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동(지) 성당

목차
  1. 개요
  2. 역사
  3. 건축과 공간
  4. 관련 장소와 인물
  5.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중앙동성당은 서울대교구 서서울지역 제13 관악지구에 속하는 본당으로, 주보는 세례자 성 요한이다. 1969년 8월 10일 상도동 본당에서 분리·설립된 봉천동 본당이 전신이며, 2009년 8월 20일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봉천동 성당에서 중앙동 성당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98년 제13지구장좌 본당으로 지정되었고, 봉천1동·낙성대·봉천8동·봉천5동(현 성현동) 본당을 차례로 분리하였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소록은 중앙동(지) 본당을 서서울지역 제13 관악지구 소속으로, 설립일을 1969.08.10, 주보를 성 요한 세자, 신자수를 6,250명, 공소수를 0으로 올려 두었다. 본당에 함께하는 수녀회는 인보성체수도회이며, 주임은 이재일 티모테오 신부, 부주임은 공덕환 바오로 신부로 적혀 있다.

역사

〔명칭〕 본당 홈페이지의 ‘본당 약사 및 연혁’은 1969년 8월 10일 상도동 본당을 모본당으로 분리 설립되었다고 적고, 2009년 8월 20일 행정구역 변경으로 봉천동 성당에서 중앙동 성당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고 기록한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이 본당을 “봉천동 본당” 항목으로 수록하고, 1969년 8월 10일 상도동 본당으로부터 분리·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세례자 성 요한이라고 적는다.

〔박해 시대와 설립 배경〕 대사전에 따르면 봉천동은 1839년 기해박해 때 성 허계임 막달레나와 두 딸 이정희 바르바라·이영희 막달레나 자매가 살았던 곳이다. 1866년 병인박해 때에는 황해도 배천의 이의송 프란치스코가 아내 김이쁜 마리아, 아들 이붕익 바오로와 함께 친사돈 집이 있던 이곳으로 피신해 있다가 10월 16일 체포되어 10월 22일 양화진에서 순교하였다. 대사전은 이로 미루어 봉천동 일대에 박해 시대부터 신자들이 거주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나, 그 뒤 오랫동안 신앙 공동체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적는다. 1950년대 초까지 경기도 시흥군 동면에 속한 농촌 지역이던 봉천동은 1963년 서울시 편입 이전부터 실시된 도시 재개발 정책에 따라 해방촌과 이촌동 일대 철거민들이 대거 이주해 오면서 서울의 대표적인 철거민촌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1967년 12월 27일 이 지역의 사목 관할권이 대방동 본당에서 상도동 본당으로 이관되었고, 신자 수가 이미 1,000여 명에 이르자 교구는 1969년 5월 10일 성당 부지를 매입하고 석 달 만인 8월 10일 봉천동 본당을 설립하였다.

〔첫 성당〕 대사전에 따르면 초대 주임 김춘근 세례자 요한 신부는 형편이 어려운 신자들의 경제력을 감안해 성당 건축비 모금을 자제하는 대신 일용직에 종사하는 신자들의 도움을 받아 신축 공사에 착수하였다. 본당 연혁은 김춘근 신부의 부임일을 1969년 8월 19일로 적고, 같은 해 12월 13일 새 성당과 사제관을 준공·축성하였다고 기록한다(성당 101평, 사제관 5평, 좌석 300여 석).

〔정착기〕 1970년 1월 부임한 2대 주임 한희동 그레고리오 신부는 성당 건립으로 생긴 부채 상환에 주력하였다. 대사전은 이 시기 1971년 5월 인보 성체 수도회 수녀를 초청하고 1975년 3월 요한유치원(1986년 2월 말 폐쇄)을 개원하였다고 적고, 본당 연혁은 1971년 8월 8일 인보성체 수도회 분원 설치, 1974년 12월 30일 봉천동 성당 부설 요한 유치원 설립으로 기록한다. 3대 주임 이기명 프란치스코 신부는 성당을 증축하였다.

