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덕원 성당

목차
  1. 개요
  2. 역사
  3. 관련 장소와 인물
  4.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양덕원성당은 강원특별자치도 홍천군 남면 양덕원리에 있는 천주교 춘천교구 소속 성당으로, 풍수원 본당 관할의 물구비 공소가 1948년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수곡리 본당(물구비 본당)으로 불렸으나 1962년 본당을 양덕원리로 옮기면서 이름을 양덕원 본당으로 바꾸었고, 주보는 성 시몬과 성 타대오이다.

역사

〔교우촌과 공소〕 한국가톨릭대사전은 이 지역 신앙 공동체가 박해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적는다. 1866년 병인박해 이후 크고 작은 박해를 피해 충청도 내포 지방의 최덕화(야고보)·박이화·지시몬 등이 갈기리(현 홍천군 남면 유목정리)로 숨어들어 화전과 옹기 굽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며 전교해 교우촌이 형성되었다. 박해가 끝나고 1888년 풍수원 본당이 설립되면서 이곳에 갈기리 공소가 설립되었는데, 당시 신자 수는 13명이었고 이들은 최덕화 공소 회장의 집에서 공소 예절을 했다. 1890년에는 공소를 물굽이(현 유목정 1리)로 이전하고 이름을 물굽이 공소로 바꾸었다. 신자 수는 1894년 61명, 1923년 114명이었고, 1923~1925년 사이에 공소 강당을 신축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춘천교구 홈페이지도 병인박해를 피해 갈기리로 숨어든 신자들이 화전과 옹기 굽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며 복음을 전해 교우촌이 형성되었고 1888년 풍수원 본당이 설립되면서 갈기리 공소가 설립되었다고 적는다.

〔수곡리 본당 시대〕 한국가톨릭대사전은 신자 수가 계속 늘어 1948년 9월경 수곡리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승격 당시 신자 수는 300여 명, 주보성인은 소화 데레사였다고 적는다. 춘천교구 홈페이지는 1948년 9월 5일 풍수원 본당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설립되었으며 수곡리 본당 또는 물구비 본당으로 불렸다고 적는다. 초대 주임 주재용(바오로) 신부는 물굽이 강당을 성당으로 증축하고 사목하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해 성당이 전소되고 신자들이 흩어졌으나, 전쟁이 끝나고 돌아와 1952년 성당을 신축했다. 이후 주재용 신부의 전교 노력으로 교세가 신장되었고, 수곡리 본당과 관할 공소 신자들이 모두 《경향잡지》를 구독할 만큼 신앙의 열의도 강했다고 한다. 주재용 신부는 수곡리보다 양덕원 지역의 발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 양덕원리(현 본당 소재지)에 대지를 매입하고 성당 이전을 준비했다.

〔양덕원리로의 이전〕 1959년 11월 주재용 신부가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지도 신부로 이임하고 2대 주임으로 골롬반 외방선교회의 케니(P. Kenny, 기) 바오로 신부가 부임했다. 케니 신부는 1962년 10월 양덕원리에 새 성당을 신축했고 같은 해 11월 본당을 수곡리에서 양덕원리로 이전하면서 본당 이름을 양덕원 본당으로, 주보성인을 시몬과 타데오로 바꾸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춘천교구 홈페이지는 전쟁 중 목조 건물이 소실되어 재건축했고, 본당 발전을 염두에 두고 매입해 둔 현 부지에 새 성당을 신축해 1962년 11월 본당을 이전하면서 이름도 ‘물구비’에서 ‘양덕원’으로 바꾸었다고 적는다.

〔골롬반회와 한국인 사제의 사목〕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양덕원 본당에는 머레이, 킨, 오코너, 프렌치, 플레밍, 스미스, 코메르포드, 다기 신부 등 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 신부들이 사목했다. 1983년 7월 11대 주임으로 역시 골롬반회 소속의 해리스(D. Harris, 나) 데렉 신부가 부임해 가정 방문과 구역 미사를 실시하고 성당과 사제관 보수 공사를 했으며, 이듬해에는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 기념 사업의 하나로 관내 무의탁 노인에게 집을 마련해 주고 불우 이웃에게 성금을 전달했다. 12대 주임 오하라(J. O’Hara, 하) 요한 신부 때는 성당 도색과 보수 작업을 했다. 13대 주임으로 한국인 사제 강성구(사도 요한) 신부가 부임해 가정 방문과 사제관 개축 공사를 하고 전자 오르간을 구입했다. 1997년 9월 16대 주임 양완모(야고보) 신부는 봉고차를 구입해 먼 곳의 신자들이 매주 본당에서 미사에 참례하도록 했고, 그 결과 제곡 공소와 유치 공소가 폐쇄되었다. 또한 관내 휴양 시설의 관광객들을 위해 매주일 오전 8시 그곳에서 미사를 집전했는데 참여 신자는 70~150명에 이르렀다. 2000년 9월 17대 주임으로 부임한 배광하(치리아코) 신부는 관내 불우 노인을 위한 활동을 준비하고 주일학교를 강화하는 등 노인 복지와 청소년 교육에 힘쓰고 있다고 사전은 적는다.

