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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소개

초량 성당은 부산교구 중앙지구에 속한 본당으로, 부산 동구 초량 지역의 신자들이 미사와 성사를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이어 가는 공동체이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이 본당의 주보를 예수 성심으로 기록한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비를 묵상하는 예수 성심 신심은 본당의 전례와 공동체 생활을 이해하는 한 축을 이룬다.

초량이라는 지역은 부산 천주교 역사에서 서로 다른 시대의 기억이 겹치는 곳이다. 부산 지역 초기 본당이 한때 초량에 자리했던 흔적이 있고, 한국전쟁기에는 피란민이 몰려든 부산의 상황 속에서 별도의 초량 본당 공동체가 다시 형성되었다. 이후 본당은 전례와 교리 교육뿐 아니라 평신도 사도직과 교구 소통의 성장에도 참여했다. 오늘의 초량 성당은 부산 원도심의 생활권 안에서 이러한 역사적 층위를 품고 지역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이어 가는 본당이다.

역사와 유래

초량 지역의 첫 본당 역사는 부산 지역 최초 본당의 이동과 연결된다. 절영도에 있던 부산포 본당은 1893년 초량에 새 성당을 마련해 이전했고, 이 시기 초량은 부산 선교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그러나 도시의 성장과 교통 여건을 고려해 본당은 1916년 범일동으로 옮겨 갔으며, 초량에서의 첫 본당 시대는 일단 막을 내렸다.

현재 초량 본당의 직접적인 기원은 한국전쟁기 피란민 증가와 관련된다. 전쟁으로 부산에 많은 이들이 모이며 성당 증설이 필요해지자 메리놀 외방전교회 코놀스 신부가 초량에 정착해 대지와 건물을 마련하고 내부를 성당으로 정비했다. 대구대목구장의 인가를 받아 1951년 5월 1일 초량 본당이 설립되었고, 코놀스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했다. 본당은 전쟁과 피란의 현실 속에서 신앙 공동체를 조직하고 구호와 사목을 함께 감당했다.

1950년대 중반에는 평신도 신심과 사도직 조직이 빠르게 성장했다. 1956년 부산 지역 최초의 레지오 마리애 꾸리아가 초량 본당에서 조직되었고, 신자 증가에 따라 보다 넓은 전례 공간의 필요도 커졌다. 1961년 새 성당 공사를 시작해 1962년 완공·봉헌했으며, 같은 시기 가톨릭 노동청년회 활동도 자리 잡았다.

1964년에는 본당 주보인 「겨자씨」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이 간행물은 이후 부산교구의 소식과 신앙을 나누는 교구 매체의 전신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초량 본당의 역사는 항구도시 부산의 초기 선교 거점이었던 기억 위에, 전쟁기 피란 공동체의 필요로 새 본당이 세워지고 평신도 사도직과 교구적 소통이 성장한 과정을 겹쳐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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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isco Diary

교구

부산교구 (Diocese of Busan)

공식 홈페이지: https://www.catholicbusa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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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태: 공식 출처최종 업데이트 2026년 8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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