〔장덕필 신부와 1980년〕 대사전에 따르면 4대 주임 장덕필 니콜라오 신부는 봉천동 본당 부임 1년 전인 1976년 ‘3·1 명동 사건’(민주 구국 선언 사건)으로 구속·수감되었다가 그해 말 석방되었다. 봉천동 본당에서 사목하던 1980년 5월 광주 민주 항쟁이 일어나자 미사 강론을 통해 그 진상을 알리다가 7월 12일 허위 사실 유포 혐의로 계엄 사령부에 연행되었고, 신자들은 주임 신부의 조속한 석방을 요구하는 철야 기도회와 집회를 열었다. 장덕필 신부는 형 집행 정지로 1개월여 만에 석방되었다. 장덕필 신부 때인 1981년에는 봉천1동 본당을 분리하였는데, 대사전은 1981년 9월 315세대 1,056명의 교적을 이관하였다고 적고, 본당 연혁은 1981년 8월 21일 315세대(1,500명)를 분리하였다고 기록한다.

〔현 성당 건립〕 대사전에 따르면 본당 분리 뒤에도 신자 수가 급증하자 5대 주임 최광연 모세 신부는 성당 신축을 결정하고 1982년 10월부터 1984년 7월까지 성당 인근 부지 267평을 연차적으로 확보하였다. 1985년 2월 주택은행 봉천동 지점 2층에 임시 성당을 마련하고 4월 26일 공사에 착수하여, 1986년 7월 20일 지하 1층·지상 2층 규모의 성당(883평)을 완공하였다. 본당 연혁은 1986년 7월 20일 현재의 모습인 성당을 축성하기까지 7회에 걸쳐 대지 569평을 마련하고 3회에 걸쳐 개축하여 연건평 883평을 확보하였다고 적는다.

〔본당 분할과 지구장좌 본당〕 6대 주임 남영희 이시도로 신부 때 레지오 마리애가 3개 꾸리아 100여 개 쁘레시디움으로 확대되었고 신자 수가 1만여 명을 넘었다. 7대 주임 김대성 바오로 신부 때인 1994년 3월 10일 봉천11동(낙성대) 본당을 분리하였는데, 본당 연혁은 이때 1,485세대(3,813명)가 분리되었다고 적는다. 같은 해 8월 28일 김수환 추기경 주례로 본당 설립 25주년 기념미사와 축하식을 열었고, 11월 20일 25주년 기념집을 발간하였다. 1996년 5월 7일 노인대학을 개교(재적 43명)하였고, 9월 24일 봉천8동 본당을 분리하였다(본당 연혁 794세대 2,345명). 8대 주임 박항오 마르티노 신부의 부임은 대사전이 봉천8동 분리와 같은 날로, 본당 연혁이 1996년 10월 11일로 적는다. 대사전에 따르면 박항오 신부는 잦은 본당 분할로 소원해진 신자들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1997년 2월 본당 심벌 마크와 로고를 제정하였고, 10월 19일 제1회 체육 잔치를 열었으며 12월 《광야의 소리》를 창간하였다. 본당 연혁에 따르면 1998년 9월 25일 서울대교구 제13지구장좌 본당으로 지정되었고, 10월 9일 제13지구장 겸 제9대 주임 조원행 야고보 신부가 부임하였다.

〔2000년대와 명칭 변경〕 본당 연혁에 따르면 2001년 10월 5일 봉천5동 성당을 분리하였고(458세대 1,268명), 2002년 11월 20일 성체조배실(33.6㎡)을 준공하였다. 2021년 가톨릭신문 기사도 성현동본당이 2001년 10월 5일 중앙동본당을 모본당으로 1,268명의 신자로 설립되었으며, 봉천5동이었던 명칭을 2009년 8월 20일 성현동으로 변경하였다고 적는다. 이어 2003년 9월 16일 지구장 겸 10대 주임 한만옥 토마스 신부, 2004년 9월 21일 지구장 겸 11대 주임 김창훈 바오로 신부, 2009년 2월 17일 지구장 겸 12대 주임 오세만 바오로 신부가 부임하였다. 2007년 7월 6일 조영훈 스테파노 사제서품, 2008년 11월 30일 엘리베이터 축성, 2009년 6월 25일 김시몬 부제서품이 있었고, 2009년 8월 20일 행정구역 변경으로 봉천동 성당에서 중앙동 성당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같은 해 9월 30일에는 70세 이상 남성 노인으로 구성된 아브라함회가 설립되었다.

