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막 성당

목차
  1. 개요
  2. 역사
  3. 건축과 공간
  4. 관련 장소와 인물
  5.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문막성당은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문막읍에 있는 천주교 원주교구 소속 성당이다. 1958년 9월 10일 학성동 본당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사도 성 베드로이다. 부론·손곡 공소를 관할하고, 건물은 전쟁으로 파괴된 원동성당의 붉은 벽돌을 옮겨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역사

〔공소 시대〕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문막 본당 관할 구역인 부론면 일대는 일찍부터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 신앙생활을 하던 곳이다. 기해박해 때 부론면 손곡리 서지에 살던 최해성(요한)이 체포되어 1839년 10월 6일 원주 감옥에서 순교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신자들이 거주했음을 알 수 있으나, 이후의 복음사는 오랫동안 교회사에 나타나지 않는다. 박해가 끝나면서 신앙 공동체가 다시 형성되었고, 당시 문막 지역을 처음 방문한 성직자는 경상도와 강원도 일대를 담당하던 로베르(김보록) 신부였다. 그는 1882년 처음 이곳을 방문해 문막(현 부론면 법천리의 장들)과 이웃 부엉골(현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 부평리) 공동체를 공소로 설정했고, 1883년 두 공소의 신자 수는 각각 37명이었다.

1885년 10월 28일자로 예수성심신학교가 설립된 부엉골 공소에는 그해 입국한 마라발 신부가 신학교 교수로 상주하며 인근 신자들을 돌보았고, 문막 공소는 1885년 이후 드게트 신부가 담당한 염산리 본당(망답 본당의 전신) 관할이 되었다. 이때 문막 공소의 신자는 36명, 부엉골 공소의 신자는 47명이었다. 1887년 3월 부엉골의 신학교가 서울 용산으로 옮겨지면서 두 공소는 다시 드게트 신부가 관할했고, 원심이 공소(여주군 강천면 도전리)가 새로 설립되면서 문막, 곧 장들 공소의 신자는 20명으로 줄었다. 1888년 풍수원 본당이 신설되었으나 문막 일대 공소들은 계속 염산리 본당에 속했고, 1889년 르 비엘 신부가 부엉골에, 1890년 우도 신부가 원심이에 임시로 정착해 인근 신자들에게 성사를 집전했다. 1891년과 1892~1893년에는 풍수원 본당의 르 메르 신부가 장들·원심이 공소를, 1892~1893년에는 마르탱 신부가 부엉골 본당을 맡았으며, 1894년에는 부이용 신부가 부엉골 본당을 담당하면서 인근 모든 공소를 관할했다. 이때 신자 수는 부엉골 96명, 원심이 81명, 장들 45명이었다. 부이용 신부가 1896년 9월 17일 본당을 충북 장호원(감곡)으로 이전한 뒤 이들 공소는 일시 풍수원 본당 소속이 되었다가, 르 메르 신부가 원주(현 원동) 본당을 설립하면서 원주 본당으로 바뀌었다. 부엉골 공소는 신자들의 이주로 1900년대 초에 폐쇄되었지만 장들과 원심이 공소는 유지되어 1924년 신자 수가 각각 26명, 167명이었다. 1900년대 초에는 밤상골(현 문막읍 반계리)에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었고, 두둑말(현 부론면 흥호리)은 공소로 설정되었다.

