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소개
성지 배론은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에 자리한 원주교구의 대표적인 순례 성지로, 한국 천주교 박해사와 성직자 양성의 역사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성지 안에는 황사영이 백서를 작성한 토굴, 한국 교회의 초기 신학교였던 성 요셉 신학교의 흔적,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묘소 등 서로 다른 시대의 기억이 모여 있다. 이 때문에 배론은 특정 한 사건만 기념하는 성지라기보다 한국 교회가 박해를 견디고 성직자를 길러 내며 성장한 과정을 함께 묵상하는 장소이다.
현재 성지는 순례자들이 미사와 고해성사, 개인기도를 통해 신앙을 돌아볼 수 있도록 운영된다. 공식 순례 안내는 순례 미사와 성사 참여를 중심으로 성지를 이용하도록 안내하며, 역사 현장을 경건하게 보존하는 데 초점을 둔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공간을 걸으며 방문자는 교우촌의 생활, 박해의 기억, 사제 성소의 역사를 서로 연결해 살펴볼 수 있다.
‘배론’이라는 이름도 장소의 지형과 관련된다. 주교회의 순교자 자료는 골짜기의 모양이 배 밑바닥과 닮아 이 이름이 붙었다고 설명한다. 오늘의 성지 배론은 자연 지형 속에 남은 교우촌의 기억과 한국 교회사의 여러 층위가 함께 보존된 순례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역사와 유래
배론에 천주교 신자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교회의 자료에 따르면 1791년 무렵부터 1801년 사이 이 골짜기에 신자들이 들어와 옹기와 그릇을 만들며 생활했고, 박해를 피한 교우촌이 형성되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황사영 알렉시오는 이곳 토굴에 숨어 조선 교회의 박해 상황을 외부에 알리려는 백서를 작성했으나 체포되었고, 이후 공동체도 큰 타격을 입었다.
박해가 잦아든 뒤 1840년대에 신자 공동체가 다시 형성되었다. 1843년에는 장주기 요셉이 배론에 자리 잡았고, 1855년 초 메스트르 신부는 이곳에 성 요셉 신학교를 세웠다. 이 신학교는 한국 천주교회에서 정식으로 설립된 최초의 신학교로 평가되며, 박해 속에서도 조선인 성직자를 양성하려는 교회의 의지를 보여 주었다.
신학교는 1866년 병인박해로 중단되었다. 신학교에서 활동하던 푸르티에 신부와 프티니콜라 신부, 장주기 요셉 등은 박해 중 순교했다. 배론은 다시 큰 상처를 입었지만, 박해가 끝난 뒤 신앙 공동체는 서서히 회복되었다. 한국인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묘소가 배론에 자리하면서 이곳은 박해와 순교뿐 아니라 한국인 성직자들의 삶을 기억하는 장소가 되었다.
20세기 들어 배론의 교회사적 의미를 기리는 움직임이 더욱 구체화되었다. 1942년 신자들은 최양업 신부를 기리는 기념비를 세웠고, 이후 성지 조성과 보존이 이어지면서 백서 토굴, 신학교 터, 최양업 신부 묘소가 하나의 순례 동선 안에서 기억되게 되었다. 오늘의 성지 배론은 초기 교우촌, 신유박해, 신학교와 병인박해, 한국인 사제의 기억이 겹겹이 이어진 한국 천주교사의 중요한 현장이다.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성지 배론의 역사와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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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원주교구 (Diocese of Wonju)
공식 홈페이지: http://www.wj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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