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량 성당

목차
  1. 개요
  2. 역사
  3. 건축과 공간
  4. 관련 장소와 인물
  5.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초량성당은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에 있는 천주교 부산교구 소속 성당으로, 1951년 5월 1일 초량 본당으로 설립되었다. 주보는 예수 성심이다. 메리놀 외방선교회의 코놀스(카놀) 요셉 신부가 초대 주임을 맡았고, 1962년 7월 완공된 성당 건물은 부산역사문화대전이 부산 지역 기능주의 성당의 대표적인 건축으로 평가하는 건물이다.

역사

〔전사〕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절영도(현 영도)에 있던 부산 지역 첫 본당인 부산포(현 범일) 본당이 1893년 초량에 새 성당을 짓고 이주한 것이 초량 지역의 첫 성당이었다. 이후 부산포 본당 7대 주임 줄리앙(권유량) 신부가 본당의 위치를 초량에서 범일동으로 옮길 것을 계획하고 대구 대목구 드망즈(안세화) 주교의 인가를 받았으며, 8대 주임 페셸(백학로) 신부에 의해 1916년 1월 범일동으로 본당이 이전되어 15년간의 초량 시대가 끝났다.

〔본당 설립〕 한국 전쟁으로 전국의 피난민들이 부산에 모여들어 신자가 늘자 부산 지역에 성당을 늘릴 필요가 커졌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본국에 돌아갔던 메리놀 외방전교회의 코놀스 신부가 한국으로 돌아와 초량에 정착해, 사재를 털고 동료 사제들의 도움을 받아 초량2동 945번지의 대지 150평과 건물 2동을 매입하고 내부 공사를 했다고 적는다. 공사가 끝나자 대구 대목구장 최덕홍(요한) 주교의 인가를 받아 1951년 5월 1일 초량 본당이 설립되었고 코놀스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임명되었다. 부산역사문화대전도 미국인 메리놀 외방선교회 선교사 카놀 요셉(한국명 권약슬) 신부가 초량에 정착한 뒤 대구교구에 본당 설립을 신청했고, 대구교구가 1951년 5월 1일자로 설립을 인가하며 그를 초대 주임으로 임명했다고 적는다. 카놀 신부는 적산 가옥 두 채를 구입해 초량공교회로 사용했다(부산역사문화대전).

〔초기 사목〕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코놀스 신부는 미국 가톨릭 복지 협의회(N.C.W.C.)에서 구제 물자를 제공받아 전교에 힘썼고, 피난 중이던 서울 대목구의 임화길(안드레아) 신부의 협조도 받았다. 피난민 신자와 예비자가 급증해 주택을 개조한 작은 성당으로는 수용하기 어려워지자 2대 주임 김경우 신부가 본당 주변의 토지를 매입해 456.95평의 토지를 마련했다. 1956년 11월에는 부산 최초로 ‘임마꿀라따 꾸리아’가 설립되었고 이듬해 꼬미시움으로 승격되었다. 부산역사문화대전은 이 꾸리아가 천주교 부산교구에서 처음 창단된 상급 기관으로 동구 지역 외교인 선교에 앞장섰다고 적는다. 1957년 5월 30일에는 본당명을 ‘초량 공교회’에서 ‘초량 교회’로 변경했다(두 출처 공통).

〔성당 신축〕 1959년 2월 성전 신축 기성회가 구성되어 1961년 4월부터 성당 신축 공사가 시작되었고, 1962년 7월 성당이 완공되어 8월 30일 최재선(요한)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가졌다(한국가톨릭대사전). 부산역사문화대전은 기성회를 조직해 모금을 하고 전 신자의 노력으로 성당이 완공되어 1962년 8월 30일 봉헌식을 가졌다고 적는다. 박정일(미카엘) 신부는 2대 보좌 신부로 재임하며 1962년 2월 가톨릭노동청년회(J.O.C.)를 설립해 이후 부산 지역 각 본당의 가톨릭노동청년회 창설의 기초를 마련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부산역사문화대전은 이를 부산 지역 노동 운동의 효시로 적는다.

〔소식지와 분가〕 본당 소식지 『겨자씨』는 천주교 부산교구 주보 『가톨릭 부산』의 모태가 되었는데, 발간 시기를 부산역사문화대전은 1964년 1월, 한국가톨릭대사전은 1964년 11월로 적어 출처마다 다르다. 분가한 본당은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1962년 7월 수정 본당, 1967년 10월 구봉 본당, 1969년 3월 영주 본당이고, 부산역사문화대전은 1969년에 화교성당과 영주성당이 분리되었다고 적는다.

