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소개
손골성지는 천주교 수원교구가 관리하는 순교·선교 유적지로, 박해시대 신자들이 모여 살았던 교우촌과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의 활동을 함께 기억하는 성지이다. ‘손골’이라는 이름은 향기로운 풀과 난초가 자라던 ‘향기로운 골짜기’라는 뜻의 손곡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지며, 자연 속에 자리한 성지는 초기 한국 교회의 숨은 신앙 공동체를 이해하게 하는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특히 성 도리 헨리코 신부와 성 오메트르 베드로 신부를 비롯해 손골과 관계된 순교자와 신앙 선조들을 기린다. 방문자는 순교자의 삶만이 아니라, 선교사들이 조선의 언어와 풍습을 익히고 사목을 준비하도록 도왔던 평신도 공동체의 역할도 함께 만날 수 있다. 오늘의 손골성지는 미사와 기도, 순례를 통해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지켜 낸 공동체적 증언을 기억하는 곳이다.
역사와 유래
손골에 교우촌이 정확히 언제 형성되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교회사 자료는 그 시점을 단정하지 않으며, 현재 확인되는 문헌 가운데 손골을 이른 시기에 명시한 자료로는 다블뤼 신부가 1853년 부모에게 보낸 편지가 있다. 박해를 피해 신자들이 모여 살던 이 마을은 서울과 비교적 가까우면서도 외부의 눈을 피할 수 있어 선교사들이 머물기에 적합한 장소가 되었다.
1857년부터 병인박해가 일어난 1866년 사이 여러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손골에 머물며 조선어와 풍습을 익히고 사목을 준비했다. 오메트르 신부는 이곳에서 적응한 뒤 인근 지역을 사목했고, 도리 신부는 1865년 손골에 와 언어를 배우며 생활하다 1866년 2월 27일 체포되어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그의 편지와 관련 기록은 당시 손골에 수십 명의 신자가 모여 살며 담배농사 등으로 어렵게 생계를 이어 갔음을 전한다.
박해 이후에도 손골 공동체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1900년 하우현본당이 설정될 무렵 손골은 그 공소로 편입되었고 47명의 신자가 기록되어 있다. 이후 순교자와 선교사를 기리는 장소로 정비되었으며, 2016년에는 성지 설립 50주년을 맞아 새 성당이 봉헌되었다. 오늘의 성지는 특정 한 사람의 순교만이 아니라, 선교사를 숨겨 주고 언어를 가르치며 신앙을 지켜 낸 평신도 공동체의 역사를 함께 전한다.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손골성지의 역사와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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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정보
- 승용 엘리베이터 0대
- 지상 2층 · 지하 1층
- 2016년 사용승인
- 연면적 496㎡
건축물대장 조회값 · ·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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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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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온라인 주소록
교구
수원교구 (Diocese of Suwon)
공식 홈페이지: http://www.casuwo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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