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성당

목차
  1. 개요
  2. 역사
  3. 건축과 공간
  4. 관련 장소와 인물
  5.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양평성당은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에 있는 천주교 수원교구 소속 성당이다. 1943년 용문 본당의 오연희 신부가 양평으로 옮겨 오면서 설립되었으며, 주보성인은 성 정하상 바오로이다.

역사

〔양평 지역의 교우촌과 공소〕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이 지역에 신앙 공동체가 형성된 것은 박해를 피해 이주한 신자들이 1880년 이후 양평읍 도곡리와 서종면 문호리에 교우촌을 이루면서부터이다. 이 교우촌에는 후에 능말 공소와 무너미 공소가 설립되었는데, 두 공소는 풍수원 본당 관할이었다가 1896년 원주(현 원동) 본당으로 이관되었고, 1908년 용문 본당이 설립되면서 용문 본당 관할이 되었다.

〔본당 설립〕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1943년 용문 본당 7대 주임 오연희 신부가 양평면에 초가집(현 성당 터) 두 채를 매입해 용문에서 이곳으로 옮겨 옴으로써 양평 본당이 설립되었고, 용문 본당은 사제가 부임하지 않아 공소로 격하되었다. 한국천주교 주소록의 설립일은 1943년 1월 1일이다. 초대 오연희 이후 2대 이완성, 3대 임화길을 거쳐 4대 주임으로 이계중 신부가 부임했으나, 이듬해 한국전쟁이 발발해 대구로 피난하면서 양평 본당은 신부가 공석이 되었다.

〔전쟁 후 재건〕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1952년 12월 5대 주임으로 김정진 신부가 부임해 신자의 집에 거처하며 미사를 집전하고 흩어진 신자들을 모았다. 동시에 전쟁의 불길로 전소된 성당의 건립 작업에 착수해 이듬해 3월 임시 성당과 사제관을 신축했다. 휴전 후 신자 수가 1,100명에 육박해 임시 성당이 협소해지자 1954년 85평 규모의 성당을 신축했고, 11월 16일 노기남(바오로)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했다. 1955년 10월에는 용문 공소에 강당을 신축했다. 용문 공소는 1958년 4월 김영근(베드로) 신부가 부임하면서 본당으로 부활했다가, 1964년 6월 김영근 신부가 휴양차 하우현 본당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다시 양평 본당의 공소가 되었다.

〔1960년대 이후〕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6대 주임 강현홍 신부 때인 1965년 5월 ‘천신의 모후’ 쁘레시디움이 조직되었다. 10대 주임 송병수 신부는 사제관을 신축했다. 1980년 9월 5일 누전으로 화재가 발생해 성당이 전소되어 사제관에서 미사를 봉헌했고, 이듬해 6월 현재의 성당을 완공했다. 같은 달 양수 공소와 곡수 공소의 강당을 신축했으며, 1981년에는 성가 소비녀회의 분원이 설치되었다. 11대 주임 최충열 신부는 성당 안에 테니스장을 만들고 지역 복음화에 힘썼다. 13대 주임 황선기 신부는 1992년 6월 교육관을 완공했고, 14대 주임 김성배 신부 때인 1996년 12월 문호 공소 강당을 완공해 축복식을 거행했다. 1998년 8월 15대 주임으로 부임한 김영장 신부는 곡수 공소 강당을 신축하고 성서 백주간을 실시하는 등 신자 재교육에 힘썼다고 대사전은 적는다.

〔관할과 교세〕 한국가톨릭대사전이 적은 관할 구역은 개군면, 강상면, 옥천면, 양서면, 서종면, 양평읍 양근리 전 지역과 지제면, 강하면 일부 지역이며 관할 공소는 양수, 문호, 곡수 공소 등 3개 소이다. 교세는 1964년 1,131명, 1970년 924명, 1976년 974명, 1982년 1,445명, 1988년 1,931명, 1992년 2,453명, 1999년 4,036명이다. 한국천주교 주소록에는 신자 수 3,606명, 공소 수 1개, 수녀회 성가 소비녀회, 소속 제2대리구 하남·양평지구로 올라 있다.

