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 성당
개요
동래성당은 부산광역시 동래구 수안동에 있는 천주교 부산교구 소속 성당으로, 1951년 9월 부산진 본당에서 분리·설립되었다. 주보는 성모 성심이다. 1866년 병인박해 때 동래 출신 신자들이 순교한 지역에 자리하며, 초대 주임은 김충무(클레멘스) 신부이다.
역사
〔전사〕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동래 지방은 1866년 병인박해 직전까지 경상남도 천주교의 중심지로, 다블뤼(안돈이) 부주교, 최양업 신부, 리델(이복명) 신부 등이 이곳을 중심으로 경남 동북부 지역에 전교했다. 병인박해 때 이정식(요한) 회장 등 7명이 수영 장대에서 순교한 뒤 신자들이 자취를 감추었고, 1890년경 초대 경남 교회 주임 죠조(조득하) 신부가 영도에 부임한 뒤에도 동래에는 공소조차 설립되지 못했다. 부산역사문화대전은 이정식 회장 등 7명이 순교한 뒤 신자들이 흩어졌다고 적고, 평가 항목에서는 이 지역 출신으로 병인박해 때 순교한 8명 가운데 이정식(요한)과 양재현(마르티노)이 2014년 8월 16일 복자가 될 것이라고 적는다.
〔공소 시대〕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동래에 다시 복음이 전해진 것은 1916년 5월경 최 막달레나가 이주하면서부터였다. 기름 장사를 하던 최 할머니의 노력으로 50여 명이 입교했고, 이들이 정 베네딕도 회장을 중심으로 1925년 부산진 본당 관할 동래 공소를 발족시켰다. 부산역사문화대전은 1925년 델랑드(Deslandes) 신부가 동래읍에 공소를 세우면서 복음이 다시 활기를 띠었다고 적는다.
〔본당 설립〕 6·25 전쟁으로 피난 신자가 늘어 공소 주변에 교우촌이 형성되자, 황해도 사창 본당 주임으로 있다가 월남해 부산진 본당에 피난 와 있던 김충무 신부가 1951년 9월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면서 본당으로 승격·분리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부산역사문화대전은 설립일을 1951년 9월 20일로 적으며, 김충무 신부가 교우들과 협력해 본당을 설립했고 동래성당이 부산 지역의 첫 복음이 뿌려진 곳(현 명장동)을 중심으로 부산 동북쪽 지역 전체를 담당했다고 설명한다.
〔성당 건축〕 한국가톨릭대사전은 피난민 유입으로 신자가 급증하자 미군 군종 신부의 건축 자재 원조, 이주황 소령의 중장비 지원, 김충무 신부의 사목적 배려로 복천동의 공소 자리(현 복천동 151번지 천주교 아파트)에 건평 70평의 목조 성당을 건립하고 1954년 10월 24일 축성했다고 적는다(부산역사문화대전은 231㎡ 규모로, 1954년 10월 26일 축성식이라고 적어 날짜가 다르다). 이후 1965년 1월 수안동 464번지에 420평의 성당 부지를 매입하고 그해 7월 20일 신축 성당 기공식을 거행했으며, 1966년 11월 5일 380평 규모의 성당·사무실·수녀원 등을 갖춘 건물을 완공해 복천동 옛 성당에서 이곳으로 이전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부산역사문화대전은 1966년 교구의 지원으로 부지를 매입해 1967년 9월 26일 현대식 신축 성전을 축성했고 이전 시기를 1966년 9월 5일로 적는다. 1977년 8월 28일에는 인근 부지 56평에 사제관, 수녀원, 교리실 등을 갖춘 110평 규모의 3층 건물을 완공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빈민 주택 사업〕 부산역사문화대전에 따르면 1960년부터 부산교구가 오스트리아 부인의 도움으로 ‘빈민 주택 사업’을 시행해 1965년 복천동에 단독 주택 16세대(2만 달러), 1966년 아파트 15세대(2만 달러)를 건설했다.
