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순교성지

목차
  1. 개요
  2. 역사
  3. 건축과 공간
  4. 신앙적 의미와 방문 맥락
  5. 관련 장소와 인물
  6.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수원화성순교성지는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북수동의 북수동성당을 중심으로 한 천주교 수원교구 소속 순교성지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 안에 있으며, 조선 후기 수원유수부의 중영(토포청)이 있던 자리에 성당이 자리한다. 병인박해(1866~1873) 때 이곳 중영과 옥터, 북문(장안문)과 남문(팔달문) 밖에서 80여 명의 순교자와 이름을 알 수 없는 많은 순교자가 참수, 교수, 장살, 백지사, 옥사 등으로 순교한 것으로 성지 공식 홈페이지는 소개한다. 2000년 9월 20일 '수원성지'로 선포되었고, 2024년 3월 19일 성지명이 '수원화성순교성지'로 변경되었다.

역사

수원 화성은 정조의 명을 받은 다산 정약용이 설계·시공하여 1796년 완성되었으며(가톨릭신문),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굿뉴스 성지 안내는 이 수원 화성이 이후 천주교 박해가 시작되면서 신자들의 처형지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서울과 경기도, 충청도 일대에서 체포된 신자들이 이곳에서 취조와 고문을 당한 뒤 순교했고, 둘레 5,743m의 성곽 전체가 이름이 알려진 83위의 순교자와 수많은 무명 순교자의 순교지이며, 화성 내부 10여 곳 이상이 순교지와 증거지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성지 공식 홈페이지는 이름이 알려진 수원 순교자를 81위로 적고 있어 출처에 따라 숫자가 다르다. 가톨릭신문은 수원화성에 19곳의 순교터가 있었고 화성 내에서 순교한 무명 순교자가 2,000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같은 기사에 따르면 미루나무에 목을 매달아 죽이는 교수형과 젖은 창호지를 얼굴에 붙여 질식시키는 도모지형(백지사형)이 행해졌고, 장이 열릴 때면 장안문 밖 장터에서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몽둥이로 매질해 공개 처형을 했다. 북암문에는 처형된 천주교인의 목을 걸어 경고를 표시했다고 한다.

성지 공식 홈페이지의 순교터 안내는 수원화성 여러 곳이 순교 장소로 추정되지만 관찬 기록에 순교터로 남은 곳은 중영(토포청, 현재의 성당 자리), 옥터(남문 인근, 가구거리 일대), 남문(팔달문) 밖, 북문(장안문) 밖의 네 곳이라고 정리한다. 이 가운데 중영(토포청)에서는 하느님의 종 8위(황 요한, 고시수 야고보, 박의서 사바, 박원서 마르코, 박익서, 윤평심, 홍창룡, 권중심 등으로 안내문에 열거)가 순교한 것으로 소개된다. 박의서, 박원서, 박익서는 삼형제로 함께 순교했다. 옥터에서는 원 프란치스코, 윤자호 바오로, 박태진 마티아, 박선진 마르코(이상 교수), 김사범(장사), 서여심(옥사) 등 하느님의 종 6위의 옥사·교수 순교 기록이 있다고 안내한다. 윤자호 바오로 회장은 다블뤼 주교에 의해 충청도 일대의 도회장에 임명되었고 공주에서 체포되어 수원감옥에 갇혀 있다가 1868년 9월 4일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심원경 스테파노와 아들 심봉학은 병인박해 때 사기막골 교우촌에서 붙잡혀 수원유수부로 끌려왔고, 심원경 스테파노는 1866년 11월 남문 밖 장터에서 장살형으로 순교했으며 당시 나이는 50세였다. 지타대오는 병인박해 때 체포되어 한 차례 배교했다가 1869년 4월 다시 체포되었고, 북문(장안문) 밖 공터에서 공개 처형되었다고 안내한다.

