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당리성지

목차
  1. 개요
  2. 역사
  3. 건축과 공간
  4. 신앙적 의미와 방문 맥락
  5. 관련 장소와 인물
  6.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요당리 성지는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요당리에 있는 천주교 수원교구 소속 성지이다. 한국 103위 순교 성인 가운데 수원의 양간(현재 화성시 양감면 요당리 느지지) 출신으로 성인이 된 유일한 인물인 성 장주기 요셉의 출생지이자 신앙 공동체의 터전이다. 성인·복자의 순교 터는 아니지만 신유박해(1801)를 전후해 교우촌이 형성되었고, 장주기를 비롯해 장 토마스, 지 타대오 등 여러 순교자를 낸 곳이다. 2006년 수원교구가 전담 사제를 파견하면서 성지로 개발되기 시작해 2010년 5월 11일 성전 봉헌식을 가졌다.

역사

요당리성지 공식 홈페이지는 요당리에 복음이 언제 처음 전파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신유박해(1801)를 전후해 서울과 충청도 내포 지역의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이주하면서 형성된 교우촌으로 추정된다고 소개한다. 이 교우촌은 양간공소라 불리며 갓등이(현재의 왕림), 은이공소(현재의 양지)와 깊이 연계되어 신앙 교류와 선교 활동이 이루어졌다. 요당리는 바닷물이 유입되어 뱃길이 열렸던 지리적 특성 때문에 충청도와 경기도 내륙, 서울을 잇는 선교 루트의 교두보 역할을 했던 곳으로 여겨진다. 가톨릭신문(2025년 3월 11일자)은 요당리(蓼塘里)가 조선 후기까지도 바닷물이 들어오는 마을로 여뀌(蓼)가 많은 연못(塘)이 곳곳에 있었다고 해서 생긴 자연 지명이라고 설명한다.

성지 홈페이지의 성지 역사 항목에 따르면 양간 지역은 조선 후기 수원 고을에 속한 넓은 생활권으로 사양리·포곡·석천·만어언리·만촌·요당리·용소리·기동 등 여러 마을이 함께 형성된 지역이었다. 양간 공소는 공식적인 설립 연대나 정확한 위치가 문헌에 명확히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증언과 사료를 종합하면 1830년대 전후 이미 공소로서의 기능을 수행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당시 공소는 건물 중심의 공간이 아니라 신자들의 가정이나 은신처를 중심으로 한 유동적인 공동체였다. 1888년 왕림본당이 설립되면서 양간 공소는 본당 관할로 편입되어 정기적인 성사 집전과 교우 관리가 가능해졌고, 해방 이후에는 발안본당으로 이속되었다.

성지 홈페이지는 요당리가 공소 운영과 교회 재정을 책임지던 실천의 현장이었다고 소개한다. 기해박해 전에 앵베르 주교가 양간에 교회 전답을 마련하고 민극가(스테파노, 1787~1840)로 하여금 경작하고 관리하게 했으며, 정화경(안드레아, 1808~1840)은 자기 집을 공소로 활용하며 공소 회장으로 활동했다. 또한 기해박해(1839)가 일어나자 앵베르(범 라우렌시오, 1796~1839) 주교는 정화경과 매부 손경서 안드레아(1799~1839)의 도움으로 양간의 상게(상골, 심괴, 상구) 지역으로 피신했다. 그러나 정화경이 유다스 김순성에게 속아 은신처가 탄로 나자 주교는 상게에서 나와 자수했고, 서울로 이송되어 1839년 9월 21일 새남터에서 모방, 샤스탕 신부와 함께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했다. 정화경은 이를 뉘우치다가 1840년 1월 23일 체포되어 포청 옥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민극가는 인천 함박이의 양반가 출신으로, 수원 갓등이(왕림)에서 교우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앵베르 주교가 맡긴 양간(상게)의 교회 전답을 관리했으며 자주 양지의 은이를 오가며 전교하다 1840년 1월 30일 한양 포청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그는 교리를 쉽게 알리려고 4·4조의 천주가사 「삼세대의(三世大義)」를 지었다. 병인박해(1866) 이후에도 요당리에서는 장주기(요셉, 1803~1866), 장 토마스(1815~1866), 지 타대오(1819~1869), 림 베드로, 조명오(베드로), 홍원여(가를로) 등이 순교했다고 성지 홈페이지는 소개한다.

