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성모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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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요
  2. 역사
  3. 건축과 공간
  4. 신앙적 의미와 방문 맥락
  5. 관련 장소와 인물
  6.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남양성모성지는 경기도 화성시 남양동에 있는 천주교 수원교구 소속 성지로, 병인박해(1866) 때 이름 없이 순교한 이들을 기리는 순교성지이자 1991년 10월 7일 성모 마리아께 봉헌되어 한국 천주교회에서 처음으로 공식 선포된 성모성지이다. 성모가 발현한 곳이 아니라 박해시기 순교자들이 지녔던 깊은 성모신심을 기억하고 본받기 위해 조성된 성지이며, 성지 전체가 하나의 묵주처럼 꾸며진 20단 묵주기도 길과 2023년 봉헌된 남양 성모 마리아 대성당으로 알려져 있다.

역사

디지털화성시문화대전에 따르면 남양성모성지는 병인박해 때 순교한 이들을 기념하는 순교성지로 1983년부터 개발되었다. 남양은 병인박해 때 순교자가 나온 지역이지만 대부분의 순교자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 오랫동안 잊혀 있었다. 남양성당 제3대 박지환 주임 신부는 한종오 베드로를 비롯한 지역 회장들과 현지를 답사하며 구전을 수집하고 흩어진 관계 문헌을 모으는 등 장기간의 조사 끝에 남양 지역이 순교지라는 확신을 얻었다. 박지환 신부는 1983년 3월 순교지로 알려진 건넝골에서 처음으로 남양 순교자 현양대회를 열었고, 1984년 1월부터 성지 개발이 본격화되어 십자가와 야외제대가 설치되고 성지의 광장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1986년 1월 부임한 최덕기 신부는 남양 순교지 개발 조감도를 세우고 성지 주변 토지를 사들이는 데 힘썼으며, 접근성을 높이려 성지 입구 남양천에 임시 다리를 놓았다. 1987년 6월에는 은혜의 성모상을 성지에 세웠다. 매년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인 5월 3일에는 남양 본당에서 성지까지 순교자 가장행렬을 하며 이동해 남양 순교자 김 필립보, 정 필립보 등을 기념하는 현양대회를 열었다. 최덕기 신부는 그리스도 수난의 14처를 조각해 십자가의 길을 만들려던 계획을 바꾸어 묵주기도를 바치도록 돌 묵주알을 만들기 시작했다.

1989년 8월 부임한 이상각 주임신부는 선임자들의 성모신앙과 1987년 죽음의 고비에서 성모의 은총으로 살아났던 개인적 체험이 더해져 남양성지를 순교자성지에서 성모성지로 바꾸려는 계획을 세웠다. 교구장은 성모성지가 성모 발현지에서만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로도 세울 수 있다는 교회법을 알려주며 적극 지지했다. 그 결과 남양성지는 1991년 10월 7일 로사리오의 동정 성모 축일에 김남수 주교와 이반 디아스 교황 대사가 수원교구와 함께 남양 순교성지를 성모께 봉헌하며 한국 천주교회의 첫 번째 성모성지로 선포되었다.

굿뉴스 성지 소개에 따르면 2006년에는 하느님의 자비 신심을 전파하기 위해 경당 위 야산 정상에 자비로우신 예수님 동산을 조성해 봉헌했고, 동산 둘레에 하느님의 자비를 구하는 5단 묵주기도 길을, 동산 아래에 성모님과 함께 걷는 십자가의 길을 조성했다. 2011년 성모성지 봉헌 20주년을 맞아 성지 환경을 정비했고, 2016년 5월 남북통일과 평화를 기원하는 남양 성모 마리아 대성당 기공식을 가진 뒤 2023년 3월 25일 봉헌식을 올렸다.

디지털화성시문화대전은 남양성모성지가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병인박해 때 4명의 외지인이 끌려와 순교한 곳이라고 적는다. 용인 출신 정 필립보가 교수형을 당했고, 김 필립보와 박 마리아 부부, 김흥서 토마스는 1868년 8월 3일 함께 처형되었다. 수원교구 소개는 남양성모성지를 병인박해 때 이름 없이 순교한 순교자들을 현양하는 순교성지로 설명하며, 많은 순교자가 죽는 순간까지 묵주를 손에 들고 기도하며 순교했다고 적는다.