〔1960~1990년대〕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3대 주임 김성도 신부는 기존 건물을 개조해 1966년 2월 수녀원을 준공하고 3월 올리베타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분원을 마련했다. 4대 주임 안달원 신부는 피난 신자들의 전출입으로 어수선하던 교적을 정리해 교무 행정 체계를 세우고 교우 가정 명패 달기 운동을 펼쳤다. 5대 주임 박유식 신부는 1972년 ‘평화 봉사단’을 조직해 부산 시내 양로원과 아동 복지 시설에서 봉사했고, 7대 주임 최영철 신부는 1975년 3월 공사를 시작해 5월 어린이 탁아소를 열었다. 8대 주임 김준필 신부는 1976년 8월 『겨자씨 : 본당 설립 25돐』을 발간했다. 10대 주임 김기홍 신부는 1980년 12월 성당 옆 가옥을 매입해 수녀원을 이전하고 옛 수녀원을 교리실과 회합실로 고쳐 1981년 11월 축복식을 가졌으며, 본당 안에 야간 학교를 열어 중등 과정 검정고시반을 운영했다. 12대 주임 오수영 신부는 성체 조배실을 만들어 1985년 12월 부산교구 최초로 지속적인 성체 조배를 시작했고(부산역사문화대전도 부산 본당 가운데 처음이라고 적는다), 1984년 10월에는 종탑에 예수 성심상을 설치했다. 13대 박문선 신부는 본당 전화번호부를 발간했고, 14대 김태호 신부는 교구 내 성지 순례를 강조했으며 1991년 6월 탁아소로 쓰던 강당을 본래 모습으로 되돌렸다.

〔맹인 선교회〕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1984년 창립된 맹인 선교회의 사무실이 본래 부산 중앙 본당 안에 있다가 1988년 초량 본당 관할인 초량1동으로 옮겨 오자, 본당은 레지오 마리애 창단을 권유해 1988년과 1994년 쁘레시디움이 하나씩 창단되었다.

〔1990년대 이후〕 15대 강종석 신부는 외짝 교우 배우자 모임을 마련했고, 16대 윤희동 신부는 성경 공부와 성서 쓰기 운동을 진행했다. 윤 신부는 1996년부터 출입문과 창틀을 교체하고 제대와 제단, 강당을 고쳤으며 액자형 14처를 동판의 14처 상으로 바꾸었고, 성모 성심상과 예수 성심상을 교체해 1999년 11월 축성식을 가졌다(한국가톨릭대사전). 17대 차공명 신부 때는 2001년 6월부터 본당 우측 폭 10m 도로 확장 공사가 시행되어 수녀원과 성체 조배실 등이 철거될 처지가 되자 교육관을 새로 짓기로 했다. 2001년 6월 본당 설립 50주년 기념 미사를 봉헌하고 『초량 성당 50년사』를 발간했으며, 2003년 1월 새 교육관(지하 1층·지상 3층, 149평)을 준공했다. 18대 윤명기 신부가 2003년 9월부터 재임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2003년 서술 기준).

〔현황〕 한국가톨릭대사전은 관할 구역이 초량1·2·3·4동 전 지역이라고 적고, 교세를 1953년 1,485명, 1958년 3,390명, 1963년 4,220명, 1968년 1,986명, 1973년 2,120명, 1978년 2,695명, 1983년 3,034명, 1988년 3,500명, 1993년 3,706명, 1998년 3,320명, 2003년 3,439명으로 기록한다. 부산역사문화대전에 따르면 1990년대 들어 지역의 낙후와 인구 감소, 신자 노령화로 복음화 사업이 어렵게 진행되고 있으나 최근에는 동남아시아 출신 이주 노동자를 위한 사목 계획을 세우고 있다. 2013년 현재 교우 수는 3,151명이고 평신도사도직협의회를 중심으로 사도회, 반석회, 빈첸시오회, 연도회 등의 단체가 있으며, 대지는 1,060㎡, 성당·사제관·수녀원 등의 건평은 2,034㎡ 정도이다. 부산역사문화대전은 본당 지역의 인구 감소로 세례식을 연 1회 거행하고 10여 명이 세례를 받는다고 전한다. 같은 출처는 이 성당이 설립 이후 1980년대까지 동구 지역 복음화의 중심지였고, 교구 최초로 꾸리아, 가톨릭노동청년회, 지속적인 성체조배회를 발족했다고 평가한다.

