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바위 성당

목차
  1. 개요
  2. 역사
  3. 건축과 공간
  4. 관련 장소와 인물
  5.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나바위성당은 전북 익산시 망성면 화산리에 있는 천주교 전주교구 소속 성당이다. 1897년 본당으로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예수 성심이다. 한국인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가 1845년 10월 12일 황산포 나바위에 첫발을 디딘 곳으로 알려져 있고, 성당 건물은 1987년 사적 제318호로 지정되었다.

역사

〔김대건 신부의 상륙〕 한국가톨릭대사전은 화산리가 김대건 신부가 1845년(헌종 11) 10월 12일 제3대 조선교구장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와 함께 입국한 황산포에서 2km 거리에 있다고 적는다. 굿뉴스 가톨릭정보는 김대건 신부가 1845년 8월 17일 상하이 금가항 성당에서 사제품을 받고 8월 31일 11명의 교우와 함께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를 모시고 작은 목선 라파엘호를 타고 귀국길에 올라 10월 12일 강경에서 조금 떨어진 황산포 나바위 화산 언저리에 닻을 내렸다고 적는다. 천주교 전주교구는 베르모렐 신부가 성당을 세울 때에는 김대건 신부 일행을 기념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으나 나중에 이곳이 김대건 신부의 착지로 알려졌다고 설명한다.

〔공소와 본당 설립〕 디지털익산문화대전은 1882년 나바위공소가 설립되었고, 1897년 5월 8일 천주교 전주교구 소속 본당으로 설립되었다고 적는다. 설립 때의 이름은 화산성당이었으며, 전라북도 완주군에 있는 화산성당과 이름이 같아 1989년에 나바위성당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1989년 2월 화산과 나바위로 함께 불리던 본당 이름을 설립 초기의 나바위로 확정했다고 적는다.

〔초대 주임 베르모렐 신부〕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베르모렐(J. Vermorel) 신부는 강경 지역에 교우가 없어 용안군 안대동 공소에 거주하면서 성당 부지를 물색했고, 김여산의 12칸 기와집을 사서 안채는 사제관으로, 사랑채는 성당으로, 행랑 사랑은 성당 사무실로 고쳐 썼다. 서순환 판서 소유의 화산과 그 산에 딸린 전답을 사들여 본당의 기틀을 세웠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베르모렐 신부가 처음에 안대동 공소에 거처하다가 1897년 7월 화산 아래에 있는 김여산의 집과 부속 건물을 매입해 나바위에 정착했다고 적는다. 가톨릭신문은 이 방식이 신부가 상주하는 집이 곧 성당이 되는 1880년대 이후의 전형적인 예라고 설명한다.

〔강경포 사건〕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1899년 4월 천주교 신자 김치문과 외교인 조흥도 사이의 사소한 시비로 베르모렐 신부와 본당 신자들이 한때 위험에 빠졌다. 베르모렐 신부가 풀려난 사실을 알지 못한 전주 전동 본당 보두네 신부의 전보를 받은 뮈텔 주교가 프랑스 공사를 통해 외부에 선교사의 구출과 사건 조사를 요청하면서 ‘강경포 사건’은 외교 문제로까지 번졌다. 3명의 주모자에게 징역형이 선고되면서 6개월 만에 마무리되었으며, 대사전은 이 사건이 지방민의 교회에 대한 편견, 치외법권을 바탕으로 한 선교사 보호권과 조선의 외교 문제, 일부 신자들의 교회 의탁 등이 얽혀 일어난 것이라고 설명한다.

〔성당 신축과 분가〕 디지털익산문화대전은 초기 나바위성당이 베르모렐 신부가 구입한 민가를 고친 형태로 운영되다가 1905년부터 성당 건축이 계획되어 1907년 12월 새 성당이 건축되었다고 적는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1906년 공사를 시작해 1907년에 완공했다고 적고,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는 1906년에 지은 건물이라고 적는다. 한국가톨릭대사전과 가톨릭신문(1997년 2월 23일자)은 1911년 9월 18일 드망즈 주교가 방문하여 이 성당을 축성했다고 적는다.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나바위 본당에서는 1910년 안대동(현 함열) 본당, 1929년 군산(현 둔율동) 본당, 1935년 이리(현 창인동) 본당이 설립·분리되었고 1959년에는 여산 본당이 신설·분리되었다. 가톨릭신문은 활발한 전교로 1929년 당시 나바위 본당이 신자 3,200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큰 본당이 되기도 했다고 적는다.