교구는 이러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2000년 당시 수원교구장 최덕기 주교가 수원 화성에서 순교한 순교자들을 현양하기 위해 북수동성당(구 수원성당)을 중심으로 천주교 수원성지를 선포했다고 굿뉴스 안내는 전한다. 북수동성당 본당연혁에 따르면 2000년 9월 20일 북수동성당을 순교성지로 선포했고, 2001년 6월 7일 천주교 수원성지 현판식, 2001년 9월 15일 수원 순교성지 성역화 기도문의 교구장 인준과 기도문 바치기 시작, 2001년 9월 20일 제2차 수원순교자 현양대회(정자동 성당)가 이어졌다. 2003년 2월 17일에는 도로변에 수원순교성지 간판이 설치되었고, 2005년 9월 22일에는 수원교회사연구소와 함께 학술 심포지엄 「수원 순교성지와 수원지역 신앙선조들의 삶과 죽음」이 열렸다. 2007년 3월에는 본당 운동장에 수원화성 둘레 5,743m의 30분의 1인 191m의 '화성 로사리오의 길' 공사가 시작되어 6월 24일 봉주 축성식이 있었다. 2012년 1월 6일에는 성당 입구에 수원성지 표지석과 성지본당 안내판 등이 설치되었다. 수원순교자 현양대회는 2001년 제2차 이후 매년 열려 2024년 9월 7일 제23차 수원화성순교성지 현양대회(문희종 주교)로 이어졌다.

성지 안내에 따르면 수원화성순교성지는 이곳에서 순교한 원 프란치스코, 윤자호 바오로를 비롯한 조선 후기 순교자 17위와, 이곳에서 18년간 사목한 폴리 신부를 비롯한 근현대 순교자 3위 등 '하느님의 종' 20위의 시복시성을 위한 현양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굿뉴스 안내는 수원 성지가 2차 시복시성 대상자로 선정된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중 수원에서 순교한 17위의 하느님의 종과 무명 순교자들을 현양한다고 소개한다. 가톨릭신문(2024년 7월)은 성지 제대 오른편에 성지가 현양하는 하느님의 종들의 이름이 적혀 있으며, 대부분 1866년 시작된 병인박해 순교자이지만 마지막 세 명(심응영 뽈리 데시데라도, 유영근 요한, 요한 콜랭)은 순교 연도가 1950년으로 적혀 6·25전쟁 순교자임을 알 수 있다고 전한다. 북수동성당 본당연혁은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 6월 29일 이복영 신부가 오산수 공소로 피난, 12월 23일 대구로 피난(1·4후퇴)한 사실을 기록하며, 이후 심뽈리 신부 피납과 이복영 신부 서거를 기리는 기념행사를 매년 8월에 열고 있다.

북수동 본당은 1923년 11월 왕림(갓등이) 본당에서 수원 본당으로 독립하면서 초대 주임 르메르(루도비코) 신부가 부임했다. 본당연혁에 따르면 이에 앞서 1890년 수원읍 공소강당이 개소되었고, 수원읍의 유지 교우들이 남수리 황학정 부근 밭 800평을 매입했으며, 1897년 3월 31일 북수리의 대지 300여 평을 매입했다. 1931년 5월 제4대 주임으로 심 데시데라도 뽈리 신부가 부임했고, 1932년 11월 13일 고딕 양식의 성 미카엘 성당(구 수원성당, 건평 75평) 봉헌식이 거행되었으며 당시 공소는 28개, 신자는 2,600여 명이었다. 1933년 4월 23일에는 성당 종이 축복되었다. 1979년 4월 5일 현재의 북수동성당(137평)과 수녀원(47평) 봉헌식이 거행되었다. 2022년 10월 7일 100주년 워크숍을 거쳐 2023년 1월 1일 본당 100주년 선포식이 있었고, 2023년 11월 19일 100주년 기념 미사가 봉헌되었다. 본당연혁은 2025년 2월 9일 성체조배실과 성인유해 안치실 축복식이 있었다고도 기록한다.

건축과 공간

성지 공식 홈페이지는 1979년 신축된 현재의 성당에 성 김대건 신부(성당 제대), 성 엥베르 주교, 성 모방 신부, 성 샤스탕 신부, 성 김성우 안토니오,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고 소개하며, 이 가운데 일부는 지하 성인유해실에 있다고 안내한다. 1932년 프랑스에서 제작된 구 수원성당(북수동본당)의 청동 종은 수탈당할 뻔한 사연을 간직한 채 성지 입구 종탑에 보존되어 있으며, 2024년 12월부터 매일 12시에 타종한다. 1954년 완공된 석조건축물인 국가등록문화재 제697호 뽈리화랑(구 소화초등학교, 수원 최초의 사립학교)은 성미술 전시 등 문화 공간으로 활용된다. 본당연혁에 따르면 소화학원은 1934년 10월 2일 4년제로 개교했고 1938년 12월 9일 4년제 인가를 받았으며, 2017년 10월 23일 구소화초등학교(뽈리화랑)가 등록문화재 제697호로 지정되었고, 2007년 11월 21일 뽈리화랑 구관 1층 전시실이 개관했다. 1954년 8월 30일에는 프랑스 건축양식으로 석조 사제관(1층 45평, 2층 25평)이 신축되어 9월 29일 봉헌식이 있었다.

