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천동 성당

목차
  1. 개요
  2. 역사
  3. 건축과 공간
  4. 신앙적 의미와 방문 맥락
  5. 관련 장소와 인물
  6.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마천동성당은 서울대교구 동서울지역 제10 송파지구에 속하는 본당으로, 서울 송파구 마천동에 있다. 1971년 9월 17일 천호동 본당에서 분리·설립되었으며, 처음에는 거여동 본당이라 불리다 1981년 3월 마천동 본당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주보는 성 아우구스티노이다.

역사

〔공소 시대〕 이 지역 신앙 공동체는 1966년 8월경 천호동 본당 관할인 마천동과 거여동 일대에 서울 각처에서 이주해 온 철거민들이 정착하면서 시작되었다. 신자 4~5명이 1967년 4월 이심원(시메온)의 집에 모여 공소 예절을 거행하였고, 8월에는 회장 최재환(마태오)을 중심으로 거여동 공소를 신설하였다. 1969년 11월에는 당시 서울대교구 경리부장 경갑룡(요셉) 신부의 주선으로 혜화동 본당으로부터 현 본당 소재지의 부지 1,143평을 기증받았다. 여기에 골롬반 외방선교회 한국 지부의 본당 설립 기금 협조를 받아 1971년 9월 5일 성당(58.8평)과 사제관(19.6평)을 신축하고 그해 9월 17일 본당으로 승격하였으며, 사목권은 골롬반 외방선교회에 위임되었다.

〔설립과 변모〕 마천동 본당은 설립 이후 1986년 5월 4대 주임 모리시 신부가 전임될 때까지 약 15년 동안 골롬반 외방선교회가 맡았다. 설립 당시의 관할 구역은 마천1·2동, 거여동, 이동, 방이동, 오금동, 문정동, 장지동, 가락동, 송파동 및 경기도 광주군 서부면 감1·2리, 학함리 등이었다. 1982년 6월 가락동·송파동·문정동·장지동이 잠실 본당으로, 같은 해 8월 이동·방이동·오금동 일부가 신천동 본당으로 이관되었다. 서울 변두리의 논밭이 대부분이던 관할 구역은 1981년 9월 30일 서울 올림픽 개최가 결정되어 선수촌과 경기장 건설이 시작되면서 전입 인구가 늘고 교세도 급격히 증가하였다. 공소 때 지은 건물이 크게 부족해지자 1981년 8월 성당 신축 공사에 착공하여 1983년 11월 총 건축 면적 457평,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성당(137평)과 사제관, 교리실, 사무실 등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1985년 6월에는 잠실 본당으로 이관되었던 문정동과 장지동이 마천동 본당으로 재이관되었다.

1987년 2월에는 송파구 문정동 141번지의 부지 641평을 매입하여 그해 5월 232평의 조립식 건물을 지어 강당·교리실·관리실·지하실 등을 마련하고 문정동 공소를 발족시켰다. 곧바로 6월에 마천동 성당 증축과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사제관 신축 공사에 착공하여 이듬해 4월 성당을 증축(33.8평)하고 새 사제관 건물에 사제관·수녀원·지하 성당 등을 마련하였다. 1988년 3월 경기도 서부면 지역은 수원교구 서부 본당으로 이관되었고, 1989년 10월 13일 문정동 공소가 문정동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성장과 활동〕 1996년 현재 본당의 사목 조직은 13개 구역 67개 반이었고, 사목 협의회 산하에 레지오 마리애 3개 꾸리아 61개 쁘레시디움, 울뜨레아, 성령 기도회, M.E. 성서 모임 봉사자회, 성서 읽기회, 전례단,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연령회, 어버이 성가단, 헌화회, 자모회, 복사단, 노인대학, 성 요셉회, 성모회, 성 대건회 등의 평신도 단체와 청년·학생 단체가 있었다.

