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산동 성당

목차
  1. 개요
  2. 역사
  3. 관련 장소와 인물
  4.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봉산동성당은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봉산동에 있는 천주교 원주교구 소속 성당이다. 1972년 5월 26일 원동 본당, 단구동 본당, 학성동 본당에서 분리·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가정이다. 초대 주임 신현봉 신부는 1974년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결성에 앞장섰고 1976년 ‘3·1 명동 사건’으로 수감되었다.

역사

〔설립 배경〕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봉산동은 행정 구역상 원주 시내에 있지만 중앙선 철도 때문에 개발이 더디게 이루어진 지역이었다. 1960년대 초부터 철로변 빈민촌을 중심으로 신자 수가 늘자 교구는 1972년 5월 26일 봉산동 본당을 설립하고 신현봉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임명했다. 천주교 원주교구 홈페이지의 교구 연혁도 1972년 5월 26일 봉산동 본당 신설을 적는다. 현재의 성당 부지는 1960년대 초 원동 본당의 양대석 신부가 중학교를 세우려고 사 둔 땅이었는데, 당시 소속이던 춘천교구의 승인을 얻지 못해 학교 설립이 미뤄졌다가 1965년 원주교구가 설정된 뒤 성당 부지로 바뀌었다.

〔성당 신축〕 대사전에 따르면 신현봉 신부는 부임 직후 신자 양승학이 기증한 가옥과 부지에 임시 성당과 사제관을 마련하고 1972년 10월 2일 첫 미사를 봉헌했다. 이듬해 6월 23일 성당 신축 공사에 착수해 그해 9월 25일 65평의 성당을 완공했다.

〔주임 신부의 수감 시기〕 대사전에 따르면 신현봉 신부가 1976년 3월 10일 ‘민주 구국 선언 사건’(3·1 명동 사건)에 연루되어 수감되고 이듬해 실형을 선고받아 본당 신부가 공석이 되자, 골롬반 외방선교회와 교구 소속 신부들이 번갈아 본당 사목을 맡았다. 그런 중에도 본당 신자들은 1976년 5월 성모 동산을 조성했고, 1977년 2월 19일 학성동 본당으로부터 소초 공소를 이관받았으며,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미사를 꾸준히 봉헌했다. 1977년 7월 17일 신현봉 신부가 출감하면서 본당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이후 변모〕 대사전에 따르면 4대 주임 이대식 신부 때인 1981년 9월 23일 태장동 본당이 신설되면서 소초 공소를 이관했고, 같은 해 11월 7일 교리실(23평)을 신축했다. 5대 주임 박무학 신부는 1983년 10월 30일 수녀원(25평)을 건립했고, 역대 신부들이 사제관 등 여러 부속 시설을 증·개축했다. 본당은 설립 이후 꾸준히 교세가 커지다가 1990년대 초에 한동안 줄었으나, 1993년부터 도시 개발 계획과 함께 행구동·봉산2동·태장동 일대에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면서 입주자가 다시 늘고 있다고 대사전은 적는다.

〔관할과 교세〕 대사전에 따르면 관할 구역은 봉산1·2동, 행구동, 태장1동 전 지역과 개운동, 반곡동 일부 지역이다. 교세는 1972년 1,098명, 1978년 1,809명, 1984년 1,788명, 1990년 1,877명, 1996년 1,383명이다.

〔역대 주임〕 대사전이 적은 역대 신부는 초대 신현봉 안토니오(1972. 5~1977. 12), 2대 안승길 로베르토(1977. 12~1979. 3), 3대 김종태 안드레아(1979. 3~1981. 5), 4대 이대식 야고보(1981. 5~1983. 5), 5대 박무학 요한(1983. 5~1986. 7), 6대 조규남 구니베르토(1986. 7~1990. 2), 7대 양대석 알로이시오(1990. 2~1991. 4), 8대 김용성 타대오(1991. 4~1995. 2), 9대 정의준 요셉(1995. 2~1996. 2), 10대 유영구 베드로(1996. 2~)이다.

〔신현봉 신부〕 한겨레(선종 기사)에 따르면 신현봉(안토니오) 신부는 1930년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1961년 사제 서품을 받고 횡성성당 보좌로 사제 생활을 시작했고, 1974년 7월 지학순 주교의 구속 사건을 계기로 함세웅, 문정현 신부 등과 함께 정의구현사제단 결성에 앞장섰다. 1974년 9월 26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사제단 결성 기도회를 한 뒤 거리행진을 하던 중 “지학순 주교 석방하라”고 외치는 그의 목을 전경이 조르는 사진이 외신으로 알려졌다. 1976년 원주 원동성당에서 열린 신구교 합동기도회에서 ‘원주선언’을 발표했고, ‘3·1 명동성당 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15개월간 옥살이를 했다. 오마이뉴스에 따르면 1974년 7월 지학순 주교가 중앙정보부에 연행되어 징역 15년, 자격정지 15년을 선고받자 신현봉 신부는 전국의 교구를 돌며 구명운동을 호소했으며, 당시 원주교구의 봉산동성당 주임이었다. 같은 기사는 그가 1976년 3월 10일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되어 대법원에서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았고 1977년 7월 17일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으며, 2013년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긴급조치 9호를 위헌·무효로 확인하면서 37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고 전한다. 두 기사는 그가 향년 93세로 선종했다고 전한다.

관련 장소와 인물

  • 원동 본당, 단구동 본당, 학성동 본당: 봉산동 본당이 분리되어 나온 본당들이다. 학성동 본당으로부터는 1977년 2월 소초 공소를 이관받았다(한국가톨릭대사전).
  • 태장동 본당: 1981년 9월 23일 신설되면서 봉산동 본당의 소초 공소를 이관받았다(한국가톨릭대사전).
  • 신현봉(안토니오) 신부: 봉산동 본당 초대 주임으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결성에 앞장섰다(한국가톨릭대사전, 한겨레, 오마이뉴스).
  • 지학순 주교: 당시 원주교구장으로, 1974년 7월 구속되어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오마이뉴스, 천주교 원주교구 연혁).

참고자료 및 출처

  1.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봉산동 본당”. 설립 배경과 부지, 첫 미사와 성당 신축, 주임 신부 수감 시기, 분가, 교세와 역대 신부.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2644
  2. 천주교 원주교구, 교구 연혁(1970년대). 1972년 5월 26일 봉산동 본당 신설.
    http://www.wjcatholic.or.kr/company/history?y=1970
  3. 한겨레, 「정의구현사제단 결성 앞장선 신현봉 신부 선종」. 신현봉 신부의 서품과 정의구현사제단 활동, 1976년 사건과 옥살이, 사목 이력.
    https://www.hani.co.kr/arti/society/obituary/1025845.html
  4. 오마이뉴스, 「70년대 반유신 투쟁에 앞장선 신현봉 신부 선종」(2022년 1월 4일 게재). 1974년 당시 봉산동성당 주임, 1976년 구속과 1977년 석방, 2013년 무죄.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00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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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7일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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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7일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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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봉산동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7일 00:50. https://missamap.com/ko/kr/wonju-bongsandong-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