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현 성당

목차
  1. 개요
  2. 역사
  3. 건축과 공간
  4. 관련 장소와 인물
  5.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하우현성당은 경기도 의왕시 청계동 원터마을에 있는 천주교 수원교구 소속 성당이다. 청계산과 광교산맥을 잇는 골짜기에 자리하며, 1894년에 지은 공소 강당에서 출발해 1900년경 본당이 되었다. 초대 주임 샤플랭 신부가 세운 사제관은 2001년 1월 경기도 기념물 제176호로 지정되었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이 성당의 주보를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로 적고, 가톨릭신문은 1982년 9월 5일 볼리외 신부를 본당 주보성인으로 모셨다고 적는다.

역사

〔교우촌의 형성〕 한국가톨릭대사전은 하우현 일대에 언제부터 천주교 신자들이 살게 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적는다. 청계산과 광교산 등 높은 산과 깊은 계곡, 울창한 수목이 박해를 피해 살 길을 찾던 신자들에게 최적의 장소였기 때문에 박해를 전후해 교우촌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하우현으로 낙향한 전교회장 김기호(요한)는 1901년에 지은 《봉교자술》에서 “하우현에는 군난을 전후하여 가난한 교우들이 모여 살았다”고 적었다. 의왕시 문화관광 자료와 가톨릭신문은 교우들이 때로는 땅을 파고 토굴 속에서 살았다고 하여 이곳을 ‘토굴이’ 또는 ‘토굴리’라고도 불렀다고 전한다. 의왕시 자료는 이곳이 옛날 동양원이라는 역원이 있던 곳으로 지금은 원터라고도 불린다고 설명하고, 뮈텔 신부 등이 정기적으로 순방하며 전교했으며 한국 천주교회가 아직 박해 아래 있던 때라 뮈텔 신부는 상복으로 변장하고 은밀히 하우현을 방문했다고 적는다.

〔이 지역의 순교자〕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신유박해 때 광주 의일리(현 의왕시 학의동)에 살던 한덕운(토마스)이 체포되어 1802년 1월 31일 남한산성에서 참수되었고, 1845년 9월에는 하우현에 살던 김준원(아니체토)이 체포되어 12월에 남한산성에서 순교했다. 광주 묘론리(현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에 머물던 볼리외(B. L. Beaulieu, 서몰례) 신부는 병인박해 때 청계산 중턱 둔토리 굴아위 동굴에 숨어 지내다 체포되어 1866년 3월 7일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가톨릭신문은 프랑스 보르도교구의 랑공에서 태어난 볼리외 신부가 1863년 사제품을 받고 2년 뒤 한국 땅을 밟았으며, 뫼논리 교우촌에서 신자들에게 성사를 주며 조선어를 익혔고, 1866년 2월 베르뇌 주교에게서 새 임지를 받은 직후 병인박해가 일어났다고 전한다. 같은 기사에 따르면 신부는 교우들의 안전을 위해 청계산 중턱의 동굴에 은신했다가 식부 장제철의 밀고로 둔토리 굴아위 동굴에서 2월 27일 체포되었고, 3월 7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로 치명했으며 당시 나이는 25세였다.

〔공소 설립과 강당 건립〕 한국가톨릭대사전은 박해로 하우현의 교우촌이 와해되었다가 1884년에 이르러 다시 공소가 설립되었고, 1888년 7월 갓등이(현 왕림) 본당이 설립되면서 하우현이 그 관할이 되었다고 적는다. 갓등이 본당 2대 주임 알릭스(J. Alix) 신부는 하우현 신자들이 공소 강당 없이 교우 집에서 공소 예절을 하는 것을 보고 강당 신축을 추진했고, 1894년 5월 알릭스 신부가 협조한 금액과 신자들이 모금한 1,500냥으로 초가 목조 강당(10칸)이 세워졌다. 가톨릭신문은 1893년 하우현공소를 방문한 알릭스 신부가 김기호 회장 등 공소 신자들의 청원을 받아들여 강당 건립을 결정했고, 1894년 6월 2일 축성식이 거행되었다고 전한다. 의왕시 자료는 1893년 공소 초대 회장으로 김윤중(베드로)이 선출된 기록이 있다고 적는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강당이 세워진 뒤 교세가 급속히 늘었고 서울에서 가까운 데다 경치가 좋아 신부들의 휴양지로 이름이 났으며, 프랑스 선교사들이 조선어를 배우거나 휴양하기 위해 며칠씩 머물곤 했다고 적는다.