〔교세와 역대 주임신부〕 한국가톨릭대사전이 적은 신자 수는 1974년 851명, 1980년 945명, 1985년 809명, 1990년 657명, 1995년 532명, 1999년 501명이다. 관할 구역은 양덕원 2리, 유목정 1·2리, 월천리, 명동리, 제곡리, 용수리, 화전리, 굴업리, 대곡리, 신대리, 유치리, 시동 전 지역과 양덕원 1리 일부 지역이다. 역대 주임은 초대 주재용 바오로(1948.9~1959.11), 2대 케니 바오로(1959.11~1963.2), 3대 머레이(B. Murray, 함) 브렌다노(1963.2~12), 4대 킨(M. Keane, 장) 마티아(1963.12~1966.10), 5대 오코너(P. O’Conor, 권) 파트리치오(1966.10~1969.4), 6대 프렌치(G. French, 범) 제라르도(1969.4~10), 7대 플레밍(C. Fleming, 궐) 가비노(1969.10~1971), 8대 스미스(J. Smith, 천) 요한(1971~1974.12), 9대 코메르포드(T. Comerford) 토마스(1975.1~1979.4), 10대 다기(B. Dagge, 탁) 벨라도(1979.4~1983.4), 11대 해리스 데렉(1983.7~1986.4), 12대 오하라 요한(1986.4~1989.12), 13대 강성구 사도 요한(1990.1~1993.8), 14대 이수영 다미아노(1993.8~12), 15대 정기원 미카엘(1994.1~1997.8), 16대 양완모 야고보(1997.9~2000.9), 17대 배광하 치리아코(2000.9~현재)로 이어진다. 여기서 ‘현재’는 이 사전의 서술 시점을 뜻한다.

관련 장소와 인물

  • 풍수원 본당: 양덕원 지역 갈기리·물굽이 공소가 속했던 본당이다. 1888년 풍수원 본당이 설립되면서 갈기리 공소가 생겼고, 1948년 물구비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될 때까지 관할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춘천교구 홈페이지).
  • 갈기리 공소·물굽이 공소: 병인박해를 피한 신자들이 모인 교우촌에서 출발한 공소로, 1890년 물굽이(현 유목정 1리)로 옮기며 물굽이 공소가 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 제곡 공소·유치 공소: 1997년 이후 신자들의 본당 미사 참례를 위한 차량 운행으로 폐쇄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참고자료 및 출처

  1.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양덕원 본당”(8권). 교우촌과 공소의 형성, 1948년 수곡리 본당 승격, 1962년 양덕원리 이전과 개칭, 관할 구역, 교세 통계, 역대 주임신부와 사목 활동.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4283
  2. 천주교 춘천교구 홈페이지, 본당 “양덕원 성시몬과성타대오 본당”. 설립연도 1948.09.05., 교우촌 형성과 1888년 갈기리 공소, 수곡리(물구비) 본당 승격, 1962년 11월 이전과 개칭.
    https://www.cccatholic.or.kr/parish/parish/view/16
문서 정보
문서 크기
8,069 바이트
판 수
1
기여자
1명
만들어진 날
2026년 10월 19일 11:51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9일 11:51
본문 연결
0개
출처 링크
2개 · 제출 출처 있음
작성 상태
보완 권장
장소 ID
55abf4ca-443f-4d1a-a21b-a2356bd17883
고정 주소
https://missamap.com/ko/kr/chuncheon-yangdeokwon-catholic-church/wiki/
인용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양덕원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9일 11:51. https://missamap.com/ko/kr/chuncheon-yangdeokwon-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