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감영
개요
강원감영은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시내에 있는 조선시대 강원도 관찰사의 관청 터로, 천주교 원주교구는 이곳을 조선시대 천주교 신자들의 순교지로 소개한다. 박해 때 많은 천주교인이 이곳에 잡혀 와 고초를 겪다가 처형되거나 옥사했으며, 복자 김강이 시몬, 최해성 요한, 최 비르지타가 이곳에서 순교했다. 강원감영지는 2002년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선화당은 2021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역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강원감영이 관찰사가 주재하며 정무를 보던 곳으로, 1395년(태조 4) 처음 설치된 뒤 1895년(고종 32) 8도제가 23부제로 바뀔 때까지 500년 동안 유지되었다고 설명한다.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는 강원감영이 조선시대 강원도의 26개 부, 목, 군, 현을 관할하던 지방행정의 중심지였다고 적는다. 감영의 중심 건물인 선화당(宣和當)은 '임금의 덕을 선양하고 백성을 교화하는 건물'이라는 뜻이며 관찰사가 행정, 농정, 조세, 재판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선화당, 재은당(내아), 포정루(정문), 4대문, 객사 및 부속건물 등 31동이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되어 1634년 원주 목사가 재건했다고 주교회의 자료는 전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1634년(인조 12) 이배원 목사가 다시 짓기 시작해 이듬해 이중길 목사가 완성했고, 1665년(현종 6) 감사 이만영이 선화당과 삼문을 건설하기 시작해 1667년 감사 이후산이 완성했다고 기록한다. 고종 때 관찰사 윤병정이 1874~1875년 사이에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했으며 당시 건물은 모두 43동 495칸이었다. 1950년 6·25전쟁으로 대부분의 건물이 무너지고 담장이 허물어졌으며, 관풍각이 있던 큰 연못도 메워졌다. 원주시와 원성군의 통합 전에는 한때 원주군청 청사로 사용되기도 했다.
굿뉴스 성지 안내는 강원감영이 500년 동안 강원도의 정청 업무를 수행해 원주 일대의 죄인들이 이곳에 끌려와 정청인 선화당에서 형벌을 받고 처형되었으며, 국사범 등 중죄인은 물론 잡범에 대한 형도 집행되었다고 설명한다. 박해가 일자 많은 천주교인들이 이곳에 잡혀 와 갖은 고초를 겪은 뒤 처형되었다. 원주교구는 이곳에서 순교한 김강이 시몬, 최해성 요한, 최 비르지타가 2014년 시복되었다고 소개한다.
김강이 시몬(1765?~1815)은 강원감영에서 순교한 첫 번째 순교자이다. 주교회의 자료에 따르면 1801년 신유박해 때 지도층 신자로 지목되어 피신해 다녔고, 박해가 끝난 뒤 등짐 장사를 하며 복음을 전하다 강원도 울진에 정착했다. 1815년 을해박해가 일어난 뒤 옛 하인의 밀고로 아우 김창귀 타대오, 조카 김사건 안드레아와 함께 체포되어 경상도 안동에 수감되었고, 이후 강원 감영으로 이송되어 사형 판결을 받았으나 형벌로 인한 상처와 옥중에서 얻은 이질로 1815년 12월 5일 옥사했다. 당시 나이는 50세 이상이었다. 원주교구는 그가 충청도 서산 출신으로 입교 뒤 전라도 고산에 살았다고 소개한다.
최해성 요한(1811~1839)은 1839년 기해박해 때 체포되어 강원감영에서 원주 관장의 문초를 받은 뒤 강원 감사와 영장 앞에서도 극심한 형벌을 받았으며, 9월 6일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원주교구 성지 안내는 그가 21차례의 심문과 18차례의 고문을 당했다고 적고 있고, 당시 나이는 28세였다고 주교회의 자료는 기록한다. 최 비르지타는 조카가 강원감영에 갇혔다는 소식에 면회하러 갔다가 천주교인이냐는 물음에 신자임을 밝혀 체포되었다. 옥에서 굶겨 죽이라는 명령에 따라 4개월의 옥고를 치른 뒤 옥 안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했으며, 주교회의 자료는 이를 1839년 12월 8일과 9일 밤 사이, 56세였다고 적는다.