〔본당 설립〕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원주 본당 관할 아래 있던 장들 공소는 후에 ‘부론 공소’로 개칭되었다. 8·15 광복 당시까지 30여 명의 신자를 유지하다가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이 정착하면서 80여 명으로 늘었다. 반면 1900년대 초 문막 지역에 형성되었던 신자 공동체는 와해되었고, 1938년경 다시 문막으로 전입한 신자 몇 세대가 박일준의 집에 모여 집회를 갖기 시작했다. 이후 원주 본당 주임 정규량(레오) 신부가 이곳을 공소(회장 박순원)로 설정했고, 당시 신자는 50명가량이었으며 광복 이후 원주 본당의 디어리(이) 신부가 사목할 때는 90여 명이었다. 신자가 100명 정도에 이르자 1948년 현 본당 소재지에 공소 강당을 건립했으나 전쟁 중에 전소되었다. 디어리 신부는 1956년 양대석(알로이시오) 보좌 신부로 하여금 문막 본당 설립을 위해 성당 건립을 추진하게 했고, 이듬해 성당과 사제관을 건립했으나 곧바로 본당 설립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디어리 신부에 이어 원주 본당 주임이 된 양대석 신부는 본당 분할을 계획해 1957년 6월 1일 학성동 본당을 분리했고, 그 결과 문막 공소는 새 본당 관할이 되었다. 이듬해 9월 10일 문막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이응현(테오도로)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임명되었다. 원주교구 순례길 안내(원주교구)는 문막에 공소가 시작된 것이 1938년 무렵이며, 1830년대부터 부론 산속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모여 살았고 근처에 여러 교우촌이 있었다고 적는다. 같은 안내는 문막성당 주변에 박해시대부터 부엉골·장뜰·두둑말 등의 교우촌이 있었고 1900년 10월 뮈텔 주교가 방문하기도 했으며, 이 교우촌이 성장하여 지금의 문막본당과 부론본당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승격 이후 발전〕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본당 승격 이후 신자들은 농촌 지역이라는 제약 속에서도 정착과 지역 복음화에 힘썼다. 2대 이정규 신부 재임기인 1962년 손곡 공소를 설립했고, 이듬해 1월 26일 부론 공소의 강당 신축을 기공하면서 이전 강당의 자재로 손곡 공소의 강당을 건립했으며, 1964년 5월 2일 부론 강당(57평)을 완공해 초대 춘천교구장 퀸란 주교의 집전으로 축성식을 거행했다. 1965년 3월 22일 춘천교구에서 원주교구가 분리·신설됨에 따라 문막 본당도 새 교구 소속이 되었다. 그해 12월 9일 문막 신용 협동 조합을 설립했고, 이듬해 9월 7일 성모회를 발족시켰다. 1969년 9월 7일에는 가톨릭 교리 신학원 출신 이천호(바오로)가 본당에 와서 4대 켈리 신부와 5대 맥파든 신부를 도와 여러 단체를 조직하고 본당 주보를 발간했다. 맥파든 신부는 문막 변전소 옆 대지 1,500평을 매입해 인근 주민을 대상으로 비영리 양돈 사업을 했다.

10대 켈리 신부 재임기인 1980년 9월 21일 부론 공소에 어린이집을 개원했고, 1981년 2월 미리내 성모 성심 수녀회 수녀들을 초청했으며, 13대 장석윤 신부 때인 1984년 성모유치원을 설립했다. 15대 이영섭 신부는 1988년 수녀원을 신축하고 이듬해 본당 전 신자가 합심해 성모 동굴을 건립했다. 16대 류충희 신부는 1992년 성당 종탑 및 지붕 개축 공사를 하고 1994년 성서 40주간을 마련했으며, 17대 김창수 신부 부임 이후에는 소공동체 활성화의 일환으로 구역·반장 모임을 강화했다. 대사전은 본당이 이농 현상으로 한때 쇠퇴기를 맞았으나 1990년대 들어 관할 구역에 공업 단지와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고 영동 고속도로가 확장되었으며 1995년 3월 1일 문막읍으로 승격되는 등의 영향으로 교세가 신장되어 재정 자립과 활성화를 꾀하게 되었다고 적는다.

〔관할과 교세〕 한국가톨릭대사전이 적은 관할 구역은 원주시 문막읍 전역과 부론면 일부이며 관할 공소는 부론·손곡 2개소이다. 교세는 1959년 397명, 1963년 619명, 1966년 848명, 1971년 770명, 1975년 725명, 1980년 897명, 1985년 805명, 1990년 748명, 1995년 901명이다. 본당에는 사목 협의회를 중심으로 레지오 마리애 4개 쁘레시디움, 성모회, 교사회, 성가대, 남성 장년층 단체인 베드로회, 60세 이상 여성 단체인 안나회 등이 있다고 적는다.

