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풍 성당

목차
  1. 개요
  2. 역사
  3. 건축과 공간
  4. 관련 장소와 인물
  5.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현풍성당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에 있는 천주교 대구대교구 소속 성당이다. 1935년경 설립된 현풍 공소가 1969년 화원 본당 소속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어 출발했으며, 주보성인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이다. 1988년에 완공한 현재의 성전은 주보성인인 김대건 신부의 갓 모양을 본떠 팔각형으로 지었다고 대구역사문화대전은 설명한다.

역사

〔현풍 공소〕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현풍 공소는 1935년경 현풍면에 사는 윤일권(베드로) 등을 중심으로 설립되었다. 공소는 계산동 본당과 남산동 본당을 거쳐 1938년부터 화원 본당의 관할 아래 있었고, 위치는 현재의 현풍면 중리 270번지였다. 공소가 설립된 뒤 황운호(바오로), 김 도미니코 등이 세례를 받았으며, 인근 고봉 공소가 통합되면서 고봉 공소 신자들도 공소 예절에 참례했다. 대구역사문화대전은 현풍 공소의 모태를 1935년 설립으로 적고, 화원 본당에 소속되기 전인 1936년에는 남산 본당 소속이었다고 덧붙인다.

〔6·25전쟁과 공소 재건〕 대사전은 한국전쟁 당시 현풍 지역에서 교전이 벌어져 공소 강당이 불에 타 버렸다고 적고, 대구역사문화대전은 낙동강 전투로 공소가 파괴되었다고 적는다. 대사전에 따르면 공소 신자들은 화원 본당 서정도(베르나르도) 신부의 경제적 지원을 받아 새로 초가를 지어 임시 공소로 썼고, 구호 양곡의 일부를 비축하는 등 재건축 비용을 마련하는 한편 화원 본당 박재수(요한) 신부의 도움을 받아 1960년에 약 20평 규모의 목조 건물을 신축했다. 이 공소에서는 주일마다 공소 예절을 했고 화원 본당 신부가 1년에 두 차례 방문해 성사와 미사를 집전했다.

〔본당 설립〕 대사전은 1960년대 후반 대구대교구가 현풍 지역에 본당을 설립하기로 결정하고, 박재수 신부가 화원 본당 주임이던 때 사 두었던 달성 우체국 앞 논 800평에 성당을 짓기로 했다고 적는다. 설립일은 출처마다 다르다. 대사전은 1969년 1월 29일 현풍 본당이 설립되었고 2월 9일 초대 주임으로 김영옥(요한) 신부가 부임했다고 적으며,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소록과 대구대교구 본당 정보의 설립일은 1969년 2월 9일이다. 대구역사문화대전은 1969년 2월 9일 화원 본당 소속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다고 적는다. 대사전에 따르면 김영옥 신부는 부임 직후 고령 본당 관할 공소였던 개진(현 인안) 공소를 인계받았고, 준비해 둔 논 800평과 추가로 산 토지 등 총 3,005평의 부지에 신축 공사를 시작했다.

〔초기 시설과 신심 단체〕 대사전에 따르면 성당(현 교육관 1층)은 1969년 6월에 완공되었고 이어 수녀원(약 25평)과 목재 기와 건물인 사제관(약 20평)이 세워졌으며, 1970년 5월에는 성모 동산을 조성하고 성모상을 안치했다. 농촌 본당이어서 재정이 어려워 설립 초기에 진출한 포항 예수 성심 시녀회 수녀들은 1971년 7월 본당에서 철수했다가, 2대 주임 김기조 신부 때인 1972년 9월에 다시 파견되어 전교 활동을 맡았다. 1972년에는 사랑하올 어머니 쁘레시디움, 1973년에는 청년 혼성 레지오 마리애인 바다의 별 쁘레시디움이 창설되었다. 1973년 4월에는 개진 공소를 신축해 축복식을 했고, 농번기에 신자들의 짐을 덜어 주려고 탁아소를 운영하기도 했다.