굿뉴스 성지 소개에 따르면 남양 지역은 서해안의 군사적 요충지에 자리해 중국과의 연락이 쉬워 조선 시대에 많은 교인이 찾아들었을 것으로 추측되며, 백학·활초 등 많은 교우촌이 인근에 형성되어 있었다. 옹기를 구워 팔던 백학 교우촌에서는 가마터와 그릇 조각이 발견되었다. 이 교우촌은 왕림과 큰 들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고, 안양 수리산, 양지 골배마실, 안성 미리내, 진천 배티, 아산 걸매리 등과 걸어서 하루거리에 있어 박해 당시 쉽게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고 한다.

디지털화성시문화대전은 남양에서 순교자가 나온 것이 병인박해보다 앞선 1839년 기해박해 때부터라고 설명한다. 당시 순교자들은 봉담읍 왕림리의 갓등이 공소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신자들이었고, 대표적인 순교자는 민극가 스테파노이다. 민극가는 인천 태생으로 서울에 살다 1828~29년경 갓등이 공소로 내려와 6~7년을 살며 어린이에게 교리문답을 가르쳤고, 박해를 피해 이주한 사람들을 받아들여 교우촌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기해박해 때 체포되어 1840년 1월 30일 53세에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갓등이 출신으로 병인박해 때 순교한 이로는 1866년 3월 11일 서울 새남터에서 72세로 군문효수형을 받은 정의배 마르코, 1867년 1월 해미에서 교수형을 받은 최 야고보가 있다.

같은 자료에 따르면 병인박해 이후 1876년 개항으로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재입국해 옛 교우촌을 공소로 재건했고, 갓등이도 다시 공소가 되었다. 1887~88년 갓등이 공소가 독정이와 왕림 두 공소로 나뉘었으며, 1888년 앙드레 신부가 갓등이(왕림)에 부임하면서 갓등이(왕림)본당이 설정되었다. 이는 수원교구 지역에서 첫 번째로 설립된 본당이라고 한다.

건축과 공간

수원교구 성지소개에 따르면 남양성모성지는 야트막한 야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이 야산에 오솔길을 내고 그 길을 따라 20단 묵주기도 길을 조성했다. 순례자들은 야생화와 나무들 사이에 놓인 돌 묵주알을 한 알씩 짚으며 묵주기도를 바친다. 굿뉴스 성지 소개에 따르면 성지 전체가 하나의 묵주로 꾸며져 있고 대형 십자고상과 성모상, 어른 둘이 팔을 펼쳐야 겨우 안을 수 있는 커다란 돌 묵주알이 놓여 있다. 환희의 신비 묵주기도 길은 설계도면 없이 10여 년에 걸쳐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넓히고 다듬어 만든 것인데,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자비로우신 성모 이콘'을 성지에 그대로 그려놓은 것처럼 성모와 예수의 모습이 뚜렷하게 보인다고 수원교구는 설명한다.

남양 성모상은 아기 예수가 성모의 옷자락을 붙들고 매달려 있는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다. 성지에는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사도적 축복을 내린 높이 4m의 자비로우신 예수님 상이 하느님 자비의 언덕에 모셔져 있다(수원교구 소개의 표기는 '베네딕도 16세').

가톨릭신문(2025년 5월 4일자)에 따르면 성지의 성당은 세계적 건축가 마리오 보타와 한만원(안드레아) 씨가 설계했다. 외관은 이중 원형 기둥의 붉은 벽돌 건물이며, 처음부터 바실리카 인준을 염두에 두고 지어졌다고 한다. 2층 성당에 들어서면 가늘고 얇은 나무 살을 수직으로 세워 빛을 조절한 나무 루버가 천장을 메우고 있고, 그 사이 창으로 자연광이 들어온다. 우리나라 성당으로는 드물게 양 기둥 옆에 여덟 개의 기도 공간(채플)이 있어 전 세계 성모상을 모시고 있으며, 이 가운데 '매듭을 푸시는 성모님'은 이수경 작가가 반가사유상과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 기둥마다 고 안선호(베다) 신부가 기증한 나자렛 성모영보 동굴, 겟세마니 동산, 베들레헴 동굴, 골고타 등 이스라엘 성지를 수리할 때 나온 돌을 액자에 넣어 비치했다.

