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십리 성당

목차
  1. 개요
  2. 역사
  3. 건축과 공간
  4. 신앙적 의미와 방문 맥락
  5. 관련 장소와 인물
  6.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왕십리성당은 서울대교구 동서울지역 제8 성동-광진지구에 속하는 본당으로, 서울 성동구 홍익동에 있다.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1959년 11월 신당동 본당에서 분리·설정되었으며 주보는 예수 성심이다. 성 골롬반회의 지원으로 한국 전력 공사 소유 사택을 사들여 세운 왕십리 공소가 출발점이며, 뚝섬 공소(성수동 본당)와 행당동 본당을 낳은 본당이다.

역사

〔공소 설립과 본당 승격〕 1959년 당시 신당동 본당은 서울 동남부 전 지역을 관할하는 방대한 본당이어서 왕십리 동쪽 신자들이 미사를 봉헌하기 어려웠다. 이에 그해 4월 13일 성 골롬바노회의 지원으로 게러티(B. Geraghty) 신부가 한국 전력 공사 소유 사택 1동을 사들여 신당동 본당 소속의 왕십리 공소를 세웠다. 공소 설립 당시 신자수는 29세대 100명 정도였고, 첫 미사는 신당동 본당 주임 김창문(요셉) 신부가 집전했으며 주일 미사 때는 게러티 신부도 함께 집전하였다. 신자들은 게러티 신부를 통해 서울교구청에 본당 승격을 여러 차례 교섭했고, 1959년 11월 16일 신당동 본당에서 왕십리 일대를 분리해 새 본당이 신설되어 게러티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본당은 공소 강당을 그대로 사용했고 사제관은 길 건너 사옥을 개수해 사용하였다. 당시 관할 구역은 신당동 네거리에서 청계천 남쪽과 중곡동 동쪽은 물론 행당동 동쪽까지 이르렀다.

〔초기 발전〕 관할 구역이 너무 방대해 1960년 뚝섬 공소를 마련했으나, 교세가 늘면서 더 넓은 성당이 필요해졌다. 1961년 현 본당 자리에 신축 성당을 준공하고 같은 해 4월 주보를 '예수 성심'으로 명명했으며, 10월 24일 노기남 주교의 집전으로 첫 견진성사가 거행되었다. 1962년 7월 30일 본당 자매 교우 70여 명의 기금으로 대종을 구입해 '성 알풍소'라 명명하고 축성하였다. 죄인의 의탁 소년 쁘레시디움(1959년 8월), 평화의 모후 쁘레시디움(1962년 1월), 성모회(1962년 10월), 연령회(1964년 7월) 등 신심 단체가 창립되었고, 1965년 6월 10일에는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가 본당 내에 분원을 마련하였다.

1965년 7월 게러티 신부가 휴가차 귀국하면서 오코너 신부가 부임했으나 9개월 만인 1966년 9월 5일 게러티 신부가 3대 주임으로 다시 부임하였다. 1966년 뚝섬 공소가 성수동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1968년 11월 성심 도서실을 개원하고 11월 16일 성심회를 창립했으며, 4대 주임 매니언 신부 재임기인 1968년 12월 25일 본당 주보를 창간하고 1969년 8월 행당동 본당을 분리·설립하였다. 황학동·유락동·인창동·현인동 신자들을 위해 1969년 4월 20일 황학동 116번지에 가톨릭 센터를 마련했고, 그해 9월 24일 경기도 파주군 조림면 뇌조리 소재 야산에 묘지를 조성하였다.

