 설계를 바탕으로 성당 건축 공사를 시작해 10월에 완공했고, 비테를리(T. Bitterli, 이성도) 몬시뇰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하면서 평화동 본당이 설립되었다. 이때 김천 본당은 행정 구역 명칭을 따라 ‘김천 황금동 본당’으로 이름을 바꿨다. 설립일 1958년 10월 25일은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소록과 대구대교구 본당 정보에도 올라 있다.

〔초기 주임 신부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초대 주임 담 신부가 본당의 기틀을 다지는 한편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종합 병원 설립을 계획했으나 1964년 7월 심장 마비로 선종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적는다. 2대 주임 김영근 신부 재임기인 1964년에 아천 공소 등을 신축했고, 1965년에는 본당 전교 수녀회가 올리베타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에서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로 교체되었다. 3대 주임 퓌테르 신부 재임기인 1969년에는 여름과 겨울에 계절 학교와 방학 교리반을 열어 주일학교 학생들을 지도했고, 1975년 9월 교리실을 신축했다. 4대 주임 노규채 신부 재임기인 1981년 5월에는 부곡동에 새 성당 건립 부지를 마련하고 교리실 4칸을 신축했다.

〔사목권 이관과 교육관〕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1984년 2월 본당 관할권이 왜관 감목대리구에서 대구대교구로 이관되면서 베네딕도회 소속 노규채 신부가 전임되고 대교구 소속 김용길 신부가 5대 주임으로 부임했다. 6대 주임 장태식 신부 재임기인 1988년 9월에는 본당 설정 30주년을 기념해 교육관을 준공했다. 8대 주임 정성해 신부는 1991년부터 1995년까지 ‘본당 사목 5개년 계획’을 세워 실천했는데, 1991년 ‘조직의 해’, 1992년 ‘교육의 해’, 1993년 ‘활동의 해’, 1994년 ‘내실의 해’, 1995년 ‘사랑의 해’로 해마다 주제를 정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한국가톨릭대사전은 9대 주임 김충 신부가 1996년 11월 레지오 마리애 규모에 비해 부족하던 회합실을 마련하려고 교육관을 증축했고, 1999년에는 김천 지역 5개 본당 사목자들과 함께 평화동 성당 구내에 ‘공동 사제관’을 신축했다고 적는다. 10대 주임 여창환 신부 재임기인 2000년에는 본당 조직을 사목 평의회·평신도 사도직 협의회·재무 평의회로 재편했고, 2002년 본당 신앙 학교를 개설했다. 2003년 11월에는 주임·보좌 신부 집무실, 수녀 사무실, 본당 사무실 등을 갖춘 사목 회관(2층, 약 200평)을 건축해 대구대교구장 이문희(바오로) 대주교의 집전으로 축복식을 거행했다. 2004년 현재 매월 마지막 주일을 가정 주일로 정해 가정 복음화에 힘쓰고 있다고 적는다.

〔관할 구역과 교세〕 한국가톨릭대사전은 관할 구역을 김천시 평화동·부곡동, 성내동 남산 일부 지역과 대항면·봉산면 전역으로 적고, 교세를 1958년 1,300명, 1965년 2,100명, 1969년 2,357명, 1975년 2,878명, 1980년 2,441명, 1985년 2,947명, 1990년 4,104명, 1995년 5,842명, 2000년 6,658명, 2004년 3,300명으로 적는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소록은 현재 관할지역을 김천시 부곡동·성내동·평화동·대항면·봉산면 전역과 남산동 일부로, 신자 수를 3,570명으로, 공소 수를 3개로, 소속 수녀회를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대구 수녀원으로 적는다.

〔역대 주임 신부〕 한국가톨릭대사전이 적은 역대 신부는 초대 담 파비아노(1958.10~1964.7), 2대 김영근 베다(1964.7~1968.8), 3대 퓌테르(M. Fuetterer, 곽미걸) 미카엘(1968.8~1981.2), 4대 노규채 아우구스티노(1981.2~1984.1), 5대 김용길 바오로(1984.1~1987.1), 6대 장태식 리노(1987.1~1989.6), 7대 이재명 바오로(1989.6~1991.3), 8대 정성해 베드로(1991.3~1996.8), 9대 김충 프란치스코 사베리오(1996.8~1999.11), 10대 여창환 라우렌시오(1999.11~대사전 집필 당시 현재)이다.

건축과 공간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평화동 성당은 독일인 성직자이자 건축가인 슈미트(A. Schmid, 안) 신부의 설계를 바탕으로 1958년 3월 착공해 같은 해 10월 완공했다. 2003년 11월에 지은 사목 회관은 2층 건물(약 200평)로 주임·보좌 신부 집무실, 수녀 사무실, 본당 사무실 등을 갖추었다.

관련 장소와 인물

  • 김천 황금동 본당: 평화동 본당의 모 본당으로, 평화동 본당이 설립되면서 행정 구역 명칭에 따라 ‘김천 황금동 본당’으로 이름을 바꿨다(한국가톨릭대사전).
  • 담(F. Damm, 탁세영) 파비아노 신부: 황금동 본당 7대 주임으로 새 성당 건립을 계획했고, 평화동 본당 초대 주임을 지냈다(한국가톨릭대사전).
  • 슈미트(A. Schmid, 안) 신부: 독일인 성직자이자 건축가로 성당 설계를 맡았다(한국가톨릭대사전).
  • 비테를리(T. Bitterli, 이성도) 몬시뇰: 1958년 10월 성당 봉헌식을 집전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 아천 공소: 2대 주임 김영근 신부 재임기인 1964년에 신축한 공소 가운데 하나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참고자료 및 출처

  1.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평화동 본당”(11권, 대구대교구 소속 항목). 황금동 본당에서 분리·승격, 성당 설계와 봉헌, 역대 주임의 사목, 교세, 관할 구역, 역대 신부.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6508
  2.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 천주교 주소록 “평화”(대구대교구). 설립일 1958.10.25, 주보 그리스도 왕, 신자 수, 공소 수, 수녀회, 관할지역.
    https://directory.cbck.or.kr/OnlineAddress/Catholic/DetailInfo.aspx?cgubn=c&gubn=4&gyogu=201000021&code=201000905&gubn2=all&char=all
  3. 천주교 대구대교구, 본당 정보 “평화청”. 설립일자 1958년 10월 25일.
    https://www.daegu-archdiocese.or.kr/page/area.html?menu=c4&number=116&premenu&srl=church_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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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9일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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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9일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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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평화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9일 23:46. https://missamap.com/ko/kr/daegu-pyeonghwa-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