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성당

목차
  1. 개요
  2. 역사
  3. 관련 장소와 인물
  4.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양양성당은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양양읍에 있는 천주교 춘천교구 소속 성당으로, 1921년 5월 내평 본당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설립되었다. 현재의 주보는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이며, 1950년 6월 공산군에게 연행되어 순교한 3대 주임 이광재(디모테오) 신부의 시복·시성을 위한 기도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역사

〔영동 지역의 신앙 공동체〕 한국가톨릭대사전은 양양 지방의 전승에 따르면 병인박해 때 충북 제천 배론 교우촌에 살던 이 베드로가 양양면 화일리의 범뱅이골로 피신해 오면서 복음이 전파되었고, 이후 이 베드로의 동생 이 바오로와 김덕수, 김덕수의 숙부가 이주해 교우촌이 형성되었다고 적는다. 다른 전승은 충청도 청주에 살던 오광선이 병인박해를 피해 강릉 홍제동으로 이주했고 맏아들 오춘영(바오로)이 속초 도문동으로 이주해 ‘싸리재 옹기점’을 일구었다는 것이며, 범뱅이골과 싸리재는 영동 지역에서 최초로 형성된 신앙 공동체였다고 한다.

〔공소와 관할 본당〕 사전에 따르면 1882년 가을 뮈텔(G. Mutel, 민덕효) 신부가 처음 파견되어 이듬해 봄까지 순방하며 양양 최초의 공소인 쉬일(양양읍 화일리) 공소를 비롯해 8개의 공소를 설립했고, 1887년 싸리재 공소에 이어 장승골, 한재, 정바위, 장두골, 명지골, 이목동, 신흥 공소 등이 설립되어 양양·속초 지역에 9개 공소가 있었다. 이 지역은 1883년 4월 드게트(V. Deguette, 최동진) 신부가 설립한 섭가지 본당(이천군 산내면 용포리 섭골) 소속이었고, 르 메르(Le Merre, 이류사) 신부가 1888년 가을 강원도 풍수원으로 옮겨 풍수원 본당을 설립하면서 잠시 풍수원 본당 관할이 되었다가 1890년부터 다시 원산 본당으로 이관되었다. 1891년부터는 안변 본당 샤르즈뵈프(E. Chargeboeuf, 송덕망) 신부의 순방을 받았고, 1896년 2월 안변 본당 4대 주임 불라두(T. Bouladoux, 나형묵) 신부가 거처를 안변의 내평으로 옮겨 내평 본당을 설립하면서 1921년까지 내평 본당 관할이 되었다.

〔본당 설립〕 한국가톨릭대사전은 영동 지역 신자가 늘었으나 내평 본당과 멀어 공소 순방이 어렵자 뮈텔 주교가 1921년 5월 5일 양양 본당을 설립하고 북간도 조양하 본당에 있던 최문식(베드로)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임명했다고 적는다. 최 신부는 처음 속초 상도문리의 싸리재에 거주했으나 성당 겸 사제관으로 지은 초가집이 허술하고 전교 전망도 없다고 판단해 이전을 계획했고, 1922년 2월 17일 양양읍 서문리 282번지로 성당을 옮긴 뒤 인근 토지를 매입해 같은 해 11월 공사에 착수해 12월 22일 완공했다. 춘천교구 홈페이지는 1921년 5월 최문식 신부가 양양의 상도문리에 천주당을 세우면서 본당이 되었고 당시 주보는 ‘예수 성심’이었으며, 1921년 12월 서문리에 가옥을 장만해 본당을 옮겼다고 적는다.

〔현 성당 터와 1940년의 성당〕 2대 주임 유재옥(프란치스코) 신부는 공소 회장 피정을 연 4회 이상 실시하고 청년회·부인회를 조직했다. 1936년 여름 수해로 성당이 완전히 침수되자 시내 중심지로 이전하기로 하고 현 성당 소재지의 부지 1,140평을 매입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춘천교구 홈페이지는 유재옥 신부가 1937년 8월 현재 위치에 부지를 마련하고 성당을 신축하기 시작했다고 적는다. 3대 주임 이광재(디모테오) 신부가 1940년 2월 28일 성당(65평)과 교육 회관(25평)을 완공해 봉헌식을 거행했고(한국가톨릭대사전), 교구 홈페이지는 1940년 2월 신축 성당 축성식이 있었다고 적는다.