〔학교와 일제강점기〕 한국가톨릭대사전은 1908년 8월 계명학교를 개설해 문맹 퇴치에 힘썼으며 이 학교가 1937년 1차 폐교되고 1947년 11월 6일 완전 폐교되었다고 적는다. 굿뉴스는 1907년 계명학교를 세워 1947년 폐교될 때까지 일제의 탄압 속에서 애국계몽운동에 앞장섰다고 적고, 디지털익산문화대전은 1949년 계명학교 건물을 철거해 그 자재로 수녀원을 지었다고 적는다.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1941년 여름 김영호 본당 신부가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일본 경찰에 체포·수감되었다. 굿뉴스는 6·25전쟁 때 본당 주임 김후상 신부가 피신하지 않고 미사를 계속 봉헌하여 단 며칠을 제외하고는 매일 미사가 봉헌된 기록이 있다고 적는다.

〔수녀회와 진료소〕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1949년 8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분원이 개설되어 유치원과 시약소를 설립·운영했고, 1957년 강당을 신축하며 극빈자를 위한 진료소를 개설했다. 1967년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가 서울과 대구 관구로 나뉘면서 이듬해 2월 서울 관구 소속 수녀회가 철수하자 본당이 운영하던 진료소와 유치원도 문을 닫았다. 가톨릭신문은 시약소가 1949년부터 1987년 폐쇄될 때까지 가난한 농민들의 건강을 돌보았다고 적는다.

〔기념비와 피정〕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1954년 베르모렐 신부 공훈 기념비를 마련했고, 이듬해인 1955년 10월 12일 김대건 신부의 황산포 상륙 100주년을 기념해 김대건 신부 순교 기념비 제막식과 성당 건축 50주년 기념식을 거행했다. 1989년 3월 5일에는 ‘나바위 본당 100주년 기념 사업 준비위원회’를 조직했고, 1989년 10월 사랑의 씨튼 수녀회 분원이 개설되었으며, 성당 구내에 교구가 세운 ‘나바위 피정의 집’이 있다. 굿뉴스는 1991년 피정의 집을 건립했다고 적고, 가톨릭신문(1997년 2월 23일자)은 본당 설립 100주년 기념 사업으로 1991년 피정의 집을 완공했다고 적는다. 가톨릭신문(2020년 기사)은 본당이 매년 10월 12일 ‘성 김대건 신부와 그 일행 최초 조선입국 착지 기념행사’를 열어 라파엘호 진입로에서 성당까지 3.5km를 성인의 유해를 모시고 현양 행사를 한다고 적는다.

〔교세와 현황〕 한국가톨릭대사전이 적은 교세는 1898년 1,514명, 1910년 3,020명, 1953년 1,823명, 1963년 1,788명, 1973년 1,281명, 1983년 1,180명, 1993년 971명이며, 당시 관할 구역은 익산군 망성면이었고 소속 공소는 신덕·금지·신용·관산·낭청 5개소였다. 디지털익산문화대전은 2019년 8월 현재 양승욱(로벨또) 신부가 주임으로 있고 193세대 558명(남자 261명, 여자 297명)의 신자가 있으며 소속 공소는 없다고 적는다.

〔역대 주임〕 한국가톨릭대사전에 적힌 역대 신부는 초대 베르모렐(J. Vermorel) 요셉(1897~1919), 2대 소세(H. Saucet) 히폴리오(1919.8~1921.10), 3대 파르트네(T. Parthenay) 테오필로(1921.10~1922.5), 4대 카닥스(J. Cadars) 요셉(1922.5~1929.6), 5대 이약슬 요셉(1929.6~1936.6), 6대 서병익 바오로(1936.6~1938.6), 7대 김영호 멜키올(1938.6~1942), 8대 김현배 바르톨로메오(1942.5~1944.12), 9대 김명제 베드로(1944.12~1947.4), 10대 김영구 베드로(1947.4~1948.8), 11대 김후상 바오로(1948.8~1954.10), 12대 김재덕 아우구스티노(1954.10~1955.7), 13대 허일록 타대오(1955.7~10), 14대 김영태 도미니코(1955.10~1960.7), 15대 이대권 바오로(1960.7~1964.6), 16대 고경훈 프란치스코(1964.6~1966.4), 17대 오기순 알베르토(1966.4~1969.4), 18대 김영일 발타사르(1969.4~1971.4), 19대 송남호 요셉(1971.4~1975.1), 20대 김진소 안드레아(1975.1~1977.6), 21대 권영균 안토니오(1977.6~1982.9), 22대 박종상 가브리엘(1982.9~1986.1), 23대 김종길 라파엘(1986.1~1989.1), 24대 범석규 마티아(1989.1~1992.1), 25대 엄기봉 베드로(1992.1~)이다.

