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호 순례 성당

목차
  1. 개요
  2. 역사
  3. 건축과 공간
  4. 관련 장소와 인물
  5.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묵호성당(묵호 바다의 별 성당)은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시에 있는 천주교 춘천교구 소속 성당으로, 1948년 6월 임당동 본당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한국전쟁 중 순교한 라 파트리치오(Patrick Reilly) 신부가 주임으로 사목한 본당이며, 주보는 바다의 별이다.

역사

〔복음 전파와 공소 시대〕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묵호 지역에는 1931년 하경연(요셉)이 강원도 옥계 지방에서 이 지역으로 이주해 오면서 처음으로 복음이 전파되었고, 1934년에는 홍 요한, 전 아우구스티노 등의 적극적인 전교 활동으로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1940년 강릉(현 임당동) 본당 관할 공소로 설정된 묵호 공소는 묵호진리 세관 뒤편 언덕의 일본식 가옥(현 묵호진동 15번지)을 매입해 성당으로 사용했다.

〔본당 승격〕 춘천교구 홈페이지와 한국가톨릭대사전은 묵호 본당이 1948년 6월 임당동(강릉) 본당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다고 적는다. 춘천교구 홈페이지는 성전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초대 주임 한(Francisco McGann) 프란치스코 신부가 묵호항 부근의 일본식 가옥에 임시 사제관을 마련하고 미사를 집전하며 사목했다고 적는다.

〔6·25와 라 파트리치오 신부〕 춘천교구 성지 안내에 따르면 1949년 8월 라 파트리치오(Patrick Reilly) 신부가 부임했으나 한국전쟁 중 순교해 묵호 본당은 주임 신부가 없는 곳이 되었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6·25 동란으로 공산군이 성당을 점거했고, 만우리의 남봉길 전교회장 집으로 잠시 피신해 있던 주임 신부가 전교회장과 함께 체포되어 강릉으로 끌려가던 도중 1950년 8월 29일 묵호에서 10km가량 떨어진 강릉시 옥계면 밤재 철도굴(현 고속도로 동해 2터널) 옆에서 피살되었다고 적는다. 대사전의 역대 신부 명단은 2대 주임을 브렌난(P. Brennan) 파트리치오(1949.9~1950.8)로 적고, 춘천교구 홈페이지는 같은 인물을 라 파트리치오(Patrick Reilly)로 적는다.

〔본당 폐쇄와 복귀〕 한국가톨릭대사전은 묵호 본당이 6·25 동란으로 7년간(1950.8~1957.5) 폐쇄되었다고 적는다. 춘천교구 홈페이지는 주임 신부가 공석인 상황에서 신자들이 인근 삼척 본당으로 미사를 다녔고 1954년에는 삼척 성내동 본당(1965년 교구 분리에 따라 현재 원주교구 성당) 관할 공소가 되었다고 적는다. 한국가톨릭대사전도 1954년 삼척(현 성내리) 본당 관할의 묵호 공소가 되었다고 적는다. 1957년 6월 당시 춘천 대목구장 퀸란(구인란) 주교가 현재의 성당 건물을 준공하면서 7년 만에 본당으로 복귀했다. 가톨릭신문은 춘천교구장 구인란(Thomas F. Quinlan) 주교가 한국전쟁으로 순교한 사제들을 기억하는 본당을 설립하기로 하고 1957년 라일리 신부를 기념하기 위해 묵호성당을 신축하고 본당으로 승격시켰다고 적는다. 춘천교구 홈페이지는 퀸란 교구장이 전쟁 당시 순교한 신부들을 기념하기 위해 세 곳(소양로, 묵호, 삼척)에 성당을 신축하고자 했다고 적는다.

