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골성지

목차
  1. 개요
  2. 역사
  3. 건축과 공간
  4. 신앙적 의미와 방문 맥락
  5. 관련 장소와 인물
  6.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손골 성지는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 광교산 기슭에 있는 천주교 수원교구 소속 성지이다. 박해시대 신자들만 모여 살던 작은 교우촌이 있던 자리로,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프랑스 선교사들이 조선의 언어와 풍습을 익히며 선교를 준비하던 거점이었다. 병인박해(1866) 때 순교한 성 도리 헨리코(김) 신부와 성 오메트르 베드로(오) 신부를 특별히 기념하며, 손골은 순교지는 아니지만 교우촌에서 생활하던 신자 가운데 여러 순교자가 나왔다. 1966년 성지가 공식 설립되었다.

역사

손골이라는 이름은 향기로운 풀과 난초가 무성한 '향기로운 골짜기'를 뜻하는 손곡(蓀谷)에서 유래했다(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디지털용인문화대전). 디지털용인문화대전에 따르면 손골은 주민들 사이에서 천주교 신자들의 마을, 즉 성교촌(聖敎村)이라 불렸다. 교우촌이 형성된 시기는 분명하지 않으나 1839년 기해박해를 피해 숨어든 신자들이 교우촌을 이룬 것으로 보이며, 1866년 병인박해 당시에는 12가구의 교우만 살았다고 한다. 주교회의 자료는 박해시대에 지방의 신자들이 1839년 기해박해 전후 서울 가까이로 이동해 교우촌을 이룬 점으로 미루어 손골 교우촌도 이 시기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한다.

가톨릭신문(2025년 7월 22일자)에 따르면 도리 신부는 1865년 9월 29일 랑대 신부에게 보낸 편지에서 손골에는 신자들만 살고 있으며 총 12가구가 거주한다고 전했다. 도리 신부가 1865년 10월 16일 부모에게 보낸 편지에는 손골 교우들이 주로 담배 농사로 겨우 생계를 이었고 논도 약간 있었으나 홍수로 폐허가 되어 먹을 것을 구하기조차 어려운 삶을 살았다고 적혀 있다. 수원교구 소개를 인용한 주교회의 자료는 도리 신부의 편지를 근거로 그가 머물던 당시 손골에는 적어도 40~50명의 신자가 모여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적는다.

손골은 선교사들이 입국한 뒤 안전한 곳에서 언어와 풍습을 익히며 선교를 준비하던 교우촌으로 뽑힌 곳이었다. 주교회의 자료에 따르면 페롱, 조안노, 칼래, 오매트르, 도리 신부 등이 손골에 머물렀고, 신자 방문을 쉬는 여름철에는 베르뇌 주교와 랑드르, 프티니콜라, 위앵 신부 등이 찾아와 피정하며 몸과 마음을 재충전했다. 가톨릭신문 2025년 기사는 선교사들이 조선의 언어와 풍습을 익히는 장소로 이곳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은 것을 1857년으로 보며, 그해 3월 페롱 신부가 손골 교우촌에 거주했고 1861년에는 조안노 신부와 칼레 신부가, 1863년 7월부터 약 1년간 오메트르 신부가 머물렀으며 마지막으로 1865년 6월 23일 도리 신부가 도착했다고 정리한다. 같은 기사는 다블뤼 주교가 1853년 9월 18일자 서한에서 손골 부근의 작은 폭포가 있는 아담한 장소를 묘사했다고 전한다.

도리 신부는 한국에서 보낸 시간의 거의 대부분을 손골에서 지냈고 손골에서 체포되어 순교했다(주교회의). 가톨릭신문 2025년 기사에 따르면 도리 신부는 1866년 2월 27일 체포되었고, 조선 관리들이 본국 송환을 명했으나 "이 나라에 머무는 동안 말을 배웠으니, 죽었으면 죽었지 돌아가지 않겠다"고 거부해 3월 7일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디지털용인문화대전은 도리 신부가 1865년 조선에 입국해 손골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 포졸들에게 직접 체포되어 새남터에서 27세로 순교했다고 적고,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어 한국 순교 성인 103위 가운데 한 명이 되었다고 전한다. 오메트르 신부는 손골을 포함한 지금의 수원교구 지역에서 사목하다가 체포되어 순교했다(주교회의).

주교회의 자료는 손골에서 생활하던 신자 가운데 이 요한과 그 아들 이 베드로, 손자 이 프란치스코 삼대의 순교 이야기가 유명하다고 전한다. 디지털용인문화대전에 따르면 이들 삼대는 손골에서 지내다 병인박해 때 피신했고 1871년에 순교했다.

성지 조성은 1960년대에 시작되었다. 가톨릭신문 2025년 기사에 따르면 도리 신부의 출신 본당 주임이던 조셉 그를레 신부가 도리 신부의 시복을 위한 여정으로 한국을 찾아 손골을 순례했고, 이후 도리 신부의 고향인 프랑스 탈몽(Talmont)과 손골을 잇기 위해 농부였던 도리 신부 부친이 쓰던 화강암 맷돌을 깎아 십자가 두 개를 만들어 프랑스와 한국에 각각 세웠다. 주교회의 자료는 1966년 도리 신부 순교 100주년을 맞아 고향 본당에서 도리 신부 부모가 쓰던 맷돌로 똑같은 돌 십자가 두 개를 만들어 하나는 도리 신부 생가 벽에, 다른 하나는 손골로 보냈다고 하며, 그 십자가를 근거로 세운 현양비의 축복이 1966년 10월 24일에 있었다고 기록한다. 가톨릭신문 2024년 4월 2일자 기사는 이 돌십자가를 계기로 손골성지 개발이 시작되었다고 하고, 2025년 기사는 1966년 손골성지가 공식 설립되었다고 적는다.