〔1970~80년대〕 대사전에 따르면 3대 주임 임청 신부 때인 1977년 4월 성당 진입로를 포장하고 진입로 부근 부지 127평을 매입했으며, 4대 주임 허연구 신부 때인 1978년 4월 현풍 천주교회 신용 협동 조합 임의 조합을 창립했다. 대구역사문화대전은 1977년 교구의 보조를 받아 신용 협동조합을 설립했고 1986년 재무부의 인가를 받았다고 적는다. 1979년 4월에는 6개월간의 공사 끝에 사제관과 교리실 2개를 증축했다(대사전). 대구역사문화대전은 1979년 구 성당을 완공했다고 적는다. 5대 주임 박형진 신부 때인 1980년 12월 11개 반을 구성해 반별 모임을 정례화했고, 6대 정춘석 신부 때인 1982년 9월 청년 10여 명으로 성경 연구반을 창설했다. 7대 원동수 신부 때인 1983년 1월에는 11개 쁘레시디움을 창단했고 5월에는 노후한 성당 내부를 수리했으며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를 구성했다. 달성 공업 단지가 조성되고 현풍 지역에 아파트가 들어서 신자가 꾸준히 늘면서, 8대 채영희 신부 때인 1985년 7월에는 공단에서 근무하는 신자들을 위한 공단반을 조직했다(대사전).

〔새 성전 신축〕 대사전에 따르면 9대 주임 김영옥 신부 때인 1987년 6월 성당 신축 기공식을 했고, 7월에는 교구청의 지원으로 사제관을 새로 지었으며, 8월에는 옛 사제관을 고쳐 수녀원을 이전했다. 1988년 12월 건평 135평 규모의 성당을 완공해 이문희(바오로) 대주교의 주례로 봉헌식을 거행했다. 대구역사문화대전은 1987년 새 성당 부지를 매입해 건축을 시작하여 1988년 11월 완공했고 그해 12월 이문희 대주교 주례로 새 성전 축성식을 가졌다고 적는다.

〔1990년대 이후〕 대사전은 10대 이정효 신부 때인 1991년 4월 무의탁 노인이 거주하던 옛 수녀원 건물을 피정과 친교를 위한 친교의 집으로 개조했고, 11대 이성구 신부 때인 1992년 2월에는 국제 재활원 건물을 신축하는 동안 머물 곳이 없던 재활원생들을 친교의 집에 머물게 했다고 적는다. 12대 손무진 신부 때인 1992년 말 성당 현관에 유아실을 마련했고 1993년 4~5월 조경 공사를 했다. 13대 신영규 신부 때인 1994년 1월 본당 25주년 기념 사업으로 ‘본당 25년사 편찬위원회’를 발족했고, 10월 2일 성모 동산의 성모상을 교체해 제막했으며, 10월 3일 역대 주임 신부와 수녀가 참석한 가운데 설립 25주년 기념 미사와 주보성인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상 제막식을 했다. 1995년 12월 《현풍 본당 25년사》를 발간했다. 14대 한명석 신부 때인 1997년 6월에는 주보성인 김대건 신부의 유해를 봉안한 뒤 헌혈과 장기 기증 운동을 전개했고, 15대 여운동 신부 때인 2001년 2~3월 사무실과 성물방을, 16대 김윤호 신부 때인 2004년 성당과 2층 강당, 대건의 집 등을 보수했다. 대구역사문화대전은 2009년 본당 설립 40주년 기념 음악회와 주보 축일 기념행사를 열었다고 적는다.

〔공소 정리와 관할〕 대구역사문화대전에 따르면 현풍에 본당이 세워지면서 고봉 공소, 현풍 공소, 논공 공소, 유가 금동 공소 등이 폐쇄되었다. 대사전은 본당의 공소가 인안 1곳이라고 적고,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소록도 공소 수를 1로 적는다. 주소록의 관할지역은 달성군 구지면·유가읍·현풍읍 전역과 달성군 논공읍·고령군 개진면 일부이다.