〔1950년대 후반~1990년대〕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본당으로 복귀할 당시 30여 명에 불과하던 신자 수는 2년 만에 500여 명에 달했다. 1972년 12월 망상동에 본당 신자들의 공동 묘지인 성 요셉 묘원을 마련했고, 1984년 6월 16일 교리실 및 단체 회합 장소로 쓸 3층 규모의 대건 교육관을 건립했다. 본당 부지 가운데 원래 개인 소유였던 105평은 토지 소유주와의 분쟁이 이어지자 1989년 3월 매입했다. 춘천교구 홈페이지는 지역사회의 가난한 가정의 자녀들을 위한 교육 사업을 목적으로 1968년 11월 남호실업중고등학교를 인수해 남호고등공민학교로 개명하고 15년 동안 교육 사업을 했으나 1982년 2월 폐교했다고 적는다. 1992년 1월 28일 인근에 원주교구 소속의 천곡동 본당이 신설되면서 신설 본당 관할 구역에 거주하는 묵호 본당 신자들의 교적을 이관했고, 1994년 6월 1일에는 본당 관할이던 옥계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어 신자 수가 줄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교세와 역대 신부〕 한국가톨릭대사전이 적은 관할 구역은 동호동, 발한동, 향로동, 부곡동, 사문동, 묵호동, 어달동, 망상동이며, 신자 수는 1959년 494명, 1962년 708명, 1978년 1,485명, 1984년 1,484명, 1989년 1,889명, 1992년 1,881명, 1994년 1,253명이다. 역대 신부는 초대 맥간 프란치스코(1948~1949.9), 2대 브렌난 파트리치오(1949.9~1950.8), 3대 하셋 안토니오(1957.6~1959.1), 4대 힐리 요셉(1959.1~1962.11), 5대 하셋(1962.11~1968.6), 6대 머피 야고보(1968.6~1970.10), 7대 옥실리 베르나르도(1970.10~1974.5), 8대 케네디 브렌다노(1974.5~1978), 9대 니한 요한(1978~1980.2), 10대 맥고나글 디오니시오(1980.2~1981.8), 11대 박영근 사도 요한(1981.8~1987.4), 12대 이흥섭 라우렌시오(1987.4~1993.9), 13대 배종호 토마스(1993.9~1995.2), 14대 정귀철 베네딕도(1995.2~현재)이다. 여기서 ‘현재’는 이 사전의 서술 시점을 뜻한다.

〔라 파트리치오 신부의 생애와 순교〕 춘천교구 홈페이지의 선종사제 항목은 라 파트리치오(Patrick Reilly) 신부를 1915년 10월 21일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소속 사제로, 1940년 12월 21일 서품되어 1950년 8월 29일 선종했으며 묘지는 춘천교구 성직자 묘역이라고 적는다. 연혁은 1947년 한국 입국, 1948~1949년 원주(현 원동), 1949~1950년 묵호로 적는다. 춘천교구 성지 안내는 신부가 1948년 입국해 원주 본당 주임으로 사목을 시작했고 1949년 묵호 본당 주임으로 임명되었다고 적어 입국 연도가 출처마다 다르다.

춘천교구 성지 안내에 따르면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신자들이 배를 마련해 피란할 것을 권유했으나 신부는 “양들을 버리고 목자가 혼자 도망갈 수 없다”라며 거절했다. 만우리에 살던 전교회장의 집 골방으로 피신해 미사를 봉헌하다가 공산군에 동조하던 마을 사람의 신고로 전교회장과 함께 체포되었고, 다른 포로들과 함께 묵호에서 강릉으로 이송되던 중 1950년 8월 29일 밤재골에서 총살당했다. 이후 마을 사람들이 시신을 발견해 인근에 가매장했다가 1951년 10월 10일 죽림동 성직자 묘역으로 이장하며 장례미사를 봉헌했다. 가톨릭신문은 라일리 신부가 이송 중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되자 공산군이 사살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적고, 유해는 1950년 9월 28일 강릉이 수복된 이후 그를 기억하는 신자들의 노력으로 찾아낼 수 있었다고 적는다. 전교회장은 남봉길(프란치스코) 회장이다(가톨릭신문).