〔본당 승격〕 한국가톨릭대사전은 하우현 공소가 1900년 9월경 본당으로 승격되어 초대 주임으로 샤플랭(O. Chapelain, 채시걸) 신부가 부임했다고 적는다. 설립 당시 관할 구역은 광주·용인·과천 등지였고 16개 공소에 신자는 1,105명이었다. 샤플랭 신부는 기존 공소 강당을 성당으로 쓰는 한편 사제관을 신축했으나 신자들과의 갈등으로 해임되었다. 가톨릭신문은 왕림본당이 신설 8년 만에 미리내본당을, 12년 만에 하우현본당을 분리시켰으며, 하우현본당이 1894년의 공소 강당을 그대로 사용했다고 설명한다. 같은 기사는 당시 하우현본당 신자들의 열정이 대단해 주일마다 성당이 비좁을 정도였고 대축일에는 전체 신자의 절반에 가까운 500여 명이 미사에 참례했다고 전한다. 신자는 1901년 1,109명, 1911년 2,418명으로 늘었다가 1922년 1,086명으로 줄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교세 통계).

〔본당의 부침〕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1906년 3월 르 각(C. Le Gac, 곽원량) 신부가 2대 주임으로 부임했고, 1912년 4월 27일 페랭(P. Perrin, 백문필) 신부가 3대 주임이 되었다. 페랭 신부는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으로 소집되어 프랑스로 떠났고, 이후 행주 본당의 김원영(아우구스티노) 신부가 갓등이 본당을 돌보면서 하우현 본당도 함께 사목했다. 1920년 5월 23일 4대 주임으로 부임한 윤예원(토마스) 신부는 본당 안에 4년제 초등 과정의 경애 강습소를 열어 주민의 문맹 퇴치 운동을 벌이고 신개화 사상을 교육했으나, 윤 신부가 옥천 본당으로 전임된 뒤 운영난으로 강습소는 폐쇄되었다. 1930년 10월 5대 주임 부이수(P. Bouyssou, 손이섭) 신부가 대신학교 교수로 전임되자 하우현은 수원(현 북수동) 본당의 공소가 되었고, 1937년 8월 김경민(루도비코) 신부가 6대 주임으로 부임해 본당으로 부활했다가 1943년 1월 김 신부가 황해도 재령 본당으로 전임되면서 다시 공소가 되었다. 같은 해 12월 7대 주임으로 부임한 황정수(요셉) 신부는 1944년 4월부터 논산(현 부창동) 본당 사목까지 맡았다가 같은 해 10월 하우현으로 복귀했고, 1951년 10월 평택 본당으로 전임되면서 하우현은 영등포(현 도림동) 본당 관할 공소가 되었다.

〔안양 이전과 현 성당 신축〕 1953년 12월 구천우(요셉) 신부가 8대 주임으로 부임하며 하우현 공소는 다시 본당이 되었다. 구 신부는 산간 지역의 하우현보다 발전 가능성이 있는 안양 읍내로 본당을 옮기려 했고, 1954년 3월 7일 안양에 성당을 세운 뒤 9월 7일 안양(현 중앙) 본당의 초대 신부로 부임했다. 이로써 하우현 본당은 안양 본당 관할 공소가 되었으며, 성당과 사제관은 그대로 보존되어 신부들의 휴양지로 쓰였다(한국가톨릭대사전). 은퇴 후 하우현에서 휴양하던 김영근(베드로) 신부는 성당이 퇴락해 붕괴 위험이 있음을 보고 1965년 미군 부대에서 건축 자재를 원조받아 현재의 성당을 신축했으며, 이때 구로동(현 구로3동) 본당 주임이던 스피스 신부가 김영근 신부와 미군 부대 사이에서 큰 역할을 했다. 의왕시 자료와 굿뉴스 성지 소개도 1965년 김영근 신부가 미군 부대의 건축 자재 원조로 현재의 성당을 신축했다고 적는다.