건축과 공간

부산역사문화대전의 건축물 항목은 초량성당 건물이 1962년 7월 완공된 기능주의 양식의 철근 콘크리트조 건물이라고 설명한다. 연면적은 1,391.87㎡의 지상 5층이며, 고딕 건축 양식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것으로 종탑과 파사드의 수직으로 높이 올린 형식,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이를 볼 수 있다. 내부는 중2층이고 원형 계단이 특이하다. 언덕에 있어 3층 건물이면서도 경사지를 살려 2층에서 바로 출입할 수 있고, 창이 많아 빛이 예배당 깊숙이 들어온다. 집회 공간인 성전이 가장 높은 층에 있고 부속실이 아래층에 있다.

건물의 소유자는 재단법인 천주교 부산교구, 관리자는 천주교 초량성당이다. 1996년 본당 내 제대와 제단, 강당을 개·보수했고, 2003년 1월 성당 옆에 지하 1층·지상 3층 규모의 교육관을 준공했다. 같은 출처는 이 건물이 부산 지역 가톨릭 성당 건축 가운데 경제성과 기능성을 고려한 기능주의 성당의 대표적인 건축으로 평가되며, 같은 유형의 부산·경상남도 지역 대표 성당으로 김해성당, 양정성당, 괴정성당을 든다고 적는다.

관련 장소와 인물

  • 부산포(범일) 본당: 1893년 초량에 새 성당을 지어 이주했다가 1916년 1월 범일동으로 이전한 부산 지역 첫 본당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 수정 본당(1962년 7월), 구봉 본당(1967년 10월), 영주 본당(1969년 3월): 초량 본당에서 분할된 본당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부산역사문화대전은 화교성당과 영주성당(1969년)을 함께 든다.
  • 코놀스(카놀) 요셉 신부(한국명 권약슬): 메리놀 외방전교회 소속으로 초량 본당의 설립자이자 초대 주임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부산역사문화대전).
  • 역대 주임(한국가톨릭대사전, 2003년 서술 기준): 초대 코놀스 요셉(1951.5~1955.1), 2대 김경우 알렉시오(1955.1~1966.1), 3대 김성도 모세(1966.1~1968.1), 4대 안달원 베드로(1968.1~1971.10), 5대 박유식 안드레아(1971.10~1972.11), 임시 최영관 마카리오(1972.12~1973.3), 6대 강요안 요한(1973.3~1974.3), 7대 최영철 알로이시오(1974.3~1975.12), 8대 김준필 아우구스티노(1975.12~1976.11), 9대 허성 야고보(1976.11~1978.1), 10대 김기홍 베르나르도(1978.1~1982.2), 11대 이상호 라이문도(1982.2~1983.2), 12대 오수영 히지노(1983.2~1986.2), 13대 박문선 야고보(1986.2~1988.2), 14대 김태호 알로이시오(1988.2~1992.2), 15대 강종석 베드로(1992.2~1995.2), 16대 윤희동 바울리노(1995.2~2000.1), 17대 차공명 프란치스코 살레시오(2000.1~2003.9), 18대 윤명기 요한 칸시오(2003.9~).

참고자료 및 출처

  1. 한국학중앙연구원, 부산역사문화대전 “초량성당”(기관 항목). 본당 설립(1951.5.1.), 초량공교회 개칭(1957.5.30.), 성당 봉헌식(1962.8.30.), 분가, 노동청년회와 성체조배회 등 교구 최초 사업, 2013년 현황.
    https://www.grandculture.net/busan/toc/GC04215975
  2. 한국학중앙연구원, 부산역사문화대전 “초량성당”(건축물 항목). 1962년 7월 완공, 기능주의 양식, 연면적과 공간 구성, 1996년 개·보수와 2003년 교육관 준공.
    https://www.grandculture.net/busan/toc/GC04202632
  3. 한국가톨릭대사전, “초량 본당”(11권). 전사, 본당 설립, 역대 주임 사목, 교세 통계, 분할 본당, 역대 주임 명단.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5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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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6일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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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6일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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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초량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6일 13:42. https://missamap.com/ko/kr/busan-choryang-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