굿뉴스 성지 소개에 따르면 도리 신부 순교비는 수차례 변형을 거쳐 2014년 원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2013년 10월에는 손골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체포되어 서봉 인근 개울가에서 순교한 무명 순교자 4위의 유해를 미리내 무명 순교자 묘역에서 손골 성지로 옮겨 안치하고 순교자의 길을 조성했다. 2015년 3월 성 오메트르 신부 동상을 세웠고, 2016년 5월 성지 설립 50주년과 병인박해 150주년을 기념해 새 성당 봉헌식을 가졌다. 2017년 5월에는 기존 경당을 보수해 손골 기념관을 개관하고 성지와 성인 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디지털용인문화대전은 현재 손골성지에 한국순교자연구소가 설립되어 있고 인근에 동천성바오로성당과 수지성모교육원이 있다고 적는다.

건축과 공간

굿뉴스 성지 소개에 따르면 도리 신부를 기념해 성 도리 헨리코 신부 동상, 십자가의 길, 경당과 기념관, 피정의 집, 도리 신부 순교비가 건립되었다. 순교비는 주차장 뒤편에 벽돌을 쌓아 탑 모양으로 만들고 그 위에 십자가를 올린 모습이며, 순교비 위의 돌십자가가 도리 신부 고향에서 보내온 것이다(가톨릭신문 2024년).

가톨릭신문 2025년 기사에 따르면 손골기념관에는 오메트르 신부의 친필 편지 원본과 도리 신부가 신학생 시절 집에서 쓰던 침대보와 책들이 전시되어 있다. '순교자의 방'에는 성 도리 헨리코, 성 오메트르 베드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손골에서 순교한 무명 순교자의 유해가 모셔져 있고, 성당 뒤편 산기슭에는 손골 교우촌에서 생활하다 순교한 4위의 유해를 모신 순교자의 묘가 있다. 성지 성당에는 도리 신부와 오메트르 신부가 교우촌에서 신자들과 지내던 모습을 형상화한 12점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다. 성지 전담 신부는 작은 개울을 건너는 다리 너머에 '오메트르 쉼터'를 조성했는데, 한쪽 창으로 성당을, 다른 창으로 청계산을 바라볼 수 있다.

신앙적 의미와 방문 맥락

손골은 순교지가 아니라 선교사들의 선교 거점이자 교우촌이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주교회의 자료는 도리 신부가 1864년 6월 15일 한국에 배정되었다는 말을 듣고 "조선 만세! 내게 이렇게도 아름다운 전교 지방을 주신 것을 천주께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가톨릭신문 2024년 연재는 손골이 도리 신부와 오메트르 신부를 비롯한 여러 선교사가 우리말과 풍습을 배우고 사목하던 곳이며, 이들이 모두 프랑스에 본부를 둔 파리외방전교회 사제들이었음을 상기시킨다.

관련 장소와 인물

  • 성 도리(Dorie) 헨리코 신부(김): 1865년 6월 23일 손골에 도착해 사목하다 체포되어 새남터에서 순교한 파리외방전교회 신부.
  • 성 오메트르(Aumaitre) 베드로 신부(오): 1863년 7월부터 약 1년간 손골에서 지낸 신부. 손골을 포함한 수원교구 지역에서 사목하다 체포되어 순교했다.
  • 이 요한, 이 베드로, 이 프란치스코: 손골에서 생활한 삼대 순교자.
  • 미리내 성지: 2013년 이전까지 손골 교우촌 출신 무명 순교자 4위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던 무명 순교자 묘역이 있는 곳.
  • 조셉 그를레 신부: 도리 신부 출신 본당 주임으로, 1960년대 도리 신부의 시복을 위해 손골을 순례했다.

참고자료 및 출처

  1. 가톨릭인터넷 굿뉴스, 손골 성지(성지와 사적지). 성지 시설과 2013년 이후 조성 연혁(순교비 복원, 무명 순교자 유해 안치, 성당 봉헌, 기념관 개관).
    https://m.catholic.or.kr/web/holyplace/?seq=2321
  2.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관련 성지 손골 성지. 지명 유래, 교우촌의 역할, 선교사들의 체류, 1966년 현양비.
    https://www.cbck.or.kr/koreanmartyrs/Shrines/39
  3. 디지털용인문화대전, 손골성지. 교우촌 형성과 규모, 이요한 삼대, 도리 신부의 순교와 시성, 현황.
    https://yongin.grandculture.net/yongin/toc/GC00902025
  4. 가톨릭신문, [수원교구 성당 순례] 손골성지 성당(2025-07-22). 선교사들의 체류 연표, 도리 신부의 체포와 순교, 성지 조성 과정, 기념관과 성당 시설.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250718500085
  5. 가톨릭신문, [교구에서 만난 한국교회사] (21) 손골성지: 파리외방전교회와 프랑스 교회(2024-04-02). 돌십자가와 순교비, 손골성지 개발의 계기,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의 활동.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240401500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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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날
2026년 10월 16일 06:57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6일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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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issamap.com/ko/kr/suwon-songol-shrine/wiki/
인용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손골성지",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6일 06:57. https://missamap.com/ko/kr/suwon-songol-shrine/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