〔역대 주임 신부〕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초대 이응현 테오도로(1958.9~1961.7), 2대 이정규 비오(1961.7~1966.10), 3대 델라니(R. Delaney, 도) 리카르도(1966.10~1968.2), 4대 켈리(P. Kelly, 경) 베드로(1968.2~1969.12), 5대 맥파든(M. McFadden, 남) 미카엘(1969.12~1972.2), 6대 오라흘린(M. O’Loughin, 오) 미카엘(1972.2~1973.6), 7대 맥파든(1973.6~1975.6), 8대 오라흘린(1975.7~1978.10), 9대 콘웨이(P. Conway, 구) 파트리치오(1978.10~1980.1), 10대 켈리(J. Kelly, 이) 예레미야(1980.1~1981.9), 11대 켈리(P. Kelly, 경) 베드로(1981.9~1982.6), 12대 김종인 마태오(1982.6~1983.5), 13대 장석윤 비오(1983.5~1985.6), 14대 노세현 마티아(1985.6~1987.9), 15대 이영섭 프란치스코(1987.9~1992.1), 16대 류충희 대철 베드로(1992.1~1996.2), 17대 김창수 안드레아(1996.2~)가 부임했다.

건축과 공간

원주교구 순례길 안내는 문막성당의 1958년 본당 당시 성당 건물이 전쟁으로 파괴된 원동성당의 붉은 벽돌을 옮겨 와 지은 것이라고 적는다. 같은 안내는 지금의 성당이 옛 건물을 바탕으로 2020년에 증축해 봉헌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원주시 관광 안내는 문막성당이 2019년에 리모델링되어 박물관과 주차장 등이 갖춰져 있고 각종 유물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 성당 순례의 필수 코스라고 소개한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1948년 현 본당 소재지에 세운 공소 강당이 전쟁 중 전소되었고, 1957년 성당과 사제관이 건립되었으며, 1992년 성당 종탑과 지붕 개축 공사를 했다고 적는다.

관련 장소와 인물

  • 학성동성당(원주): 1957년 6월 1일 원주 본당에서 분리되어, 문막 공소가 한때 그 관할이 된 본당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 부론 공소·손곡 공소: 문막 본당이 관할하는 공소이다. 부론 공소는 장들(장뜰) 공소에서 개칭되었고 손곡 공소는 1962년 설립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 서지 마을(부론면 손곡리): 기해박해 때 최해성(요한)이 살던 곳이다. 원주교구 순례길 1-4구간 ‘서지 강변길’이 문막성당에서 서지마을로 이어지며 전체 길이는 21.6km로 안내된다(한국가톨릭대사전, 원주교구 순례길).
  • 최해성(요한): 1839년 10월 6일 원주 감옥에서 순교한 신자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 원동성당: 문막성당 건물의 붉은 벽돌이 유래한 성당으로 소개된다(원주교구 순례길).

참고자료 및 출처

  1.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문막 본당”. 1958년 본당 승격, 공소 시대와 본당 설립 과정, 승격 이후 발전, 교세, 역대 신부.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2140
  2. 천주교 원주교구 순례길, “1-4구간 서지 강변길”. 문막 공소의 시작, 문막성당의 1958년 본당 승격, 원동성당 벽돌로 지은 초기 건물, 2020년 증축 봉헌.
    https://sunraegil.seoji.net/course/course_4
  3. 원주시청 원주관광, “문막성당”. 2019년 리모델링, 성당 순례 코스로서의 소개.
    https://www.wonju.go.kr/tour/viewTnResrceDataT.do?key=5477&rcpp=12&resrceNo=10832&sc1=20&si1=50&tc10=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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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6일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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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6일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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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문막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6일 20:52. https://missamap.com/ko/kr/wonju-munmak-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