〔역대 주임 신부〕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초대 오연희 마티아(1943~1947.9), 2대 이완성 요한(1947.9~1948.2), 3대 임화길 안드레아(1948.2~1949.9), 4대 이계중 요한(1949.9~1950.6), 5대 김정진 바오로(1952.12~1957.3), 6대 강현홍 요한(1957.3~1969.12), 7대 이중현 요한(1969.12~1973.6), 8대 김영옥 가브리엘(1973.6~1975.4), 9대 정주성 요셉(1975.4~1979.1), 10대 송병수 시몬(1979.1~1983.2), 11대 최충열 마태오(1983.2~1985.7), 12대 서종민 바오로(1985.7~1989.10), 13대 황선기 마티아(1989.10~1993.2), 14대 김성배 요셉(1993.2~1998.8), 15대 김영장 베네딕도(1998.8~)가 부임했다.

건축과 공간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양평 본당은 1943년 양평면의 초가집 두 채(현 성당 터)를 매입해 자리를 잡았고, 한국전쟁 중 전소된 성당을 대신해 1953년 3월 임시 성당과 사제관을 지었으며 1954년 85평 규모의 성당을 신축해 11월 16일 봉헌했다. 1980년 9월 5일 화재로 성당이 전소된 뒤 1981년 6월 현재의 성당을 완공했다. 가톨릭신문(2023)은 성당 마당에 성 정하상(바오로)의 동상이 서 있다고 적는다.

관련 장소와 인물

  • 성 정하상 바오로: 본당의 주보성인이다. 가톨릭신문(2023)은 정하상이 태어난 곳이 양근 지역이고, 아버지 복자 정약종(아우구스티노)이 제사를 강요하는 친척들을 떠나 가족과 함께 양근의 분원으로 이사했으며, 양근이 정하상에게 교리를 가르쳐 준 조동섬(유스티노)이 살던 곳이자 피정하던 곳이라고 적는다. 양근군과 지평군이 합병된 것이 지금의 양평군이다. 같은 기사는 정하상이 1801년 신유박해 때 어머니 성 유 체칠리아와 함께 옥에 갇혔다가 석방되었고, 1816년부터 1835년까지 16차례 중국을 방문해 성직자 파견을 요청했으며, 이 노력이 1831년 조선대목구 설정으로 이어졌다고 적는다.
  • 용문 본당: 양평 본당이 설립되면서 공소로 격하되었다가 1958년 본당으로 부활했고 1964년 다시 양평 본당의 공소가 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 양수·문호·곡수 공소: 한국가톨릭대사전이 적은 양평 본당의 관할 공소이다. 1981년 6월 양수·곡수 공소 강당, 1996년 12월 문호 공소 강당, 1998년 이후 곡수 공소 강당이 신축·완공되었다고 적는다.

참고자료 및 출처

  1.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양평 본당”. 교우촌과 공소의 관할 변화, 1943년 본당 설립, 1954년 성당 봉헌, 1980년 화재와 1981년 성당 완공, 관할 구역, 교세, 역대 신부.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4302
  2.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 천주교 주소록 “양평”(모바일). 수원교구 제2대리구 하남·양평지구 소속, 설립일 1943년 1월 1일, 주보성인 성 정하상 바오로, 수녀회, 신자 수와 공소 수.
    https://directory.cbck.or.kr/m/catholicInfo.asp?code=201000570&gubun=4
  3. 가톨릭신문, “[교구에서 만난 한국교회사] (12) 양평성당: 조선대목구 설정”(2023-11-19, 제3368호). 성당 마당의 정하상 동상, 정하상과 양근 지역의 인연, 조선대목구 설정 과정.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231114022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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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날
2026년 10월 16일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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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6일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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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양평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6일 21:45. https://missamap.com/ko/kr/suwon-yangpyeong-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