〔본당 부활과 현재〕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1975년 12월 안양 본당에서 군포(현 호계동) 본당이 분리·설정되면서 하우현 공소는 군포 본당 관할 공소가 되었다가, 1978년 6월 25일자로 본당으로 부활해 9대 주임 스피스(R. Spies, 파현우) 신부가 부임했다. 스피스 신부는 사제관·회의실 수리(1979년 7월), 14처 동산 조성(1983년 9월), 성당 수리(1984년 10월), 성 루이 볼리외 성상 건립(1987년 6월), 성당 안 예수 성심상 건립(1989년 10월)으로 본당 환경을 가꾸었고, 1991년 10월 1일 수녀원 건물을 마련했으며, 1993년 10월 16일 하우현 공소 건립 100주년 기념식을 거행했다. 10대 주임 한연흠(다니엘) 신부는 2000년 1월에 부임했고, 재임 중인 2001년 1월 사제관이 경기도 기념물 제176호로 지정되었으며 2004년 7월과 2005년 6월에 사제관 보수 공사와 조경 공사가 각각 이루어졌다. 굿뉴스 성지 소개는 2012년 성당 뒤편에 성모동산과 묵주기도 길이 조성되었다고 적는다. 가톨릭신문은 2019년 기준 신자 수 180명의 작은 본당이라고 적고, 의왕시 자료는 200여 명으로 적는다.

〔주보성인〕 가톨릭신문에 따르면 하우현본당은 1982년 9월 5일 공식적으로 루도비코 볼리외 신부를 본당 주보성인으로 모셨고 기념비를 세워 그의 뜻을 기리고 있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이 본당의 주보를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로 적어 두 출처가 다르다. 굿뉴스 성지 소개는 사제관 앞에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서 루도비코 볼리외 성인의 기념비와 동상이 있다고 적고, 성인이 주로 하우현 인근에서 사목하다가 청계산 둔토리 동굴에서 체포되어 순교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역대 주임〕 한국가톨릭대사전이 적은 역대 주임은 초대 샤플랭 오스칼(1900.9~1906.2), 2대 르 각 가롤로(1906.3~1912.4), 3대 페랭 필립보(1912.4~1914.8), 4대 윤예원 토마스(1920.5~1927.9), 5대 부이수 베드로(1928.5~1930.10), 6대 김경민 루도비코(1937.8~1943.1), 7대 황정수 요셉(1943.12~1951.10), 8대 구천우 요셉(1953.12~1954.9), 9대 스피스 라이문도(1978.6~2000.1), 10대 한연흠 다니엘(2000.1~)이다. 교세 통계로는 1978년 166명, 1980년 183명, 1985년 157명, 1990년 186명, 1995년 234명, 2000년 183명, 2003년 167명이 올라 있다.

건축과 공간

성당 건물은 1965년에 공소 강당을 신축한 것이라고 가톨릭신문이 적는다. 이 신문은 신발을 벗고 들어서는 성당이 좌식으로 되어 있고, 좌석이 100석이 채 안 되며, 한 사람씩 앉는 책상마다 성경책과 성가책이 놓여 있다고 소개한다. 성당 오른쪽에는 작은 정원처럼 꾸민 십자가의 길 14처가 있다.

