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평 성당
개요
북평성당은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시에 있는 천주교 원주교구 소속 성당이다. 1958년 4월 25일 삼척(현 성내동) 본당에서 분리되어 설립되었고 주보는 노동자의 수호자 성 요셉이다. 1959년 완공된 본당 건물은 국가등록문화재 제795호로 등록되었다.
역사
〔설립 이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eritageWiki가 옮긴 문화재청 해설문에 따르면 동해 지역에는 1930년대 경기도에서 이주해 온 천주교인들이 정착하면서 천주교가 전래되었고, 1940년에 공소가 세워졌다.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1950년대 초까지 춘천교구 삼척 본당에 속해 있던 북평읍과 묵호읍(현 동해시) 일대는 본당의 사목 관할 지역이 너무 넓어 교세가 크게 증가하지 못했다.
〔본당 설립〕 대사전에 따르면 1950년대 중엽 초대 춘천교구장 퀸란(T. Quinlan, 구 토마) 주교가 이 지역에 본당을 설립하기로 계획하고 현 본당 소재지인 북평읍 구미리에 1,665평의 부지를 매입했다. 1958년 4월 25일 북평 본당이 신설되었고 골롬반 외방선교회의 퀴르크(C. Quirke)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임명되었다. 퀴르크 신부는 부임 즉시 성당(108평)과 사제관(27평)을 신축해 이듬해 2월 3일 축성식을 거행했다. 무속 신앙이 강하게 남아 있던 지역이어서 어려움이 많았으나 전교와 함께 구호사업을 벌여 본당은 설립 6년 만에 신자 수가 배로 늘었다.
〔원주교구 편입과 분가〕 대사전에 따르면 1965년 3월 북평 본당은 원주교구 설정과 함께 새 교구로 편입되었다. 같은 해 12월 10일 도계 본당을 분리했고, 이후 1970년까지 영세자가 187명에 불과할 정도로 한동안 침체를 벗어나지 못했다. 1970년대 초 관할 구역 안에 시멘트 회사가 들어서면서 전입 인구가 늘어 본당 분위기가 달라졌다.
대사전이 적은 이후 사업은 다음과 같다. 1975년 5월 성모상 건립, 1978년 11월 21일 삼화 공소 강당 건립, 1980년 이 지역이 동해시로 승격된 뒤 본격적인 도약기 진입, 1984년 성당과 부속 건물 보수, 1988년 6월 교육관 신축과 1990년 7월 증축이다. 1992년 1월 28일에는 천곡동 본당을 분리하며 91세대 203명의 교적을 이관했다. 본당은 1979년 도시 계획이 해제되어 북평 공업 단지가 조성되기 시작함에 따라 인구 증가에 대비한 전교 활동을 모색했다고 대사전은 적는다.
〔관할과 교세〕 대사전에 따르면 관할 구역은 동해시 북평동, 송정동, 북삼동 전역과 삼화동, 삼흥동, 이원동, 봉오동 일부 지역이었고 관할 공소는 삼화 1개소였다. 교세는 1963년 468명, 1970년 723명, 1977년 999명, 1983년 1,173명, 1987년 1,180명, 1991년 1,546명, 1996년 1,445명이다.
〔역대 주임〕 대사전이 적은 역대 신부는 초대 퀴르크 고르넬리오(1958. 4~1961. 11), 2대 화이트(P. White, 백) 바오로(1961. 11~1962. 3), 3대 월터(N. Walter) 누젠(1962. 3~1964. 2), 4대 다우슨(P. Dawson, 손) 파트리치오(1964. 2~1966. 1), 5대 월터(1966. 1~10), 6대 신현봉 안토니오(1966. 10~1972. 4), 7대 이흥근 마르코(1972. 5~1976. 5), 8대 이대식 야고보(1976. 5~1981. 5), 9대 이학근 베네딕도(1981. 5~1983. 5), 10대 김지석 야고보(1983. 5~1987. 9), 11대 안승길 로베르토(1987. 9~1991. 4), 12대 박용식 시몬(1991. 4~1995. 2), 13대 홍금표 알비노(1995. 2~)이다.
건축과 공간
HeritageWiki가 옮긴 문화재청 해설문에 따르면 북평성당은 1958년 짓기 시작해 1959년 완공되었고, 초대 주임신부로 구 고르넬리오(Cornelius Quirke) 신부가 부임했다. 처음에는 본당과 사제관이 지어졌으며 이후 증축·보수 과정에서 수녀원 등 여러 건물이 세워졌고, 현재는 본당 건물만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해설문은 북평성당이 인근의 강릉 임당동성당(1955년), 삼척 성내동성당(1957년), 동해 묵호성당(1957년)과 거의 동일한 건축 형태를 가진다고 설명하며, 이는 1950년대 영동 지역에서 활동한 골롬반회 외국인 신부들이 지었기 때문이라고 적는다. 북평성당은 본당 외에 사제관 등의 시설이 함께 남아 있고, 일부 보수의 흔적이 있으나 본당에 사용된 목재 창틀과 내부 천장 마감재 등이 건립 당시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종탑에 설치된 종은 1960년 프랑스에서 들여온 것이다.
HeritageWiki 항목은 지정(등록) 종목을 국가등록문화재 제795호, 지정(등록)일을 2020년 10월 15일, 분류를 유적건조물/종교신앙/천주교/성당, 수량·면적을 369㎡로 적고, 주소를 강원도 동해시 오일장2길 16(구미동)으로 적는다. 해설문은 북평성당이 묵호성당과 함께 동해 지역 천주교 신앙의 산실이며, 한국전쟁 이후 동해 지역 사람들에게 신앙생활과 공동체의 쉼터 역할을 해온 공간이라고 설명한다.
관련 장소와 인물
- 삼척 본당(현 성내동성당): 북평 본당이 분리되어 나온 모본당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 도계성당: 1965년 12월 10일 북평 본당에서 분리·설립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 천곡동성당: 1992년 1월 28일 북평 본당에서 분리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 묵호성당·강릉 임당동성당·삼척 성내동성당: 북평성당과 거의 동일한 건축 형태를 가진 인근 성당이다(HeritageWiki 문화재청 해설문).
참고자료 및 출처
-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북평 본당”. 1958년 본당 설립, 성당·사제관 신축과 축성, 원주교구 편입, 도계·천곡동 분가, 교세와 역대 신부.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2719 - 한국학중앙연구원, HeritageWiki “동해 북평성당”(문화재청 해설문 수록). 1930년대 전래, 1940년 공소, 1958~1959년 건축, 1960년 종, 유사 건축 성당, 국가등록문화재 제795호 등록.
https://dh.aks.ac.kr/~heritage/wiki/index.php/%EB%8F%99%ED%95%B4_%EB%B6%81%ED%8F%89%EC%84%B1%EB%8B%B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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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북평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7일 00:44. https://missamap.com/ko/kr/wonju-bukpyeong-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