〔사목 활동〕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레지오 마리애가 크게 발전해 1982년 1월 본당 단독의 꾸리아를 창단하고 9월 2개로 분리했으며, 1993년 1월 2개 꾸리아를 더해 1995년 현재 1개 꼬미시움과 4개 꾸리아가 되었다. 1980년 1월에는 천주교와 개신교의 교회 일치를 염원하며 장로교 수안교회에서 기도회를 열었고, 1981년 9월 본당 설정 30주년을 맞아 『동래 선교 30년』을 발간했다. 1980년부터 매년 2~3회 단체별 피정을 실시했고, 1990년부터는 모든 신자를 대상으로 매년 1회의 성지 순례와 2회의 피정을 실시했으며, 의학 강좌와 헌혈 운동에도 참여했다. 1993년 9월에는 선교 세미나를 열었다.
〔분가와 현황〕 동래 본당에서 분리된 본당은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1957년 온천 본당과 양정 본당, 1968년 양산 본당, 1972년 반송 본당, 1977년 반여 본당, 1985년 안락 본당이며, 1981년 공소로 설립되었다가 1988년 승격·분리된 장산 본당도 있다. 안락 본당에 1억 3천여만 원을 비롯해 장산·부곡 본당 등 인근 본당 성당 건립 기금을 조성해 전달하기도 했다. 부산역사문화대전은 분가한 본당으로 온천, 양정, 양산, 반송, 반여, 안락, 금정을 들고, 동래성당이 20여 명의 사제와 50여 명의 수도자를 배출한 성소의 산실이라고 적는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의 교세는 1976년 2,177명, 1983년 4,953명, 1988년 4,414명, 1993년 5,524명이다. 2013년 현재 교우 수는 6,222명이며 빈첸시오회, 베드로회, 성모회, 안나회, 연도회, 제대회, 보스코회 등의 단체가 있고, 대지 1,973㎡ 정도에 성당·강당·사제관·수녀원 등의 건물 면적은 5,567㎡ 정도이다(부산역사문화대전).
관련 장소와 인물
- 부산진 본당: 동래 본당이 분리되어 나온 본당이며, 동래 공소가 1925년 이 본당 관할로 발족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 온천, 양정, 양산, 반송, 반여, 안락, 장산 본당: 동래 본당에서 분리된 본당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부산역사문화대전은 금정성당도 분가 본당으로 든다.
- 이정식(요한), 양재현(마르티노): 병인박해 때 순교한 동래 출신 신자이다(부산역사문화대전).
- 김충무(클레멘스) 신부: 동래 본당의 초대 주임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부산역사문화대전).
- 역대 주임(한국가톨릭대사전, 1990년대 서술 기준): 초대 김충무 글레멘스(1951.9~1957.7), 2대 이태준 야고보(1957.7~1961.5), 3대 김준필 아우구스티노(1961.5~1969.3), 4대 정환국 알로이시오(1969.3~11), 5대 유창호 토마(1969.11~1971.10), 6대 김준필(1971.10~1972.11), 7대 김태호 알로이시오(1972.11~1976.11), 8대 이돈우 레오(1976.11~1978.6), 9대 최영관 마카리오(1978.6~7), 10대 정재석 요셉(1978.7~1979.2), 11대 허성 야고보(1979.2~1983.7), 12대 황태웅 요셉(1983.7~1984.1), 13대 신윤우 갈리스도(1984.1~1985.8), 14대 이옥군 타대오(1985.8~1990.2), 15대 한영일 니콜라오(1990.2~).
참고자료 및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부산역사문화대전 “동래성당”. 병인박해와 공소, 본당 설립(1951.9.20.), 목조 성당(1954)과 신축 성전(1967), 빈민 주택 사업, 분가, 2013년 현황.
https://www.grandculture.net/busan/toc/GC04210765 - 한국가톨릭대사전, “동래 본당”(3권). 전사, 공소 시대, 설립과 성당 건축, 사목 활동, 분리 본당, 교세 통계와 역대 주임 명단.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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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10월 16일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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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동래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6일 14:06. https://missamap.com/ko/kr/busan-dongrae-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