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 배론
개요
배론성지는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구학리에 있는 천주교 원주교구의 성지로, 신유박해(1801) 때 황사영이 토굴에 숨어 백서를 쓴 곳이며 한국 최초의 신학교인 성 요셉 신학당(1855~1866)이 있던 곳이다. 한국인 두 번째 사제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묘가 있고, 2001년 충청북도 기념물 제118호로 지정되었다.
역사
〔교우촌 배론과 지명〕 디지털제천문화대전은 70여 호가 모여 살던 배론이 자연환경상 쉽게 찾아가기 어려운 곳이어서, 조선 후기 박해가 시작되자 천주교인들이 숨을 곳을 찾아 모여들며 신자촌이 형성되었다고 적는다. 지명은 골짜기가 배 밑바닥처럼 생겼다 하여 처음에는 ‘주론(舟論)’이라 불렀다가 ‘배론’이 되었다는 설이 있고, 신유박해와 병인박해를 거치며 조정이 ‘금지된 수치스러운 마을’이라는 뜻으로 배론(排論)이라 불렀다는 설도 있다.
〔황사영 백서 토굴(1801)〕 디지털제천문화대전에 따르면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황사영은 그해 2월 체포령을 피해 서울을 빠져나와 원주·영월·영춘·예천·순흥을 거쳐 제천 무도리에 잠시 머문 뒤 4월 중순경 배론에 도착해 김귀동의 집으로 피신했고, 옹기점 옆에 토굴을 파고 8개월 동안 숨어 지냈다. 이곳에서 김한빈·황심·송재기에게 박해 소식을 들었고, 8월 23일 황심에게 주문모 신부의 순교 소식을 들은 뒤 중국 북경의 주교에게 보내는 탄원서, 즉 백서를 쓰기 시작했다. 배론성지 공식 홈페이지는 백서의 재질이 명주천이고 크기가 가로 62cm, 세로 40cm이며 세필로 쓴 글자가 122행 13,384자이고, 인사말(1~5행), 신유박해의 진행 과정(6~32행), 순교자 열전(32~90행), 교회 재건과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한 5가지 방안(90~118행), 관면 요청과 맺음말(119~122행)로 구성되었다고 적는다. 편지 심부름을 맡은 황심 토마스가 9월 15일 배론에서 체포되었고(성지 연혁은 9월 25일로 적는다), 황사영은 9월 29일 김한빈과 함께 배론에서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고 백서가 압수되었다. 황사영은 1801년 11월 5일 서소문 밖에서 대역부도의 죄로 능지처참되었다(문화대전은 당시 27세로 적는다). 이튿날 어머니 이윤혜는 거제도로, 아내 정난주는 제주도로, 두 살 된 아들 황경한은 추자도로 귀양 갔고, 백서 원본은 로마 교황청 바티칸 민속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문화대전은 황사영이 백서에서 박해를 끝내려면 외국 군대의 군사적 원조가 필요하다는 사견을 밝히고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한 5가지 의견을 제시했으며, 백서가 박해의 생생한 기록이자 박해가 당파 싸움에도 이용되었음을 알리는 자료로 남았다고 평가한다.
〔성 요셉 신학당(1855~1866)〕 성지 연혁에 따르면 1843년 장주기 요셉이 가족을 데리고 배론으로 이주했고, 1855년 2월 4일 이전 메스트로 신부가 장주기 요셉의 집에 한국 최초의 신학교를 세웠다. 1856년 8월 푸르티에 신부가 책임자로 부임해 장주기를 공소 회장으로 임명했고, 1859년 10월 베르뇌 주교가 배론 신학교를 ‘성요셉 신학당’으로 명명했으며, 1862년 프티니콜라 신부가 교수로 부임했다. 신학 교육은 라틴어과와 신학과로 나뉘어 있었고 신학과에서는 수사학, 철학, 신학을 가르쳤으며, 두 서양 신부는 교리서를 번역하고 ‘라틴어-한국어-한문’ 사전을 만들었다. 1866년 3월 2일 서울에서 남종삼 요한을 체포하러 온 포졸들이 신학교를 급습해 두 신부를 체포했고, 두 신부는 3월 11일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장주기 요셉은 3월 30일 충남 보령 갈매못에서 순교했는데, 그때 흰 무지개 다섯이 하늘을 뚫고 올라가는 것을 사람들이 보았다고 전해진다. 홈페이지는 성 요셉 신학당이 한국 교회 최초의 신학교이자 조선 최초의 근대 신학 교육 기관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고 적는다. 병인박해 때 배론을 포함한 제천 지역에서 천주교인들이 소유한 토지가 모두 관에 몰수되었다(문화대전).
〔최양업 신부의 묘(1861~)〕 성지 홈페이지는 최양업 토마스(1821~1861) 신부가 성인 최경환 프란치스코(1805~1839)와 복자 이성례 마리아(1801~1840)의 아들이며, 1836년 12월 김대건·최방제와 함께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마카오에서 공부하고 1849년 4월 15일 상하이에서 사제품을 받았다고 적는다. 귀국 후 11년 6개월 동안 산간 오지의 교우들을 방문하며 사목했는데 구역이 전라도·경상도·충청도 등 5도에 신자 6천여 명과 127개 공소였고, 1861년 6월 15일 경상도 전교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던 중 과로로 문경에서 선종했다. 그해 11월 베르뇌 주교 집전으로 당시 신학교가 있던 배론에 안장되었다. 연혁에는 1945년 9월 27일 원주·풍수원·양평의 신부들과 풍수원 및 인근 교우 3~4백 명이 모인 가운데 제천 봉회만 신부의 주례로 묘비 제막식을 가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문화대전은 1940년 제천 본당 박일규 신부가 묘비를 세우는 문제를 논의했으나 일제의 압력으로 성사되지 못했고, 1945년 묘소가 정비되었다고 적는다.