〔교세〕 대사전은 봉천동 본당의 교세를 1969년 1,436명, 1976년 4,603명, 1982년 8,238명, 1987년 12,285명, 1991년 11,495명, 1996년 5,489명으로 적고, 당시 관할 구역을 봉천2·3·10동 전 지역과 봉천본동·6동 일부 지역으로 기록한다.

건축과 공간

현 성당은 1986년 7월 20일 완공된 지하 1층·지상 2층 규모의 건물로, 대사전과 본당 연혁 모두 연건평을 883평으로 적는다. 굿뉴스 본당정보에 실린 사진 설명에 따르면 성당의 유리화는 한국인 최초로 스테인드글라스 공방(이남규 루가유리화공방)을 운영한 고 이남규 루카(1931~1993) 화백의 작품이다. 2002년 성체조배실이, 2008년 엘리베이터가 더해졌다.

관련 장소와 인물

  • 상도동성당: 중앙동성당(봉천동 본당)의 모본당이다.
  • 봉천1동·낙성대(봉천11동)·봉천8동·봉천5동(현 성현동) 본당: 각각 1981년, 1994년 3월 10일, 1996년 9월 24일, 2001년 10월 5일 중앙동성당(봉천동 본당)에서 분리되었다.
  • 허계임 막달레나와 이정희 바르바라·이영희 막달레나, 이의송 프란치스코 일가: 대사전이 박해 시대 봉천동과 관련된 순교자로 소개하는 인물들이다.
  • 장덕필 니콜라오 신부: 4대 주임으로 1980년 미사 강론에서 광주 민주 항쟁의 진상을 알리다 계엄 사령부에 연행되었다.
  • 이남규 루카 화백: 성당 유리화를 제작하였다.
  • 역대 주임(본당 연혁): 1대 김춘근 세례자 요한(1969.8.19~), 2대 한희동 그레고리오(1970.1.5~), 3대 이기명 프란치스코(1975.5.22~), 4대 장덕필 니콜라오(1977.9.22~), 5대 최광연 모이세(1981.5.20~), 6대 남영희 이시도로(1986.8.27~), 7대 김대성 바오로(1991.9.5~), 8대 박항오 마르티노(1996.10.11~), 9대 조원행 야고보(1998.10.9~), 10대 한만옥 토마스(2003.9.16~), 11대 김창훈 바오로(2004.9.21~), 12대 오세만 바오로(2009.2.17~).

참고자료 및 출처

  1. 중앙동 성당 홈페이지(굿뉴스 본당 홈페이지 호스팅), “본당 약사 및 연혁·역대 성직자”. 1969년 설립과 모본당, 성당 준공, 본당 분리와 세대·신자 수, 지구장좌 본당 지정, 2009년 8월 20일 명칭 변경, 역대 주임.
    http://ch.catholic.or.kr/pongchon/intro.html
  2.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봉천동 본당”. 박해 시대 배경, 설립 경위, 성당 신축, 역대 주임의 사목, 장덕필 신부 연행, 본당 분리, 교세.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2650
  3. 가톨릭신문, “[새 성당 봉헌 축하합니다] 서울대교구 성현동본당”(2021). 성현동본당이 2001년 10월 5일 중앙동본당을 모본당으로 설립되고 2009년 8월 20일 명칭을 변경한 사실.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2110260081264
  4. 굿뉴스 본당정보 “중앙동” 페이지. 성당 유리화가 이남규 루카 화백의 작품이라는 사진 설명.
    https://maria.catholic.or.kr/mobile/church/bondang_view.asp?orgnum=692
  5.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온라인 주소록, “중앙동(지)”. 소속 지구, 설립일, 주보, 신자수, 공소수, 수녀회, 주임·부주임.
    https://directory.cbck.or.kr/OnlineAddress/Catholic/DetailInfo.aspx?cgubn=c&char=all&code=201000226&gubn=4&gubn2=all&gyogu=20100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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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3일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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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중앙동(지)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3일 18:57. https://missamap.com/ko/kr/seoul-jungangdong-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