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호 성당
개요
용호성당은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에 있는 천주교 부산교구 소속 성당으로, 1978년 12월 3일 대연 본당에서 분리·설립되었다. 수호성인(주보)은 여왕이신 동정 성 마리아이며, 골롬반 외방선교회의 강대식(디오니시오, Denis Kearney) 신부가 초대 주임을 맡았다. 1972년 도시 계획으로 용호동에 이주한 철거민 신자들의 공소에서 출발했다.
역사
〔공소 시기〕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1972년 부산시의 도시 계획에 의한 판잣집 철거로 대신동, 영주동, 좌천동의 일부 주민들이 대연 본당 관할인 용호동에 정착했고, 당시 이 지역 신자는 40여 명이었다. 부산역사문화대전은 철거 이주민이 대신동, 영주동, 보수동 주민이라고 적으며, 이들 중 신자들이 대연성당까지 다녀야 했으나 거리가 멀고 신자가 늘어 용호동의 한독유치원 건물을 빌려 임시 공소로 사용했다고 설명한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동항 본당 3대 주임 트라우너(하) 신부가 유치원 건물을 임대해 1974년 10월 용호동 공소를 설립했다고 적는다. 공소 신자들은 1976년 12월 ‘성당 건립 준비위원회’를 결성했고, 1977년 11월 성당 부지를 매입했다. 부지 규모를 한국가톨릭대사전은 300평, 부산역사문화대전은 1977년 11월 10일 부산교구가 매입한 1,000㎡ 정도라고 적는다.
〔본당 설립과 첫 성당〕 1978년 7월 골롬반회 강대식 신부가 공소에 부임했다(부산역사문화대전은 7월 10일로 적는다). 강 신부는 공소 신자들의 성금과 골롬반 외방선교회의 지원금으로 1978년 8월 성당 건축 공사를 시작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성당 완공일을 부산역사문화대전은 11월 30일, 한국가톨릭대사전은 12월 8일 단층 성당(145평) 완공과 봉헌식으로 적어 출처마다 다르다. 두 출처 모두 1978년 12월 3일 용호 본당이 설립되고 강대식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임명되었다고 적는다.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강 신부는 부임과 함께 신자들이 본당에서 주체적으로 활동하도록 사목회를 구성하고 관할 지역을 11구역으로 세분화했다.
〔성장〕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1979년 3월 인보 성체 수도회 분원을 마련하고 9월 수녀원(16평)을 신축했다. 신자가 늘자 1980년 8월 성당 증축위원회를 구성해 이듬해 10월 공사를 시작했고, 1982년 5월 3층 성당(180평)을 완공해 봉헌식을 가졌다(부산역사문화대전은 1982년 5월 20일 증축 성당 축성식으로 적는다). 2대 주임 루스(J.W. Ruth, 조) 요셉 신부는 신병으로 귀국했고, 3대 주임 황태웅 요셉 신부는 본당 단체를 구성하고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신앙생활 활성화에 힘썼다. 부산역사문화대전에 따르면 1984년 2월 16일 골롬반회에서 부산교구로 이속되면서 황태웅 신부가 부임했다. 6대 주임 손덕만 신부는 1996년 10월 사제관, 수녀원, 교육관으로 쓸 건물 공사를 시작해 1998년 7월 지하 1층·지상 3층 건물(156평)을 완공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부산역사문화대전은 1998년 7월 3일 새 사제관 건물 완공으로 적는다). 2000년에는 대희년을 맞아 불우 청소년과 독거 노인을 돌보자는 ‘자녀 갖기 및 부모 모시기 운동’을 펼쳤다.
〔분가〕 2002년 1월 11일 용호1동 본당을 분리·설립하면서 778세대 1,892명의 교적을 이관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부산역사문화대전은 이를 2002년 용호동 일부를 신설된 이기대성당으로 분가한 것으로 적는다. 이후 8대 주임 김형근 신부가 부임해 미사 전후 성서 봉독과 묵주 기도를 전 신자와 함께하며 본당의 내실화에 힘썼다(한국가톨릭대사전). 2011년 8월 20일에는 숙원 사업이던 주차장 부지를 매입하고 축성했다(부산역사문화대전).
〔교세와 현황〕 한국가톨릭대사전의 교세는 1978년 925명, 1982년 2,271명, 1985년 3,097명, 1991년 5,627명, 1996년 6,267명, 2000년 6,633명이고, 당시 관할 구역은 용호2·4동 전 지역과 용호1·3동 일부였다. 부산역사문화대전에 따르면 2013년 현재 교우 수는 5,795명이며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를 중심으로 빈첸시오회, 성모회, 안나회, 연도회, 제대회, 대건안드레아회, 사도회, 선교로사리오회, 반석회 등의 단체가 있고, 대지 1,620㎡ 정도에 성당·강당·사제관·수녀원 등의 건물 면적은 5,023㎡ 정도이다. 같은 출처는 도시 계획으로 이주민이 많아 성당이 설립되었으나 지역 계발이 쉽지 않아 성당 발전이 더뎠고, 2000년대 이후 동국제강이 떠난 자리와 용호만 지역에 대단위 아파트가 들어서며 신자가 늘어 성당이 활성화되고 있다고 평가한다.
관련 장소와 인물
- 대연 본당: 용호 본당이 분리되어 나온 본당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신자들이 공소 시기에 다니던 성당이기도 하다(부산역사문화대전).
- 용호1동 본당(이기대성당): 2002년 용호성당에서 분가한 본당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부산역사문화대전).
- 강대식(Denis Kearney) 신부: 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으로 용호 본당의 초대 주임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부산역사문화대전).
- 역대 주임(한국가톨릭대사전, 2002년 서술 기준): 초대 카니(강대식) 디오니시오(1978.12~1982.6), 2대 루스(조) 요셉(1982.6~1984.2), 3대 황태웅 요셉(1984.2~1987.2), 4대 한영일 니콜라오(1987.2~1990.2), 5대 김상호 세례자 요한(1990.2~1996.2), 6대 손덕만 토마스(1996.2~2001.2), 7대 김정수 대건 안드레아(2001.2~2002.1), 8대 김형근 블라시오(2002.1~).
참고자료 및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부산역사문화대전 “용호성당”. 설립 목적과 변천(1978.12.3. 본당 승격, 1982.5.20. 증축 성당 축성), 2002년 분가, 2013년 현황.
https://www.grandculture.net/busan/toc/GC04210907 - 한국가톨릭대사전, “용호 본당”(9권). 공소 시기와 본당 설립, 성당 증축, 사제관·교육관 건립, 2002년 분리, 교세 통계와 역대 주임 명단.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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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용호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6일 13:51. https://missamap.com/ko/kr/busan-yongho-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