〔신앙의 자유 이후 배론〕 문화대전은 1886년 한불조약으로 신앙의 자유가 인정된 뒤 감곡본당 초대 주임 부이용 신부의 노력으로 몰수된 교회와 신자들의 땅을 되찾았고, 1928년 이윤상(베드로)이 배론신학교 부근 개인 소유 산림 646정보를 경성교구 유지재단에 증여해 여러 천주교 시설이 들어섰다고 적는다. 일제강점기에는 신학교로 쓰던 가옥을 빼앗기는 등 교세가 기울었다. 1922년 장호원 본당 관할의 배론에 공소 강당을 신축하고 안창현을 회장으로 임명했으며, 1929년 4월 30일 원주본당 정규량 레오 신부가 경향잡지에 배론의 역사와 지형, 학당, 최 신부 묘소를 소개하는 글을 기고했다. 성지 연혁은 1904년 흩어졌던 교우들이 다시 모여들어 용소막 본당 관할이 되었고, 1940년 7월 제천 본당 관할이 되었다고 적는다. 1956년에는 배론공소에 강당과 사택이 완공되었다.
〔원주교구 관할과 성지 개발〕 성지 연혁은 1969년 5월 1일 교구 관할 조정으로 청주교구 관할이던 제천군·단양군이 원주교구로 이관될 때 서울교구가 직접 관리하던 배론의 관할권도 원주교구로 이관되었다고 적는다. 문화대전은 원주교구 초대 교구장 지학순 주교가 1970년부터 성지 개발 계획을 세웠고, 교구 재단과 성심학원재단이 1976년 공동 개발에 합의해 개발에 들어갔으며, 1988년 양대석 신부가 서울대 이원순 교수의 고증으로 토굴을 복원했다고 적는다. 6·25 전쟁 때 불탄 성요셉신학교는 2003년 복원되었다. 1979년 9월 23일 순교자 현양대회가 열렸고 이후 매년 배론성지에서 개최되며, 1990년 11월 29일 천주의 모친 성 도미니코 관상 봉쇄수도원이 입주했다. 2006년 배론공소가 준 본당으로 승격되어 배론성당이 되었다. 문화영성연구소는 문화대전이 2010년 개관으로, 성지 연혁이 2011년 3월 12일 문화영성연구소 및 지학순 주교 기념관 개관으로 적는다. 2001년 3월 2일 충청북도 기념물 제11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로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북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문화대전). 2016년 11월 29일 은총의 성모 마리아 기도학교 건립위원회가 발족해 2018년 3월 22일 기공식을 거쳐 2020년 8월 15일 봉헌식을 가졌다(성지 연혁).
건축과 공간
디지털제천문화대전은 현재 성지 경내에 종교 시설로 순교자들의 집, 성 요셉 성당, 황사영순교현양탑, 사제관과 경당, 최양업신부기념성당, 봉쇄수녀원이 있고 사회복지 시설로 살레시오의 집이 있다고 적는다. 황사영이 숨었던 토굴은 옹기굴을 가장한 것이며(성지 홈페이지) 1988년에 복원되었고, 6·25 전쟁 때 불탄 성 요셉 신학당은 2003년 복원되었다. 성지는 재단법인 천주교 원주교구가 소유·관리하며, 순례 코스로 약식 코스, 기본 코스, 묵주기도 코스, 박달재 산행 코스, 묘재·용소막 코스, 제천 관광 경유 코스가 마련되어 있다(문화대전).
관련 장소와 인물
- 황경한: 황사영의 두 살 된 아들로 1801년 추자도로 귀양 갔다(배론성지 공식 홈페이지).
- 새남터: 푸르티에·프티니콜라 신부가 1866년 순교한 곳이다(배론성지 공식 홈페이지).
- 보령 갈매못: 장주기 요셉이 1866년 순교한 곳이다(배론성지 공식 홈페이지).
- 서소문 밖: 황사영이 1801년 처형된 곳이다(디지털제천문화대전).
- 문경: 최양업 신부가 1861년 선종한 곳이다(배론성지 공식 홈페이지).
참고자료 및 출처
- 배론성지 공식 홈페이지, 연혁. 1801년 황사영 체포부터 1843~1866년 신학당, 1969년 원주교구 이관, 2020년 기도학교 봉헌까지의 연표.
https://www.baeron.or.kr/shrine/history - 배론성지 공식 홈페이지, 황사영 백서 토굴. 토굴 생활과 백서의 형식·구성, 황심·황사영의 체포와 처형, 가족의 귀양.
https://www.baeron.or.kr/treasure/tunnel - 배론성지 공식 홈페이지, 성 요셉 신학교. 신학당의 설립과 교육, 1866년 두 신부와 장주기의 순교.
https://www.baeron.or.kr/treasure/seminary - 배론성지 공식 홈페이지, 최양업 신부님 묘소. 최양업 신부의 약력과 1861년 선종·안장.
https://www.baeron.or.kr/treasure/grave - 디지털제천문화대전, “제천 배론성지”. 충청북도 기념물 지정(2001, 2021 재지정), 1922~2010년 관할과 개발 경위, 성지 시설.
https://www.grandculture.net/jecheon/toc/GC03300711 - 디지털제천문화대전, “성난 파도를 헤치듯 박해를 헤쳐 나간 성지, 배론과 황사영”. 지명 유래, 황사영 백서 사건의 경위, 병인박해 이후 토지 환수와 지학순 주교의 성지 개발.
https://www.grandculture.net/jecheon/toc/GC0330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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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성지 배론",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3일 15:54. https://missamap.com/ko/kr/wonju-seongji-baeron-shrine/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