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감영

성지

장소 소개

강원 감영은 조선시대 강원도 관찰사가 직무를 보던 관아 유적이면서, 천주교 원주교구가 순교 신앙을 기억하는 성지·사적지이기도 하다. 국가유산청은 이곳을 사적 ‘원주 강원감영’으로 관리하고 있으며,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는 ‘원주 강원 감영과 서지마을’을 원주교구의 순교자 관련 성지로 소개한다. 따라서 이곳은 성당 건물 자체가 아니라 국가유산과 가톨릭 순교 기억이 한 공간에서 겹치는 역사 현장이다.

가톨릭적으로는 복자 김강이 시몬, 최해성 요한, 최 비르지타가 신앙을 증언한 장소라는 점이 핵심이다. 관아와 옥사, 형벌의 공간이었던 강원 감영은 박해 시대 신자들에게는 심문과 고통을 견디며 신앙을 드러낸 자리였다. 오늘날에는 복원된 감영 유적을 바라보면서 조선의 지방 행정사뿐 아니라 원주 지역의 순교사를 함께 기억할 수 있으며, 교구의 순례와 순교자 현양 안에서 그 의미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동일한 장소가 국가유산으로서의 역사와 신앙 증언의 기억을 함께 품는다는 점이 강원 감영의 독특한 성격이다.

역사와 유래

강원 감영은 조선 태조 4년인 1395년 강원도의 행정 중심을 원주에 두면서 설치된 관아다. 국가유산청은 이 유적을 조선시대 강원도 관찰사가 직무를 보던 감영으로 설명하며, 2002년 사적으로 지정해 보존하고 있다. 본래 지방 행정과 사법이 이루어지던 관청이었기 때문에, 천주교 박해기에는 체포된 신자들이 이곳으로 이송되어 심문과 판결을 받기도 했다.

1815년에는 김강이 시몬이 신앙 때문에 체포되어 원주로 이송된 뒤 감영의 옥중에서 고통을 겪다가 숨졌다. 1839년 기해박해 때에는 최해성 요한과 그의 고모 최 비르지타가 원주에서 신앙을 증언하며 순교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는 세 사람을 강원 감영과 연결된 순교 복자로 소개하고, 이곳을 이들의 신앙 증언을 기억하는 성지로 제시한다.

이 세 순교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 서울에서 시복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에 포함되었다. 시복은 강원 감영에서 이루어진 신앙 증언을 지역의 기억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한국 교회 전체가 공적으로 기리는 순교 역사 안에 놓이게 했다. 이에 따라 강원 감영은 조선의 관아 유적이라는 역사적 성격과,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버리지 않은 이들을 기억하는 가톨릭 순례의 의미를 함께 지니게 되었다.

오늘날 복원된 감영 건물과 국가유산은 원주의 행정사를 보여 주고, 교회는 같은 자리에서 순교자들의 증언을 되새긴다. 서로 다른 두 기억은 충돌하지 않고 오히려 당시 박해가 실제 국가 행정과 사법의 공간에서 이루어졌음을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그래서 강원 감영은 원주 지역의 교회사와 조선 후기 사회사를 함께 읽을 수 있는 중요한 현장으로 남아 있다.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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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천주교주교회의 온라인 주소록

교구

원주교구 (Diocese of Wonju)

공식 홈페이지: http://www.wj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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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태: 공식 출처최종 업데이트 2026년 8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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