같은 기사에 따르면 제대 위 십자가상은 조각가이자 화가인 줄리아노 반지(1931~2024)의 작품으로 공중에 떠 있는 듯 표현되었고, 그가 작업한 유리 성화는 '성모님의 생애'와 '최후의 만찬'을 담은 양면화이다. 제대 위 원형 기둥의 천창은 하지 즈음 성당의 방위와 태양 고도가 일치하는 시간이 되면 빛과 그림자가 천사 날개 모양으로 나타난다. 제단은 심포니 연주가 가능한 공간으로 만들려는 의도에서 다른 성당보다 넓게 지어졌고, 보타는 제대와 감실, 강론대, 해설대, 세례대, 성수대, 파이프오르간을 모두 직접 디자인했다. 1층 소성당 벽면은 유태근 작가가 문경 한지 454장을 옻칠과 밀랍 작업으로 완성한 한지 벽화이며, 남양성모자상이 강론대 자리에 모셔져 있고 고상은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1696~1787) 당시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제작되었다. 경당으로 의뢰되었던 티 채플은 페터 춤토르의 의견에 따라 찻집으로 만들어지고 있다고 하며, 이 성당은 2월에 가톨릭 미술상을 수상했다고 기사는 전한다.

디지털화성시문화대전은 대성당이 완공 후 개방형 콘서트홀로 활용되고, 평화문화나눔센터에 상설·기획 전시관, 공연장, 도서관, 글로벌 네트워크 방문자센터, 북 카페, 아트숍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적는다(해당 항목 집필 당시 계획).

신앙적 의미와 방문 맥락

가톨릭신문의 한국교회사 연재(2024년 4월 29일자)는 남양에 성모 발현이 있었던 것도 성모에 관한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며, 남양에 성모성지가 자리할 수 있었던 것은 박해시기 순교자들이 지녔던 깊은 성모신심을 기억하고 본받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같은 연재는 병인박해 순교자 기록에 묵주기도 일화가 많이 나온다고 전한다. 수원교구 소개는 묵주기도의 성모께 바친 이곳에서 이 땅의 평화와 가정의 성화를 위해 묵주기도를 끊임없이 바치도록 하는 것이 성지의 취지라고 적는다. 가톨릭신문 2025년 기사는 병인박해로 1866년부터 6년간 8000명이 처형되었고 남양도호부에서 희생된 무명 순교자들을 현양하기 위해 1991년 성지가 조성되었다고 서술한다.

관련 장소와 인물

  • 박지환 신부: 남양성당 제3대 주임. 1983년 3월 첫 남양 순교자 현양대회를 열었다.
  • 최덕기 신부: 1986년 1월 부임해 성지 개발 조감도를 세우고 돌 묵주알을 만들기 시작했다.
  • 이상각 신부: 1989년 8월 부임해 성모성지 선포를 추진했고, 2025년 가톨릭신문 기사 당시 성지를 전담했다(이상각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 마리오 보타, 한만원(안드레아), 페터 춤토르, 줄리아노 반지: 대성당과 성지 내 건축·미술에 참여한 건축가·작가.
  • 왕림성당(갓등이): 1888년 설정된 수원교구 지역 첫 본당.
  • 요당리 성지: 순교 성인 장주기가 태어나 세례를 받은 화성시 양감면의 성지(디지털화성시문화대전).

참고자료 및 출처

  1. 디지털화성시문화대전, 신앙의 전통, 갓등이왕림성당 남양성모성지, 요당리성지. 1983년 이후 성지 개발 과정, 1991년 성모성지 선포, 남양 순교자, 갓등이 공소와 왕림본당.
    https://hwaseong.grandculture.net/hwaseong/toc/GC08600017
  2. 천주교 수원교구, 성지소개 남양성모성지. 성모성지 선포, 20단 묵주기도 길, 남양 성모상, 자비로우신 예수님 상.
    https://www.casuwon.or.kr/holyland/intro/12
  3. 가톨릭인터넷 굿뉴스, 남양 성모 성지(성지와 사적지). 인근 교우촌, 2006년 자비로우신 예수님 동산, 2016년 기공, 2023년 3월 25일 대성당 봉헌.
    https://m.catholic.or.kr/web/holyplace/?seq=2317
  4. 가톨릭신문, [수원교구 성당 순례] 남양성모성지 성당(2025-05-04). 대성당의 설계와 내부 미술, 소성당, 티 채플.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250427500119
  5. 가톨릭신문, [교구에서 만난 한국교회사(23)] 남양성모성지: 박해시기 성모신심(2024-04-29). 성모성지가 조성된 취지와 박해시기 성모신심.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240429500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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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6일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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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6일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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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남양성모성지",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6일 06:51. https://missamap.com/ko/kr/suwon-namyangseongmo-shrine/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