원주교구는 강원감영의 옥터와 참수터로 짐작되는 곳은 있으나 정확한 위치가 밝혀지지 않았다고 안내한다. 굿뉴스 안내는 짐작되는 곳에도 이미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 복원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한다. 주교회의 자료의 사진 설명에 따르면 『관동지』(1829~1831)에 실린 강원감영 지도에서 형옥과 선화당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건축과 공간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강원감영지의 면적이 약 9,608.6㎡이고 2002년 3월 9일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2000년부터 발굴조사를 실시해 건물터와 연못터 등을 찾았다고 기록한다. 감영지 안의 포정루(布政樓)는 1971년 강원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 선화당은 2021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굿뉴스 안내는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을 때 명칭이 '강원 감영(문루 및 선화당)'이었으나 2004년 1월 17일 '포정루 및 선화당'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문루가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으로 익공 양식에 팔작지붕 겹처마 건물이며, 선화당은 정면 7칸, 측면 2칸 규모의 단층집으로 이익공 양식의 겹처마 팔작지붕이라고 설명한다. 현재 옛 건물로는 문루와 선화당, 청운당이 남아 있다. 주교회의 자료는 이 건물들만 남아 있다가 2018년 복원 작업을 거쳐 총 12동의 목조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고 적는다. 굿뉴스 안내에 따르면 원주시가 강원 감영지에 있던 원주시 제2청사를 철거하고 지속적인 발굴과 복원 작업을 진행해 2018년 11월 복원기념 준공식을 거행했다.
신앙적 의미와 방문 맥락
굿뉴스 안내는 포정루와 선화당이 순교의 피를 흘렸던 박해의 현장임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설명한다. 원주교구는 강원감영을 조선시대 천주교 신자들의 순교지로 소개하며, 원주교구 순례길 2-1구간 '최해성 요한 순교길'은 1839년 1월 서지마을에 살던 최해성 요한이 강원감영까지 끌려가던 길을 따라가는 코스로 안내된다.
관련 장소와 인물
- 서지마을: 최해성 요한과 최 비르지타가 살던 부론면의 교우촌으로, 원주교구의 순교신앙 유적지이다.
- 복자 김강이 시몬(1765?~1815): 강원감영에서 순교한 첫 순교자이다.
- 복자 최해성 요한(1811~1839): 1839년 9월 6일 참수로 순교했다.
- 복자 최 비르지타(1783~1839): 최해성 요한의 고모로, 1839년 12월 옥중에서 순교했다.
참고자료 및 출처
- 천주교 원주교구, 성지·유적지 강원감영. 순교자와 옥터·참수터 위치 미상을 확인했다.
http://www.wjcatholic.or.kr/shrine/view?ca=%EA%B0%95%EC%9B%90%EA%B0%90%EC%98%81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관련 성지 강원 감영. 감영의 연혁과 세 복자의 순교 경위를 확인했다.
https://cbck.or.kr/koreanmartyrs/Shrines/25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굿뉴스, 성지와사적지 원주 강원 감영. 박해 당시 감영의 기능, 문화재 지정, 2018년 복원 준공을 확인했다.
https://app.catholic.or.kr/web/holyplace/?seq=2273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원주 강원감영. 감영의 설치·재건·보수 연혁, 사적·보물 지정, 건물 구조를 확인했다.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7289 - 천주교 원주교구 순례길, 2-1구간 최해성 요한 순교길. 최해성 요한이 끌려간 길과 신문·고문 횟수를 확인했다.
https://sunraegil.seoji.net/course/course_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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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10월 16일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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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강원 감영",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6일 08:03. https://missamap.com/ko/kr/wonju-gangwon-gamyeong-shrine/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