성 장주기 요셉은 성지 홈페이지에 따르면 1803년 수원 느지개(현재 화성시 양감면 요당리) 또는 수원 담안(현재 화성시 정남면 관항리)에서 태어났다. 집안은 형편이 괜찮은 중간층이었고 농사를 지으면서 한문 공부를 얼마간 했으며 신자들 사이에서 '장낙소'라고 불렸다. 친척 김 바르바라에게 교리를 배우고 26세에 중병에 걸리자 양지에서 최용년에게 대세를 받았으며, 나중에 유방제(여항덕) 신부에게 보례를 받았다. 신심과 열성이 뛰어나 회장으로 임명되어 순교할 때까지 직책에 헌신했다. 박해를 피해 여기저기 옮겨 살다 제천 배론에 정착했으며(같은 소개 안에서 정착 시기를 1843년과 1845년으로 달리 적고 있다), 1855년 메스트르 신부가 배론에 성 요셉 신학교를 설립하자 자신의 집을 제공하고 신학생들을 돌보았다. 이후 푸르티에 신부가 교장으로 임명되자 신학교 집주인으로 운영을 뒷바라지하며 한문교사 겸 선교사들의 집주인 역할을 했다. 1866년 박해로 3월 2일 포졸들이 배론 신학교에 들이닥쳐 푸르티에 신부와 프티니콜라 신부를 체포할 때 함께 잡혔다가 풀려났으나 다시 붙잡혀 제천 관아를 거쳐 서울로 압송되었고, 1866년 3월 30일 충청도 보령의 고마 수영(갈매못)에서 다블뤼 주교 등 4명과 함께 참수되었다.

장 토마스는 장주기의 6촌 형제로 양간 느지지에서 태어났으나 신앙생활을 위해 여러 곳을 전전하다 충청도 진천 배티에 정착해 수계 생활을 하며 아들에게 교리를 가르쳤고 이웃과 친척들은 그를 '착한 사람'이라 불렀다. 1866년 청주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진천 관아로 압송되었고, 청주 병영의 장대에서 배교하려는 대자를 타일러 순교를 권면하고 51세로 참수되었다. 지 타대오는 양간 용소말(현재 화성시 양감면 용소리) 출신으로 안중 공소의 인광리(현재 평택시 현덕면 인광리)로 이주해 신앙생활을 했고, 1866년 체포되어 한 차례 배교 후 석방되었으나 이를 후회하며 순교를 다짐하다 1869년 진위 감옥에 수감되었으며, 배교를 거부해 수원으로 이송되어 1869년 5월 23일 화성 북문 밖에서 공개 처형되었다. 성지 홈페이지는 조명오(베드로)와 홍원여(가를로)가 양간 출신으로 서울 우포청에서 순교했다고 전하되 순교 연도는 1871년 4월과 1872년 3월 등 전승이 다르다고 적는다.

오랫동안 요당리 성지의 의미는 충분히 조명되지 못했다. 성지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를 안타깝게 여긴 최덕기(바오로) 주교가 2006년 9월 26일 전담 사제를 파견하면서 성지로서의 재정립과 개발 의지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성지 홈페이지의 연혁은 다음과 같다. 2006년 2월 8일 교구가 성지 개발 의지를 표명했고, 4월 화성시 양감면 요당리 191-1번지 외 10필지의 전·임야 20,486㎡(6,179평)를 평당 60만 원, 37억 원에 구입했다. 9월 26일 김대영(베드로) 신부가 초대 성지 전담 신부로 부임했고, 10월 4일 컨테이너 1동을 구입해 첫 미사를 봉헌했으며(약 10명 참석), 12월 7일 건축허가를 얻었다. 12월 24일 천막성당을 세운 뒤 성탄전야 미사를 봉헌했는데 약 700명이 참석했다. 12월 29일 성지 회보를 처음 발간했다. 2007년 3월 30일 이용훈 주교 집전으로 제1회 장주기 요셉 성인 치명일 기념 미사를 봉헌했고, 9월 18일 제1회 요당리 성지 순교자 현양대회 겸 화성지구 신앙대회를 열었다. 같은 해 12월 현상설계 공모 당선작으로 동원건축설계사무소가 발표되었다. 2008년 3월 30일 제2회 치명일 기념 미사와 함께 성전 기공식을 했고, 6월 건축업체로 현민건설 주식회사를 선정해 7월부터 2009년 5월까지 대성전과 부속건물을 공사했다. 2009년 6월 4일 대성전 입당미사(주례 평택대리구장 조원규 신부)를 봉헌했고 8월 준공허가를 얻었으며, 2010년 5월 11일 이용훈 마티아 교구장 주례로 성전 봉헌식을 거행했다.