건축과 공간

나바위성당은 한옥 형태로 지어졌다가 벽돌조 종각이 덧붙여진 한양절충식 건물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처음에는 순수한 목조건축으로 정면 5칸, 측면 13칸 규모였고, 정면과 양쪽 측면의 툇간이 마루였으며 정면 중앙에 목조 종탑과 십자가가 있었다. 가톨릭신문(1997년 2월 23일자)은 신축 당시 평면이 좌우 툇간 중 8칸씩과 정면 툇간은 툇마루이고 뒷툇간은 제의실이며 내진 부분 좌우 3칸은 익랑으로 전체적으로 T자형이었고, 지붕 아래 사방에 8각 채광창을 두었다고 적는다. 내부는 중앙 열주로 나뉘고 열주 사이에는 남녀석을 구분하는 칸막이를 했으며, 제대 부분에서는 열주가 멈추어 공간이 넓어지고 양 기둥 사이에 영광의 문을 두어 지성소와 회중석을 나누었다.

설계자는 출처마다 다르게 적힌다.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는 1906년 베르모렐 신부가 감독과 설계를 하고 중국인 기술자들을 동원해 지었다고 적는다. 굿뉴스는 명동성당 설계자인 프와넬(Poisnel) 신부가 설계하고 중국인이 공사를 맡았다고 적고, 가톨릭신문(1997년)은 프와넬 신부가 설계를 도왔고 중국인 기술자가 시공했으며 사용한 목재를 임천 지방 재목으로 금강에 띄워 운반했다고 전한다. 굿뉴스는 건축양식이 한국인의 정서에 맞게 한옥 형태를 취했다고 설명한다.

증축 시기도 출처마다 조금 다르다.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와 가톨릭신문은 1916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1917년, 굿뉴스와 전주교구는 1916~1917년에 목조 벽체를 헐고 벽돌로 쌓았으며 고딕식 벽돌조 종각을 정면에 덧붙였다고 적는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때 목조 종탑을 없애고 양 측면 툇간의 마루를 없애 회랑으로 만들었다고 적는다. 가톨릭신문(2020년 기사)은 성당이 완성되고 3년 뒤 베르모렐 신부가 프랑스에서 크고 좋은 종을 봉헌받아 가져왔으나 목조 종탑에 걸기 무리여서 1916년 한옥 성당 앞부분 일부를 헐고 고딕식 종각을 세웠다고 적는다. 증축에 쓰인 벽돌은 이 지방에서 구웠고 쌓는 일은 중국인들이 했다고 전한다(가톨릭신문, 1997년). 1922년에는 회랑 기둥 아랫부분을 석조로 바꾸었다(굿뉴스, 가톨릭신문).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는 이 공사를 까다르(요셉) 신부가 외부 기둥 하부를 석재로 바꾼 것으로 적는다.

가톨릭신문(2020년 기사)에 따르면 정면에서 보면 뾰족한 종탑에서 고딕 양식이, 좌우에서 보면 팔작지붕에 한식 기와를 얹은 전통 한옥의 모습이 보인다. 성당 내부 기둥에는 남녀 신자를 구분하던 칸막이의 흔적이 남아 있고 성당 마루는 1906년 건립 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 건물이 한양절충식의 2층 상가건물과 비슷하고 정면 종각의 입면이 순수한 고딕식은 아니라고 설명하며, 가톨릭신문(1997년)은 이를 구조와 외관은 전통 목조 양식을 따르면서 내부 공간은 바실리카식 교회를 따른 과도기적 건축물이자 개화기 한옥 성당으로는 현존하는 유일한 건물이라고 평가한다.

굿뉴스에 따르면 성당 안의 제대와 그 위의 예수성심상, 촛대, 감실, 세례대 등은 중국 남경 성 라자로 수도원에서 제작해 성당을 지을 때 들여와 설치한 것으로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고 있고, 1995년 전주교구청에서 옮겨 온 김대건 신부의 성해(목뼈) 일부가 모셔져 있다. 가톨릭신문(2020년 기사)은 성당 안에 제대 3개가 벽을 향해 서 있으며 오른쪽 제대에 성 김대건 신부와 성 다블뤼 주교의 유해 일부가 안치되어 있다고 적는다.