본당 신자 대부분이 서울 시내 여러 곳에서 모여든 철거민임에 주목한 초대 주임 오하라 신부는 초창기 사목 방침을 신자 상호 간의 친교에 두었다. 2대 주임 물둔 신부는 환등기를 사용하는 등 교리 교육을 강화하고 매년 여러 차례 합동 혼인성사를 집전하였다. 3대 주임 플라나간 신부는 평신도 사도직을 강조하여 사목위원회를 비롯한 주요 단체를 결성시켰고 꾸르실료 참여를 권장하였다. 4대 주임 모리시 신부는 1982년 10월 노인대학을 개설하고 11월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를 결성했으며, 12월에는 거여동·마천동 일대 영세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 청소년을 위한 야간학교 '다산학교'를 설립하였다. 5대 주임 박항오 마르티노 신부는 구역·반 조직 활성화에 역점을 두고 다산학교를 본당에서 독립시켰으며, 일간지를 통한 입교 안내문 배포, 현수막 게양, 예비자 권면 카드 봉헌, 전 신자 성지 순례 등으로 한 해에 1천 명 이상의 영세자를 배출하였다. 6대 주임 김창만 안드레아 신부는 구역별 미사 봉헌과 구역장·반장 연수를 실시하고 음식 바자회, 여름 가족 캠프, 본당 체육 대회, 척사 대회, 경로 잔치 등을 열었다. 본당은 설립부터의 변모를 살피기 위해 본당 30년사 발간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국가톨릭대사전에 기재되어 있다.

한국가톨릭대사전에 기재된 관할 구역은 송파구 거여1·2동, 마천1·2동과 오금동 일부 지역이다. 역대 주임은 임시 만니온(명) 프란치스코(1971년 9월~12월), 초대 오하라(하) 요한(1971년 12월~1975년 2월), 2대 물둔(조) 파트리치오(1975년 2월~1978년 9월), 3대 플라나간(구) 요셉(1978년 9월~1982년 6월), 4대 모리시(모) 미카엘(1982년 6월~1986년 5월), 임시 박동균 도나도(1986년 5월~8월), 5대 박항오 마르티노(1986년 8월~1991년 9월), 6대 김창만 안드레아(1991년 9월~1996년 10월), 7대 최익철 베네딕도(1996년 10월~)이다. 교세는 1971년 719명, 1974년 1,634명, 1980년 2,888명, 1983년 3,063명, 1986년 5,082명, 1988년 7,128명, 1990년 5,462명, 1994년 6,740명이다.

건축과 공간

1971년 9월 5일 성당(58.8평)과 사제관(19.6평)이 신축되었다. 1981년 8월 착공한 성당은 1983년 11월 총 건축 면적 457평,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성당 137평)로 완공·봉헌되었고, 1987년 6월 착공한 증축·사제관 신축 공사는 1988년 4월 성당 증축(33.8평)과 지하 성당 마련으로 이어졌다.

신앙적 의미와 방문 맥락

한국 천주교 주소록에 따르면 본당의 수녀회는 성가소비녀회이다.

관련 장소와 인물

  • 천호동 본당: 마천동 본당이 분리되어 나온 본당이다.
  • 잠실 본당·신천동 본당·문정동 본당·서부 본당: 마천동 본당 관할 구역이 이관되거나 승격·이관된 본당들이다.
  • 골롬반 외방선교회: 설립부터 1986년 5월까지 본당 사목을 맡은 선교회이다.

참고자료 및 출처

  1.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마천동 본당」. 1971년 9월 17일 천호동 본당에서 분리 설립, 거여동 본당에서 마천동 본당으로 개칭(1981년 3월), 주보 성 아우구스티노, 공소 시대와 성당 신축, 관할 변화, 역대 신부와 교세를 확인하였다.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1863
  2.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 천주교 주소록 「마천동」. 소속 지구(동서울지역 제10 송파지구), 설립일 1971.09.17, 주보 성 아우구스티노, 성가소비녀회를 확인하였다.
    https://directory.cbck.or.kr/OnlineAddress/Catholic/DetailInfo.aspx?cgubn=c&char=all&code=201000091&gubn=4&gubn2=all&gyogu=201000011
문서 정보
문서 크기
8,073 바이트
판 수
1
기여자
1명
만들어진 날
2026년 10월 13일 02:46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3일 02:46
본문 연결
0개
출처 링크
2개 · 제출 출처 있음
작성 상태
보완 권장
장소 ID
261ab369-2d5e-48e2-8dfe-9be342a49062
고정 주소
https://missamap.com/ko/kr/seoul-macheondong-catholic-church/wiki/
인용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마천동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3일 02:46. https://missamap.com/ko/kr/seoul-macheondong-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