사제관은 몸체를 서양식 석조로 하고 지붕에 한국 전통의 골기와를 얹은 한불 절충식 건축물이다(가톨릭신문, 굿뉴스 성지 소개). 가톨릭신문은 평면과 구조, 의장 등이 갖는 건축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판단돼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고 적고, 굿뉴스 성지 소개는 20세기 초반에 한국식과 서양식 건축 기법을 혼용한 드문 경우라고 설명한다. 건립 시기는 출처마다 다르다. 가톨릭신문은 초대 주임 샤플랭 신부가 1904년 신축했다고 적고, 굿뉴스 성지 소개와 의왕시 자료는 1906년에 건립·신축했다고 적는다. 가톨릭신문에 따르면 건축할 당시 초대 주한 프랑스 공사가 종을 기증해 헌납식과 함께 축성식을 거행했고, 지금의 사제관은 2005년 보수 작업으로 새로 단청한 것이다. 국가유산포털은 이 건물을 ‘하우현성당사제관’이라는 이름의 경기도 기념물로 올려 두었으며 지정(등록)일은 2001년 1월 22일, 수량은 1동으로 표기한다.

관련 장소와 인물

  • 갓등이(왕림) 본당: 1888년 7월 설립된 하우현의 모본당으로, 2대 주임 알릭스 신부가 1894년 하우현 공소 강당을 세우도록 힘썼다(한국가톨릭대사전).
  • 볼리외(서몰례) 신부: 1866년 청계산 둔토리 굴아위 동굴에서 체포되어 새남터에서 순교한 선교사이며, 사제관 앞뜰에 기념비가 있다(가톨릭신문, 굿뉴스 성지 소개).
  • 한덕운(토마스)과 김준원(아니체토): 이 지역에서 체포되어 남한산성에서 순교한 신자들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 샤플랭(채시걸) 신부: 1900년 9월 하우현 본당의 초대 주임으로 부임해 사제관을 세운 선교사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 김영근(베드로) 신부: 은퇴 후 하우현에서 휴양하며 1965년 현재의 성당을 신축한 사제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의왕시 문화관광).
  • 미리내 본당: 왕림본당이 신설 8년 만에 분리시킨 본당이다(가톨릭신문).
  • 안양(현 중앙) 본당: 1954년 구천우 신부가 세워 하우현 본당을 관할 공소로 삼은 본당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참고자료 및 출처

  1. 한국가톨릭대사전, “하우현 본당”(12권). 1900년 9월경 갓등이 본당에서 분리 설정, 역대 신부, 교세 통계, 본당의 부침과 현 성당 신축, 사제관의 경기도 기념물 지정, 이 지역 순교자.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6707
  2. 굿뉴스 가톨릭성지, “하우현 성당”(성지와사적지). 1894년 초가 목조 강당, 1900년 본당 승격, 1965년 성당 신축, 2001년 사제관 경기도 기념물 지정, 2012년 성모동산, 사제관 양식과 볼리외 성인 기념비.
    https://m.catholic.or.kr/web/holyplace/?seq=2379
  3. 가톨릭신문, “[신앙선조 흔적 찾아 문화재 탐방] (4) 하우현성당과 사제관”(2019년 8월 25일, 제3159호 4면). 볼리외 신부 약전, 1894년 6월 2일 강당 축성, 1900년 본당 설립, 1904년 사제관 신축, 1982년 주보성인 봉헌, 성당 내부.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1908200104684
  4. 의왕시 문화관광, “하우현성당”. 원터 지명과 교우촌, 1893년 공소 회장, 1894년 강당 건축, 1900년 본당 독립, 1906년 사제관 신축, 2001년 1월 22일 경기도 기념물 지정.
    https://www.uiwang.go.kr/culture/UWTOURSEE0303
  5.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하우현성당사제관”. 경기도 기념물, 지정(등록)일 2001년 1월 22일, 1동.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3331017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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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날
2026년 10월 16일 18:43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6일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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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하우현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6일 18:43. https://missamap.com/ko/kr/suwon-hauhyeon-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