가톨릭신문은 성당 안 십자가의 길이 작은 정원처럼 꾸며져 있고 2,000여 종의 야생화가 자란다고 전한다. 십자가의 길 끝에 있는 미루나무는 배교를 거부하던 신앙 선조들의 목을 매달았다고 전해지는 나무를 훗날 다시 심은 것이라고 한다. 같은 기사는 수원화성이 사적 제3호이며 정약용이 설계한 수원화성에서 천주교와 연결 지을 수 있는 흔적들을 소개한다. 화홍문(북수문)의 7개 수문은 칠성사, 성령칠은 등 천주교를 상징하는 숫자 7과, 남수문의 9개 수문은 성령의 9가지 열매와 연결된다고 해석하며, 방화수류정(동북각루) 서쪽 벽에 86개의 십자가 문양이 새겨져 있고 천장에 십자가 형태의 대들보 세 곳이 있다고 설명한다. 다만 이는 기사가 소개하는 해석이다.

신앙적 의미와 방문 맥락

성지 공식 홈페이지는 매월 둘째·넷째 금요일 오후 7시 30분 순교터를 도보로 순례하는 달빛순례(2008년 시작)를 진행한다고 안내한다. 가톨릭신문(2019년 8월)은 달빛순례를 매달 첫째 주 금요일 오후 7시 30분에 진행한다고 적고 있어 출처에 따라 일정이 다르게 기재되어 있다.

관련 장소와 인물

  • 북수동성당: 성지 안에 있는 수원교구 본당으로, 1923년 왕림 본당에서 독립했다. 성지 이름은 '수원화성순교성지 북수동성당'이다.
  • 뽈리화랑(구 소화초등학교): 1954년 완공된 석조건축물로 국가등록문화재 제697호이다.
  • 수원화성: 정조 때 건설되어 1796년 완성된 사적 제3호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 심 데시데라도 뽈리 신부: 1931년 수원 본당 제4대 주임으로 부임했으며, 성지는 이곳에서 18년간 사목한 근현대 순교 하느님의 종으로 현양한다.
  • 이복영(요셉) 신부: 구 수원성당 제5대 주임신부로, 매년 8월 기일 추모행사가 열린다.
  • 윤자호 바오로, 원 프란치스코, 박의서·박원서·박익서 삼형제, 심원경 스테파노, 지타대오: 수원에서 순교한 하느님의 종들이다.

참고자료 및 출처

  1. 수원화성순교성지 북수동성당, 성지소개. 성지 선포(2000), 명칭 변경(2024), 순교 개요, 현양 대상, 달빛순례, 성당·종탑·뽈리화랑·유해 봉안을 확인했다.
    https://suwons.net/holypla_about
  2. 수원화성순교성지 북수동성당, 수원화성순교성지 주요 순교터. 관찬 기록상 4곳의 순교터와 하느님의 종들의 순교 내용을 확인했다.
    https://suwons.net/martyrdom
  3. 수원화성순교성지 북수동성당, 본당연혁. 본당 독립(1923), 구 수원성당 봉헌(1932), 현 성당 봉헌(1979), 성지 선포 이후의 성역화 과정을 확인했다.
    https://suwons.net/history
  4.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굿뉴스, 성지와사적지 수원 성지(수원 화성, 북수동 성당). 병인박해 순교 개요와 성지 선포 경위를 확인했다.
    https://m.catholic.or.kr/web/holyplace/?seq=2323
  5. 가톨릭신문, 「[신앙선조 흔적 찾아 문화재 탐방] (2) 수원성지(수원화성)」(2019년 8월). 순교터와 처형 방식, 수원화성의 천주교 관련 해석을 확인했다.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1908060100128
  6. 가톨릭신문, 「[교구에서 만난 한국교회사(29·끝)] 수원화성순교성지 : 6·25 한국전쟁과 교회」(2024년 7월). 성지가 현양하는 하느님의 종들의 명단 가운데 6·25전쟁 순교자 3명을 확인했다.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24072250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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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날
2026년 10월 16일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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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6일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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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 주소
https://missamap.com/ko/kr/suwon-suwonhwaseong-shrine/wiki/
인용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수원화성순교성지",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6일 07:49. https://missamap.com/ko/kr/suwon-suwonhwaseong-shrine/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