6대 주임 김수창 신부는 1973년 8월 5일 사목 위원회를 발족하고 다음해 6월 성당 지하실을 보수해 휴게실을 준공했으며, 1975년 7월 5일 성 안드레아 김대건 사제상을 성당 입구 우측 벽에 시공해 제막식을 거행하였다. 7대 주임 김철규 신부는 사제관과 수녀원을 보수했고 1977년 어머니 성서 모임과 제대회 등 신심 단체가 발족하였다. 8대 주임 이원규 신부는 '선교하는 본당 공동체·배우는 본당 공동체·사랑과 친교의 본당 공동체·활성화한 구역의 본당 공동체'를 사목 지침으로 내세웠고, 성당 부지 확장 사업을 1983년 6월 말에 마쳤으며 1985년 4월 7일 청년 연합회를 발족하였다. 9대 주임 오창선 신부는 혼인 강좌를 신설했고, 10대 주임 김승훈 신부는 유급 사무장 제도를 부활시키고 1988년 11월 25일 교육관 유치원·사제관을 완공해 축복식을 거행했으며 1990년 5월 13일 본당 30년사를 발간하였다. 1992년 11월 15일 사근동 공소 강당을 신축해 축복식을 거행했는데, 사근동 공소는 1996년 마장동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2000년 3월부터 한 달간 본당 마당 석조 및 정원 조경 공사를 하고 예수 성심상 좌대를 이전하였다.

한국가톨릭대사전에 기재된 관할 구역은 상·하왕십리동, 도선동, 마장동, 신당동, 행당동, 홍익동 일부이다. 교세는 1960년 1,650명, 1965년 5,079명, 1970년 3,105명, 1975년 6,386명, 1980년 4,852명, 1990년 6,393명, 2000년 3,684명이다. 역대 주임은 초대 게러티 베르나르도(1959.11~1965.7), 2대 오코너 마우리시오(1965.7~1966.9), 3대 게러티(1966.9~1968.12), 4대 매니언 프란치스코(1968.12~1970.7), 5대 플래너건 요셉(1970.7~1973.5), 6대 김수창 야고보(1973.5~1976.5), 7대 김철규 바르나바(1976.5~1982.5), 8대 이원규 마태오(1982.5~1986.8), 9대 오창선 시몬(1986.8~1988.2), 10대 김승훈 마티아(1988.2~1993.10), 11대 박고빈 시메온(1993.10~1998.9), 12대 이봉우 토마스 데 아퀴노(1998.9~2001.10), 13대 김승현 그레고리오(2001.10~)이다.

건축과 공간

설립 때에는 공소 강당을 그대로 본당 성당으로 사용하였고, 1961년 현 본당 자리에 신축 성당을 준공하였다. 1962년 7월 30일 대종을 구입해 '성 알풍소'라 명명·축성하였으며, 1975년 7월 5일 성당 입구 우측 벽에 성 안드레아 김대건 사제상이 시공되었다. 1983년 6월 성당 부지 확장 공사를 마쳤고, 1988년 11월 25일 교육관 유치원·사제관이 완공되었다.

신앙적 의미와 방문 맥락

한국 천주교 주소록에 따르면 본당의 수녀회는 툿찡포교베네딕도서울수녀회이고, 성심유치원이 본당에 속해 있다.

관련 장소와 인물

  • 신당동 본당: 1959년 11월 왕십리 본당이 분리되어 나온 모본당이다.
  • 뚝섬 공소(1960년 마련)→성수동 본당(1966년 승격)·행당동 본당(1969년 8월 분리)·사근동 공소→마장동 본당(1996년 승격): 왕십리 본당에서 비롯된 공소와 본당들이다.
  • 성 골롬바노회: 왕십리 공소 설립을 지원한 선교회이며, 초대 주임 게러티 신부가 이 회 소속이다.
  • 가톨릭 센터: 1969년 4월 20일 황학동 116번지에 마련한 시설이다.

참고자료 및 출처

  1.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왕십리 본당(성동)」. 1959년 11월 분리·설정, 주보 예수 성심, 관할 구역, 공소 설립과 본당 승격 경위, 성당 신축, 분리된 본당과 공소, 역대 주임과 교세를 확인하였다.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4674
  2.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 천주교 주소록 「왕십리」. 소속 지구(동서울지역 제8 성동-광진지구), 설립일 1959.11.16, 주보 예수 성심, 툿찡포교베네딕도서울수녀회, 성심유치원을 확인하였다.
    https://directory.cbck.or.kr/OnlineAddress/Catholic/DetailInfo.aspx?cgubn=c&char=all&code=201000194&gubn=4&gubn2=all&gyogu=20100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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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3일 0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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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3일 0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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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왕십리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3일 03:58. https://missamap.com/ko/kr/seoul-wangsipri-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