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곡본동 성당
개요
화곡본동성당은 서울대교구 서서울지역 제17 강서지구에 속하는 본당으로,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있다.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1969년 4월 14일 양화진(현 서교동) 본당에서 분리 설정되었으며, 주보는 평화의 모후이다. 처음에는 화곡동 본당이었으나 1980년 9월 화곡2동 본당을 분리하면서 본당명을 화곡본동으로 변경하였다.
역사
〔공소 설립〕 1963년 경기 김포군에서 서울 영등포구로 편입된 화곡동 지역에는 1966년부터 10만 주택 단지 조성과 입주가 시작되었다. 가톨릭 신자의 유입이 늘자 당시 양화진 본당에 다니던 화곡동 신자들 사이에 본당 설립이 논의되었고, 1968년 6월 9일 본당 설립 기성회를 결성하여 공소 마련을 위한 모금 운동을 벌였다. 그해 9월 22일 화곡동 공소(화곡동 105-34)가 설립되었으며, 본당이 설립될 때까지 주일 미사는 양화진 본당 주임 최석우 안드레아 신부가 집전하였다.
〔본당 설립〕 서울대교구가 화곡동 본당 설립을 인가함에 따라 1969년 4월 14일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고 초대 주임으로 김형식 신부가 부임하였다. 성당과 사제관이 없어 김 신부는 신자 집에 기거하며 공소 강당에서 미사를 집전하였고, 이후 그리스도 신학대학 부근(화곡동 46-17)의 주택을 사제관으로 이용하였다. 주택 앞뜰에 군용 천막을 치고 바닥에 가마니를 깔아 미사를 집전하기도 하였다.
〔성당 건립과 봉헌〕 1970년 6월 현 위치에 성당 대지 420평을 마련해 신축 공사에 들어갔다. 성당 1층과 사제관을 1971년 3월에, 성당 2층을 1972년 9월에 완공하였고, 1972년 10월 15일 노기남 바오로 대주교의 집전으로 봉헌식 및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이에 앞선 1972년 2월 10일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소속 수녀가 파견되었고, 9월 12일 수녀원이 마련되었으며, 이듬해 3월 13일 선미유치원이 개원하였다.
〔2대 주임 김정진 신부〕 1975년 10월 교통이 불편한 신월동 신자들을 위해 건물을 매입하여 신월동 공소를 설치하였는데, 1976년 12월 신정동 본당이 설립되면서 이 공소는 새 본당으로 편입되었다. 1976년 4월에는 성당 건너편(화곡동 105-240)의 주택을 구입하여 수녀원으로 사용하였고, 1977년 9월 교육관을 완공하였으며, 이듬해 8월 발산동 본당을 분할하였다.
〔3~4대 주임〕 3대 주임 최용록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는 1979년 8월 20일 증거자들의 모후 꾸리아를 창단하고, 이듬해 9월 20일 화곡2동 본당을 분리하면서 본당명을 화곡동에서 화곡본동으로 변경하였다. 1983년 김대건 신부 유해 순회 때에는 유해가 안치된 5월 20일 철야 기도회를 마련하였다. 4대 주임 양홍 에우세비오 신부는 1984년 1월 4일 매주 수요일 밤 9시를 '마주보는 날'로 설정하고 성서 읽기를 권장하였으며, 성령 세미나와 기도회도 여러 차례 실시하였다.
〔5대 주임 김택구 신부〕 발산동 본당과 화곡2동 본당을 분리했음에도 신자가 늘어 수용이 어려워지자 성당 주변 대지 400여 평을 매입하고 1991년 3월 11일 성당 신축 공사를 시작하였다. 1991년 11월 17일 마련한 청소년 강당(지하 1, 2층)을 임시 성당으로 썼고, 지상층 골격이 완성되어 1994년 8월 15일 신축 성당 상량식을 거행하였다. 이 시기 1989년 2월 4일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가 창설되었고, 평화의 모후(1989. 4), 로사리오의 모후, 환희의 어머니(1991. 11) 꾸리아가 설립되었으며, 1993년 9월 5일 강서 지구 본부 역할을 하는 '평화의 모후' 꼬미시움이 발족되었다. 1994년 6월에는 우리 농산물 직거래 판매장 운영을 목적으로 '하늘·땅·물·벗회'가 창설되었다.
〔6~7대 주임〕 6대 주임 이찬일 안드레아 신부는 가정 주일 제정, 가족 복사 제도 실시, 가정 기도의 날 설정 등으로 신자의 친교와 가족화에 관심을 기울였다. 몇 차례의 설계 변경과 증축, 설계에 대한 신자들의 이견, 늘어난 공사비 등으로 중단되었던 성당 공사를 1999년 7월부터 재개하여 2001년 7월 15일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7대 주임 차원석 토마스 신부는 2005년 본당 사목 목표를 '우리 자신이 주님의 작은 교회'라는 슬로건 아래 '배움과 실천이 조화를 이루는 해'로 정하고, 문화 영성 대학 개설, 영적 독서 30권 읽기 운동, 시내 도보 성지 순례 등을 실천하였다.
〔설립일 기록〕 한국가톨릭대사전은 설립일을 1969년 4월 14일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온라인 주소록은 1969.03.12로 적고 있어 두 출처가 다르다.
〔교세와 역대 주임〕 한국가톨릭대사전의 신자수는 1970년 1,031명, 1975년 3,596명, 1980년 5,380명, 1985년 7,077명, 1990년 9,151명, 1995년 10,644명, 2000년 10,151명, 2003년 11,703명이다. 역대 주임은 초대 김형식 베드로(1969. 4~1974. 3), 2대 김정진 바오로(1974. 3~1979. 5), 3대 최용록 프란치스코 사베리오(1979. 5~1983. 8), 4대 양홍 에우세비오(1983. 8~1988. 8), 5대 김택구 루도비코(1988. 8~1994. 8), 6대 이찬일 안드레아(1994. 8~2001. 9), 7대 차원석 토마스(2001. 9~)로 기록되어 있다.
관할과 소속
한국가톨릭대사전이 적은 관할 구역은 화곡본동, 화곡7동, 신월1·3동 전 지역과 화곡1·6·8동, 신월5동 일부 지역이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온라인 주소록에 따르면 본당은 서서울지역 제17 강서지구에 속하고 영원한도움의성모수도회가 수녀회로 올라 있으며, 선미유치원이 본당 소속 유치원으로 표기되어 있다.
관련 장소와 인물
- 양화진(현 서교동) 본당: 화곡본동 본당의 모본당이다.
- 신정동 본당: 1976년 12월 설립되어 신월동 공소를 편입하였다.
- 발산동 본당: 1978년 8월 분할되었다.
- 화곡2동 본당: 1980년 9월 20일 분리되었다.
참고자료 및 출처
- 한국가톨릭대사전, "화곡본동 본당". 1969년 4월 14일 양화진 본당에서 분리 설정, 주보 평화의 모후, 관할 구역, 공소 설립(1968)과 본당 승격, 1972년 봉헌식, 분가한 본당들(신정동·발산동·화곡2동), 역대 주임과 활동, 2001년 신축 성당 봉헌.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6996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온라인 주소록, "화곡본동". 소속 교구와 지구(서서울지역 제17 강서지구), 설립일 1969.03.12, 수녀회, 주보, 유치원.
https://directory.cbck.or.kr/OnlineAddress/Catholic/DetailInfo.aspx?cgubn=c&char=all&code=201000249&gubn=4&gubn2=all&gyogu=20100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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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화곡본동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3일 05:44. https://missamap.com/ko/kr/seoul-hwagokbondong-catholic-church/wiki/