〔교세와 역대 주임〕 대사전이 적은 교세는 1971년 500명, 1974년 591명, 1980년 823명, 1985년 1,092명, 1990년 1,625명, 1995년 1,948명, 2000년 2,270명, 2005년 1,500명이다. 역대 신부는 초대 김영옥 요한(1969.1~1971.11), 2대 김기조 안드레아(1971.11~1974.5), 3대 임청 베드로(1974.5~1977.7), 4대 허연구 모세(1977.7~1980.5), 5대 박형진 아우구스티노(1980.5~1982.1), 6대 정춘석 아우구스티노(1982.1~10), 7대 원동수 바오로(1982.10~1984.7), 8대 채영희 요셉(1984.7~1987.1), 9대 김영옥(1987.1~1991.3), 10대 이정효 예로니모(1991.3~6), 11대 이성구 요한(1991.6~1992.3), 12대 손무진 세례자 요한(1992.3~1993.9), 13대 신영규 베드로(1993.9~1996.2), 14대 한명석 베드로(1996.2~1999.11), 15대 여운동 바오로(1999.11~2002.8), 16대 김윤호 토마스 데 아퀴노(2002.8~서술 시점)이다. 대구역사문화대전은 서술 시점에 김상조(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20대 주임을 맡고 있다고 적고, 초대 본당 회장은 최우림(요한), 당시 회장은 박재문(하상 바오로)으로 16대 회장이라고 적는다. 주요 단체로 학생 복사단, 성모회, 꾸르실리스따회를 든다.

건축과 공간

대구역사문화대전에 따르면 대지 면적은 1만 1220㎡이고 성당 앞뒤에 잔디밭과 주차장, 테니스장, 농구장 겸 족구장 등이 있다. 성전 전면 중앙에는 주보성인인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상이 있고 뒤뜰에는 사제관과 성모 동산이 있다.

대구역사문화대전은 현풍성당의 외형이 주보성인 김대건 신부의 갓 모양을 본떠 팔각형 구조로 지어졌으며, 이는 현풍성당만의 고유한 개성으로 평가될 수 있다고 적는다.

대사전에 따르면 현재의 성당은 1988년 12월 건평 135평 규모로 완공·봉헌되었고, 1969년에 처음 지은 성당 건물은 현재 교육관 1층으로 쓰인다. 신자들의 친교와 피정 공간인 ‘친교의 집(대건의 집)’은 옛 수녀원 건물을 개조한 것이다.

관련 장소와 인물

  • 화원 본당: 현풍 공소가 1938년부터 소속되었고 1969년 본당 승격 때까지 관할한 본당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대구역사문화대전).
  • 고령 본당·개진(현 인안) 공소: 1969년 김영옥 신부가 고령 본당 관할이던 개진 공소를 인계받았고, 1973년 4월 개진 공소를 신축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 김대건 안드레아: 본당의 주보성인이다. 1994년 10월 성인상을 제막했고 1997년 6월 김대건 신부의 유해를 봉안했다고 대사전은 적는다.
  • 현풍성당 신용 협동 조합: 1978년 농민 복지의 일환으로 임의 조합이 창립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참고자료 및 출처

  1.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현풍 본당”(12권). 현풍 공소 설립과 화원 본당 관할, 1969년 본당 설립, 성당 신축(1969·1988), 역대 주임과 연도별 활동, 교세.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6921
  2. 한국학중앙연구원, 대구역사문화대전 “현풍성당”. 1935년 공소 설립, 1969년 본당 승격, 1988년 새 성전 축성, 2009년 40주년 행사, 팔각형 외형, 공소 폐쇄, 대지 면적과 단체.
    https://www.grandculture.net/daegu/toc/GC40081241
  3.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 천주교 주소록 “현풍”(대구대교구). 설립일 1969.02.09, 주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수녀회, 공소 수와 관할지역.
    https://directory.cbck.or.kr/OnlineAddress/Catholic/DetailInfo.aspx?cgubn=c&gubn=4&gyogu=201000021&code=201000908&gubn2=all&char=all
  4. 천주교 대구대교구, 본당 정보 “현풍 성당”. 설립일자 1969년 2월 9일, 주보성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https://www.daegu-archdiocese.or.kr/page/area.html?menu=c4&number=82&premenu&srl=church_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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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9일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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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현풍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9일 18:45. https://missamap.com/ko/kr/daegu-hyeonpung-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