문화재 관련 경과로,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는 이 성당이 1987년 사적 제318호로 지정되었고 문화재명이 2012년 10월 15일 고시로 화산천주교회에서 익산 나바위성당으로 바뀌었다고 적는다. 디지털익산문화대전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로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사적으로 재지정되었다고 적는다.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의 연혁에는 1990년 본당 건물 보수와 지붕 해체 보수, 2000~2001년 전벽돌 균열·부식부 보수와 보강, 2006년 본당 지붕 보수, 2009~2010년 본당 및 사제관 보수, 2014년 정밀안전진단 및 정비계획 수립, 2016년 보호구역 지정고시, 2018년 사제관 보수 복원과 사무실 권역 건물 철거가 올라 있다. 가톨릭신문(2020년 기사)은 본당이 2015년 김대건 신부 나바위 도착 170주년을 맞아 문화재청, 전라북도, 익산시와 함께 ‘나바위 성당 종합 정비 계획’(2016~2025)을 세워 추진 중이라고 적는다.

관련 장소와 인물

  • 화산: 성당 뒤의 낮은 산으로, 가톨릭신문(2020년 기사)은 1650년경 우암 송시열이 ‘산은 작지만 매우 아름답다’하여 이름을 지었다고 전한다. 굿뉴스는 화산 북쪽 암벽에 금강을 바라보는 마애삼존불상이 새겨져 있다고 적는다.
  • 망금정: 가톨릭신문(2020년 기사)과 굿뉴스에 따르면 초대 대구대교구장 드망즈 주교가 1912년 첫 사목 방문 이후 매년 6월 개인 피정을 한 곳에 베르모렐 신부가 지은 정자이다.
  • 성 김대건 신부 순교 기념탑: 1955년 김대건 신부 나바위 상륙 110주년과 시복 30주년을 기념해 본당 신자들이 세웠으며, 익산시가 2018년 향토유적으로 지정했다(가톨릭신문, 2020년). 굿뉴스는 이 기념비를 높이 4.5m의 화강석 순교비로 적는다.
  • 나바위성지 역사관: 성당과 함께 문화재로 지정된 사제관을 역사관으로 꾸민 곳으로, 1800년대 초기 목판본 예식서 등 1,0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가톨릭신문, 2020년).
  • 소세(H. Saucet) 신부의 묘: 2대 본당 신부의 묘로, 화산 십자가의 길 14처가 이어지는 길에 있다(굿뉴스).
  • 베르모렐(J. Vermorel) 신부: 1897년부터 1919년까지 초대 주임으로 사목하며 성당을 지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참고자료 및 출처

  1.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나바위 본당”. 1897년 설립, 관할과 교세, 역대 신부, 베르모렐 신부의 부지 확보, 강경포 사건, 성당 건립과 분가, 학교·수녀회, 1989년 본당 명칭 확정.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1011
  2.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화산천주교회”. 1897년 본당 설정, 1906~1907년 성당 건축, 한양절충식 구조와 1917년 증축, 기념비, 사적 지정.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4649
  3.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익산문화대전 “익산 나바위성당”. 1882년 나바위공소, 1897년 5월 8일 본당 설립, 1989년 개칭, 사적 지정과 재지정, 계명학교와 수녀원, 현황.
    https://iksan.grandculture.net/iksan/toc/GC07500969
  4. 굿뉴스 가톨릭정보, 전주교구 나바위 성지(주평국, 하늘에서 땅 끝까지 기반). 김대건 신부의 입국, 성당 건축과 증축, 성물, 계명학교와 6·25전쟁 중 미사, 망금정과 기념비.
    https://maria.catholic.or.kr/sa_ho/list/view.asp?ctxtOrgNum=2357&menugubun=holyplace
  5. 가톨릭신문, “[가톨릭 문화유산을 찾아서] 6(끝) 사적 제318호 익산 나바위성당”(1997년 2월 23일자). 본당 설립과 성당 건축, 증축, 건축 특징, 본당 발전.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1104120004558
  6. 가톨릭신문, “[주님 계신 곳, 그 곳에 가고 싶다] 전주교구 익산 나바위성당”(2020년). 한옥과 고딕 양식의 결합, 종각 증축, 성물, 화산과 망금정, 기념탑, 역사관, 착지 기념행사.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2002040168483
  7.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 “익산 나바위성당”. 사적 지정, 건축 개요, 연혁(1916년 증축, 1922년 기둥 석재 교체, 보수 이력), 명칭 변경.
    https://digital.khs.go.kr/heri/heriDetail.do?ctptNo=1333503180000&ctptUid=13898859676726300931
  8. 천주교 전주교구, 나바위 성지 안내. 1845년 10월 12일 김대건 신부 일행의 도착, 1897년 본당 설립, 건축 양식 변화와 사적 지정.
    https://www.jcatholic.or.kr/theme/gyogu/sub/m1/0307.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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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6일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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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6일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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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나바위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6일 19:51. https://missamap.com/ko/kr/unknown-nabawi-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