춘천교구 성지 안내는 묵호 성당 신자들이 신부의 순교를 기리기 위해 밤재골에 순교비를 세우고 도보순례를 했으나 영동선 터널 입구에 자리해 기차 운행으로 인한 위험 문제가 대두되어, 교구가 2021년 강릉시 옥계면 낙풍리 산 47-3번지에 새로 순례지를 조성했다고 적는다.

건축과 공간

〔성당 건물〕 한국가톨릭대사전은 현재의 성당 건물이 1957년 6월 준공되었다고 적는다. 춘천교구 홈페이지는 1957년 6월 현재의 성당 건물을 준공하면서 주보를 ‘바다의 별’이라 했고 성당 안에 성 김대건 신부의 유해 일부를 모셨다고 적는다. 가톨릭신문은 성당이 하얀 기둥에 하늘빛 외벽을 띤 고딕 성당이며, 성당 옆 마당 한가운데에 ‘라 바드리치오 순교비’라고 적힌 순교비가 서 있다고 적는다. 춘천교구 홈페이지는 본당 신자들이 1974년 라 파트리치오 신부 순교비를 건립했고 매년 순교일 즈음에 추모의 날을 지낸다고 적는다.

관련 장소와 인물

  • 라 파트리치오 신부 순교터: 묵호 본당 관할의 춘천교구 순례지로, 강릉시 옥계면 낙풍리에 있다(춘천교구 성지 안내).
  • 소양로 성당·삼척 성당: 퀸란 교구장이 순교한 신부들을 기념하기 위해 묵호 성당과 함께 신축하려 한 성당들이다(춘천교구 성지 안내).
  • 임당동 본당(강릉): 묵호 공소를 관할하다 1948년 본당 승격 전까지 모본당이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춘천교구 홈페이지).
  • 삼척 성내동 본당: 1954년부터 묵호 공소를 관할한 본당으로, 1965년 교구 분리에 따라 원주교구 소속이 되었다(춘천교구 홈페이지).
  • 천곡동 본당(원주교구)·옥계 본당: 1992년 천곡동 본당 신설로 교적을 이관했고 1994년 옥계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참고자료 및 출처

  1.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묵호 본당”(5권). 복음 전파와 공소 시대, 1948년 본당 승격과 6·25 중 폐쇄, 1957년 복귀, 발전, 교세 통계, 역대 신부.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2138
  2. 천주교 춘천교구 홈페이지, 본당 “묵호 바다의 별 본당”. 설립연도 1948.06., 1957년 성당 준공과 주보, 1954년 삼척 본당 관할 공소.
    https://www.cccatholic.or.kr/parish/parish/view/36
  3. 천주교 춘천교구 홈페이지, 성지 “묵호 성당 (순교자 라 파트리치오 신부)”. 초대 주임, 1957년 성당 신축 배경, 남호고등공민학교, 순교비와 추모의 날.
    https://www.cccatholic.or.kr/parish/holyland/12?t=3
  4. 천주교 춘천교구 홈페이지, 성지 “라 파트리치오 신부 순교터”. 라 파트리치오 신부의 순교 경위와 유해 이장, 2021년 새 순례지 조성.
    https://www.cccatholic.or.kr/parish/holyland/11?t=3
  5. 천주교 춘천교구 홈페이지, 선종사제 “라 바드리시오 Patrick Reilly”. 생년월일, 서품일, 선종일, 사목 연혁.
    https://www.cccatholic.or.kr/diocese/priest/sacred/149
  6. 가톨릭신문, “한국전쟁 순교자들 발자취를 찾다 (2) 패트릭 라일리 신부 순교터·춘천교구 묵호성당”(2020.9.8.). 순교 경위, 1957년 성당 신축과 본당 승격, 성당 모습과 순교비.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2009080243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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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9일 13:53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9일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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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묵호 순례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9일 13:53. https://missamap.com/ko/kr/chuncheon-mukho-sunrye-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