건축과 공간

가톨릭신문 2025년 기사에 따르면 성지의 대성당은 붉은 벽돌 건물이고, 성당 앞에는 성당 건립을 후원한 이들을 기념하는 하늘을 향해 성당을 봉헌하는 손 모양 조각상이 있다. 성당 입구 오른쪽에는 신학생들의 공부 공간으로 자신의 집을 내어준 장주기의 덕을 기려 세운 흉상이 있다. 성당 문에는 한국 103위 순교 성인의 이름을 자음과 모음으로 나누어 만든 철물 장식이 붙어 있다. 스테인드글라스의 문양은 곡식이 자라나는 형상으로 보이는데, 기사는 이곳이 초기 교회 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전답이 운영되던 곳이었기 때문일 수 있다고 덧붙인다. 제단 쪽에는 벽돌 위에 십자가와 103위 순교 성인이 새겨진 감실이 모셔져 있고, 십자가에는 가로대가 없는데 이는 그 몫을 순례자에게 남겨 십자가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길 바라는 뜻을 담았다고 한다. 성당 벽의 십자가의 길은 이숙자 수녀(체칠리아,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서울관구)의 작품이다. 성당 뒤쪽에는 유아실이 있다.

성당 오른쪽 건물 2층의 소성당 십자가의 길은 조각가 이효주(아나스타시아) 씨가 1998년 화재를 입은 서울대교구 중림동약현성당의 불에 탄 목재로 만들었다. 야외의 십자가의 길과 묵주기도 길은 잔디밭으로 이루어진 기도의 광장을 디귿 자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고, 폭 2~3m의 길 양옆에는 단풍나무를 심었다. 묵주기도 길에 세운 항아리 모양의 5단 묵주알은 이곳이 교우들의 생활터였음을 상징한다. 기도의 광장 가운데 계단에는 성모자상이 있고, 그 너머에 대형 십자가와 야외 제대, 성인·복자·하느님의 종 일곱 분의 가묘가 있다.

신앙적 의미와 방문 맥락

성지 홈페이지는 요당리를 박해 시대의 피신처이자 마지막 신앙의 장소로 소개하며, 기해박해(1839)와 병인박해(1866)를 거치며 수많은 신자가 이곳에서 신앙을 지키다 순교했다고 설명한다. 가톨릭신문은 요당리성지가 성인·복자의 순교 터는 아니지만 신유박해를 기점으로 교우촌이 형성되면서 성 장주기, 성 민극가, 성 범 라우렌시오 주교 등 신앙 선조들의 혼이 서려 있는 곳이라고 설명한다.

관련 장소와 인물

  • 성 장주기 요셉(1803~1866): 요당리 출신 103위 순교 성인.
  • 장 토마스(1815~1866): 장주기의 6촌 형제로, 1866년 청주에서 참수된 순교자.
  • 지 타대오(1819~1869): 양간 용소말 출신으로 1869년 화성 북문 밖에서 처형된 평신도 증거자.
  • 성 민극가 스테파노(1787~1840): 양간의 교회 전답을 관리한 평신도 순교자.
  • 성 정화경 안드레아(1808~1840): 양간에서 공소 회장으로 활동한 평신도 순교자.
  • 성 엥베르 범 라우렌시오 주교(1796~1839): 제2대 조선 대목구장으로, 양간의 상게에 피신했다가 체포되었다.
  • 왕림성당(갓등이): 1888년 설립되어 양간 공소를 관할한 본당.
  • 배론 성지와 갈매못 성지: 각각 장주기가 정착해 신학교를 도운 곳과 순교한 곳.

참고자료 및 출처

  1. 요당리성지 공식 홈페이지, 요당리성지 소개와 연혁. 교우촌 형성, 2006~2010년 성지 개발 연혁(부지 구입, 전담 신부 부임, 성전 기공·입당·봉헌).
    http://www.yodangshrine.kr/about/yodang_about
  2. 요당리성지 공식 홈페이지, 성지 역사 1~4. 양간 지역과 공소의 발전, 1888년 왕림본당 관할, 양간 연고 성인과 순교자.
    http://www.yodangshrine.kr/about/history/history_01/
  3. 요당리성지 공식 홈페이지, 성인 및 순교자 소개(장주기 요셉). 장주기의 생애와 순교, 민극가·엥베르·정화경·장 토마스·지 다태오 등 소개 페이지 포함.
    http://www.yodangshrine.kr/about/saints/jang-jugi-joseph/
  4. 가톨릭신문, [수원교구 성당 순례] 요당리성지 성당(2025-03-11). 지명 유래, 대성당·소성당·기도의 광장 구성과 미술 작품.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25030750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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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날
2026년 10월 16일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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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6일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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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27f9b3-4c2e-444a-b7e5-5eea92e1bd7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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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issamap.com/ko/kr/suwon-yodangri-shrine/wiki/
인용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요당리성지",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6일 07:12. https://missamap.com/ko/kr/suwon-yodangri-shrine/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