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점 성당

목차
  1. 개요
  2. 역사
  3. 관련 장소와 인물
  4.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병점성당은 경기도 화성시 병점동에 있는 천주교 수원교구 소속 성당이다. 1913년경 왕림 본당 관할의 병점 공소로 시작해 1985년 12월 3일 준본당이 되고 1987년 8월 1일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주보는 구세주의 어머니이다.

역사

〔공소 시대〕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떡전 거리’로 불리던 병점에 언제부터 신앙이 전파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박해 시대에 신자들이 주로 산간 지역의 옹기 마을에 숨어 신앙생활을 이어간 것으로 미루어 병점도 구봉산 기슭의 점촌을 중심으로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13년경 당시 왕림 본당 5대 주임 르 각(Le Gac) 신부에 의해 신자 62명의 병점 공소가 설립되었으나 르 각 신부가 이듬해 5월 26일 장티푸스로 사망하여 후임 김원영(아우구스티노) 신부가 이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후 병점 공소는 해마다 교세가 늘어 1920년에는 왕림 본당 관할 공소 37개 가운데 가장 많은 214명의 신자 수를 기록했다. 이에 앞서 김원영 신부는 공소 강당을 완공할 무렵인 1918년 11월 16일 종현(현 명동) 본당 주교관 식당에 있는 성모상을 기증해 달라고 뮈텔(A. Mutel) 주교에게 청원했다. 디지털화성시문화대전은 병점공소가 1892년 당시 서울교구 북수동성당 소속 공소로 설립되었다고 적는다.

〔공소 시대의 변천〕 대사전에 따르면 1923년 11월 수원읍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병점 공소는 수원(현 북수동) 본당 관할이 되었다. 1926년 12월 6일에는 황해도 매화동 본당의 보좌였던 몰리마르(Molimard) 신부가 한국의 언어를 익히기 위해 1928년 봄까지 이곳에서 잠시 머물렀고, 1934년 10월부터 1936년까지는 왕림 본당 보좌 김유룡(필립보) 신부가 병점에서 사목했다. 일제 시대 말기에 옹기업이 쇠퇴하면서 많은 교우들이 타지로 전출해 몇몇 교우들만 공소를 지켰으나, 1970년대 초 도시로부터의 인구 역류로 공소 신자 수가 점차 늘었고, 1981년 8월 매교동 본당이 설립되면서 병점 공소는 새 본당으로 이관되었다. 문화대전은 병점공소가 1981년 8월 21일 매교동성당 소속 공소로 있다가 교세가 커지자 1985년 12월 3일 준본당으로의 승격을 거쳐 1987년 8월 1일 본당으로 승격했다고 적는다.

〔준본당과 본당 승격〕 대사전에 따르면 1980년대 초 신자 수 증가로 본당 분할을 계획한 매교동 본당은 성당 신축 기성회를 조직하고, 1985년 3월 5일 현 부지 1,313평을 마련한 뒤 3월 17일 신축 공사에 착수했다. 같은 해 7월 30일 성당과 사제관, 강당을 완공했으나 곧바로 본당으로 승격되지 못하고 1985년 12월 3일 준본당으로 설정되었다. 당시 신자 수는 198세대 597명이었고 공군 군종 김한철 신부가 거주하면서 미사를 봉헌했다. 이듬해 6월 15일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를 초청하는 등 본당 승격의 요건을 갖추어 1987년 8월 1일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초대 주임 김한철 신부는 1988년 1월 연령회를, 3월 4일 안나회를 조직하는 등 여러 평신도 단체 활동을 장려했고, 2대 주임 서범석 신부는 신자들의 신앙생활 강화와 전교에 주력했으며, 3대 주임 주인배 신부는 한국 순교 성인 103위 호칭 기도를 약식으로 만들어 매 미사 후 전 신자와 함께 바쳤다. 1997년 2월 부임한 윤민재 신부는 소공동체 활성화 방안으로 남성 신자들을 위한 구역 형제회를 구성하고 청소년 사목을 강화했으며 1인 1단체 활동하기와 신심 서적 읽기 등을 권장했다.

〔성전 신축과 분가〕 디지털화성시문화대전에 따르면 본당은 1999년 10월 26일 성전 기공식을 하고 2003년 9월 20일 최덕기(바오로)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가졌다. 2004년 10월 1일에는 화성시 안녕동에 안녕성당을 분가(375세대 1,024명)시켰고, 2006년 9월 26일에는 화성시 기산동에 기산성당을 분가(518세대 1,343명)시켰다. 2015년에는 수원교구 청소년국에서 시작한 기도 모임 ‘룩스메아(Lux Mea)’를 전 신자 대상으로 출범시켰고, 2020년 코로나19 확산으로 기도 모임을 비대면으로 하고자 모바일 앱 개발을 후원해 기도 모임을 이어 갔다.

〔현황과 교세〕 문화대전에 따르면 병점성당은 화성시 능동, 병점동, 진안동 일부를 관할하며 수원교구 제1대리구 오산지구에 속한다. 2020년 기준 세대 수는 1,592세대, 신자 수는 3,895명이고 사제 1명과 수녀 2명이 있으며 파견 전교 수녀회는 수원성빈센트드뽈자비의수녀회이다. 성당 규모는 대지 3,004㎡, 건물 2,592.2㎡이고 소속 단체로는 레지오 마리애, 울뜨레야, ME(메리지 엔카운터), 연령회, 안나회, 성가대 등이 있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의 교세는 1987년 903명, 1991년 1,119명, 1995년 1,435명이며, 당시 관할 구역은 태안읍 병점리·진안리·기산리·반월리·능리·송산리·안녕리·황계리·반정리와 오산시 양산동·세교동·지곶동·외삼미동 일대였다.

〔역대 주임 신부〕 한국가톨릭대사전이 적은 역대 신부는 초대 김한철 율리아노(1987.8~1988.4), 임시 배영호 베드로(1988.4~9), 2대 서범석 요셉(1988.9~1994.3), 3대 주인배 베드로(1994.3~1997.2), 4대 윤민재 베드로(1997.2~)이다.

관련 장소와 인물

  • 매교동 본당: 병점 공소가 1981년 8월 이관된 본당이며, 병점 본당은 이 본당 관할 준본당에서 1987년 본당으로 승격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 왕림 본당: 병점 공소가 속했던 본당으로, 1920년 당시 관할 공소 37개 가운데 병점 공소의 신자가 가장 많았다(한국가톨릭대사전).
  • 안녕성당(2004)·기산성당(2006): 병점성당에서 분가한 성당이다(디지털화성시문화대전).
  • 르 각(Le Gac) 신부·김원영(아우구스티노) 신부: 병점 공소의 설립과 초기 사목에 관계한 왕림 본당 신부들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참고자료 및 출처

  1.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병점 본당”. 공소 시대, 1981년 매교동 본당 이관, 1985년 준본당과 1987년 본당 승격, 역대 신부, 교세.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2553
  2.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화성시문화대전 “병점성당”(집필 정종득). 설립 목적, 변천, 성전 봉헌과 안녕·기산 분가, 현황.
    https://hwaseong.grandculture.net/hwaseong/toc/GC0860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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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6일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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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6일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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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병점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6일 23:08. https://missamap.com/ko/kr/suwon-byeongjeom-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