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동(지) 성당

목차
  1. 개요
  2. 역사
  3. 건축과 공간
  4. 신앙적 의미와 방문 맥락
  5. 관련 장소와 인물
  6.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목동성당은 서울대교구 서서울지역 제18 양천지구에 속하는 본당으로, 서울 양천구 목동에 있다. 1972년 6월 14일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사도 성 바오로이다. 1923년 행주(현 수색) 본당 소속 목동리 마장 공소로 시작된 신앙 공동체가 전신이고, 설립 초기에는 철거민 이주 지역에서 골롬반 외방선교회가 빈민 사목에 중점을 두었다.

역사

〔공소 시대〕 이 지역 신앙 공동체는 1923년 10월 31일 행주(현 수색) 본당 소속 목동리 마장 공소로 시작되었다. 1936년 5월 영등포(현 도림동) 본당 관할의 신정동 공소로 변경되었다가, 1957년 6월 관할이 당산동 본당으로 다시 바뀌었다. 서울시 도시 개발 정책에 따라 무허가 주택이 철거되는 과정에서 1964년 10월부터 용산 해방촌 일대의 철거민들이 지금의 목1동과 신정2동 안양천 제방 지역으로 집단 이주하면서 상주 인구가 늘었다. 이에 신정동 공소에서 목동 지역 주민들이 분리되어 1965년 1월 목동 공소가 세워졌고 당시 공소 신자는 506명이었다. 서울 각지의 철거민이 계속 몰려들어 신자가 늘자 1972년 6월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설립 및 성당 신축〕 이 지역 사목을 맡은 골롬반 외방선교회는 양천구 목1동 408-90번지에 성당터를 매입하여 잠시 천막 교회 생활을 하다가 성당을 완공하고 그해 10월 12일 첫 미사를 봉헌하였다. 당시 목동은 상습 침수 지역이어서 해마다 장마철이면 신자들의 가옥과 성당이 물에 잠겼고, 성당 완공 1년이 채 안 된 1973년에는 장마로 성당이 침수되고 담장이 무너졌다. 신자들은 자진해서 복구 공사에 참여했고 1974년 성당을 보수할 때도 모든 공사를 신자들이 하였다. 성당이 협소해지자 1980년 8월 신축 공사에 착수하여 이듬해 3월 1일 연건평 327평,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성당을 완공하였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아파트촌이 들어서며 신자가 폭발적으로 늘자 1990년 2월 7일 성당 건립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성당 신축 계획을 본격화하였다. 같은 해 3월 8일 현재의 성당 터 1,087평을 매입하고 1992년 4월 26일 신축 공사에 들어가, 4년여 만인 1996년 6월 16일 지상 4층, 지하 1층 규모의 성당을 완공하였다. 소성당을 비롯해 교리실, 피정실, 영안실, 성체 조배실 등을 갖추었고 지역 주민도 이용할 수 있는 '문화관'을 함께 건립하였다.

〔발전 및 활동〕 본당 신설 이듬해인 1973년 6월 27일 등촌동 본당을, 1976년 12월 9일 신정동 본당을 분리시켰다. 밀린 교무금 때문에 미사 참례를 기피할 만큼 어려운 신자가 많아 설립 초기 골롬반 외방선교회 신부들은 빈민 사목에 중점을 두었다. 1960년대 강제 이주 후 생활 기반을 마련해 가던 주민들은 1984년 신시가지 조성 계획으로 다시 집단 이주당할 처지에 놓였고, 서울시를 상대로 생존권 보장 시위를 벌였다. 2,000여 명의 목동 본당 신자들도 목동 철거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서울시의 철거 계획에 맞섰으나,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듬해 4월부터 목동을 떠나기 시작했고 곧바로 아파트촌이 들어서면서 본당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1988년 2월 사목권이 골롬반 외방선교회에서 교구로 이관된 뒤 부임한 6대 주임 김덕근 요셉 신부는 신자들의 공동체 의식 함양에 중점을 두어 '한마음 한 몸 운동'으로 신자들의 참여를 이끌었다. 1991년 8월 고척동 본당을 분가시켰고, 이듬해 7월 본당 내에 '임마누엘 어린이집'을 개원하여 극빈·결손 가정 어린이를 돌보기 시작했다. 1995년 9월에는 불우 이웃과 농어촌을 돕는 바자회를 실시하고, 인근 신목·양동·양목 초등학교 결식 아동에게 급식을 지원했으며, 산간 벽지 공소와 신학생에게도 경제적 지원을 하였다.

한국가톨릭대사전에 기재된 관할 구역은 목동 아파트 7~9, 12~14단지이다. 역대 주임은 초대 휴즈(유) 그레고리오(1972년 6월~11월), 2대 콘웨이(구순혁) 파트리치오(1972년 11월~1977년 2월), 3대 세퍼(기영수) 굴리엘모(1977년 2월~1981년 9월), 4대 브렌난(안광훈) 로베르토(1981년 9월~1985년 6월), 5대 던(손) 제라르도(1985년 6월~1988년 2월), 6대 김덕근 요셉(1988년 2월~1996년 10월), 7대 김철호 바오로(1996년 10월~)이다. 교세는 1972년 800명, 1977년 1,954명, 1985년 3,126명, 1990년 8,378명, 1994년 9,523명이다.

건축과 공간

1972년 성당을 완공해 10월 12일 첫 미사를 봉헌하였고, 1981년 3월 1일 연건평 327평 규모(지하 1층 지상 2층)의 성당이 완공되었다. 현재 성당은 1,087평 터에 1992년 4월 26일 착공하여 1996년 6월 16일 지상 4층, 지하 1층 규모로 완공되었으며 소성당, 교리실, 피정실, 영안실, 성체 조배실과 지역 주민이 이용할 수 있는 문화관을 갖추었다.

신앙적 의미와 방문 맥락

한국 천주교 주소록에 따르면 본당의 수녀회는 영원한도움의성모수도회이다.

관련 장소와 인물

  • 행주(수색) 본당·영등포(도림동) 본당·당산동 본당: 목동 지역 공소의 관할이 거쳐 간 본당들이다.
  • 등촌동 본당(1973년 6월 27일)·신정동 본당(1976년 12월 9일)·고척동 본당(1991년 8월): 목동 본당에서 분리·분가한 본당들이다.
  • 골롬반 외방선교회: 설립부터 1988년 2월 사목권이 교구로 이관될 때까지 본당 사목을 맡은 선교회이다.

참고자료 및 출처

  1.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목동 본당(양천)」. 1972년 6월 본당 승격, 주보 사도 성 바오로, 1923년 이래의 공소 연혁, 성당 신축, 철거민 이주와 시위, 분리된 본당들, 역대 신부와 교세를 확인하였다.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2054
  2.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 천주교 주소록 「목동」. 소속 지구(서서울지역 제18 양천지구), 설립일 1972.6.14., 주보 사도 성 바오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도회를 확인하였다.
    https://directory.cbck.or.kr/OnlineAddress/Catholic/DetailInfo.aspx?cgubn=c&char=all&code=201000098&gubn=4&gubn2=all&gyogu=20100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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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3일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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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목동(지)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3일 02:47. https://missamap.com/ko/kr/seoul-mokdong-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