〔이광재 신부의 순교〕 한국가톨릭대사전은 공산 정권이 들어서면서 소련군의 주둔으로 성당을 빼앗겼고, 1948년부터 연길·함흥·원산 지역의 성직자·수도자·신자들이 양양 본당을 거쳐 남하하자 이광재 신부가 이들이 무사히 월남하도록 도왔다고 적는다. 이광재 신부는 1950년 6월 24일 공산군에게 연행되어 원산 와우동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10월 9일 총살되었다. 춘천교구 홈페이지는 이광재 신부가 많은 성직자와 수도자를 38선 이남으로 넘어가도록 도왔고 1950년 6월 북측 신자들의 방문 요청을 받고 갔다가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순교했다고 적으며, 양양성당이 시복 시성을 위해 꾸준히 기도 운동을 전개하고 2009년부터 순교를 기리며 ‘38선 디모테오 길’ 도보순례를 진행한다고 설명한다. 본당은 2000년 10월 8일 이광재 신부 순교 50주년 기념 미사를 봉헌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한국전쟁 이후〕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전란 중 성당이 화재로 소실되고 본당 신부가 공석이 되자 주문진 본당과 동명동 본당에서 사목하던 맥고완(P. McGowan, 원) 신부가 1952년부터 1954년까지 양양 지역을 맡아 성당(65평)을 신축했다. 4대 주임 설리반(T. Sullivan, 서) 토마스 신부는 1954년 11월 30일 성당 봉헌식을 거행했고, 1956년 강현 공소(강현면 정암리 2구)를 설립해 12월 25일 강당을 신축했으며, 1958년 1월 10일 현북면 상광정리에 460평 부지를 매입해 11월 8일 32평의 현북 공소 강당을 신축했다. 1960년 4월 1일 수녀원 신축에 착수해 7월 12일 2층 수녀원을 완공했다. 한편 1960년대에는 냉담자가 크게 늘어 본당 재정이 매우 악화되기도 했다. 춘천교구 홈페이지는 성당이 한국전쟁으로 전소되어 1954년 11월 현 성당을 지어 봉헌했으며 이때 주보를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로 변경했다고 적는다.

〔1970년대 이후〕 1972년 7대 주임 머레이(B. Murray, 함) 브렌다노 신부는 학생회와 주일학교 육성에 힘썼고, 9대 주임 린치(J. Lynch, 임) 요한 신부는 가정 성화에 관심을 갖고 사목했다. 10대 주임 스미스(M. Smyth, 천) 말라키 신부는 이광재 신부의 신앙심과 순교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83년 10월 1일 성당 안에 이광재 신부 기념관을 건립하고 순교 기념각을 세웠다. 1988년 4월 6일 현재의 수녀원(55평)을 신축했고, 성당이 협소해 1995년 10월 1일 성당을 증축(75평)했으며, 이듬해 10월 4일 농어촌 무의탁 노인을 위해 현북 가정 간호의 집을 개원해 서울 성가 소비녀회에 운영을 위탁했다. 14대 주임 이동주(시몬) 신부는 부임 직후 ‘디모테오 어린이 집’을 개원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교세와 역대 주임신부〕 한국가톨릭대사전이 적은 신자 수는 1964년 1,242명, 1977년 971명, 1983년 993명, 1989년 1,064명, 1994년 873명, 1999년 1,043명이며 관할 구역은 양양읍, 서면, 손양면, 현북면 전 지역과 현남면, 강현면 일부 지역, 관할 공소는 현북 1개소이다. 역대 주임은 초대 최문식 베드로(1921.4~1927.5), 2대 유재옥 프란치스코(1927.5~1939.7), 3대 이광재 디모테오(1939.7~1950.10), 4대 설리반 토마스(1954.11~1962.11), 5대 힐리(P. Healy, 한) 파트리치오(1962.11~1968.9), 6대 스미스(P. Smyth, 천) 파트리치오(1968.9~1972.5), 7대 머레이 브렌다노(1972.5~1976.4), 8대 머피(C. Murphy, 전) 고르넬리오(1976.4~1977.5), 9대 린치 요한(1977.5~1981.4), 10대 스미스 말라키(1981.4~1984.4), 11대 송병철 야고보(1984.4~1990.1), 12대 김정식 토마스(1990.1~1994.6), 13대 이태혁 요아킴(1994.6~1998.2), 14대 이동주 시몬(1998.2~현재)이다. 여기서 ‘현재’는 이 사전의 서술 시점을 뜻한다.

관련 장소와 인물

  • 이광재(디모테오) 신부: 양양 본당 3대 주임으로 1950년 순교했으며, 본당이 시복·시성을 위한 기도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한국가톨릭대사전, 춘천교구 홈페이지).
  • 최문식(베드로) 신부: 1921년 양양 본당의 초대 주임으로 임명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 범뱅이골·싸리재: 영동 지역에서 최초로 형성된 신앙 공동체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 내평 본당: 1896년부터 1921년까지 양양 지역을 관할한 본당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참고자료 및 출처

  1.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양양 본당”(9권). 영동 지역 신앙 공동체와 관할 본당 변천, 1921년 본당 설립, 성당 이전과 신축, 이광재 신부의 순교, 한국전쟁 후 재건, 교세 통계, 역대 주임신부.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4294
  2. 천주교 춘천교구 홈페이지, 본당 “양양 아기예수의성녀데레사 본당”. 설립연도 1921.04., 1921년 서문리 이전, 1940년 축성, 이광재 신부의 순교와 도보순례, 1954년 현 성당 봉헌과 주보 변경.
    https://www.cccatholic.or.kr/parish/parish/view/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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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9일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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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양양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9일 11:59. https://missamap.com/ko/kr/chuncheon-yangyang-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